미르다드의 서, 제 23장 늙음에 대하여
방주의 외양간에서 가장 늙은 암소 심심은 병에 걸린 탓으로 닷새 동안 먹이나 물을 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샤마담은 심심이 이대로 죽어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도살해서 그 고기와 가죽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편이 낫다고 말하면서 백정을 부르러 갔다.
스승은 이 소식을 듣고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심심이 있는 외양간으로 곧장 향했다. 일곱 사람은 그의 뒤를 따랐다.
심심은 거의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가련하게 서 있었다. 고개는 푹 숙이고, 눈은 반쯤 감고, 털은 뻣뻣해져 광택을 잃었다. 이따금 버릇없이 구는 파리를 쫓기 위해 간신히 귀를 움직일 뿐이었다. 커다란 젖은 넓적다리 사이에서 여윈 채로 축 쳐져 있었다. 길고 풍요로운 생애의 말기에 다다른 심심은 젖을 짜내는 달콤한 통증조차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툭 튀어나온 심심의 허리뼈는 두 개의 묘석(墓石)처럼 음산하고 초라했다. 늑골과 척추뼈는 몇 개인지 쉽게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끝쪽에 굵은 털이 달린 길고 여윈 꼬리는 뻣뻣해져서 수직으로 처져 있었다.
스승은 괴로워하고 있는 이 동물에게 다가가, 뿔과 눈 사이, 빰 아래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손을 등에나 배 있는 곳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스승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심심에게 얘기했다.
“착한 심심아. 되새김질할 먹이는 어디 있느냐? 심심은 너무나 많은 것을 남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되새김질할 먹이를 자기 몫으로 남겨 놓는 일조차 잊어버렸구나. 그래도 심심에게는 남에게 줄 것이 아직도 많이 있다. 눈처럼 하얀 심심의 젖은 진홍색의 피가 되어 지금까지 우리들의 혈관을 돌고 있다. 심심이 낳은 늠름한 황소들은 우리 밭에서 무거운 쟁기를 끌면서 배고픈 수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심심이 낳은 아름다운 암소들은 우리 목장에서 튼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심심의 배설물까지도 정원에서 캐는 싱싱한 야채나 과수원에서 따는 맛좋은 과일이 되어 우리 식탁을 장식해 준다.
우리들이 사는 이 협곡은 심심의 넓은 가슴에서 토해내는 큰 울음소리로 지금까지 계속 메아리치고 있다. 샘물은 심심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지금까지 비춰 주고 있다. 땅은 심심의 불멸의 발자국을 지금까지 뜨거운 자비로 지켜 주고 있다.
목장의 풀은 심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할 수 있어 실로 기쁘다. 태양은 심심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대단히 즐겁다. 산들바람은 심심의 부드럽고 윤이 나는 털가죽을 기뻐하며 스치고 지나간다. 미르다드는 오래된 사막을 건너 심심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그리하여 다른 태양이 빛나고 다른 산들바람이 부는 다른 나라의 목장으로 안내할 수 있게 된 것을 몹시 감사하고 있다.
심심은 많은 것을 주었고, 많을 것을 받았다. 그러나 심심에게는 주어야 할 것이 아직 많으며, 받아야 할 것도 아직 많다.“
미카스터가 물었다.
“심심은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당신은 마치 심심이 인간 같은 이해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중요한 것이 말이 아니다, 미카스터. 중요한 것은 말 속에서 서로가 공명(共鳴)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짐승이라도 감수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심심의 온화한 눈동자 안에서는 한 사람의 여성이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보인다.”
미카스터가 물었다.
“이토록 늙고 앙상한 심심에게 말을 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스승께서는 심심의 남은 생명을 연장하고 노쇠를 멈추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늙음은 인간에게 두려운 짐이듯이, 짐승에게도 두려운 짐이다. 인간은 냉담하고 무정하기 때문에 늙음의 짐을 더욱더 늘리고 있다. 갓난아이에 대해서는 최고의 배려와 애정을 바치면서도, 나이의 짐을 짊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려보다는 무관심을, 동정보다는 혐오를 쏟는다. 인간들은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아이를 일찍 어른으로 만들려고 독촉하듯이, 노인을 일찌감치 묘지가 삼켜 버리도록 독촉한다.
