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레이션: 기원전 771년, 주 유왕의 죽음과 함께 春秋戰國時代가 시작됩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화 하면서 약자의 삶이 철저히 짓밟히는 절망적인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과 어둠은 오히려 새로운 생각의 밑거름이 됩니다. 절망적이기에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희망을 찾아나선 이들, 세상의 고통에서 눈 돌리지 않고 짓밟히는 이들의 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인류 역사상 거대한 생각의 폭발을 보여준 그들을 우리는 諸子百家라고 부릅니다.
내레이션1: 기원전 234년 진나라의 궁전인 함양궁에 한 나라의 사자가 도착합니다. 당시 한나라를 공격 중이었던 진의 군대를 물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사자는 사실 전쟁의 원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사자의 이름은 韓非子, 한나라 왕실의 서자였습니다.
한비자: 한나라 사자 한비자가 진나라 왕을 뵈옵니다.
내레이션: 진시황은 우연히 한비자(BC 280~233)의 책 중 모두와 고분 두 편을 읽고 감명 받은 나머지 그를 진나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뵙케 데네케/보스턴대 비교문학 교수: 진시황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말했습니다. 이 글의 저자와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내레이션: 과연 한비자에게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었기에 진시황이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한비자를 직접 보고자 했던 것일까요. 한비자 같은 법가 사상가들을 우리는 현실주의자 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이상주의적인 사상가들, 그러니까 공자나 묵자 와는 對蹠點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상주의와 구별되는 현실주의란 무엇일까요? 현실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장자가 전하는 이야기를 한편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장자가 길을 걷다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따라가 보니 그건 다름 아닌 물고기였습니다. 물고기는 제발 물 한 되만 길어다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죠.
장자: 좋다, 나는 지금 남쪽의 오 나라와 월 나라로 가는데 서강의 물을 끌어와 네게 물길을 뚫어주겠다. 그리하면 되겠느냐?
내레이션: 그러자 물고기의 대답이 정곡을 찌릅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내일 아침,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미야 이타루/교토대 인문학연구소 교수: 물이 필요한 것은 현실이지만 멀리 떨어진 서강(西江)의 물은 비현실적입니다. 즉 현실적으로 필요한 해결책과 비현실적인 해결책의 차이를 풍자 하려는 것이 이 장자의 일화입니다.
쑹훙빙/인민대 국학원 교수: 즉 현실에 따라서 현실을 잘 파악하여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레이션: 한비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런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치치리라는 사람이 하루는 발에 탁본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시장에서 신발을 살 때 칫수를 재보기 위해서 였죠. 헌데 가게에서 신발을 고르다가 탁본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뿔사! 치치리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죠. 신어보면 되지 않느냐는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발탁본을 찾은 치치리는 곧장 시장으로 향합니다.
뵙케: 하지만 그가 돌아왔을 때 시장은 이미 파한 뒤 였습니다. 어떤 이가 치치리에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신발을 사려했고 당신의 발이 여기 있는데 왜 발을 보여주고 맞는 신발을 사지 않은 겁니까? 그러자 치치리가 답했습니다. 자로 잰 칫수는 믿어도 내 발을 믿을 수 없습니다.
도미야: 칫수에 맞는 신발을 사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정해진 기준을 참고로 하여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자신의 발을 기준으로 신발을 신어보고 사는 것은 상황에 따라 현실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한비자는 치수를 잰 종이(탁본)를 잃어버렸든 아니든 자신의 발이 있는 한 신발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유가의 상고주의와 한비자의 현실주의가 대립하는 지점이라 한비자가 비판하는 부분입니다.
뵙케: 과거에 발전된 고대 성왕들의 가르침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과 현재의 문제에 의지해야 합니다. 300년 전 혹은 주 나라 왕처럼 훨씬 더 오래전 인물들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규범을 제시해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치치리는 자신의 발을 사용했어야 합니다. 발은 신발이 필요한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문제를 의미합니다.
내레이션: 한비자는 말합니다.
한비자: 성인은 굳이 옛 道를 닦아 지키려 하지 않으며 항상 예전에 옳았던 것을 法으로 삼지 않고 세상의 일을 논하며 그것에 적절한 대비책을 세우는 법입니다.
내레이션: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춘추시대 진나라에 왕량이라는 마부가 있었습니다. 그가 마차를 몰면 단숨에 천리를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천리 밖에 전할 소식이 있다면 왕량에게 맡기는 게 최고의 선택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왕량이 한 사람 뿐이고 역사를 통틀어도 그런 사람은 거의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비자는 묻습니다.
한비자: (진시황을 향하여) 왕께서 지금 당장 전해야 하는 편지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또 다른 왕량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운이 좋다면 오십에서 백 년쯤 운이 없다면 천 년 정도 기다리면 되겠지요. 두번째는 다른 수단을 찾는 것입니다. 평범한 마부들을 데리고도 천 리 밖에 소식을 전할 수단을 말입니다.
김원중/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오히려 말몰이의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 20명을 50리 단위로 배치해서 몰아가면 지치지도 않을 것이고 충분히 왕량 못지않게 힘을 발휘할 것이다.
