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온의 구원 / 수 10:6-14, 몬 1:15-25
전쟁, 정상회담 - 평화로운 분위기, 김정일에 대한 선입관이 변함.
수 10, 11장에 나오는 전쟁이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이다. 오늘 본문인 10장에는 남쪽에 있는 성들을 정복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 1-15절까지는 남쪽 성들을 정복한 대략이 기록되어 있고, 16-43절까지는 이 전쟁의 내용을 좀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수 9장에 보면,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두령들을 속이고 그들과 화친하였다. 3일 후에 이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변함없이 그 화친조약을 지킨다. 그런데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 나라들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공격해 온다. 기브온이 습격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일어나 밤새도록 올라가서 저들을 도와서 싸웠다. 본문을 보면 다섯 왕이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 것이 아니라 기브온을 공격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나? 오직 하나, 그들이 하나님의 군대와 화친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브온은 자기들의 정다운 이웃이었고 동맹관계지만 이제는 원수지간이 된 것이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였으나 그들을 도와준 이유는 그들과 맺은 조약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에는 누가되지 않아야 했다. 그만큼 그때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겼다.
성경에 보면 맹세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이 있다. 첫째는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다. 함부로 맹세하면 그것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고,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 누가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의 거짓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아주 악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맹세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 둘째는 맹세를 했으면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맹세의 신실성을 지켜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맹세를 해서도 안되고, 맹세한 것을 함부로 파기해서도 안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는 자는 말과 행실이 언제나 성실해야 한다. 세상과 구별되어 부름받은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항상 신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놀라운 기도를 들으셨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가지이다. 첫째, 이 전쟁은 하나님의 무서은 심판을 보여준다. 여호수아가 남방 다섯 왕들과 다섯 성들을 진멸하는 모습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모습과 비슷하다. 여호수아의 군대를 잔인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고 무섭다. 하나님이 잔인하다. 노아 때의 홍수심판,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 여호수아를 통한 가나안 족속 심판 등은 마지막 세상의 심판의 모습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여호수아 군대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우리의 영적 전투의 모델이다. 우리는 지금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복음으로 사탄과 싸운다. 우리는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화친하여 하나님께 속하게 되면 그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자 곧 사탄의 공격이 있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도 이에 관하여 요 15:18-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하셨다. 아모리의 다섯 왕이 하나님과 화친을 한 기브온 거민들을 미워하는 근원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며,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된다. 이 전쟁은 다섯 왕과 기브온 과의 전쟁이 아니라 사탄의 진영과 하나님의 진영 사이의 전쟁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믿음으로 담대해야 한다. 본문 8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용기를 주셨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게서는 이 전쟁에 친히 개입하신다. 11절 ‘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이 말씀들을 기브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우리들이 바로 기브온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대적이 합세하여 총 공세를 해왔을 때에 구조요청을 하였다. 6절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이것은 다름아닌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먼저 여호수아가 즉시 모든 군사와 용사를 거느리고 출동한다.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고 격려해 주신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큰 우박을 그들에게 내려 물리쳐 주신다. 기브아 거민들이 누구인가? 그들에게 이렇게 해 주어야 할 무슨 공로나 자격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변장하고 생명을 구걸해 온 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상전이 아니라 나무 패고 물긷는 종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주셨나? 오직 화친했기 때문이다. 화친함으로 하나님의 진영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을 공격함이 곧 하나님을 공격함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하여 해주신 전부가 아니다. 성경은 말한다. 13절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 대적’이 누구이며, 누구의 대적이란 말인가? 기브온을 치러 온 다섯 왕들을 가리킨다. 성경은 더 이상 기브온의 대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대적이요, 하나님의 대적이라고 말한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태양이 머물고 달이 맘추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 불가해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합리화시켜서는 안된다. 성경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호수아가 기도했더니 태양과 달이 멈추었다는 식으로 기도와 결부시켜 강조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본문의 주제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의 초점은 14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고 하신 싸움에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위험에 처한 기브아 사람들을 위하여 싸우셨다. 그들을 위하여 태양과 달을 멈추는 일을 행하셨다. 태양과 달이 중천에 머물렀다는 이적 자체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적이 하나님과 화친한 기브온 주민을 보호하시려고 행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성도는 많지 않다. 오늘 본문에서 이 감사와 감격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이었으나 이제는 화친했다는 이유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결코 나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 않으셨다. 즉시 개입하셨다. 이 싸움에 여호와의 군대가 동원되었으며, 우박이 사용되었고, 태양과 달도 멈추는 엄청난 기사와 이적이 베풀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망의 소굴에 친히 들어가신 일이 일어났다. 이 십자가 사건은 태양과 달이 멈추었다는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일이다. 구속의 역사는 싸움이다. 그 싸움은 사망 편에 속하였던 영혼들을 이끌어 생명으로 옮기는 싸움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도 권능을 받았으니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에게 붙여 주신 줄 믿고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수비적이 아니라 공격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단순히 세상에 나가서 상하고 터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곳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과 권능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전도이다. 전도는 세상을 영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가장 적극적인 공격이 바로 전도이다. (다른 교회 교인을 데려오는 것을 전도라고 하는 교회도 있다. 이것은 전도가 아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전주시내 큰 교회는 다 그렇다. 단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하여 쉬고 있는 자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전주금암교회-30명 성지순례, 20명-금강산, 10명-제주도, 이 숫자를 전도하면 이렇게 상을 주겠다고 하여 전도에 불이 붙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전도하고 담력을 얻으라. 그리고 전도 대상자를 정하고 중보기도를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라. ‘나는 믿은지 얼마 안되는데, 나는 믿음이 부족한데...’ 하고 불신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실천해 보라. 우리는 복음으로 이 지역사회를 정복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놀라운 기도에 응답하시고 참으로 큰 일을 이루셨다. 우리도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그의 편에 서서 일하며 기도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도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 14:12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라고 하셨다.
오늘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제목을 드리겠다.
1.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게 하시고 위대하신 역사를 기대하며 그 일의 수종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여호수아처럼 철저히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게 하옵소서.
3. 복음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는 용기를 주시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2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