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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한광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2003년 10월/156쪽
프롤로그 - 바바라 소령의 패러독스와 한반도
버나드 쇼는 현대 영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데 일생을 건 희곡 작가로 유명하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산업 사회의 아이러니를 시니컬하게 해부했다. 수많은 그의 걸작 중에서도 희곡 『바바라 소령』은 독실한 구세군 소령 바바라와 군수산업자인 아버지 언더샤프트를 내세워 가난과 대포와 도덕과 사랑의 갈등을 다루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을 통해서 전쟁과 경제발전의 함수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조용히 굳게 닫혀 있던 한반도에 서양문물과 함께 무기와 종교가 함께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전쟁의 공포'와 '경제적 풍요'도 동시에 시작되었다. 요즈음 한반도는 '북핵'으로 대표되는 북한 문제로 인하여 미국과 중국 양 대국의 입김이 짙게 배어들고 있다. 변혁의 21세기를 맞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이해 대립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 이익이 우선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발전 잠재력이 큰 나라로 지목 받고 있는 중국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러면 이제부터 미국의 시대는 가고 중국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는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더욱 거세게 다가오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바바라 소령의 패러독스를 벗어나는 것은 우리의 슬기에 달렸다.
1. 한-중 경제협력의 명암
새로운 만남의 시작
1971년 10월 베이징을 방문한 키신저는 저우언라이와 마주 앉았다. 각각 미국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과 중국 총리의 신분이었다. 이날 두 사람이 4시간 넘게 마주 앉아 주고받은 이야기의 절반 가량은 한반도 문제였다. 이번에는 두 나라가 전쟁이 아닌 협상으로 한반도를 재단하고 있었다. 그 결과 두 전략가는 '한반도의 안정과 전쟁 위험 감소, 그리고 (러시아·일본 등) 다른 힘의 한반도 개입 방지라는 전제 아래서 중국과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이익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데 비밀 합의하였다. 1979년 1월 1일 미-중 관계 정상화가 발표되었는데, 화해의 주역들인 마오쩌둥과 닉슨은 덩샤오핑과 카터로 바뀌어 있었다. 때맞추어 중국공산당은 현대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계획경제를 청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서방과의 오랜 악연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되는 것이었다. 미-중 관계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면면히 발전을 거듭하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정치·경제지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미-중 관계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가운데 우리의 역사도 내달리고,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냉전체제가 저물어갈 무렵인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우리는 미·소·중 등 이념을 초월하는 세계 화합의 축제를 주관하였고, 1990년대에는 마침내 군사정부도 종식시켰다. 한-중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에게 중국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한-중 관계에 전기가 마련되었다. 6·4 천안문 사건과 소련 체제 붕괴라는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은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한다고 밝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1992년 8월 우리 나라는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한-중 수교는 우리 사회에 중국 물결이 밀려드는 중국 붐을 가져왔으며, 중국 사회에도 한국 붐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호 교류는 오랜 단절을 무색하게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전면적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중국과의 교류는 경제협력이 핵심이었으며, 우리는 점차 이것이 경제적인 기회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충격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닫혔던 중국 시장의 문이 열리면서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서방 각국과 아시아 주변국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기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붐이었다. 이를 토대로 하여 중국 경제는 시장경제 첫 해 무려 14%가 넘는 폭발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뜨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주룽지 부총리가 경제부총리와 중앙은행장을 겸직하며 경제 총사령관으로 나선 것이 이때다. 시장경제의 위력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계속해서 두 자리 수 경제성장률로 나타났다. 주룽지가 관을 메고 전투에 임한다는 '부관임전(附棺臨戰)'의 자세로 긴축의 고삐를 당긴 결과 1996년에 시장경제로 전환한 후 처음으로 한 자리 수 성장률인 9.7%를 기록하며 진정되었다.