쑹훙빙: 성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성인은 매우 적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차를 모는 사람으로 오직 왕량을 찾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왕량은 아주 적습니다. 즉 나라를 다스릴 성인 역시 아주 적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적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나라를 어떻게 설계해야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법으로 세를 얻으면 다스릴 것이고 (抱法처세칙治) 법을 등져 세를 잃으면 혼란할 것이다(背法去세칙亂) 라는 말처럼 사회에는 일종의 제도(시스템)의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제도(시스템)의 작동하에서는 군주가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시스템만 잘 운영된다면 성인이 다스리는 것과 같은 정치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한비자는 이러한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레이션: 그렇다면 그 시스템을 적용시킬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공자나 맹자가 꿈꿨던 성인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현실의 인간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위 나라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아끼는 가정이었죠. 어느날 부부는 하늘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내는 비단을 딱 백 필만 내려달라고 빌었죠. 그러자 남편이 눈을 번쩍 뜨며 비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왜 겨우 백필이냐고 호통을 칩니다.
뵙케: 부인은 더는 필요치 않다고 말합니다. 더 많은 비단이 생기면 당신이 첩을 얻을테니까요. 이것은 이익(利)에 관한 훌륭한 이야기 입니다.
쑹훙빙: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이익의 충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부부 사이에도 이익의 충돌이 존재하고 이익을 따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관한 한비자의 아주 중요한 고찰입니다. 한비자는 인간 본성을 고찰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관계는 바로 이익이 얽힌 이해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레이션: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이란 좋은 일을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선행을 할 때 자신에게는 전혀 이익이 없고 오히려 타인에게만 이익이 되는 경우도 분명 있지 않을까요? 찾아보면 부하들을 자식처럼 대하는 장군들의 이야기도 많이 전해지고 있죠. 吳子兵法의 저자 吳起처럼 말입니다. 76전 무패, 그는 일흔 다섯 번을 싸워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천하무적의 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끔찍히 아꼈습니다. 어느 날 吳起는 한 병사가 악성종기로 고생을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직접 병사의 종기를 빨았습니다. 아마 역사상 병사의 독창을 입으로 빤 장군은 오기가 유일할 것입니다.
쑹훙빙: 그 병사의 어머니는 이것을 듣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오기 장군이 당신의 아들을 그토록 아껴 전장에서 입으로 고름까지 빨아 주셨는데 기뻐하지는 못할 망정 왜 우는 것입니까?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 오기가 이 병사의 아버지의 고름도 빨아줬습니다. 오기가 고름을 빨아준 뒤 그의 아버지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전장에서 앞장서 용감히 싸우다가 결국 죽었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오기가 그녀의 아들의 고름을 빨아 줬으니 아들도 전장에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아들도 그의 아버지처럼 전사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레이션: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았던 吳起는 父子之兵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장수와 병사가 마치 父子之間처럼 서로를 아낀다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孔子의 가르침이 전쟁터에서도 효과가 있어 보이지요. 하지만 韓非子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쑹훙빙: 때문에 오기가 고름을 빨아 준 목적은 병사의 충성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병사들이 충성심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장에 나가 적들과 싸운다면 오기가 바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기의 행위는 이타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만 본질적으로는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입니다.
내레이션: 그런데 利己心이라는 절망적인 인간의 속성을 통해서 韓非子는 오히려 희망을 보았습니다. 적절한 통제를 통해 난세를 해결할 가능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간이 이기적이고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면 한비자가 두 개의 칼 자루라고 표현한 상과 벌을 활용해서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法입니다.
한비자: 성군은 법에 맡기지 인간의 지혜에 맡기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 뒤에야 자신이 안정되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내레이션: 그렇다면 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명심해야 할까요?
한비자: 불은 뜨거워서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며 두려워하므로 타죽는 경우가 적습니다. 물은 유약해 보여서 사람들이 얕보고 장난치다가 익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레이션: 한비자에 의하면 관대함은 성왕이나 할 수 있는 어려운 통치술입니다. 보통 사람이 흉내 내다가는 오히려 백성들을 난세로 몰아넣을 뿐이죠. 따라서 엄격함이 관대함보다 낫습니다.
폴 골딘/펜실베이니아대 중국사상 교수: 무거운 형벌은 효과적입니다. 반드시 사랑을 강조하거나 대중적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처벌이 무겁다는 걸 알면 사람들은 범법 행위를 하지 않을 겁니다. 처벌이 가볍다고 여기면 법을 어기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商鞅의 저서인 [상군서]의 확실한 주제입니다. [한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비자는 정해진 형벌을 줄이거나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미야: 형벌의 목적에는 경고와 예방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비자도 그렇게 말하고있는데요. 도둑을 처벌하는 것은 아직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을 그런 행위에서 멀리 떼어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도둑질한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반예방 즉 경고의 목적입니다.
내레이션: 따라서 형벌도 매우 잔혹했죠. 진 나라에서 법가의 기초를 세운 商鞅이 집권하는 동안 매일 같이 위수 강변에서 처형이 이루어졌는데 한 번에 700명을 처형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시체에서 흐르는 피로 위수가 붉게 물들고 통곡소리가 천지를 울렸습니다. 輕罪重罰 가벼운 죄도 무겁게 처벌하면 감히 어길 엄두를 못내어 법을 지킬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한비자가 생각한 법 적용의 원칙은 엄격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초 나라 장왕이 긴급히 태자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따라 비가 내려 태자는 수레를 탄 채 궁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죠. 하지만 초 나라 법에는 내궁 안까지 수레를 타고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관리: 소인, 태자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태자: 비키거라!
관리: 태자 전하! 수레에서 내려 오십시오.
태자: 감히, 태자인 나더러 내려오라고 하는 것이냐?
관리: 태자 전하, 궁에는 궁 안의 법도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수레를 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태자: 내가 태자이거늘 감히 누가 나를 막는 것이냐?
