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 의 문어발 확장

[이영기]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현재를 `인류세(Anthropocene Epoch)`로 기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무척추동물에서 시작돼 어류·양서류까지 등장했던 고생대, 공룡(파충류) 시대였던 중생대, 그리고 포유류가 번성하기 시작한 신생대까지는 5억8000만년의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해당하는 신생대 가장 마지막 단계인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Epoch)는 `겨우` 1만1000년에 시작됐다. 이 시기에 인류는 돌을 갈아 만든 신석기부터 신의 영역인 생명 연장 기술까지 개발해낼 정도로 빠르게 진화했다.

2000년부터 일부 지질학자들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가서 천연두를 옮긴 1610년 또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진 1964년을 인류세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백 년 뒤 후대의 지질학자들이 땅을 파면 인류가 지구에 남긴 흔적들(토양 중 납 농도 증가, 썩지 않은 플라스틱 쓰레기 등)이 다른 모든 지질학적 증거를 압도할 것이라는 점에서 꽤 설득력 있다. 

지질학자들이 현재를 인류세로 규정하는 데 최종 합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이미 인류세에 적응하기 위한 발빠른 변화가 시작됐다. 자본시장 플레이어 가운데 진화 속도가 가장 빠른 사모펀드(PEF)들이 각종 폐기물 업체들을 경쟁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IMM인베스트먼트는 폐기물 처리업체 6곳을 계열사로 거느린 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EMK)를 JP모건에셋매니지먼트에서 매입한 바 있다. 최근엔 EMK의 동남아시아 진출 타진 소식도 들렸다. SC PE도 수처리업체인 옛 코오롱워터앤에너지를 인수해 환경관리주식회사로 바꾼 이후 폐기 업체 5곳을 추가 인수했다. 이들은 쓰레기 소각 때 나오는 폐열을 인근 전기발전소에 파는 방식 등으로 재활용해 추가 수익을 낸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전문 분야로 파고드는 곳들도 생겨났다. 한국투자금융지주 산하 PE인 이큐파트너스가 의료 폐기물 업체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다른 폐기물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고, 수익률도 안정적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최근에는 아예 폐기물 업체만 전문적으로 인수하는 소규모 PE들도 생겨나고 있다. `고물상` 수준이던 폐기물 업체가 PE들의 잇따른 인수·합병(M&A)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며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한 변화다. 과거 10년간 PE 업계에서는 먹고(패밀리레스토랑·패스트푸드) 마시고(커피전문점) 입는(아웃도어의류) 기업 M&A가 트렌드였다. 이제는 잘 버리는 게 대세다. 

자본 흐름이 인류가 지구에 남길 상처를 조금이나마 완화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