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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th. Feb.(월)
Gloria Ace. 그리고 光洋丸라는 두 척이 한국선원이 승선하는 배가 새로 입항했다. 그로리아는 East Mole와 교신하는 것을 듣고 Apapa에서 불러 확인했고 코요마루는 입항 2-30분전에 먼저 우리를 불렀다. Port Hacort에 정박중. Flo와 Kano Reefer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며 갑판장이 김수만씨로 나를 잘 안다고 했다. 한국 떠난 지 1년하고도 4개월이 되었단다. 현재 Lagos입항중인 배 가운데서는 내가 제일 고참(?)인 셈이고 그 다음이 Apapa Reefer인데 처음 입항해서 입항신고하는 것을 들어보면 거의 100% 한국선원임을 안다. 그래도 몇 번 해 본 일이라 처음와서 어리둥절하는 걸 보고 중계도 해주고 이곳 사정을 알려주기도 하면 마치 10년 지기를 만난 듯 반가워하기도 하고 금방 친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마주대하지 못하고 VHF로 연락하므로 자칫하면 친절이 오해를 낳기 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그놈의 영어 때문이다. 처음부터 실력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짧은 밑천으로 살아가는 형편들인데 어떤 경우에는 옆에서 듣고 있기가 딱할 정도로 답답할 때도 많다. 특히 그로리아 선장은 그중 더한 것 같다. 그럴수록 옆에서 거들어 주기가 밉상스럽고 미안한 것이다. 자칫하면 그의 실력(?)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통화를 하는 East Mole나 Tincan Port 등의 현지 실무자들은 대환영이다. 옆에서 한마디만 거들어도 곧장 직접하지 않고 중계해주는 쪽을 물고 늘어진다. 그쪽이 한결 쉬우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쪽 사정들을 저네들이 알바아니니 어쩌랴-. 영국 갔을 때 느낀 일이지만 그 곳 사람들이 우선 다른 외국어를 힘들여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고 많은 부러움을 가졌다. 영어가 세계공용어로 되기까지 그들의 공적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아직 그네들의 언어가 세계고용언어로 있는 이상 항상 유리한 입장에서 리-드하며 해나갈 수 있으리라.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린 학생시절부터 귀중하고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하는 다른 약소 후진국들 보다 그만큼의 여력을 갖고 다른 곳에 열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치고 우리 한국사람들이 영어에 능숙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선원들 중에 일본사람에게 비한다면 평균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장래에 밝은 한 면일 것이다.
종일 일본에 보낼 월말보고서 작성하다. 독킹오다. Ab's log재작성을 지시하다. 아무리 배를 타는 사람들이지만 회사에 보내는 문서작성에 소홀하면 안 된다. 이건 내 자신이 협성사무실에 근무할 때 주로 선측에서 올라오는 서류들을 정리해 보고 느낀 일이다. 우선 그 서류의 양식들이나 요령만 봐도 그 배의 선장 혹은 사관들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소위 전문과정이라는 해양대학을 나왔다는 자칭 ‘본과출신’들의 하는 ‘めくらばん’(확인하지 않고 하는 싸인)을 보면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것을 받아보는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 배의 실질적인 운항의 내용과 모든 자료가 거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뜻있는 육상 직원들이 처음부처 선박직원에 대하여 무시하고, 인식이 곱지 않음도 그 때문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무시할 수 없는 일.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에서 舶用樣式을 만들어 주는데도 그마져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정도를 넘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가 보고해야 하는 곳은 자국이 아닌 일본이다. 우리가 그들의 돈을 받고 고용된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닌데 자칫한 태만으로 그들로부터 욕을 먹거나 업신여김을 당한댔어야 안 된다. 실은 오늘 아침 나가는 보트편으로 발송할 예정이었는데 내일로 미루었다.
내일이 구정이다. 우리야 신정을 쉬었으니 별반 느낌이 없다만 타선에서는 그렇지들 않는 모양이다. 왠만하면 인근 선장들끼로 모여 인사들이나 나누고 설술이나 한잔씩 하자고 연락, 역시 하고잽이인 Apapa 김 선장이 주선키로 하고 오전 중에 상육 일들을 보고 오후에 틈을 내기로 하다.
7. Feb(화)
구정이다. 추운설이 아니고 텁텁하고 뜨거운 설이다. 그러나 아무런 달라짐도 없는 그저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을 뿐인 설이다. 할아버지가 세뱃돈 한 푼 안주더란 정화의 항변이 생각난다. 영감쟁이, 다문 한 잎이라도 주지 않고-. 역시 얘들의 꿈을 잃고 고향을 잃어가는 것이다. 한국적인 마음의 고향, 꺼끌꺼끌한 삼베 옷처럼 거칠한 점도 있으나 고요한 겨울밤 개짖는 소리와 바람소리 속에 옛날 얘기로 밤은 보내던 푹신한 동화처럼 아늑한 우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슬픈 모방보단 차라리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가 한결 낫지 않을까? 낡은 것을 굳이 지키고 있자는 게 아니다. 한 민족으로서 구심점을 갖고 뭉치고 우리의 마음들을 합치는 데는 우리 조상들이 지켜왔고 이어져온 전통문화가 큰 몫을 할 수 있다. 좋아하는 떡국 생각이 간절하다. 떡메도 치고 손으로 직접 밀어 만들었던 옛날의 떡이 더욱 맛이 있었음은 반드시 그 떡 자체가 맛이 있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아침 국장을 보내 서류발송, 야식용 빵 등을 구입하다. 오후엔 Apapa호에서 간단히 한잔하다. 코요마루 황 선장. 서 기관장, Byron의 김 선장 그리고 나, 몇몇 돼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모처럼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Byron의 김 선장은 북양시절 개양호의 1등항해사를 했던 사람이다. 내가 승선했었던 51동방호가 그 배에 부딪쳐 하마터면 水中孤魂이 될 뻔한 바로 그 장본인이다. 점잖은 하다만 무척이나 자신을 들어내고 바닥에 내려놓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육상 사업에 실패, 아이들 때문에 다시 배를 탔다고 하지만 서로가 빤히 아는 입장. 어쨌던 어떤 사정이 있었건 현재는 너나 내나 여기 지구 한 쪽 끝에서, 그나마 인간취급도 않는 검둥이들 속에서 죽치고 있어야 하는 처지 아닌가. 어제야 금송아지를 타고 다녔어도 오늘 걸어 다니면 별 수 없지 않은가. 차라리 후배들 앞에서 ‘야, 같이 먹고 살자’하는 식으로 툭 털어 놓는 것이 피차간 마음의 부담이 한결 가벼워 질텐데-. 코요마루 황 선장은 그이 큰 아들이 대학입학 시험을 치뤘는데 소식이 없단다. 해군 출신 역시 갯가인 거제도 태생이랬다. 아무래도 바다완 거리가 먼 내가 배를 타고 있는 게 이상한 모양이다. 같이 일본명을 그대로 걸고 일본국기를 달고 그들을 대신하여 뛰어야 하는 입장들이다. 더구나 그는 선주, 용선자 그리고 재용선자 등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혀서 더욱 골치를 썩히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 없는 놈이 설음을 당하고 마는 격이다.