관리: 태자 전하, 송구하옵니다.
태자: 네 놈이 감히!
내레이션: 태자가 끝내 들어가려고 하자 관리는 아예 수레를 부셔버렸습니다. 태자는 다음에 왕이 될 사람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태자는 아버지인 장왕을 찾아갑니다.
김원중: 태자가 왕한테 가서 울면서 관리를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하는 말이 내가 왕 위에 있을 때 그는 법을 지켰고 지금은 태자가 후계자이지만 태자에게도 아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게도 공정하고 후계자에게도 공정하니 그야말로 모범이라 했습니다.
뵙케: 이는 한비자에 나오는 많은 일화 중에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한비자는 법이 궁극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 사람의 신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여러모로 아주 멋진 교훈입니다.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우리는 평등을 믿습니다. 한 나라의 총리나 황제, 화장실 청소부도 법 앞에서 모두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가치입니다.
한비자: 법은 귀인이라고 아부하지 않으며 먹줄은 굽음에 따라 휘어지지 않습니다.
내레이션: 법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평등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계급이나 존귀, 친소, 재산 등에 따라 적용 범위가 달라진다면 누구도 법을 지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스콧 셔피로/예일대 로스쿨 교수: 공직자들이 법대로 집행하지 않고 자기 기분이나 취향을 따른다면 이는 직권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공직자가 권력을 남용하면 시스템의 합법성이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법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내레이션: 한비자가 생각한 법 적용의 또 다른 원칙은 신뢰입니다. 진 나라의 법가 사상가 商鞅은 어느 날 도성 남문 앞에 약 10미터 정도의 나무 막대기를 세우도록 합니다.
김원중: 한번 테스트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자 자리에 모인 데서 나무 막대기를 세워놓고 이것을 저쪽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옮기면 10금을 주겠다 라고 하니까 아무도 안 옮겼죠.
쑹훙빙: 당시 1금이 은 20냥이었습니다. 10금이면 은자 2백냥이죠.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큰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냐며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망설이자 商鞅은 상금을 50금으로 올립니다. 50금이면 은자 1천 냥에 상당하죠.
내레이션: 나무 막대기 하나 옮기는데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자금이 걸린 것입니다. 이 때 어떤 할일 없는 남자가 나무 막대기를 북문으로 옮깁니다. 어차피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쑹훙빙: 3장 길이의 나무 막대기를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상금 50금을 받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당시 진나라 백성들은 상앙의 언행일치를 믿게 됩니다. 상앙은 말한 것을 반드시 실행에 옮긴다고 믿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3장 길이의 나무 막대기를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기면 50금을 주겠노라 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죠. 상앙은 그 후의 정치 실천 과정에서도 자신이 제기한 모든 법령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신력을 확립했습니다.
내레이션: 엄격함, 예외없음, 그리고 신뢰야 말로 시스템을 떠받치는 큰 기둥인 것입니다. 그런데 시스템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송나라에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술집이 있었습니다. 주인 장씨는 예의도 바르고 술의 양을 공정하게 나눠주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손님이 점점 뜸해지더니 어느 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술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술은 하나도 팔리지 않아 다 시어 버렸죠.
김원중: 결국은 그 마을의 어른인 양천에게 물어 봤죠. 도대체 술이 왜 시어집니까? 그랬더니 양천이 혹시 개가 사나운지 물어봅니다. 개가 사나운 것과 술이 시어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개가 사납기 때문에 술이 시어진다고 말합니다. (개가 짖는 동영상), 어린 아이를 시켜서 술을 사오게 했는데 술 집 앞에 사나운 개가 있으면 어린 아이가 들어오면 감히 술을 사올 수 있겠느냐 이는 나라에도 마찬가지다. 군주가 백성들을 바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신하들 중에는 군주나 백성들의 사이를 가로 막는 존재, 마치 사나운 개와 같은 존재가 있다. 그러니 개가 사납지 않아야만 나라가 잘 되는 것이다.
내레이션: 여기서 개는 국가의 개혁을 가로 막는 기득권 세력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하들 없이 정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신하를 쓰되 그들이 딴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고 또 다른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 술과 육미로 대표되는 한비자의 術입니다.
쑹훙빙: 한비자는 “법막여현 술불욕견” (法莫如顯 術不欲見) 이라 했습니다. 법(法)은 최대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최대환 명확해야 하고 최대한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하지만 술(術)은 다릅니다. 술은 최대한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미야: 술(術)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권력 또는 군주의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방편, 방법 또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군주가 어떻게 신하나 백성을 통제하느냐 그에 대한 방편과 방법이 바로 術입니다.
내레이션: 한비자가 주장하는 술로는 우선 유반이 있습니다. (有反-상반되는 이해를 살펴라),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진상을 알기 어려운 때가 있지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을 때는 무엇부터 살펴봐야 할까요. 어느 날 요리사가 왕에게 고기를 구워 받쳤습니다. 왕은 고기를 집으려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머리 카락이 버젓이 감겨 있었죠.
왕: 감히 나의 요리에 머리카락을 넣다니 당장 요리사를 잡아오라!
내레이션: 분노한 왕은 즉시 요리사를 체포했습니다.