미-중 시대, IMF의 충격
미국은 중국이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하자, '중국이 시장경제에 접근해 가면서 경제적 성공을 달성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된다'면서 천안문 사건 이후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회복하고 경제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양국이 경제협력과 동시에 동아시아 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길고 긴 힘 겨루기에 들어갔다고 분석하고 있다. 아무튼 헤지펀드라는 이름의 서방자본이 중국과 이웃한 동남아 경제가 안고 있는 취약점을 파고드는 공격을 감행하는 가운데, 특히 홍콩이 1997년 8월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4,5차례에 걸쳐 집요한 공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 나라 경제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당시 홍콩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해외자금 조달 창구였는데, 그 해 8월 중순부터 개시된 헤지펀드의 홍콩 집중 공격이 한국 사정을 압박하였고, 이에 놀란 일본 은행들이 한국에 풀어놓았던 자금을 대거 철수시키자 한국은 유동성 위기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기억에도 생생한 바와 같이, IMF에 강제 편입 당한 한국 경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경제에 걸맞는 구조조정의 길에 들어섰다. 이렇게 해서 우리 경제는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판단하여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구조조정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어서 미국과 일본, 유럽의 자본들은 거의 균등하게 한국의 빚 덩어리 기업들을 여유 있게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는 사상 유례 없는 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였다. 강제로 조정을 당했다는 점은 못내 아쉽지만 우리 기업들의 구조가 전보다 좋아지고 나라 경제도 나아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한국 경제를 IMF에 강제 편입한 다음,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일본·유럽국가들과 함께 많은 한국 기업들을 인수했을까.
첫째는 그동안 유독 차관에 의존하는 경제발전 방식을 고집해온 우수한 한국 기업들에 투자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둘째는 서방 기업들이 중국 시장 진출의 한 방식으로 한-중 경제협력의 잠재력을 이용하는 한편, 급속하게 가까워지는 한-중 경제협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경제는 놀라운 속도로 중국 경제 및 중화권과 가까워지는 한편 미·일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중국의 경제발전을 계기로 새롭게 가능성을 열어가는 동아시아 경제의 주도권에 주목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전략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한-중 수교 이후 한·중 양국 간 협력 잠재력이 현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서방은 한-중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자본으로 선점하여 동아시아 역내 경제권의 활력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경제는 이미 중국과 미국의 각축장이 된 것을 의미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시장협력이나 미국과의 자본협력 모두 불가피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충격적이고 파동적인 방식으로 협력 당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한국은 없다
· 한반도는 중화 문명권 : 오늘날 한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그다지 긍정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일부 중국이나 일본·서방의 시각은 개화기 한국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하부구조' 아니면 '중국에 흡수될 운명' 정도로 차갑게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은 없다. 이것이 우리가 '동북아 경제중심'을 내걸고 있는 한국을 바라보는 일부 외부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정부의 머릿속에 담겨진 한국에 대한 인상이라면 속단일까. 일부 서방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발전을 계기로 한국이 점차 중국 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노무현 신정부 출범과 상관없는 훨씬 이전의 얘기다).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장차 한반도를 중국 문명권에 속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여기에 베트남을 포함시켰으나 일본은 제외하였다. 우리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서방이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에 접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 한국 경제는 미국의 하부구조 : 중국인들이 보는 한국은 어떤가. 중국인들 중에는 한국 경제를 다소 과대 평가하는 경향도 있지만 미·일 경제의 하부구조 정도로 보는 경향도 있다. 우리 나라를 놓고 중국과 서방 간에 다소 상충되는 견해를 보이는 것은 한-중 경제협력이 급진전되는 현상 및 전망과 맞물려 나오는 반응들이다. 중국 시장이 떠오르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 변화가 강대국 간에 관심의 초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중국도 미·일과의 경제협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정치 체제가 다르면서도 이처럼 경제교류가 활기차게 이루어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거기에 거대한 시장을 매개로 한 흡인력이 작용한다는 것이 우리와 크게 다른 점이다.
