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bel Jilberto (베벨 질베르토), 보사노바 리듬의 계승자)
"본가 브라질에서는 '향수(郷愁)'가 되어가지만"
보사노바의 탄생을 되돌아 보면 그곳에는 브라질의 젊은이, 특히 당시 중산계층의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권태감과 변화에 대한 절망이 응축되어 있다. '이파네마의 여인(Garota De Ipanema)'은 1959년 프랑스 영화 <흑인 오르페(Black Orpheus)>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되면서 많은 청중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삼바 가수이자 여배우인 카르멘 미란다(Carmen Miranda)가 정착시킨 "과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춤추고 노래하는 트로피컬한 브라질"이라는 할리우드적 선입관을 바꾸어 놓았다. 1960년대 중반, 보사노바는 코파카바나(Copacabana)해변의 아파트 창가에서 뉴욕의 재즈클럽까지 여러 다양한 곳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보사노바의 계승자로서 현재 가장 잘 알려져있는 카에타노 벨로조(Caetano Veloso)는 "호아오 질베르토(Joao Gilberto)의 노래를 듣는 것은 마치 어떠한 계시를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체가 데 사우다데(Chega de Saudade·슬픔이여 안녕)'를 계속해 몇시간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질베르토, 조빔 그리고 카를로스 리라(Carlos Lyra)와 세르지오 멘데스(Sergio Mendes), 루이스 본파(Luiz Bonfa) 등의 브라질 출신 뮤지션 일파는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대대적인 보사노바 콘서트를 열었다. 이때, 미국 재즈계의 대표적인 두 거장,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와 디지 길레스피((Dizzie Gillespie)도 공연을 감상했다.
Carlos Lyra - Prima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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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내 사랑 혼자
O meu amor sozinho
꽃이 없는 정원 같아
É assim como um jardim sem flor
그냥 가서 그녀에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Só queria poder ir dizer a ela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Como é triste se sentir saudade
그냥 내가 그녀를 너무 좋아하는거야
É que eu gosto tanto dela
그녀가 나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걸
Que é capaz dela gostar de mim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E acontece que eu estou mais longe dela
오후에 빛나는 별보다
Do que da estrela a reluzir na tarde
별아, 내가 너에게 말할게
Estrela, eu lhe diria
지구로 내려오세요, 사랑은 존재합니다
Desce à Terra, o amor existe
그리고 시는 봄이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 a poesia só espera ver nascer a primavera
죽지 않기 위해
Para não morrer
Primavera는 Carlos Lyra(1939 ~ )와 Vinicius de Moraes(1913~1980)가 만든 곡으로 Pobre menina rica (1964)에 들어 있는 곡이다.Pobre Menina Rica는 영어로 Poor Little Rich Girl Blue 라는 뜻이다. Primavera는 봄이란 뜻으로 가사는 나는 당신의 봄이 되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다. 오늘날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는 삼바에서 새로 생겨난 장르와 미국의 힙합과 록 등 다른 음악 장르에 치여 보사노바가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을 상징하는 해안가의 아름다운 거리를 묘사하는 음악으로의 보사노바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다. 보사노바에 관한 저서를 쓴 작가 루이 카스트로(Ruy Castro)
는 "40년전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음악 앨범이 있다보니 보사노바가 음악 차트의 상위권에 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되었다. 하지만 보사노바 스타일은 지금도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46년 전, 카네기 콘서트 무대에도 선 적이 있는 싱어송라이터 카를로스 리라는 보사노바가 처한 현 상황을 좀 더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 리우데자네이루의 어디에 가면 보사노바를 들을 수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런 곳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브라질 보다도 일본과 유럽 쪽에서 더욱 인기가 많은 것이 보사노바의 현 상황이다"