왕: 무엄하도다! 이유가 무엇이냐
쑹홍빙: 요리사는 자신이 처벌을 받게 되자 이유를 들어 해명을 합니다. 저에게 세 가지 죄가 있습니다. 저는 칼질이 뛰어납니다. 칼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고기를 썰 때 고기는 잘랐지만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고기를 꼬챙이에 꿸 때도 기술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꼬챙이로 고기를 꿰었지만 머리카락은 꿰지 못했습니다. 저는 고기를 굽는 기술도 뛰어납니다. 그래서 고기는 잘 익혔지만 머리카락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죄가 있습니다. 사실 그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은 나의 요리 기술이 이렇게 뛰어난데 어떻게 고기에 머리카락이 남아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저의 아랫 사람 중 누군가 저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김원중: 군주가 뭔가 꺼림칙 해서 찾아보니 요리사를 시기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가 있어 일부러 머리카락을 감아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를 처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군주가 신하를 다스릴 때는 항상 어떤 신하가 일을 잘못 저질렀을 때 반드시 그 반대편에서 이익을 얻는 자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 잘못한 자를 문책하려 들지 말고 그 반대편에서 이익을 얻는 자가 누군지 살펴서 그 자를 찾아내는 것이 군주의 역량이고 자질이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 군주의 리더쉽은 타격을 입는다. 이것이 한비자가 말하려는 것의 핵심이죠.
내레이션: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협지(挾智), 속 마음을 감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속 마음을 감추는 것은 모든 術의 핵심입니다. 전체 군주의 역량이고 속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 전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하에게 속 마음을 들킨다면 오히려 조롱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왕은 자신의 손톱 하나를 감추고 일부러 잃어버린 척 했습니다.
왕: 과인의 손톱이 왜 하나가 모자란 것이요? 경들은 무얼하는 자들이기에 과인의 손톱 하나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는 것이오?
내레이션: 놀란 신하들은 이곳 저곳을 살피며 손톱을 찾아 다닙니다. 이 때 한 신하가 꾀를 냅니다.
신하: 전하, 제가 찾았습니다.
뵙케: 왕은 신하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 신하가 바닥에서 무언가 줍는 척하며 몰래 자신의 손톱을 잘라서 왕에게 준다면 신하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왕이 손톱을 찾기에 그것에 맞추어 자기 손톱을 잘라 왕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정직한 신하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하가 손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며 왕에게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한다면 그는 왕이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신하입니다. 이것은 술(術)을 설명하는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신뢰할 수 있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을 찾는 건 왕의 기술이죠.
내레이션: 다음의 술은 참관입니다. (參觀-여러 사람의 말을 참조하고 관찰하라), 여러 신하들로 부터 서로 다른 의견을 듣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십니까. 하지만 한비자의 진정한 통찰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주변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는데 모두가 찬성하는 정책이 있다고 합시다. 그 정책은 확실히 좋은 정책일까요. 한비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한비자: 무릇 남과 상의한다는 것은 의심스럽기 때문이며 의심스럽다 하는 것은 정말 의심스러운 것이어서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자가 절반 옳지 않다고 여기는 자가 절반이 되는 것이지요. 지금은 나라 안의 사람들 전부 옳다고만 하니 왕께서 절반을 잃으신 셈입니다. 본래 군주를 위협하는 자는 그 절반을 제거하는 법입니다.
내레이션: 다시 말해 왕이 인의 장벽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다음은 일청입니다. (一聽-하나 하나 듣고 판단하라), 복지부동이나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방법이죠. 옛날에 피리합주를 매우 좋아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3백명이 한꺼번에 피리를 불도록 했죠. 이중에는 물론 피리를 잘 부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예 불 줄도 모르면서 흉내만 내는 자들도 있었죠. 아무튼 수백명의 연주자들이 모두 높은 봉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죽고 아들이 즉위했습니다. 새 왕은 합주가 아니라 독주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씩 따로 불러서 연주를 감상했죠. 무임승차로 편히 지내던 엉터리 연주자 입장에서는 큰 일이 난 것입니다.
쑹훙빙: 남곽처사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계속 속여 넘길 수 있었을까요? 속일 수 없었습니다.당연히 도망을 가버렸죠. 두루뭉실하게 일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각각의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의 시비곡절에 따라 공적과 과실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일청책하(一聽責下), 즉 일일이 들어보고 개개인마다 확인하고서 시찰하여 그들의 공적과 과실을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일도 안 하면서 자리만 자지하고 간교한 속임수를 부릴 것입니다.
폴: 이는 한비자에 나오는 이중성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왜곡했을 때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능한 한 정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려 할 것입니다. 자신의 약속과 비슷한 성과를 내면 보상이 따를 테지만 자기 능력을 너무 과장하면 처벌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레이션: 이 처럼 한비자는 냉정하게 권력정치의 현실을 꿰뚫어 봄으로써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도 권력투쟁의 희생물이 되고 맙니다.
마이클 푸엣/하버드대 중국사 교수: 진나라 왕이 한비자의 사상에 심취하자 당시 재상이던 이사의 질투가 시작됩니다. 이사는 진나라 왕에게 한비자를 모함하고 결국 한비자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비자의 탁월한 설득력이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내레이션: 한비자만이 비극적으로 죽은 것은 아닙니다. 법가 사상가들의 최후는 대부분 비참했습니다. 진나라의 법가의 전통을 세운 상앙, 역시 거열형에 의해 사지가 찢겨 죽었고 초기 법가의 선구자 오기 또한 개혁의 원한을 품은 귀족들에게 수많은 화살을 맞고 죽었죠. 때문에 한비자와 친분이 두터웠던 단계공은 일찍이 한비자에게 상앙과 오기의 예를 들며 목숨을 소중히 여기라고 충고했던 것입니다.