일제시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 마라톤 선수나 그밖의 올림픽 참가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선적이 일본이므로 선원들 조차도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오죽했으면 나쁜 일을 하다 들켰을 땐 ‘Japanese'라고 칭찬 받을 일에는 ’Korean'이라고들 했을까. 막벌이 노동자가 그리고 최전방의 가장 낮은 병사들의 가장 진실한 애국자일 수밖에 없듯이 그래도 제대로 대가리가 차있는 놈은 어쩔 수 없이 내 나라, 내 민족을 깨닫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곧 선원이고 해외 근로자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몇 마리의 미꾸라지 같은 작자들이 어디고 있기 마련이지만 타국에 비해서 우리 한국 선원들이 한 둘이래도 더 많지 않을까 하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저녁 후 전 선원이 간단히 한잔 나누다. 그저 섭섭잖이 보내자고-. 그러다가 기분이 나면 상이라도 한 번씩 두드리고 한가락 뽑으면 된다. 그러나 여기도 심통스런 작자들이 있다. 음력설이 우리의 고유한 명절인데도 명절답게 안 보낸다고 심통이 틀어져 버린 사람이 두서넛 있단다. 정신나간 사람들! 여기가 저네 집 안방인가? 남의 성의도 모르고-. 공연히 애쓴 국장이 기분 나쁘다고 두털거린다. “내 버려두고 먹는 놈들이나 많이 주소”. 별반 먹지도 안 했는데 과식한 느낌이다. 늘 일정한 양 이외는 외식을 하거나 하는 일어 없어 그런지 조그만 양을 늘려도 과식이 된다. 조심할 일이다.
8th. Feb(수) 1978.
코요마루 보트가 아파파에 갔다. 어제 약속했던 영화상영(?)을 위해서다. 김수만씨가 본선에 오다. 그는 동방호 시절 함께 한 어선에서 갑판장을 했고, 후에 브로크 비슷하게 보낸 적도 있는 사람이다. 오랜만이다. 갑판장이 된지 반년가량 된단다. 많이 여물어지고 얼굴도 좋아졌다. 한때는 항간에 좋지 못한 인상을 뿌리고 다닌 적도 있었다. 역시 배를 탄 이상 뱃일에는 성실한 사람이다. 스스로 배운 것이 있기에 남 보담 빨리 배웠고 성장도 빨랐다. 우리배의 냉동사와는 집안 이랬다. 종일 Apapa와 Byron에서 보내다. 예의 그 필림을 양 배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히로시마와 코요마루에서 영사기와 Film을 제공, 위문공연(?)을 한 셈이다. 스스로 ‘낙도 위문단’이란 별명도 붙여가며 -. 가는 길에 본선에도 들려 몇 편 보이기로 했으나 생각보단 해상이 거칠어 다음날을 기약했다. 못내 선원들이 아쉬워했다. 역시 우리 보트를 이용하다 다른 보트를 타보니 불안하다. 우선 크기부터 너무 작다. Power도 선체도 강하고 튼튼하다. 다소 낡은데다 이쪽으로 온 뒤로는 너무 험하게 써서 그렇지만 아마도 Lagos 외항 정박중인 선박들 중에선 가장 크고 Speed도 좋으리라. 아끼고 소중이 다루어야 한다. 어제도 내항에서 두어 시간 시동이 안 걸려 따라간 냉동사가 욕을 본 모양이다. 큰 원인이 아니고 운전자 스스로의 부주의였으니 다행이다만-. Re-delivery에 대한 문의 전보를 Canpex에 보냈더니 곧 지시 있다고 기다리라는 답신이 있었다. 그 결과가 궁금하다만 어떻게 되던 빨리 결말을 봐야 할텐데. 이제 계약일인 3월 9일이 꼭 한달을 남기고 있다. 교대문제가 걸려 있지 않으면 그리 큰 문제는 없는데-. 헌데 Canpex에서 한글영자 전보를 치는 데는 이해가 안 간다. Mr. 육의 짓이다. 분명히 전보가 하나의 증빙서류 역할을 한다는 걸 알면 그럴 수 없을테데-. 비록 사람이 서로 같은 국적을 가졌으니까 그렇게 하면 빠른 점도 있으나 엄연히 선박의 국적이 일본이고 그네들의 회사도 외국인 회사라면 그렇지 않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영어로 표기해서 그 뜻을 명확히 하기엔 다소 문제가 있는 듯도 하고, 보나마마 그자도 그놈의 영어실력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일 것이다. 막상 귀중한 전보가 그런식이라면 정식으로 영문화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연료도 다 돼간다. 현재 상태로라면 이 달 말까지 밖에 유지하지를 못한다. 내일쯤 다시 확인 전보를 보내자. 개x끼들! 한 번 혼줄이 나봐야 알건가? 선주로선 가급적 잔량을 많이 해주랬으나 그 닳고 약은 놈들이 많이 줄리는 없고 나만 골탕을 먹는 셈이다.