Carlos Lyra (카를로스 리라)
카를로스 리라(Carlos Lyra)는 호베르 메네스칼(Roberto Menescal), 호나우도 보스꼴리(Ronaldo Bôscoli), 에듀 로보(Edu Lobo), 나라 레아웅(Nara Leão) 등과 함께 보사노바의 선구자중에 한사람이다.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비니시우스 지 모레아스(Vinicius de Moraes)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 호앙 질베르토(Joao Gilberto)등의 이름도 보사노바 음악에서 중요하지만, 그 저변에는 카를로스 리라같은 수많은 뮤지션들이 있었다. 그가 널리 알려지기 전인 1954년부터 이미 그는 페스티발이나 콘테스트를 위해 자작곡을 만들거나, 친구집과 파티 장소등에서 기타치며 노래 부르곤 했다. 그의 경력은 1959년
호앙 질베르토의 앨범 'Chega de Saudade'에 세 곡("Maria Ninguém", "Lobo Bobo", "Saudade Fez um Samba" )에 참여함으로서 시작된다. - 그 중 두 곡은 보스꼴리와 공동 작곡이었다. 같은해, 그는 첫번째 솔로 앨범을 필립스 레코드를 통해 발매한다. 그는 60년대에 수많은 레코드를 발매하고, 영화와 연극을 위한 곡들을 쓴다. 그 당시 대표작으로는 후에 'Minha Namorada','Primavera'같은 힛트곡이 담긴 LP로 발매된 비니시우스 모레아스의 연극 'Pobre Menina Rica'를 들 수 있다. 그는 1962년 카네기 홀에서 열린 보사노바 페스티발에서 참여한다.
Brigitte Bardot & Carlos Lyra - Maria Ninguém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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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포르투갈어를 한국어로 번역함
Maria Ninguém É Maria e é Maria, meu bem Se eu não sou João de nada Maria que é minha é Maria Ninguém Maria Ninguém É Maria como as outras também Só que tem que ainda é melhor Do que muita Maria que há por aí Marias tão frias, cheias de manias Marias vazias pro nome que tem Maria Ninguém É um dom que muito homem não tem Haja vista quanta gente que chama Maria E Maria não vem Maria Ninguém É Maria e é Maria, meu bem Se eu não sou João de nada Maria que é minha é Maria Ninguém Marias tão frias, cheias de manias Marias vazias do nome que tem Maria Ninguém É um dom que muito homem não tem Haja vista quanta gente que chama Maria E Maria não vem Maria Ninguém É Maria e é Maria, meu bem Se eu não sou João de nada Maria que é minha é Maria Ninguém Marias tão frias, cheias de manias Marias vazias do nome que tem Maria Ninguém É um dom que muito homem não tem Haja vista quanta gente que chama Maria E Maria não vem Maria Ninguém É Maria e é Maria, meu bem Se eu não sou João de nada Maria que é minha é Maria Ninguém Maria Ninguém! | 메리 노바디 마리아야, 마리아야, 내 사랑 내가 존이 아니라면 천만에요 내 마리아는 Maria Nobody 메리 노바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리아입니다. 더 좋아질 수 밖에 없다 밖에 있는 많은 마리아보다 Marias는 너무 차갑고, 변덕이 가득해 Marias는 그들이 가진 이름에 대해 공허합니다. 메리 노바디 많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선물입니다. Maria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몇 명인지 확인하세요 그리고 메리는 오지 않는다 메리 노바디 마리아야, 마리아야, 내 사랑 내가 존이 아니라면 천만에요 내 마리아는 Maria Nobody Marias는 너무 차갑고, 변덕이 가득해 이름이 없는 마리아스 메리 노바디 많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선물입니다. Maria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몇 명인지 확인하세요 그리고 메리는 오지 않는다 메리 노바디 마리아야, 마리아야, 내 사랑 내가 존이 아니라면 천만에요 내 마리아는 Maria Nobody Marias는 너무 차갑고, 변덕이 가득해 이름이 없는 마리아스 메리 노바디 많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선물입니다. Maria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몇 명인지 확인하세요 그리고 메리는 오지 않는다 메리 노바디 마리아야, 마리아야, 내 사랑 내가 존이 아니라면 천만에요 내 마리아는 Maria Nobody 메리 아무도! |