쑹훙빙: 하지만 한비자는 단계공의 충고에 대답하는데 이 대답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한비자의 숭고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비자가 말하기를 당계공은 한비자의 목숨과 이익을 위해 충고했지만 한비자의 이상은 편중서이민맹지도 (便衆庶利民萌之道)입니다. 즉 천하의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한비자가 말합니다. 당신이 비록 나의 이익과 목숨을 생각해준 말이고 모두 나를 위하는 것이기는 하나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 나에 대한 인격 모독이나 다름없다. 내게 세상을 구하려는 숭고한 마음을 포기하라 하여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내레이션: 아마 한비자는 자신의 이런 죽음을 알았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는 안았을 것입니다. 한비자와 법가 철학자들은 정치란 권력이란 더러운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성의 어두운 면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어둠을 이용해서 연꽃을 피워내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현실주의자들의 결기일 것이다. 끝. (EBS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제자백가 1441회 한비자, 간교한 기득권에 맞설 때 에서 정리)
① 기원전 771년, 주 유왕의 죽음과 함께 春秋戰國時代가 시작됐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화 하면서 약자의 삶이 철저히 짓밟히는 절망적인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절망과 어둠은 오히려 새로운 생각의 밑거름이 됐다. 절망적이기에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희망을 찾아나선 이들, 세상의 고통에서 눈 돌리지 않고 짓밟히는 이들의 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인류 역사상 거대한 생각의 폭발을 보여준 그들을 우리는 諸子百家라고 부른다. 기원전 234년, 진 나라의 궁전인 함양궁에 한 나라의 사자가 도착한다. 당시 한나라를 공격 중이었던 진의 군대를 물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자는 사실 전쟁의 원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사자의 이름은 韓非子, 한나라 왕실의 서자였다. 한나라 사자 한비자가 진나라 왕을 뵙다. 진시황은 우연히 한비자(BC 280~233)의 책 중 모두와 고분 두 편을 읽고 감명 받은 나머지 그를 진나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진시황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말했다. 이 글의 저자와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② 과연 [한비자]란 책 속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었기에 진시황이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한비자를 직접 보고자 했던 것일까. 한비자 같은 법가 사상가들을 우리는 현실주의자 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상주의적인 사상가들, 그러니까 공자나 묵자와는 對蹠點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도대체 이상주의와 구별되는 현실주의란 무엇일까? 현실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莊子가 전하는 이야기를 보도록 하겠다. 어느 날 장자가 길을 걷다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다. 따라가 보니 그건 다름 아닌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제발 물 한 되만 길어다 달라고 사정을 했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좋다, 나는 지금 남쪽의 오 나라와 월 나라로 가는데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와 네게 물길을 뚫어주겠다. 그리하면 되겠느냐? 그러자 물고기의 대답이 정곡을 찌른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내일 아침,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이 필요한 것은 현실이지만 멀리 떨어진 서강의 물은 비현실적이다. 즉 현실적으로 필요한 해결책과 비현실적인 해결책의 차이를 풍자 하려는 것이 이 장자의 일화다. 즉 현실에 따라서 현실을 잘 파악하여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③ 韓非子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런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치치리라는 사람이 하루는 발에 탁본을 만들었다. 물론 시장에서 신발을 살 때 칫수를 재보기 위해서 였다. 헌데 가게에서 신발을 고르다가 탁본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아뿔사! 치치리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신어보면 되지 않느냐는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발탁본을 찾은 치치리는 곧장 시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돌아왔을 때 시장은 이미 파한 뒤였다. 어떤 이가 치치리에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당신은 신발을 사려했고 당신의 발이 여기 있는데 왜 발을 보여주고 맞는 신발을 사지 않은 겁니까. 그러자 치치리가 답했다. 자로 잰 칫수는 믿어도 내 발을 믿을 수 없다. 칫수에 맞는 신발을 사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정해진 기준을 참고로 하여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자신의 발을 기준으로 신발을 신어보고 사는 것은 상황에 따라 현실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한비자는 치수를 잰 종이(탁본)를 잃어버렸든 아니든 자신의 발이 있는 한 신발을 살 수 있다는 거다. 이것이 유가의 상고주의와 한비자의 현실주의가 대립하는 지점이라 한비자가 비판하는 부분이다.