· 중국에 대한 환상과 착각 : 우리 기업들의 현지 투자 실패율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너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기업의 중국 투자 성공률이 대체로 20∼30%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리의 IT 분야 중국 진출은 현지 생존률을 10%로 보고 있다. 높은 관심과 투자열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투자 성공률을 올리려면 중국의 문화·언어·체제·역사·경제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누가 이 같은 정답을 부정하겠는가. 우리 사회는 중국에 대하여 잘못된 선입견이 강한 특성이 있다. 중국에 대한 '환상과 착각'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 중 몇 가지를 짚어본다.
첫째는 양국간 교류의 역사적 단절과 제한이 상호 이해를 어렵게 했다. 우리와 중국과의 단절은 흔히 말하듯이 단순히 20세기 일제시대와 적대적 분단 시대만이 아니다. 멀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중·일 3국은 모두 봉쇄 정책을 대외 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한·중 간 정상 교류의 폭은 더욱 좁아졌으며, 풍전등화격인 우리 민족의 상황은 제대로 된 시각으로 중국의 변화를 바라볼 형편이 아니었다. 이러한 교류의 단절과 제한 현상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고 중국에 대한 정보의 왜곡을 초래하였다. 이로 인하여 중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역사적 전통은 국익 차원에서 중국을 제대로 인식하고 올바로 대응하기보다는, 중국 정보를 이용하여 자기 정파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국가 존립을 위한 '事大 불가피' 수준이 아니라 정파 이익을 위한 '事大 경쟁' 양상도 불사하게 된 것이다.
둘째, 중국에 대한 정서불안 현상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중국을 앞서 있다는 상대적 우월감에 이어 최근에는 다시 중국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굴욕적 사대와 우월감, 그리고 다시 중국의 부상에 위축되는 흐름인가. 최근에는 중국 경제의 발전이 가시화되면서 우리 일부에서는 자신감을 잃고 거꾸로 위축되는 현상도 보인다. 우리 경제가 중국 시장의 발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발전 전략을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도 주목해야 하며,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취약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폭넓은 시각으로 침착하게 한 단계씩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밖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폐쇄성과 배타성도 중국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이처럼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이유로 우리가 중국에 대하여 갖게 된 '환상과 착각'은 오늘날 중국의 변화와 발전에 대하여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 중국이 우리를 따라온다 : 최근 중국 경제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는 전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전자, 철강, 화학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3∼5년 내 우리를 따라올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중국이 우리를 추월한 분야도 많다. 중국은 2003년에 컬러TV, DVD플레이어, 휴대전화기 등 12개 주요 전자제품 중 세계 점유율 1위 품목을 8개 차지하여 2개에 그친 일본을 누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는 1개도 없다. 이는 중국이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보다 정확하게는, '1990년대부터 중국은 우리를 매우 빠르게 추월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중국 시장 접근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 덩샤오핑과 장쩌민의 한국관 : 덩샤오핑의 얘기다. 현대화 계획을 착수하던 1980년대 초 그는 한국의 공업발전, 특히 포항제철의 성공에 대하여 관심을 보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나라에는 한국의 박태준 같은 인물이 없다'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장쩌민이 1990년대 초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귀국길에 비행기 안에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면서 '이런 산악 국가가 어떻게 이런 발전을 했단 말인가' 하며 한국경제발전연구팀을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리펑이나 주룽지와 중국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현대화 착수이래 중국 지도부가 우리 경제에 대하여 이처럼 좋은 인상을 갖게 된 것은 오늘날 양 국간 경제협력의 놀라운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부 관료나 지식인들도 대체로 한국 경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으나,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점차 한국 경제에 대한 초기 붐은 식어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미, 일에 이어 제3의 경협 파트너이며, 한국 입장에서도 중국은 마찬가지다. 