카를로스 리라는 당시 '재즈에 영향을 받은 음악(Influência do Jazz)'이라는 보사노바에 대한 외국인들의 편견을 일순간 깨버린다. 대중 문화 센터와 학생 조직을 통하여 그는 보사노바와 상바 음악인들 사이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때 그는 상바 음악 작곡가인 제 케티(Zé Keti)와 함께 'Samba da Legalidade'를 작곡하기도 한다. 그는 60년대 중후반 멕시코로 건너간다. 거기서 그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작곡하고, 영화와 연극을 위한 음악을 만든다. 그는 1971년 브라질로 돌아와 시코 브라크(Chico Buarque)와 앨범제작에 나선다. 1974년 그는 이번엔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건너간다. 거기서 그는 엉뚱하게도 학생들에게 점성술을 가르키고, 결국 책
까지 쓰게된다. 8~90년대에 들어서 그는 여전히 작곡을 하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다른 보사노바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도 계속하고 있다. 그는 브라질 군사독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최초의 MPB뮤지션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비니시우스 지 모레아스와의 공동작업을 포함하여, 그의 많은 곡들이 오늘날 브라질음악의 스탠다드 넘버가 되어있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빙은 까를로스 리라를 가리켜 '보사노바의 위대한 안내자(connoisseur of the paths)'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빼어난 멜로디의 곡들을 참 많이도 작곡한 이 위대한 작곡가의 삶은 곧 보사노바 그 자체이다. 그의 영감속에서 물고기처럼 튕겨져나오는 멜로디들은 자유로운 예술가의 혼 그 자체이다. 한때 보사노바 씬은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까를로스 리라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음악적 이상을 지속했다. 그룹 Os Cariocas의 1956년 앨범 'Criticando'에 수록된 까를로스 리라의 첫번째 곡은 고전적인 재즈 인플루엔자(Influência do jazz)에 선구자적인 것이었다.
- 보통 재즈 인플루엔자에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을 얘기하지만 시기적으로는 그가 먼저였다. -
또한 까를로스 리라는 비록 브라질 음악에서 그가 보사노바 운동의 리더중에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했을 지라도 이미 전통적인 Bossa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상은 예민하고, 즉각적으로 그의 첫번째 앨범(1959)에 드러난다. 그리고, 'Maria Ninguém'나 'Quando chegares', 'Menina and Rapaz de bem'(Johnny Alf가 작곡하고, 리라가 취입한곡)에서 처럼 이미 고전에 가까운 그의 곡들을 불렀다. 초기에 그의 음악적 세계관은 보사노바의 일반적인 레퍼토리에 국한되지도 않았다. 1961년에 보사노바 씬이 서서히 붕괴의 조짐을 보였다. 그것은 재즈에 가깝거나, 브라질 음악에 가깝거나, 아니면 당대 유행하던 팝에 가깝거나 모두 제
갈길을 갔다. 이 해에 리라는 'Minha namorada', 'Você e eu', 'Coisa mais linda'같은 주옥같은 곡이 수록된 그의 두번째 앨범을 발매한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또다른 방향이 설정되어있었다. 그는 단지 음악자체에 전념하는 해바라기형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을 보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에 대해 고민했으며, 결국 그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조국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여전히 '보사노바의 위대한 안내자'로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Bebel Jilberto (베벨 질베르뚜)