④ 과거에 발전된 고대 성왕들의 가르침을 믿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과 현재의 문제에 의지해야 한다. 300년 전 혹은 주 나라 왕처럼 훨씬 더 오래전 인물들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규범을 제시해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치치리는 자신의 발을 사용했어야 했다. 발은 신발이 필요한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문제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말한다. 성인은 굳이 옛 道를 닦아 지키려 하지 않으며 항상 예전에 옳았던 것을 法으로 삼지 않고 세상의 일을 논하며 그것에 적절한 대비책을 세우는 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춘추시대 진나라에 왕량이라는 마부가 있었다. 그가 마차를 몰면 단숨에 천리를 갈 수 있었다. 천리 밖에 전할 소식이 있다면 왕량에게 맡기는 게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왕량이 한 사람 뿐이고 역사를 통틀어도 그런 사람은 거의 태어나지 않는다. 한비자는 묻는다. (진시황을 향하여) 왕께서 지금 당장 전해야 하는 편지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또 다른 왕량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거다. 운이 좋다면 오십에서 백 년쯤 운이 없다면 천 년 정도 기다리면 되겠다. 두번째는 다른 수단을 찾는 것이다. 평범한 마부들을 데리고도 천 리 밖에 소식을 전할 수단을 말이다. 오히려 말몰이의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 20명을 50리 단위로 배치해서 몰아가면 지치지도 않을 것이고 충분히 왕량 못지않게 힘을 발휘할 것이다. 성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성인은 매우 적다. 이는 우리가 마차를 모는 사람으로 오직 왕량을 찾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왕량은 아주 적다. 즉 나라를 다스릴 성인 역시 아주 적다는 것이다. 성인이 적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나라를 어떻게 설계해야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법으로 세를 얻으면 다스릴 것이고 (抱法처세칙治) 법을 등져 세를 잃으면 혼란할 것이다(背法去세칙亂) 라는 말처럼 사회에는 일종의 제도(시스템)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 제도의 작동하에서는 군주가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시스템만 잘 운영된다면 성인이 다스리는 것과 같은 정치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한비자는 이러한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을 적용시킬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공자나 맹자가 꿈꿨던 성인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현실의 인간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위 나라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아끼는 가정이었다. 어느날 부부는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아내는 비단을 딱 백 필만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남편이 눈을 번쩍 뜨며 비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왜 겨우 백필이냐고 호통을 친다. 부인은 더는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더 많은 비단이 생기면 당신이 첩을 얻을테니까. 이것은 이익(利)에 관한 훌륭한 이야기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이익의 충돌을 말해 주고 있다. 즉 부부 사이에도 이익의 충돌이 존재하고 이익을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관한 한비자의 아주 중요한 고찰이다. 한비자는 인간 본성을 고찰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관계는 바로 이익이 얽힌 이해관계라고 생각했다.
⑤ 그런데 말이다. 인간이란 좋은 일을 할 때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한 선행을 할 때 자신에게는 전혀 이익이 없고 오히려 타인에게만 이익이 되는 경우도 분명 있지 않을까. 찾아보면 부하들을 자식처럼 대하는 장군들의 이야기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吳子兵法의 저자 吳起처럼 말이다. 76전 무패, 그는 일흔 여섯 번을 싸워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천하무적의 명장이었다. 그리고 병사들을 끔찍히 아꼈다. 어느 날 吳起는 한 병사가 악성종기로 고생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오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직접 병사의 종기를 빨았다. 아마 역사상 병사의 독창을 입으로 빤 장군은 오기가 유일할 것이다. 그 병사의 어머니는 이것을 듣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기 장군이 당신의 아들을 그토록 아껴 전장에서 입으로 고름까지 빨아 주었는데 기뻐하지는 못할 망정 왜 우는가.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오기가 이 병사의 아버지의 고름도 빨아줬다. 오기가 고름을 빨아준 뒤 그의 아버지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전장에서 앞장서 용감히 싸우다가 결국 죽었다. 이번에는 오기가 그녀의 아들의 고름을 빨아 줬으니 아들도 전장에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아들도 그의 아버지처럼 전사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았던 吳起는 父子之兵이라는 말을 남겼다. 장수와 병사가 마치 父子之間처럼 서로를 아낀다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孔子의 가르침이 전쟁터에서도 효과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韓非子의 해석은 달랐다.
⑥ 오기가 고름을 빨아 준 목적은 병사의 충성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다. 병사들이 충성심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장에 나가 적들과 싸운다면 오기가 바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기의 행위는 이타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만 본질적으로는 이기적인 행위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다. 그런데 利己心이라는 절망적인 인간의 속성을 통해서 韓非子는 오히려 희망을 보았다. 적절한 통제를 통해 난세를 해결할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이고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면 한비자가 두 개의 칼 자루라고 표현한 상과 벌을 활용해서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法이다. 聖君은 법에 맡기지 인간의 지혜에 맡기지 않는 법이다. 그런 뒤에야 자신이 안정되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명심해야 할까. 불은 뜨거워서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며 두려워하므로 타죽는 경우가 적다. 물은 유약해 보여서 사람들이 얕보고 장난치다가 익사하는 경우가 많다. 한비자에 의하면 관대함은 聖王이나 할 수 있는 어려운 통치술이다. 보통 사람이 흉내 내다가는 오히려 백성들을 난세로 몰아넣을 뿐이다. 따라서 엄격함이 관대함보다 낫다. 무거운 형벌은 효과적이다. 반드시 사랑을 강조하거나 대중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처벌이 무겁다는 걸 알면 사람들은 범법 행위를 하지 않을 거다. 처벌이 가볍다고 여기면 법을 어기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다. 이것이 商鞅의 저서인 [상군서]의 확실한 주제다. [한비자] 역시 마찬가지다. 한비자는 정해진 형벌을 줄이거나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형벌의 목적에는 경고와 예방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비자도 그렇게 말하고있다. 도둑을 처벌하는 것은 아직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을 그런 행위에서 멀리 떼어 놓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이미 도둑질한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반예방 즉 경고의 목적이다. 따라서 형벌도 매우 잔혹했다.