아주 어린 자와 아주 늙은 자는 똑같이 무력하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무력함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 가득한 헌신적인 도움을 끌어낸다. 그렇지만 노인의 무력함은 극히 적은 사람들에게서만 원망 섞인 도움을 얻어낼 뿐이다. 하지만 노인은 진정 어린아이 이상으로 동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예전에 지극히 미약한 속삭임까지 감지하던 예민한 귀가 크게 오랫동안 두드려야 비로소 그 소리를 알아들을 때, 예전에 맑았던 눈이 무겁고 꺼림직한 반점과 그림자가 춤추는 터전이 될 때, 예전에 날개를 달았던 발이 납덩이로 되고, 예전엔 생명을 빚어내던 손이 깨진 거푸집이 될 때, 무릎은 관절이 빠지고, 머리는 고개에 얹혀 있는 인형이 될 때, 이빨이 빠지고, 그 흔적이 쓸쓸한 동굴이 될 때, 일어설 때는 넘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식은 땀을 흘려야 하고, 앉을 때는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봐 고통스런 불안을 느껴야 할 때, 음식을 먹으면 식후의 후유증을 걱정해야 하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원수 같은 죽음에 좀더 다가가는 것이 될 때,
나의 동행자들이여, 인간에게 늙음이 찾아오는 바로 그때야말로 애정을 다해 눈과 귀를 빌려주고 손과 발을 줌으로써 쇠퇴해가는 그의 힘을 받쳐 줄 때다. 힘이 다하는 날이 와도, 왕성했던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과 조금도 다름없이 자신이 삶을 누리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80년이란 세월은 영원 속에서는 한 순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80년 동안 자기 자신을 땅에 뿌려온 인간은 진정 한 순간 이상의 존재인다. 그의 생명을 수확하는 모든 것에게 그는 식량이 된다. 모든 것에 의해 수확되지 않는 생명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대들은 진실로 지금 이 순간, 일찍이 이 대지를 밟았던 모든 남녀들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대들이 쓰는 말은 그들의 말에서 수확한 것이 아니던가? 그대들의 생각은 그들의 생각을 채집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대들의 옷이나 주거지, 음식이나 도구, 법률이나 전통이나 인습, 이런 것들은 예전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옷, 주거지, 음식, 도구, 법률, 전통, 인습이 아니던가?
그대들은 한 시기에 어느 한 가지만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에 모든 사물을 수확하고 있다. 그대들은 씨 뿌리는 사람이자 거두는 사람이며, 밭이자 탈곡장이다. 만약 그대의 수확이 빈약하다면, 그대가 남에게 뿌린 씨앗과 남들이 그대에게 뿌린 씨앗을 살펴보라. 또한 거두는 자와 그의 낫을 살펴보고, 밭과 탈곡장을 살펴보라.
생명을 수확해서 곡물창고에 비축한 노인은 분명 최고의 배려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수확할 것이 여전히 풍부한 노인의 하루하루를 무관심으로 괴롭히면, 그대가 그에게서 모아 쌓은 것, 그리고 그대가 이제부터 모으는 것은 분명 그대의 입에 괴로울 것이다. 쇠잔해 가는 짐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확물로 이익을 얻으면서, 그 씨를 뿌린 사람과 밭을 저주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무슨 종족이든지, 어디에 살든지, 모든 인간에게 친절히 하라, 나의 동행자들이여. 그들은 그대들이 신에게 향하는 여행에 가지고 갈 음식물이다. 특히 노인에게 친절히 하라. 그대의 불친절로 인해 그대의 음식물이 오염되고 그대 여행의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무슨 종류이든. 얼마나 나이를 먹었든지, 모든 동물들에게도 친절히 하라. 말은 못하지만 동물들은 길고 괴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데 말할 수 없이 성실하게 그대를 도와준다. 특히 늙은 동물에게 친절히 하라. 그대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동물들의 성실성이 불성실로 변하고, 그들의 도움이 방해로 변하는 일이 없도록.
심심의 젖을 먹고 힘을 유지해 왔으면서도, 이제는 젖이 나오지 않는다 해서 심심의 목을 백정의 칼날에 넘기는 것은 가혹한 배은망덕이다.“
스승이 말씀을 마치기도 전에 샤마담이 백정을 데리고 왔다. 백정은 곧장 심심이 있는 곳으로 갔다. 심심을 보자, 그는 즉시 재미있다는 듯 놀리는 말투로 외쳤다. “어째서 이 암소가 병으로 죽는다고 하십니까? 이 소는 나보다 건강합니다. 단지 나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이 소는 가엾게도 몹시 굶주리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먹을 것을 가져 오십시오.”
우리들은 정말이지 너무도 놀랐다. 심심을 바라보니 음식을 씹고 있었다. 샤마담의 마음까지도 부드럽게 변해서, 그는 소의 먹이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그리고 심심은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