중국 관료나 지식인들이 한국 경제에 대하여 갖는 관심의 이면에는 우리 경제의 장단점 속에 미·일의 영향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중국의 대외무역 중에서 미·일에 대한 의존도는 지금 30% 수준이지만 1990년대는 한때 50%를 오르내린 적도 있었다. 중국은 이처럼 미·일에 대한 지나친 경제의존도를 의식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 및 EU 등과의 협력은 이런 전략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 한국제품 인지도 : 일본이나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도도 괜찮은 편이다. 순위로는 일본, 미국에 이어 3위 수준이지만, 비율로는 7% 정도다. 일본과 미국 제품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최근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중국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나, 베이징에 현대자동차 공장이 들어선 것도 앞으로 가전제품이나 의류 등의 분야에 좋은 파급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 중국식 시장경제의 길
덩샤오핑의 꿈
· 반드시 따라잡아야 : 마오쩌둥이 미-중 화해로 미국과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킨 인물이라면, 덩샤오핑은 미-중 수교를 통하여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현실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이 냉전시기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을 치르며 무리한 계획경제로 미국에 맞선 '건국의 아버지'라면, 덩샤오핑은 국제환경이 호전되어 서방과의 시장협력을 토대로 경제발전을 착수한 '현대화의 총 설계자'이다. 덩샤오핑은 미-중 수교가 결정되자마자 건국 이래 저우언라이 총리의 숙원이었으며 중국의 지상 과제인 현대화 계획에 착수하였다. 미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덩샤오핑은 1970년대 초 유엔에서 중국 대외 정책의 대전환을 알리는 '제3차 세계대전 가피론'을 연설하기 위하여 뉴욕을 찾은 적이 있었다. 덩샤오핑은 미국의 풍요로운 위용을 바라보며 '이를 반드시 따라잡아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중국의 과거는 '세계 제일'이었으며, 미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꿈이자 덩샤오핑의 꿈은 아닐까. 덩샤오핑은 미국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중국의 정치 리더십이 미국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지니고 있는 지대한 관심을 감안해볼 때, 그는 미국이 부강해진 원인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했을 것이다. 이민 국가가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인 '개방'과 이를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그리고 자본주의의 특성인 치열한 '경쟁' 메커니즘의 두 요소가 미국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중국에서 '개혁·개방' 정책으로 재현한 것은 아닐는지.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표방한 후 '이를 향후 백년 동안 지켜야 한다'고 선언하고 베이징을 비롯하여 대도시 거리마다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미-중 관계 개선을 계기로 마오쩌둥 이래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생각해오던 오랜 국가발전 구상이 현실화한 것이다. 덩샤오핑을 이은 지도자들이 장쩌민과 후진타오이다. 모두 덩샤오핑이 1980년대 초 현대화 초기부터 지도자 그룹 수천 명을 양성한 데서 선발을 거듭하여 뽑아 올린 사람들이다.
덩샤오핑과 중국에 대하여 갖게 되는 의문은 '현대화 리더십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개혁을 성공했는가', 즉 현대화 리더십의 연원과 개혁 방식이다. 덩샤오핑은 어떻게 개혁을 성공시켰는가. 무엇보다도 전임자인 마오쩌둥의 정책과 계획경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토대로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오늘날 북한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과거 반성에 가장 인색하다). 그러한 비판 작업이 없었더라면 '시장경제'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의 정치적 리더십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힘'에서 나오고 있다. 덩샤오핑의 현대화에 대한 접근 중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공산당의 기존 관료를 그대로 활용하여 체제 개혁을 추진한 점이다. 흔히 공산당 관료는 반 개혁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뒤엎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과거 반성을 토대로 기존 관료를 적절히 활용하여 중국식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수립한 것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 중국공산당의 자기 변신 : 덩샤오핑의 꿈은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을 놓고 세계가 놀라고 있지만 20여 년 전 현대화를 내걸고 경제발전을 착수할 때만 해도 세계은행이나 IMF 같은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은 한결같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면 중국이 이런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만약 엄청난 인구와 자원이 중국의 남다른 잠재력이라면, 문제는 어떤 여건 속에서 어떤 리더십으로 이러한 잠재적 발전 요인들을 조직화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의 리더십이 그러한 일을 해낸 것이다.