9th, Feb. (목)
Boat를 내려 三浦군을 Byron으로 보내다. 明德丸를 인수인계한 사이라 현재 Byron호의 주수신기 상태가 불량, 그 배 국장이 도저히 모르겠다고 전에 취급한 적이 있는 미우라군에게 좀 봐달란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고마루 도다 선장 영감님은 오늘 상륙하는데 갈일 없냐고 한다. 마음써줌이 고맙다. “별일은 없고 혹시 Agent에 가보고 편지나 있으면 찾아다 주소” 결국 4장을 찾아다 주었다.
본선 계획은 없고 토고마루는 월요일쯤 입항예정이란다. “어서 당신배가 끝나고 가쯔지마가 끝나야 우리 차례라니 귀선이나 어서 가소” 했더니 웃는다. 그 영감님도 이번 항차가 끝나면 Las경유 일본행 Ticket을 받아놓고 있으니 엔간히 지루할게다. 닻 놓은지 한 달은 됐을 거다. Canpex에 Oil Supply관계 타전하다. 어떤 답이 오려나. 하루는 그저 눈코뜰새 없이 가면서도 역시 전체는 거북이 걸음이다. Lagos Road에 온지 겨우 1주일인데도 꽤 오랜 느낌이다. 하기야 Cotunou외항까지 합하면 보름이 된다. 아무래도 여기서 교대가 되고 말는지? 가급적 Las 아니면 일본에서 하는 게 좋겠는데-.
미해결된 작업비도 그렇고 또 이곳 공항사정이나 항공기편이 너무 멀다. 9월에 간 6명중 2명이 봇다리를 잃어버렸다는 뒷 소식도 있었고-. 이왕 되돌아가는 길이라면 지중해, Suez운하 그리고 인도양을 거쳐 일본까지 무사히 항해를 성취시켜보고도 싶다. 별거야 아니겠지만 좋은 경험도 되고 또 그간의 시간적 여유를 버는 셈이 되기도 한다. 하루가 지나감에 따라 남은 거리를, 그리고 ETA를 재어보고 가까워져가는 고국과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항해가 될 것이다. 아직 대아에도 德丸에도 교대에 관한 打電은 하지 않았다. 우선 무슨 분명한 거취가 있어야겠는데 그게 없으니 바삭바삭 조아드는 느낌이다. 아무튼 2-3일내에 무슨 연락이 없으면 없는 대로 추진해야 한다. 제발 큰 무리 없이 끝맺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쯤 편지를 한 장 더 찾을 수 있으려나 했더니 헛사. 서운하다. 막상 귀국한다고 했지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신용은 없어져 가는 것인가. 하기야 조금은 미련을 남겼으니 -. 만약 Mr. Tikam이 본선을 구입, 정작 그의 말대로 내가 그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고 내 요구를 들어 준다면 한 번 고려해 볼 수 있기는 하기에 미련을 남긴 것이다. 이미 일본행이 거의 결정적이면 그나마 생각할 수도 없고 일본수리, 정기점검후가 어찌 될는지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은 정작 일본 도착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없으니 그냥 끝내는 것이 상책이다. 그의 말대로 그간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갈무리하면 그런대로 꾸며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도 같다.
아마 개금에도 땅을 샀나 본 데 정 군하고 동업한 것은 아닌지? 배 타서 번 돈으로 사업하다 실패한 경우가 너무 흔함이 사실이니 그 점도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일. 진짜 어려운 일들이 놓여있기도 하다만 ‘열심히 하면-.’ 될 수 도 있겠지. 문제는 성실 하나로 되어오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반도둑놈이 되야 살아가는 사회바닥이니 그 ‘열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악해져 갈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우선 자신의 길을 다져야 하는 것도 급하고 중요하지만 그보다 당장 좋고 편한 집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 싶은 그 욕심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난방시설이 좋은 실내에서 마음에 드는 가구로 꾸미고 칼러 TV도 사다놓고 즐기고도 싶다. 자그만 자가용도 갖고 운전수 없이 나와 그가 직접 몰고 다닐 수 있도록 하고도 싶다. 그것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랄 수는 없으나 어차피 한 과정을 본다면 단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씩 실현해가야 할 것이다. 현재를 모르는 이상주의는 불필요하며 또 이상이나 꿈이 없는 현실주의 역시 누구도 요구하지 않으며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이다. 뱁새 걸음의 현재와 황새걸음인 꿈과의 Gab을 메우기 위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은 부풀어가는 꿈을 줄이는, 그래서 꿈과 현실의 조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늘 그랬듯이 입과 생각보다는 눈과 마음이 앞섰고, 쉬이 말을 듣지 않았으니 어려울 수밖에-. 코요마루 무슨 사정이 생겼는가 아침 일찍 Cotunou외항으로 간다.