⑦ 진 나라에서 법가의 기초를 세운 商鞅이 집권하는 동안 매일 같이 위수 강변에서 처형이 이루어졌는데 한 번에 700명을 처형한 적도 있다. 시체에서 흐르는 피로 위수가 붉게 물들고 통곡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輕罪重罰 가벼운 죄도 무겁게 처벌하면 감히 어길 엄두를 못내어 법을 지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비자가 생각한 법 적용의 원칙은 엄격함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초 나라 장왕이 긴급히 태자를 불러들였다. 그런데 하필 그날 따라 비가 내려 태자는 수레를 탄 채 궁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초 나라 법에는 내궁 안까지 수레를 타고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태자가 끝내 들어가려고 하자 관리는 아예 수레를 부셔버렸다. 태자는 다음에 왕이 될 사람이다. 자존심이 상한 태자는 아버지인 장왕을 찾아갔다. 태자가 왕한테 가서 울면서 관리를 죽여 달라고 했다. 그러자 왕이 하는 말이 내가 왕 위에 있을 때 그는 법을 지켰고 지금은 태자가 후계자이지만 태자에게도 아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게도 공정하고 후계자에게도 공정하니 그야말로 모범이라 했다. 이는 한비자에 나오는 많은 일화 중에 하나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한비자는 법이 궁극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 사람의 신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법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여러모로 아주 멋진 교훈이다.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우리는 평등을 믿는다. 한 나라의 총리나 황제, 화장실 청소부도 법 앞에서 모두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가치다. 법은 귀인이라고 아부하지 않으며 먹줄은 굽음에 따라 휘어지지 않는다. 법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평등하게 집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계급이나 존귀, 친소, 재산 등에 따라 적용 범위가 달라진다면 누구도 법을 지키지 않게 될 것이다. 공직자들이 법대로 집행하지 않고 자기 기분이나 취향을 따른다면 이는 직권을 남용하는 것이다. 공직자가 권력을 남용하면 시스템의 합법성이 무너진다. 사람들이 법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게 될 것이다.
⑧ 한비자가 생각한 법 적용의 또 다른 원칙은 신뢰다. 진 나라의 법가 사상가 商鞅은 어느 날 도성 남문 앞에 약 10미터 정도의 나무 막대기를 세우도록 한다. 한번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자 자리에 모인 데서 나무 막대기를 세워놓고 이것을 저쪽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옮기면 10금을 주겠다 라고 하니까 아무도 안 옮겼다. 당시 1금이 은 20냥이었다. 10금이면 은자 2백냥이다.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큰 돈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냐며 의심했다. 사람들이 망설이자 商鞅은 상금을 50금으로 올린다. 50금이면 은자 1천 냥에 상당한다. 나무 막대기 하나 옮기는데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자금이 걸린 것이다. 이 때 어떤 할일 없는 남자가 나무 막대기를 북문으로 옮긴다. 어차피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3장 길이의 나무 막대기를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상금 50금을 받았다. 이 일로 인해 당시 진나라 백성들은 상앙의 言行一致를 믿게 된다. 상앙은 말한 것을 반드시 실행에 옮긴다고 믿게 됐다. 왜냐하면 그가 3장 길이의 나무 막대기를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기면 50금을 주겠노라 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상앙은 그 후의 정치 실천 과정에서도 자신이 제기한 모든 법령을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신력을 확립했다. 엄격함, 예외없음, 그리고 신뢰야 말로 시스템을 떠받치는 큰 기둥인 것이다.
⑨ 그런데 시스템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 가지 있다. 과연 무엇일까. 송나라에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술집이 있었다. 주인 장씨는 예의도 바르고 술의 양을 공정하게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손님이 점점 뜸해지더니 어느 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술집이 되어 버렸다. 결국 술은 하나도 팔리지 않아 다 시어 버렸다. 결국은 그 마을의 어른인 양천에게 물어 봤다. 도대체 술이 왜 시어집니까. 그랬더니 양천이 혹시 개가 사나운지 물어본다. 개가 사나운 것과 술이 시어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개가 사납기 때문에 술이 시어진다고 말한다. 어린 아이를 시켜서 술을 사오게 했는데 술 집 앞에 사나운 개가 있으면 어린 아이가 들어오면 감히 술을 사올 수 있겠느냐 이는 나라에도 마찬가지다. 군주가 백성들을 바로 다스릴 수 없다. 신하들 중에는 군주나 백성들의 사이를 가로 막는 존재, 마치 사나운 개와 같은 존재가 있다. 그러니 개가 사납지 않아야만 나라가 잘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개는 국가의 개혁을 가로 막는 기득권 세력인 것이다. 그렇다고 신하들 없이 정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신하를 쓰되 그들이 딴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고 또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신 술과 육미로 대표되는 한비자의 術이다. 한비자는 “법막여현 술불욕견” (法莫如顯 術不欲見) 이라 했다. 法은 최대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최대환 명확해야 하고 최대한 널리 퍼뜨려야 한다. 하지만 術은 다르다. 술은 최대한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術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권력 또는 군주의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방편, 방법 또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군주가 어떻게 신하나 백성을 통제하느냐 그에 대한 방편과 방법이 바로 術이다.
⑩ 한비자가 주장하는 術로는 우선 有反이 있다. 有反은 상반되는 이해를 살펴라,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진상을 알기 어려운 때가 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을 때는 무엇부터 살펴봐야 할까. 어느 날 요리사가 왕에게 고기를 구워 받쳤다. 왕은 고기를 집으려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머리 카락이 버젓이 감겨 있었다. 요리사는 자신이 처벌을 받게 되자 이유를 들어 해명을 한다. 저에게 세 가지 죄가 있다. 저는 칼질이 뛰어났다. 칼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고기를 썰 때 고기는 잘랐지만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했다. 저는 고기를 꼬챙이에 꿸 때도 기술이 뛰어났다. 그래서 꼬챙이로 고기를 꿰었지만 머리카락은 꿰지 못했다. 저는 고기를 굽는 기술도 뛰어났다. 그래서 고기는 잘 익혔지만 머리카락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저에겐 죄가 있다. 사실 그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은 나의 요리 기술이 이렇게 뛰어난데 어떻게 고기에 머리카락이 남아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저의 아랫 사람 중 누군가 저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군주가 뭔가 꺼림칙 해서 찾아보니 요리사를 시기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가 있어 일부러 머리카락을 감아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자를 처형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군주가 신하를 다스릴 때는 항상 어떤 신하가 일을 잘못 저질렀을 때 반드시 그 반대편에서 이익을 얻는 자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 잘못한 자를 문책하려 들지 말고 그 반대편에서 이익을 얻는 자가 누군지 살펴서 그 자를 찾아내는 것이 군주의 역량이고 자질이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 군주의 리더쉽은 타격을 입는다. 이것이 한비자가 말하려는 것의 핵심이다.