현대화 추진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지도부는 6·4 천안문 사건으로 제2의 문화혁명 발발을 우려하게 되었다. 결국 수습파인 장쩌민과 진압파인 리펑은 연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장쩌민이 전권을 장악하고 리펑은 총리가 되어 장쩌민을 돕는 양 체제는 시장경제를 순조롭게 안착시키고 4세대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시장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중국공산당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공산당 일당독재 정치 체제와 사회 다원화 추세간의 갈등과 모순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공산당은 앞으로 나타날 경제적 갈등을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하여 당의 체질을 본질적으로 바꾸는 조치를 취하였다. 사영기업가로 표현되는 자본가 계급을 공산당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당의 2000년대에 대한 대응은 '3개 대표론'을 통하여 자본가(사영기업인)를 시장경제 주체의 하나로 공식 수용하는 방식으로 구체화하였다. 장쩌민이 '3개 대표론'을 발표한 것은 2000년 2월이었다. 그 핵심은 '당이 중국의 선진 생산력의 발전 요구와 중국 선진문화의 전진 방향, 그리고 중국의 가장 폭넓은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하기만 하면 당은 인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개혁·개방 노선을 견지하면서 사회 다원화에 따른 당과 사회의 관계를 조정할 것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당의 조치에 대한 평가는 여러 측면에서 내릴 수 있다. 우선, 시장경제 추진 이후 급변하는 경제와 사회 현실에 대응하고자 하는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덩샤오핑 이론'에서 '3개 대표론'으로 시장경제를 추진하는 당 지도이념에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2003년에 출범한 후진타오 새 지도 체제에 정책 추진의 새로운 여건을 제공하여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WTO 가입을 계기로 대외개방을 가속화하고 9·11테러 이후 국제환경변화에도 대처해야 한다. 시장경제를 시행하면서 심각한 취약점으로 드러나고 있는 빈부 격차와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처 방식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부정부패에 대응하여 암행어사제도, 노동력 이동과 관련하여 호구제 개혁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중국공산당의 정치 리더십은 자기 변신을 거듭하며 정치를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라 현실적인 협력관계로 변용하면서 중국의 발전 잠재력을 일깨우고 있다.
중국 경제는 정말 부상하는가
· 변화와 충격의 서곡 : 시장경제를 표방한 중국 경제가 견실한 발전을 보이면서, 이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도 전통적인 부정적 시각을 떨쳐내 서서히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직도 '중국은 가짜다'라고 힐난하는 견해가 여전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전문가 사이에서도 중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오아시스'라는 평을 받기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표적이 된 중국은 지난 200년을 오랜 제국주의의 질곡과 군사적 봉쇄, 그리고 세계 시장 참여를 외면당하는 아픔을 견디어왔다. 이처럼 지나온 과거와 다가오는 미래가 극적으로 대비되는 시대 상황을 맞아 중국은 모든 역량을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것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 중국 경제의 빅뱅과 시장협력 : 오늘날 중국이 보여주는 변화의 핵심은 경제에 있다. 경제는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체제는 경제를 지원하는 데 자기 변신을 거듭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견인차 역할은 시장협력을 전제로 한 대외개방이 주축이 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안고 있는 중요한 취약점의 하나는 자본과 기술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시장 잠재력과 저렴하고 우수하며 풍부한 노동력이다. 이러한 틈을 이어주는 역할을 외국인 직접투자와 대외무역이 떠맡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도입하자마자 치솟기 시작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는 연평균 400여 억 달러를 기록해왔는데, WTO에 가입한 다음해인 2002년에는 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대외무역 규모도 최근 급증세를 보인다. 2000년에 4,000억 달러, 2002년에는 6,000억 달러를 돌파하였으며, 일본의 노무라연구소는 2005년 중국의 무역 규모가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실감하기 어려운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이러한 '빅뱅' 현상이 가까운 이웃인 우리 경제에 '기회와 위기'라는 이름으로 거센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세계 많은 기업들도 '중국의 충격을 어떻게 완화할까'에 고심하는 한편, 이를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하여 중국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 WTO 가입과 세계의 공장 : 역사적으로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은 혼란을 야기해왔다. 중국의 부상이 세계를 혼란시킬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산업혁명 이래 영국의 부상은 전 세계 구도를 뒤바꾸어놓았으며, 그 후 독일과 일본의 부상에 대하여 기존의 강대국들이 새로운 변화를 성공적으로 수용하지 못하여 제1, 2차에 세계대전의 비극이 벌어졌다. 결정적인 실수는 강대국들의 보호무역 정책이었다. 