미국 팝과 결합된 삼바나 살사, 맘보 등의 라틴 리듬이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적 요소를 지니며 뜨거운 태양 빛 아래 펼쳐지는 모래사장을 떠올리게 한다면 웨스트 코스트 재즈로부터 영향받은 보사 노바는 초여름 산들바람 같은 부드러움과 고급스러움을 지닌 음악으로 해변 휴양지의 야자나무 그늘 아래 한가로이 누워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1950년대 브라질 작곡가 앙토니우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등에 의해 브라질 전통 리듬과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결합이란 형태로 나타난 이 새로운 장르는 부드러운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를 지닌 작품으로 역시 대표곡이라고 하면 보사 노바의 대표적인 뮤지션인 재즈 색소
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와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주아웅 질베르뚜(Joao Gilberto) 그리고 그의 아내 아스트루드 질베르뚜(Astrud Gilberto)가 함께 했던 ''The Girl From Ipanema)를 꼽는다. 보사 노바를 좋아하건 아니건 웬만한 음악 팬이라면 한 번쯤은 이 곡을 들어보았지 않을까 싶다. 앙토니우 까를로스 조빔과 주아웅 질베르뚜가 공동 창시자 격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 보사 노바는 1960년대 중반 융성기를 지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형태로 변이해 가며 인기 장
르로 대접받고 있다. 그리고 그 보사 노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 중에는 바로 이 앨범 [Tanto Tempo]의 주인공 베벨 질베르뚜가 있다. ''네오 보사(Neo Bossa)의 정형을 제시하는 미래의 거장''으로 거창하게 소개되고 있는 베벨 질베르뚜는 지난해 이 데뷔 앨범을 내놓을 당시 나이가 벌써 서른 넷이나 되었다는 것이 눈길을 끄는데 한편으로는 위의 보사 노바에 대한 사전 설명을 읽은 분들이라면 그녀가 보사 노바의 명가(名家) 인 질레르뚜 가문과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Bebel Gilberto - So 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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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나를 꽉 잡아줄 사람
Someone to hold me tight
매우 좋을거야
That would be very nice
나를 제대로 사랑해줄 사람
Someone to love me right
매우 좋을거야
That would be very nice
이해해줄 사람
Someone to understand
내 안의 작은 꿈 하나하나
Each little dream in me
내 손을 잡아줄 사람
Someone to take my hand
나와 한 팀이 되려면
To be a team with me
너무 좋아, 인생은 정말 좋을거야
So nice, life would be so nice
언젠가 내가 찾게 된다면
If one day I'd find
내 손을 잡아줄 사람
Someone who would take my hand
그리고 나와 함께 인생을 통해 삼바
And samba through life with me
나에게 매달릴 누군가
Someone to cling to me
옳든 그르든 내 곁에 있어줘
Stay with me, right or wrong
나에게 노래를 불러줄 사람
Someone to sing to me
약간의 삼바 노래
Some little samba song
내 마음을 가져갈 누군가
Someone to take my heart
그리고 그의 마음을 나에게 줘
And give his heart to me
준비가 된 사람
Someone who's ready to
나와 함께 사랑을 시작하세요
Give love a start with me
바로 이거 야
Oh, yes
너무 좋을 텐데
That would be so nice
너와 나를 볼 수 있었어
I could see you and me
그거 좋을텐데
That would be nice
나를 꽉 잡아줄 사람
Someone to hold me tight
매우 좋을거야
That would be very nice
나를 제대로 사랑해줄 사람
Someone to love me right
매우 좋을거야
That would be very nice
이해해줄 사람
Someone to understand
내 안의 작은 꿈 하나하나
Each little dream in me
내 손을 잡아줄 사람
Someone to take my hand
나와 한 팀이 되려면
To be a team with me
너무 좋아, 인생은 정말 좋을거야
So nice, life would be so nice
언젠가 내가 찾게 된다면
If one day I'd find
내 손을 잡아줄 사람
Someone who would take my hand
그리고 나와 함께 인생을 통해 삼바
And samba through life with me
나에게 매달릴 누군가
Someone to cling to me
옳든 그르든 내 곁에 있어줘
Stay with me, right or wrong
나에게 노래를 불러줄 사람
Someone to sing to me
약간의 삼바 노래
Some little samba song
내 마음을 가져갈 누군가
Someone to take my heart
그리고 그의 마음을 나에게 줘
And give his heart to me
준비가 된 사람
Someone who's ready to
나와 함께 사랑을 시작하세요
Give love a start with me
바로 이거 야
Oh, yes
너무 좋을 텐데
That would be so nice
당신과 나여야 할까요?