12th. Feb(일)
몇 달이 된 듯한 기분이다. 무척도 많은 날들이 지나갔으려니 해서 Calender를 짚어보면 ‘어구야 아직도 요것밖에 -.’ 하는 느낌뿐이다. 일요일이라 VHF도 조용하고 그저 아는 사이끼리 잡담들만 오간다. Yeh Hope호와 교신. 야채와 생선 있으면 구할 수 없겠는냐고 한다. 대신 라면은 여분이 있다고. 그저께 잠시 들으니 그들도 이번 여기서 양하 마치면 바로 일본으로 직행, 일본 선원과 교체하게 되는데 한국소설이나 Record가 많이 있으니 가져가란 얘들 들었다. “그 뭐 사고팔고 할 것 있오. 생선 몇 상자 드릴테니 라면하고 바꿉시다”. 내일 상호 Boat로 방선키로 하다. 토쿠마루(德丸)에는 일단 Lagos에서 양하 중 계약기간이 만료될 것 같으니 가급적 교대 해달라는 전보를 띄우다. 일종의 엄살이다. 작년같이 계속 이쪽에 머물지 않으려니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다문 얼마라도 수당을 받을 수 있으면 선원들로선 다행한 일이다. 어차피 없는 놈 처지에 한 잎이라도 울궈 내자는 것이 다소 낯간지러운 일이기도 하고 상대가 교활한 놈들이나 게름직하지만 좀 더 다른 방향에서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것이 곧 정당한 일이고 대가가 아닌가? Canpex에는 Waiting하는 동안 Lome에서 급유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다는 Telex를 넣었다. 무엇인가 Owner와 Charterer측 사이에 시원찮은 문제라도 끼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빌어묵을! 그것이 곧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격이 된다. 어제 Assaf에서 Uniqe와 Toko Maru에 전해 달라는 Message가 있어 전해줬다. U는 오늘, T는 내일 입항이라고-. 그러나 종일 보내도 부르는 놈 하나 없다. 얼씨구나! 하고 종일을 VHF 앞에 죽치고 앉아 오유월 소불알 떨어지듯 기다릴 양선의 선장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래저래 속이 썩고 골탕 먹는 것은 그저 배타는 죄밖에 없는 일선 선장들이군. 엠병할 놈의 것! 종일을 먼 하늘만 쳐다보며 멍하니 보낸 날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자포자기적인 의미도 있다. 만사를 잊고 잠이라도 푹 잤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마음 같지 않다. 듬뿍 술에라도 취해서 골아 떨어져도 볼까해도. 그 놈의 독주가 너무 속을 후벼파는 통에 깨고 난 뒤 2-3일은 고통을 겪어야 하니 그도 내키지 않는다. 아마 마누라도 이런 심정이 되면 저절로 내가 미워지고 편지지를 앞에 놓고 이렇쿵 저렇쿵 긁어 대고 집을 지었다 헐었다. 팔았다 샀다 하는 모양이다. 차라리 1년을 더 버틴다고 했으면 이토록 따분하지는 않을텐데. 종일을 시부리고 싶어 못 견디는, 그래서 쥐뿔만치나 건덕지만 있으며 삼베바지에 좃 불거지듯 튀어 나서는 Apapa의 김 선장이 그의 성격으론 지극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렇지도 않고 필요한 이외는 꾹 입 다물고 앉은 내 자신은 그대로 영영 굳어져 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무슨 놈의 성미가 그러면서도 선뜻 마작이나 화투한번 만져보고 뛰어들어 보면 좋으련만 그것도 마음 같지 않으니 내 성미지만 진짜 뭐 같다. 창살 없는 감옥. 자유분망한 자의 그 부자유스러움은 정영 괴로운 것이다. 차라리 무슨 날 몇시다 하고 정해지기나 하면 며칠 땅위에서 검은 선율 속에서 딩굴어 보기도 하련만-.
13th. Feb(월) 1978
다시 시작하는 한 주일. 마치 벌집을 쑤신듯 아침부터 왕왕거리는 VHF. 또 거짓말 중계가 되고만 Uniqe와 Toko Maru. 아침 일찍 1등항해사를 단장(?)으로 고기 몇 상자 싣고 Yue Hope로 보냈다. 아직 누군지도 모르지만 선장한테는 명함 붙여 조니워카 한 병을 보내고-. 오후 2시경 돌아왔다. 그쪽 보트와 함께. 신문, 잡지, 음악테프 등 한 봇다리 챙겨왔고 김우한 선장은 귀한 일본 Sake 한 병을 보냈다. 그저 만나면 배 이야기고 고향이야기 뿐이다. 또 따져보면 어떻게 줄이 닿고 서로 괄시할 처지가 못 된다. 얻은 생선을 빚어 생선회라고 내 놓은 것이 동이 난다. 모두들 갯가에서 자랐고 배를 타서 그런가 사시미는 싫어하는 자가 없다. 자갈치의 대구집, 송도, 감천, 해운대의 살아 헤엄치는 미끈한 장어놈들이 눈속에서 놀아난다. 갈 날이 가까워져 그놈들이 생각나는가 아니면 그걸 생각하니 세월이 더디가는가?
MBC 수사반장 한질. 전설따라 삼천리가 한질. 10월까지의 국제신문이 두어 뭉치. 신동아가 1권, 기타 쩝쩝하게 많다. 이만하면 그런대로 며칠간은 잘 보낼 것 같다. 대신 그놈의 문화영화(?)를 보냈다. 밤새는 줄 모르고 읽기만 한다. 우선 물렁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그 내용이야 알바가 아니다. 인간생활에 먹고 입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도 같다. 어쩌면 그만큼 굶주려 온 것이리라. 나 뿐만이 아니다. 장기도 한 벌 가져왔다. 화투도 한몫을 챙겨오고-.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저녁마다 밥숫가락 놓기가 바쁘게 불티나게 둘러앉던 마작판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저 신문 몇 장씩, 책 한권을 챙겨들고는 제방으로 가거나 시원한 곳에서 읽기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솔직히 집에 가면 한 달에 잡지 한 권 읽지 않는다는 그들이다. 몸을 키우는 양식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북돋우는 정신적인 양식도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이놈의 곳이 왠만큼만 해도 매달 책 몇권을 보낼 수 있을 터인데-. 좌우지간 1년을 지독히도 재수 없는 곳에서 보낸다. C/O, 그 배 선장이 안부전하라면서 얘기한다. 금년 56세의 영감이드라고 -. 전부 아들 같은 젊은 애들 속에서 보내기가 무척 지루한가 C/O를 놓지기가 싫은 듯 붙들고 얘길 나누자고 했단다. 이해가 간다. 그만한 나이면 아직도 몇 뼘 안 되는 얕은 한국 해운계를 통체로 알만하다. 시간 닿으면 술잔을 사이에 두고 구수한 얘기들을 주억거려 봄직도 하겠다. 그만한 연륜 속에서 뭣인가 야박한 현대사회를 떠난 얘기들이 나올 법도 할 것이다.