이 점에서 중국이 WTO에 가입한 사실은 국제무역 협력을 뛰어넘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의 가파른 경제성장이 기존의 세계 경제 질서에 던져줄 첫 번째 충격과 혼란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중국 발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일본의 장기 경제침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에 디플레이션 등으로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세계 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충격이 일회성 디플레와 같은 단발로 그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정치적 부상과 함께 군사적·문화적 영향력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중국은 세계에 대한 신뢰와 책임도 점차 커질 것이다. 기존의 세계 질서가 중국의 부상을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21세기 세계 질서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중국은 WTO 가입으로 새로운 경제상황을 맞이하였다. 단순하게 말하면, WTO는 시장중심경제의 규칙을 정한다.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외국 기업을 차별하는 불공정한 대우를 시정하는 것이다. 이제 중국은 금융에서 농업에 이르기까지 보호받고 있는 모든 분야를 국내 및 국외에 개방하여 중국 경제의 계속적인 시장경제화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현재 중국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보면, 첫째, 시장경제를 향한 정부의 정책이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감과 자신감을 더해가고 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사회주의 개도국인 중국에서 정부의 정책은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여 년 간 상대적인 사회안정을 토대로 경제발전에 성공하는 경험을 축적해왔으며, 특히 1992년 시장경제 표방 이후, 그리고 1997년 동남아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 정책 수행은 전 세계로부터 호의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자신감은 대외협력 및 체제 개혁에 모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21세기 경제 비전을 한층 밝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시장 변화는 계획경제 유산과 문화적 토양을 감안하면서 전반적으로, 점진적으로,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 점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슬로건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발전과 변화는 어느 신생 개도국의 대견한 경제발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의 거대한 잠재력은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1820년대 중국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의 28%에 달하여 오늘날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 비중을 능가하였다. 향후의 발전 잠재력을 감안할 때, 현재 진행 중인 중국 경제의 발전은 세계사적인 영향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향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위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어 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3. 미-중 시대와 한반도
지금은 미-중 경제협력 전성시대
· 시장경제 도입과 정상외교 : 재임 2년여 동안 조지 W. 부시는 중국을 이미 두 차례 방문하였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2001년 가을 '9·11 테러'의 잔해가 채 정리되기 전 중국의 맨해튼 상하이 푸동에 도착하였다.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것이었다. 이어서 2002년 가을에는 장쩌민의 미국 답방이 있었다. 이렇듯 잦아지는 정상회담에서 보듯이 미·중 양국은 중국의 시장경제 출범과 WTO 가입을 계기로 하여 이미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 있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초 중국이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하자, '중국이 시장경제에 접근해가면서 경제적 성공을 달성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된다'는 쪽으로 공식 입장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중국의 WTO 가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 중국은 대미 흑자 1위, 미국은 대중 투자 1위 : 중국은 이미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 1위국이 되었다. 양 국간 교역은 1979년 수교 이래 연평균 18%씩 증가하여 2002년에는 중국 측 통계로 1,000억 달러, 미국 측 통계로는 1,500억 달러에 육박하였다. 미국은 최근 수년 연속 대 중국 직접투자 1위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2002년에는 연간 투자액이 처음으로 50억 달러를 넘었다. 이제 미국은 중국의 제1위 무역 상대국이자 최대 수출시장으로, 중국은 미국의 제4위 무역 상대국으로 올라섰다. 양 국은 민간교류에서도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1972년 2월 미-중 화해의 산실이었던 상하이의 국제문제연구소는 지난 2002년 봄, 미-중 화해 30주년 기념행사를 전후하여, 아직도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는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하여 자유로운 비공식 차원의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런 자유스런 분위기에 미국 전문가는 물론 대만 학자와 때로는 북한 학자도 마주 앉곤 하는데 한국에서도 오면 좋겠다고 연구소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중국 경제계에 미국에서 공부한 젊은 사람들이 대거 기용되는 현상도 자리를 잡고 있다. 베이징 대학과 같은 명문대학의 경제학과 등 일부 학과에서는 미국 유학 출신 젊은 학자들이 그룹을 형성하며 서서히 중진으로 자리를 굳히는 현상도 낯설지 않다.