Should it be you and me?
볼 수 있었어, 좋았을 텐데
I could see, it would be nice
그렇다. 그녀는 바로 보사노바의 선구자인 주아웅 질베르뚜의 딸인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스트루드 질베르뚜가 아니다. 주아웅 질베르뚜가 이혼한 뒤 가수 뮤차(Miucha)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뮤차와 오누이간인, 즉 베벨에게는 삼촌이 되는 소설가이자 가수인 치코 부아르키 Chico Buarque 역시 보사 노바의 초기 중요 인물 중의 하나다). 가수 데뷔 치고 서른 넷은 좀 많은 나이이긴 한데 그러면서도 그녀가 ''미래의 거장''으로 대접받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그 동안 데이빗 번(David Byrne), 디 라이트(Deee-Lite)의 DJ 토와 테이(Towa Tei), 아르토 린제이(Arto Lindsay), 케니지 등의 뮤지션 등의 작업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만만치 않
은 경력 때문이다. 아버지가 일구어놓은 보사노바란 텃밭에 그녀는 힙 합, 트립 합, 하우스 뮤직 등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며 보사 노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데 일조를 해온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 주아웅 질베르뚜와 듀엣으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서기도 했었다 이처럼 그녀가 높이 평가받는 데는 아버지의 후광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력이 항상 누군가의 이름 아래 가려진다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을 듯 하다. 베벨 질베르뚜 본인도 솔로 데뷔를 늦게 한 이유를 ''주아웅 질베르뚜의 딸이라는 사실이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가 고국 브라질을 떠나 자신이 태어났던 뉴욕으로 다시 건너간 것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원점에서 시작해 자력으로 성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Bebel Gilberto - Aganju
Aganju는 Orixa라고도 불리는데 '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기원은 브라질로 건너오게 된 아프리카의 노예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그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믿었던 종교에서 불리는 신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소 무속적인 느낌이 드는 보사노바 곡입니다. 포르투갈어 ''tanto tempo(오랜 시간)''을 타이틀로 한 이 앨범은 브라질 사웅 파울루에서 레코딩 되었고 일렉트로니카 계열을 주로 작업했던 유명한 브라질 프로듀서 수바(Suba)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베벨의 독자적인 해석이 담긴 네 곡의 스탠더드 보사 노바와 오리지널 일곱 곡을 담고 있다. 이번 앨범은 ''neo bossa''란 설명에 어울리게 기존에 우리가 접해왔던 보사 노
바 음악과는 달리 변화 발전하는 보사 노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트립 합적인 성향을 지닌 ''lonely'' 같은 곡 외에도 군데 군데 베벨 질베르뚜의 속삭이는 듯한 보드러운 보컬과 어우러지고 있는 프로듀서 수바의 키보드 샘플과 드럼 루프 등등...수작으로 꼽을 작품은 단연 첫 트랙으로 담긴 감미로운 리메이크 넘버 ''Samba De Bencao''일 것인데 그 외에 베벨 질베르뚜는 아버지의 전처였던 아스트루드 질베르뚜가 불렀던 ''So Nice(Summer Samba)''를 영어로 리메이크해내고 있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이 밖에 ''Samba E Amor'', ''Bananeira'' 역시 리메이크 곡. 역시 영어로 불러주고 있는 엔딩 트랙 ''Close Your Eyes''는 삼바 리듬을
가미한 트랙. 확실히 포르투갈어로 된 보사 노바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영어 버전이 색다르게 느껴질 법 하다. ''라운지 계열의 ''August Day Song''과 ''So Nice'' 등도 관심있게 들을 트랙.굳이 외지의 평을 인용할 필요없이 베벨 질베르뚜의 음악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석양 무렵 인적이 드문 남국의 어느 해변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더위를 식히는데는 이런 음악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 글.원용민(wonster@oi.co.kr) ]
Ithamara Koorax (이타마라 쿠락스)