Assaf이 다시 부르더니 Uniqe, Toko Maru 입항중계 부탁하잔다. “또 거짓말하는 히로시마마루 선장이 되라꼬?” 그게 아니고 어쩌고 한다. 결국 Uniqe는 오후 4시경 입항했으나 Toko는 약속된 Pilot Golf가 오지 않아 내일아침 1번으로 바꾸었단다. 두 선장, 매일 대리점에서 의뢰가 있어서 연락은 했지만 계획같이 되지 않아 내가 꼭 거짓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더니 “천만의 말씀”이란다. 이해들이야 하겠지만 언제 들어도 곱상하지 못하고 짜증만 남은 듯한 어감에 필요한 공식적인 말 이외는 한마디도 없는 매부리코의 Mr. Assaf이 괫심하기도 하다.
14th. Feb(화) 1978
09시경 Toko Maru 입항. 끝까지 협조해줘서 고맙다며 들어오면 배로 놀러오라고 이제야 안심한 듯한 戶田선장의 목소리다. 본사에서 ‘Docking Order’ 받았으나 기관부 각부별 예비품 청구서를 보내라는 것과 어쨌든 3월 10일까지는 Las입항해야 하니 본사에서도 Canpex에 조속 양하 요구를 하겠으니 본선에서도 대리점과 협의 가급적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노력 바란다는 내용의 Cable 있다. 꼭 일주일만에 우편물이 들어간 셈이군. 그러나 3월10일 Las 입항은 아무래도 안 될 것만 같다. 오늘 당장 입항, 양하를 시작해도 될똥말똥 똥이 두덩이다. 그랬으면 우선 내가 몇십배 좋겠다. 암만 지꺼려봐도 ‘No Problem’ 이라는 대답 한가지뿐이다. 들어갈 자리도 없고 순번도 멀었다니 할 말은 없다. 원참!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을 마시는 격이다. 참 어제는 교대건에 대한 회신도 있었지. 4월말까지는 일본에 귀국예정이니 그때까지 승선해달라고 했다. 회신을 바란다고 했으나 아직 보류중이다. 며칠 더 경과를 보자. 아무래도 Lagos보다는 Las나 일본에서 귀국하는 것이 좋다. 우선 제반 사정이 원만하다. 공항질서나 대리점 사정이나-. 거기다 Mr.Tikam과의 결산도 남아있다. 작업비 등을 일본으로 송금토록 해서 교대자 편으로 가져오도록 하는 방법은 있으나 직접 찾아가도 힘드는 데 남을 시킨다는 것은 떼일 염려가 우선 짙다. 또 만약 선주측에는 알리고 싶지 않다. 그 과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한 번에 1만불 가까운 돈을 받는다는 것을 Owner가 알면 어떤 생각을 가질 것인가? 한 푼 급료를 인상하기는커녕 수당이나 제반 조건을 더욱 낮추려고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어디가지나 본선과 용선자 사이의 문제이므로 제3자의 개입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Mr. Tikam이 자기 말대로 그간 내 노고와 협조가 그의 마음에 든다고 한다면 뭔가 한 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길 나눠볼 필요도 있다. 3월까진 늦어도 Las도착하면 모든 것이 안성맞춤으로 맞아떨어질 것 같은데 이쪽 사정이 워낙 발바닥이다. 답답하기만하다. 그저께 Alren에서 코요마루를 찾기에 Cotnou쪽으로 가더란 답을 했더니 내일 입항예정이라며 배가 소식이 없다나? 그 배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고의적으로 피한 모양 같기도 했다. 그 놈의 집구석도 콩가루가 되는가 모르겠다만 나만 공연스레 성가시게 졸리다 말았다. 종일 수사반장만 읽다.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푹 빠졌다. 3시간이면 한 권을 독파했으니 읽은 게 아니라 그냥 훑었다는 게 맞다. 눈이 침침하고 온 세상이 도둑놈이고 살인자고 성한 놈은 한 놈도 없을 것만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MBC에서 Drama로 본 것도 있다만, 즐겨보느라 마누라한테 한 두번 핀잔을 듣던 기억도 있다. 저자의 제작 의도대로 누구라도 읽고 사회악을 증오하고 완전범죄라는 것이 성립할 수 없음을 깨우치게 함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좋은 결과를 낳게도 할 것 같으면서도(적어도 나 같은 양심적인 사람에게는) 그러나 그것을 악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크건 작던 곰팡이 쓸 듯 온갖 범죄가 따르기 마련이고 또 살인을 일으키거나 커다란 범죄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만한 발생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간혹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 의외의 피해를 입는 수가 있어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를 낳아 갈수록 정신적인 또는 인간성을 보다 더 올바르게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Canpex에서 반선시 용선 때와 같은 양의 연료를 적재하도록 Charter Party 33조를 들어 타전했다. Mr. Tikam의 그 알 듯 모를 듯한 야릇한 웃음이 떠오른다만 굳이 그 결과를 바라기 보다는 그렇게라도 해두는 것이 내 책임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저러나 Bunkering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도 Agent에 청구서를 제출해 두어야겠다.