⑪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협지(挾智), 속 마음을 감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속 마음을 감추는 것은 모든 術의 핵심이다. 전체 군주의 역량이고 속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신하에게 속 마음을 들킨다면 오히려 조롱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왕은 자신의 손톱 하나를 감추고 일부러 잃어버린 척 했다. 왕은 신하들을 시험하고 있다. 만약 한 신하가 바닥에서 무언가 줍는 척하며 몰래 자신의 손톱을 잘라서 왕에게 준다면 신하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왕이 손톱을 찾기에 그것에 맞추어 자기 손톱을 잘라 왕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정직한 신하다. 그러나 어떤 신하가 손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며 왕에게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한다면 그는 왕이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신하다. 이것은 術을 설명하는 훌륭한 이야기이다. 신뢰할 수 있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을 찾는 건 왕의 기술이다. 다음의 술은 參觀이다. 參觀은 여러 사람의 말을 참조하고 관찰하라, 여러 신하들로 부터 서로 다른 의견을 듣는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십니까. 하지만 한비자의 진정한 통찰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주변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는데 모두가 찬성하는 정책이 있다고 하자. 그 정책은 확실히 좋은 정책일까. 한비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무릇 남과 상의한다는 것은 의심스럽기 때문이며 의심스럽다 하는 것은 정말 의심스러운 것이어서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자가 절반, 옳지 않다고 여기는 자가 절반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나라 안의 사람들 전부 옳다고만 하니 왕께서 절반을 잃으신 셈이다. 본래 군주를 위협하는 자는 그 절반을 제거하는 법이다. 다시 말해 왕이 인의 장벽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⑫ 다음은 一聽이다. 一聽은 하나 하나 듣고 판단하라, 복지부동이나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옛날에 피리합주를 매우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반드시 3백명이 한꺼번에 피리를 불도록 했다. 이중에는 물론 피리를 잘 부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예 불 줄도 모르면서 흉내만 내는 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수백명의 연주자들이 모두 높은 봉급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왕이 죽고 아들이 즉위했다. 새 왕은 합주가 아니라 독주를 좋아했다. 그래서 한 사람씩 따로 불러서 연주를 감상했다. 무임승차로 편히 지내던 엉터리 연주자 입장에서는 큰 일이 난 것이다. 남곽처사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계속 속여 넘길 수 있었을까. 속일 수 없었다. 당연히 도망을 가버렸다. 두루뭉실하게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각각의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시비곡절에 따라 공적과 과실을 판단할 수 있다. 때문에 일청책하(一聽責下), 즉 일일이 들어보고 개개인마다 확인하고서 시찰하여 그들의 공적과 과실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일도 안 하면서 자리만 자지하고 간교한 속임수를 부릴 것이다. 이는 한비자에 나오는 이중성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능력을 왜곡했을 때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능한 한 정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려 할 것이다. 자신의 약속과 비슷한 성과를 내면 보상이 따를 테지만 자기 능력을 너무 과장하면 처벌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처럼 한비자는 냉정하게 권력정치의 현실을 꿰뚫어 봄으로써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도 권력투쟁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⑬ 진나라 왕이 한비자의 사상에 심취하자 당시 재상이던 이사의 질투가 시작된다. 이사는 진 나라 왕에게 한비자를 모함하고 결국 한비자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역설적으로 한비자의 탁월한 설득력이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한비자만이 비극적으로 죽은 것은 아니다. 법가 사상가들의 최후는 대부분 비참했다. 진나라 법가의 전통을 세운 상앙, 역시 거열형에 의해 사지가 찢겨 죽었고 초기 법가의 선구자 오기 또한 개혁의 원한을 품은 귀족들에게 수많은 화살을 맞고 죽었다. 때문에 한비자와 친분이 두터웠던 당계공은 일찍이 한비자에게 상앙과 오기의 예를 들며 목숨을 소중히 여기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한비자는 당계공의 충고에 대답하는데 이 대답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한비자의 숭고한 마음을 알 수 있다. 한비자가 말하기를 당계공은 한비자의 목숨과 이익을 위해 충고했지만 한비자의 이상은 편중서이민맹지도 (便衆庶利民萌之道)다. 즉 천하의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한비자가 말한다. 당신이 비록 나의 이익과 목숨을 생각해준 말이고 모두 나를 위하는 것이기는 하나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 나에 대한 인격모독이나 다름없다. 내게 세상을 구하려는 숭고한 마음을 포기하라 하여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⑭ 아마 한비자는 자신의 이런 죽음을 알았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비자와 법가 철학자들은 정치란, 권력이란 더러운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성의 어두운 면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어둠을 이용해서 연꽃을 피워내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현실주의자들의 결기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