이타마라 쿠락스는 1965년 브라질의 히우 지 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전언에 의하면 타고난 감각이 있었는지 5살 때부터 피아노와 전반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을 정도로 일찍부터 두각을 보였다. 히우 소재의 니테로이 음악학교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자국은 물론 유럽 등지에서 여러 차례의 무대 경험을 쌓아온 그녀는 이후 80년대 말부터 마우리시우 카릴류(Mauricio Carrilho)와 파울루 말라구티(Paolo Malaguti) 등과 공연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브라질 전역에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90년 브라질의 TV 미니시리즈 ‘달콤한 강(Riacho Doce)’의 주제곡 ‘Iluminada(계몽)’을 부르면서였는데 당시 드라마의 인기로 사운
드트랙까지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녀의 데뷔 앨범은 1992년 브라질의 레이블 ‘이마젬(Imagem)’을 통해 발매했던, 리우의 시드니 밀러 홀(Sidney Miller Hall)에서 가진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Ao Vivo]였다. 조빙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답게 조빙의 오리지널은 물론 바덴 파웰(Baden Powell)과 조앙 보스쿠(João Bosco) 등의 작품들을 불렀던 이 앨범은 이듬해 일본 ‘JVC’를 통해 [Luíza]라는 제목으로 발매되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그녀의 이름이 아시아권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일본과 브라질은 우리와 터키의 관계처럼 가까운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음악인들의 교류도 상당한
편으로, 이타마라의 일본 시장 진출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그녀는 마르티뉴 다 빌라(Martinho Da Vila)와 에두 로부(Edu Lobo), 그리고 마르코스 발레(Marcos Valle)와 같은 뮤지션들과 공연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현지에서도 확고한 음악 노선을 정착시켰다. 1994년에는 그녀의 첫 앨범이 ‘브라질의 그래미’인 샤프 어워즈(Sharp Awards)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또한 이때부터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멤버이기도 했던 브라질 출신의 타악기 연주자 돔 움 로망(Dom Um Romão)과 여러 차례 공연을 갖기도 했는데, 그와의 협연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며 돔의 솔로 앨범 [Rhythm Traveller](1998)의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깊은 교류를 지속했다.
Ithamara Koorax - Iluminada
1995년 발매된 그녀의 두 번째 앨범 [Rio Vermelho]는 현지 ‘이마젬’과 일본의 ‘패들 휠(Paddle Wheel)’, 그리고 먼 훗날 한국의 ‘헉스뮤직(Huks Music)’까지 세 번에 걸쳐 재발매 되는 기록을 세웠다. 바로 이 앨범이 생전의 조빙이 마지막으로 남긴 레코딩으로, 일본에서는 [Red River], 한국에서는 [Cry Me A River]로 알려진 작품이다. 앨범의 프로듀서는 그녀의 남편이자 브라질 현지에서 음반 기획자 겸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는 아르날두 지 소우테이루(Arnaldo De Souteiro)였는데, 그의 진두지휘 아래 조빙과 루이스 봉파(Luiz Bonfá) 등 보사노바의 거장들과 재즈 뮤지션인 론 카터(Ron Carter), 조제 호베르투 베르트라미(Jose Roberto
Bertrami) 등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인 라인업이 함께 했다. 특히 레코딩 직후 조빙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기에, 앨범에는 “이 앨범을 조빙에게 헌정한다”는 그녀의 메시지가 쓰여 있기도 하다. 또한 앨범 발매 직후 그녀가 보컬을 원 테이크(수정 없이 한 번에 녹음을 마치는 것을 말함)로 녹음한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6년에도 그녀는 새 앨범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조빙과의 마지막 레코딩에 이어 또 한 명의 보사노바 거장인 루이스 봉파와 함께 한 음악 작업을 담은 앨범 [Ithamara Koorax Sings The Luiz Bonfá Songbook]이 그 주인공이다. 이 앨범에는 루이스 말고도 미국 퓨전 재즈 신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에