15th Feb(수)
상륙, Agent에 유류청구서 제출하다. Canpex에 즉시 Telex하기로 Mr. Kishinani와도 합의했다만, Mr.Assaf도 실은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대리점 본연의 뜻을 잊고 이놈 저놈이 온갖 소리를 해데니 어느 게 진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본선으로서는 무슨 일이든 당신에게 의뢰하는 수뿐이나 알아서 해주시오.” 했더니 바로 그게 자기의 뜻이랬다. 그래야 뜻이 분명해지고 양쪽의 의도를 올바로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믿을 수가 있단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당신을 좋아 한다나. 비행기를 탄 셈이다. 사실은 본선과 Trans-con과는 직접적으로 거래해야할 관계는 없다. 물론 수하주이기는 하지만 모든 일은 Agent를 통해서 일이 되도록 지정되어 있으면서도 그놈들이 독 오른 뱀 대가리 쳐들 듯 치켜들고 설치니 일의 질서가 있을 수 없다. 停電이라 아무것도 안 된다. Trans-con까지 가다. 그긴 자가발전기가 있다. 무선검사부 몇 장을 Copy 하기 위해서다. 지독히도 비싸게 먹히는 셈이다. Apapa. Byron 두 선장, 본선 三浦국장 등이 Trans-con의 식당에서 꼭 뭐 구워 놓은 것 같은 햄과 빵, 홍차로 점심을 떼우다. Mr. Kishinsni, Lalu, Ashok 모두 만나 봐도 같은 얘기다. 이미 Mr. Samtani가 Port Harcourt에 갔으니 곧 그리로 가게 될 것이라고-. 반선이나 차항관계는 아는 놈이 한 놈도 없고 그저 Las의 Mr.Tikam이 잘 알아서 할 것이니 염려 말라는 소리뿐이다. 무슨 함구령을 받았었는지도 모르겠다. Port Harcourt는 지금 접안 할 곳을 준설하고 있는데 곧 끝날 예정이며 그것만 되면 즉시 들어간다고 했다. 짐작이 간다. 더욱 막연하다는 것이다. 오직 유일하게 예정을 가늠할 수 있다면 東幸丸 다음이 가쯔시마마루 그 다음이 우리차례라는 것이다. 그래서 3월 중순 입항이란 결론을 추론한다. 그만 두자. 설마 세월이 멎지는 않을 테지-. 귀선 도중 들린 Federal Place Hotel 라운지에서 현대양행의 두 Salesmen을 만나다. “한국분인교? 아이구 한국말 좀 듣고 해보자.”며 대든다. 출장중이랬다. Hotel에서 나가라고 하는 걸 사정사정해서 하루 더 연기 내일 출국한다며 이놈 나라의 사정에 고개를 흔든다. 겁도 없이 두루 돌아다닌 것이 알고 보니 위험한 모험이었다고 -.
전 선원을 집합. 지금까지의 현황을 알리고 귀국 및 계약연기자를 확정짓고 연락도 하고 유종의 미를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 교대는 Las에서 하기로 우선 결정을 하다. 내일부터 다시 개인적으로 상담토록하여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밝혀줄 것도 지시했다. 대아에도 연락을 해야 할 때다. 가장 실현 확률이 많은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에 Las 도착’으로 보고-.
16th. Feb.(목) 1978
개인면담을 시작하다. 먼저 번과 큰 변동은 없는 듯 하나 냉동사 金廷漢군이 귀국하기를 희망한다. 편모의 노환과 성화가 아무래도 안 되겠단다. 유복자의 외아들로서 모친에 대한 효도가 착실한 그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형편으로선 당초 승선하지 못하도록 극구 마릴 것이 틀림없는 편모의 심정일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아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또한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비록 눈이 斜視인듯해서 그렇지 인성이나 기술면에서 젊은 사람치고는 좋은 편이다. 일찍 사업에도 손을 대어 봤고 1급면허도 갖고 있으며 기관사 면허도 응시해보라는 주위의 권고에 따라 노력하는 것도 같다. 어디가나 자신이 성실하고 성격이 모나지 않으면 환영을 받고 인정도 받는다. 제말마따나 서로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인간미가 통할 것 같아 가정환경마져 이야길 하고 조언을 받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마음뿐이고 말뿐이다. 다믄 6개월이라도 더 눌러 있으면 살아가기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만 오직 하나뿐인 편모와 마누라의 사이가 염려스러운 모양이다. No.1 김평기씨도 그렇다. 다시 1년을 더 연장하면 본선에서 내리 3년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한창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얘들과 생활 때문에 부득이한 사정이란다. 더욱이 본선에 오기 전에 1년을 승선치 못하고 놀았기 때문에 입은 타격과 충격이 너무 크고 심했단다. 겨우 작년 12월로 빚을 청산했다니 이제 다시 가서 몇 달 놀아야 한다면 2년간의 보람이 헛사가 돼버린다며 천장을 쳐다보고 헛 웃음을 보내는 그의 표정에서 진정 삶의 무게와 고충을 읽을 수 있어 숙연해진다. 그 웃음은 바로 울음일 것이다. 갑견 강군의 고충도 크다. 상고를 졸업, 첫딸을 가진 그로서 막상 배를 택해 나오기는 했지만 견습으로서 느낀 것이 많았단다. 온갖 심부름은 모두 제몫이었고 집에서나 식당에서는 제일 밑에서나 해야 할 설거지에서 밥상차리기까지 그가 해야 했으니 젊은놈으로서 장래를 바라보고 참을 수 있었다고는 해도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 것인지 짐작이 간다. 실상 뿔따구 날 때도 많았었단다. 그래도 1년을 지내면서 그간 집에 들여 준 것 생각하니 1년씩이나 집을 비우면서도 돈 벌었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이니, 이대로 1년을 더한다는 것도 문제라고-. 심각한 딜렘마에 빠진 것이다. “선장님 어쩔까요?” 한다. 내가 차라리 심문을 당하는 꼴이다. 진급되면 1년을 더 한다는 조건으로 우선 6개월을 버티어 보기로 낙찰을 보았지만 사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바로 위의 2갑 곽군이 조금만 더 활달하고 빠릿하면 같이 진급을 추천하여 속 시원히 해 주겠는데 이 녀석은 마치 도둑놈 보고도 꼬리를 설렁이기만 하는 순하디 순한 삽살개 모양 어물쩍하니, 마치 똥차 때문에 코로나가 지나가지 못하는 꼴이다.
심지어는 일본 기항하면 전원이 교대하고 혹시나 필립핀이나 인도네시아놈들에게 넘겨지는 게 아니냐는 염려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야 그럴 수도 있겠지. 워낙 배가 낡았으니까 채산이 맞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이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지레 짐작으로 망설일 필요는 없다. 범 보면 무섭고 가죽보면 탐나는 요령파도 있으나 대개 자신의 실생활에다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우선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의사에 의하지 못하고 가족과 가정의 형편에 얽매여 그저 돈벌이의 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 현대 Seaman들의 悲哀라 아니 할 수 없다. 내일 잘 먹기 위해서 오늘은 굶는 그 사고방식이 결국 오늘도 굶고 내일도 잘 먹지 못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德丸에 아무래도 정확한 입항계획은 없고 Lagos가 아닌 Port Harcourt로 변경될런지도 모르며 빨라도 3월 중순 이전에는 어렵다는 Cable를 띄우다.
17th. Feb.(금)
德丸에서 현재 잔유량과 양하종료시의 잔유량 그리고 보유하지 않고 Las까지 항해가 가능한지의 여부를 지급 연락하랬다. 뭣인가 계획대로 잘 되어가지 않은 느낌이 불안을 낳게 한다. Las까지는 커녕 오늘 아침 08:00시 현재 A유 24.45KL, C유가 61.9KL 밖에 없다. MDO는 이 달 말로서 완전히 바닥이다. Canpex에도 Agent에도 보유신청했으나 소식이 없음을 덧붙여 타전했다. 도데체가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환장할 지경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D-day를 정하고 그 시점이후에는 어떤 책임도 질 수 없다는 통첩이라도 날리면 된다지만 화물이야 썩던지 말든지 관계없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 할 식량보관부터 통신 기타 모든 선내의 생활이 All Stop된다. 부득부득 다가오는 귀국일이 겹쳐있어 더욱 조급함을 부채질을 하고 있기도 하겠지만 당장의 상황이 그전에 느껴 보지 못한 불안스러움이 슬며시 깔린다. 3월 중순이 넘어서면 주부식도 바닥을 본다는 결론이다. 안 그래도 요즘의 생활이 1년 가까이 되고 보니 그간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이 누적된 탓인가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의 생각의 영역 자체가 너무나 편협해지고 현실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져 간다는 사실이다. 곧 내가 딛고, 부딪고 헤쳐야 할 부산과 내 가정생활까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철지난 것들이라고는 하지만 신문들 뒤적거려 보아도 그것이 곧 내 것 같지가 않고 먼 타국의 일처럼 느껴져 스스로도 의아스럽고 놀랍다. 늘 같은 생활의 반복, 같은 내용의 일, 정해진 사람과의 상면, 대화 등이 결국 사고의 한계를 묶어 놓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늙어도 어린애처럼 순진하고 다변적이 되고 단순해져 가는 선원의 공통적인 틀이 깨져 가고 말 것이다. 아득한 수평선이 더욱 넓게 보임으로서 생활의 장이 그 만큼 작고 좁아져 가며 다하지 못하는 온갖 욕망은 결국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공상과 꿈으로 변하여 현재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공상과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는 반드시 이루어 질 수 있는 상태로서 굳어져 가고 잠재해 버린다고 했을 때 막상 사회를 대하면 실로 엄청난 Gab을 느껴야 할 것이고, 그 갭 자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다시금 가져지는 도피성향이 서슴치 않고 재 승선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낳게 한다. 매번 출국할 때마다 서글픔이나 서운함 보다도 오히려 시원스러움을 느낀다는 대부분 선원들의 실토가 곧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우선 한 푼의 수입이 많고 쉽다는 이유는 너무 근시안적이고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 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쉽사리 털어버리지 못하는 것도, 쉬이 적응해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중증의 병임에 틀림없다.
18th, Feb. (토)
Byron호 오늘에야 입항하다. 새벽부터 Mr. Assaf이 부르더니 Byron에 연락 해달라고 조르며 부산을 떨었다. 아직도 김 선장 그 양반은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모양, Apapa 김 선장과 나 둘이서 입항시켰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남의 배 입항하는 것이 어찌 그리 부러울까? 미칠지경이다. Byron 입항 후 Mr. Assaf을 불렀다. “어이 Tony 나한테는 무슨 좋은 소식이 없소?” “매일 매일 Port Harcout에서 연락이 오니 별수 없어 나도 그럴 수밖에 없오.” “그럼 나는 여기서 매일 당신 중계만 하고 있냐?” “Sorry, but I'll do my best for you.” 그뿐이다. 연료, 식량, 식수, Gas 등이 마치 조급증을 부채질이나 하듯이 졸아든다. 여기서 바닥이 난데도 할 수 없는 일.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어쨌든 여기서 조달해야 하는 수뿐이다. 예정보다 빨리 일 마치고 좋은 항구로 가는 배를 붙잡고 좀 나눠주고 가라고도 해야겠고 -. 길이 있겠지. 사람이 사는 곳인데-.
모처럼 집에 편지를 쓰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저 가는 생각에 그리고 지루한 느낌 때문에 정작 떠올려야 할 것을 잊어버린 셈이다. 요즘 내 속 만큼이나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학년말이라 바쁘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리라. 그냥 1년 더 눌러 있을런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라도 하려는지? 정화도 곧 3학년이 되는군, 그의 2학년 시절을 한 번도 보지 못한 한 해가 되는군. 커서 알면 원망을 할거라.