우미르 지우다투(Eumir Deodato)를 비롯해 일본의 재즈 거장 사다오 와다나베(Sadao Watanabe)도 참여하여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2002년에는 루이스 봉파 1주기를 맞아 일본과 한국 음반사의 공동 작업을 통해 24비트의 고음질 리마스터링 작업으로 재발매 된 바 있다. 라틴 리듬의 보고(寶庫)인 쿠바와 함께 브라질은 팝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다. 흔히 브라질 음악인이라고 하면 보사 노바 전문 뮤지션들을 손꼽게 되는데 이타마라 쿠락스는 보사 노바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해석해내는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이미 그녀의 ''99년 앨범 [Serenade In Blue / My Favorite Songs]가 우리나라에 라이선스로 소개되어 낯
이 익은 뮤지션이기도 하다. 이 앨범을 통해 그녀는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연주인이며 프로듀서인 유미르 데오다토(Eumir Deodato), 쿠바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Gonzalo Rubalcaba) 둥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샹송과 올드 팝, 브라질 팝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탁워한 보컬리스트임을 과시한 바 있다. 아나 카람과 마차나지로 그녀 역시 브라질 음악인들의 정신적인 지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1965년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인 이타마라 쿠락스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학교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1990년대 들어 TV 드라마 주제가 ''Iluminada''를 부르며 주목을 끌었고
1992년 데뷔 앨범 [Ao Vivo]를 선보이게 된다. 그 후 ''Summer Samba'' 등의 히트곡을 낸 바 있는 마르코스 발리(Marcos Valle)와 함께 듀오로 콘서트를 열어 확고하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94년 그녀 생애 최고의 레코딩이 되는 2집 앨범 [Red River(Rio Vermelho)]의 작업에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프로듀서가 그녀를 스타의 길로 이끌어주었던 동반자 알나우두 지 소우떼이루(Arnaldo De Souteiro)라는 것 이외에도 참여 뮤지션들이 이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루이즈 본파라는 지금은 고인이 된 보사 노바의 거목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빔의 경우는 그가 사망하기 직전의 레코딩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 밖에도
명 베이시스트 론 카터(Ron Carter),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토 색소폰 연주자 사다오 와타나베 등 명 연주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후 그녀는 루이즈 본파와 함께 [Ithamara Koorax Sings the Luiz Bonfa-Songbook](1996)을 내놓았고 [Wave 2001](1997), [Bossa Nova Meets Drum ''N'' Bass](1998), [Serenade In Blue] 등을 꾸준히 발표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미국에선 지난해 발매된 [Serenade In Blue]는 올해 초 그래미상의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등 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그녀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뮤지션으로 끌어올렸다. 이번에 국내에 라이선스로 소개되는 [Cry Me A River]는 2집 [Red River]를 새롭게 패키지한 작품으로 폭넓
은 음역을 자랑하며 뛰어난 곡 해석력을 지닌 이타마라 쿠락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첫곡에 실린 쇼팽의 ''에튀드(Etude) No.3 Op.10''을 편곡한 잔잔한 트랙 ''No Other Love''부터 조빔이 작곡한 명곡 ''Zingaro'', 루이즈 본파와 조빔이 함께 만든 곡으로 루이즈 본파가 기타를 맡아주고 있는 ''The Stream'', 조빔과 비니시우스 지 모아레스(Vinicius De Moares) 작사 작곡 콤비의 ''All That''s LeftIs To Say Goodbye''(조빔의 피아노와이타마라의 보컬 단 두 사람만의 협연) 등 수작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줄리 런던의 1955년 출세작 ''Cry Me A River''는 강약과 완급 조절이 뛰어난 탁월한 이타마라의 보컬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
[ 글 / oimusic 원용민(wonster@o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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