한 추위야 고개를 숙였겠지만 아직도 찬바람이 기승을 부릴 때다. 정주 볼거리는 괜찮은지? 놀러도 잘 다니고 제법 용감(?)해 졌다니 다행이다만 애비노릇 못 하는 게 죄책이 된다. 물질적으로만 풍요하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못할 수도 있다. 다소 어렵게 살아도 이제 막 커 가는 애들에겐 정이 있어야 한다.
‘부부간의 사랑은 횡적인 애정만으로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결실을 바라게 되며 부부가 다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갖고 싶어진다. 그때 그 소원과 생명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곧 자녀의 탄생이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엇이 제일 하고 싶냐고 물으니 ‘아버지 목에 말 한 번 타고 싶다.’고 했다는 어느 글의 한 대목이 곧 애들의 진실이 아닐까.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 그 생활을 위한 직업도 중요하지만 애들을 고생 없이 키운다거나, 내가 못 이룬 뜻을 애들에게서 찾아보려고 강요하는 것은 어떤 우를 범하기 쉽다. 실상 그런 예는 많다. 고생의 귀한 가치를 어려서부터 익혀야 하고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도 어려서 가르쳐야 한다. 3월이 되도 귀국하지 못하면 우선 얘들 보기가 어렵게 되리라는 아내의 마음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정주가 가끔 ‘와 이래 안 오노?’ 하면서 한 번씩 중얼거릴 것만 같다.
19th Feb.(일)
Eastern Peal(Western Shipping 소속)이 새로 입항했다. 12월초에 부산에서 출국, 미국 및 북구를 거쳐 Anterwarp에서 Cement를 싣고 온 모양. Sun Flower와도 교신. 남웅해운 소속이란다. 차항이 Wari. Sapale쪽이니 그쪽 항정을 좀 알려달랬다. 비록 10개월전의 일이지만 아는 대로 들려주었다. 특히 Malaria, VD환자 조심토록 당부. 입항하면 꼭 한 번 만나잔다. 좋지.
대아에 보낼 서류 내일 띄우자. Byron에서도 무사히 착안, 작업중이라 고맙다는 인사가 왔다. 그 원수(?) 갚을테니 나오라고 -. Fresh Water는 말만 믿지 말고 정식으로 문서화해서 제출하고 계속 독촉하랬더니 깜짝 놀란다. 그냥 두면 더러운 꼴 당하는 것이 이놈의 동네 실정임을 아직 그는 턱도 없이 모르고 있다.
20th. Feb.(월)
차츰 날씨마져 변덕스러워져 간다. 아침으로 먹구름이 한두 차례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지나간다. 곧 우기로 접어든다는데-. 그러나 낮은 여전히 태양이 작열한다. 그나마 오전중 남서풍이 쉴 때는 그냥 한증막 같은 침실이다. 검다 못해 느르스름한 색깔에 찡그린 얼굴이 마치 서부영화에서 본 인디안의 늙은 추장 상통이다. 아침부터 Mr. Assaf를 물고 늘어졌더니 마침 Mr. Kishinani가 있었던가 3일후면 동방73호에서 A유 100KL 받도록 되었다고 -. 대신 Kano Reefer 입항하면 NH3 가스 및 냉동유 좀 협조해 달란다. Canpex의 연락이냐? 그렇단다. 그럼 왜 나한테는 연락이 없냐? 곧 할거란다. 아무턴 그렇게라도 연락을 받고 보니 안심은 된다. Mr. Tikam한테서도 오긴 왔다. 얌체같이 제가 요구하거나 부탁이 있을 때는 타전하고 이쪽의 답신은 약으로 쓸래도 안 해주는 그 버릇을 어떻게 고쳐줄까. 여우같은 놈.
德丸측에서도 갈팡질팡이다. 분명히 서류에 명시했는데도 안전무선증서와 정기검사가 5월5일 어쩌고 한다. 뭔가 그 인도놈들 한테 홀렸나? 전보를 가급적 줄여줄려고 해도 저들이 멍청하니 할 수 없다. 3월2일로 끝나는 제1중간검사와 안전무선증서, 안전설비증서의 연기조치 그리고 정기검사와 시기 일치여부 등을 상세히 보냈다.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격이다. 다시 해사법령전집을 찾고 가쯔시마마루에도 다녀왔다. 한 번 보트를 빌려준 대가치고는 친절하게 대해준다.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체 두어시간 잡담으로 보냈다. Estern Peal은 다시 영해 밖으로 쫒겨났다. 역시 그놈의 Certificate No.를 못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 배의 C/E가 협성시절의 1/E였던 김기태씨랬다. Sun Flower입항시키다(?) 진짜 이러다간 Harbour Master의 중계자가 되겠다. 모르면 즉시 묻기라도 하던지. 심지어 일본 주재원에다 중국인들까지 안타까워서 한마디씩 거든다. 할 수 있다면 욕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더만. 꽤나 멀리까지 나온 Pilot Alfa가 승선하면 제법 신경질을 부리겠군. 또 뭔가 일이 한꺼번에 닥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동방호와 접선 보유 작업이 그렇고 Kano Reefer와의 가스와 냉동유건. 그리고 일본대사관의 검사증서 연기신청 등이다. 보유가 끝나면 곧 Port Harcourt로 가라고만 할 것도 같다. 무엇보다 부식을 10여일분 더 보충을 해야 하는데 아직 마땅한 배가 없다. 그렇다고 Market에서 사기는 너무 비싸다. ‘有備無患’을 생각하면 비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비축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면서도 사정은 그렇지가 못하니 고민도 갈등도 생긴다. 입항중이면 또 모르나 한 건마다 보트로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다. 언제 떨어질는지 모르는 출항예고가 문제다. 여하튼 이 주일이 고비가 될 것이다. 후닥닥 비상수단을 발휘하더래도 결코 차질을 낳지 말아야 하니. 다 돼가는 마당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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