동아시아 시대와 한반도
우리 사회는 중국의 부상과 미-중 관계의 변화를 어떻게 보는가. 어떤 이들은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애매한 어투로 말한다. 이제 우리의 살 길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 끝에 우리의 수천 년 역사가 그러지 않았느냐고 덧붙인다. 또 다른 이들은 중국을 조심해야 우리가 산다고 강조한다.
· 동아시아 경제 환경 변화 : 지난 3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가장 놀라운 국제 환경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미-중 관계의 변화다. 중국의 부상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시발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양 국간 경제협력은 상호 최대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한 켠에는 '미국과 중국'이라면 상호 적대국이라는 지난 1950∼60년대의 역사적 인식이 장승처럼 굳어져 존재한다. 이것은 곧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극단의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아 있다. 한반도 분단 이래 이분법적으로 경직된 사고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온 탓일 것이다. 미-중 관계는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가파르게 변화하면서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에 대변화를 가져온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대만 양안과 한반도에 열강의 이해가 걸린 군사적 긴장이 국제 질서 재편의 현안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권은 21세기의 세계적인 경제권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양 축으로 작용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계기로 새로운 활력을 보이면서 국제 정치·경제적 위상도 급변하고 있다. 중국의 시장경제 순항과 동남아 외환위기 극복, 그리고 남북한 관계의 새로운 변화 등은 장기적으로 이 지역이 세계 3위 경제권에서 1위로 도약할 전망을 낳고 있다. 시장경제를 출범시킨 이후 중국의 위상은 눈에 띄게 제고되고 있다. 중국의 발전은 해외 화교자본과의 연계가 토대로 작용한다. 그리고 화교 네트워크는 글로벌 네트워크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이 지역의 경제권에 대한 영향력도 가파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 동아시아 경제권과 북핵 문제 : 이런 가운데 중국은 시장경제를 내세워 동아시아 지역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홍콩과 대만은 이미 중국 시장의 흡입력에 빨려들고 있으며, 동남아 경제권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전체 대외경제협력의 40%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동아시아 경제권이 중국의 경제발전을 축으로 새롭게 역동성을 보여주는 토대가 되고 있다. 이 지역은 일본이 서방과 제휴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과거 서방의 피식민 상태에 놓였던 지역이다. 그 상처의 흔적이 세계에서 '군사적 긴장이 가장 축적된 지역'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과 대만 간에 양안 문제와 한반도의 분단 문제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대만 문제 갈등이 해소되는 흐름을 보이는 반면, 한반도 문제는 '북핵 문제'로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으로 떠올라 있다. 북한은 동아시아의 에너지 협력과 물류혁명에 기폭제가 될 경제·지리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석유 가스 개발과 물류협력 등을 놓고 한국·일본·러시아와 이해가 걸려 있고, 중국은 북한의 체제 불안이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면 이 지역은 자본과 기술·인력과 시장의 상호 협력에 새로운 시대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핵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돌파하는 데 제동을 걸어 동아시아 경제권의 가속적 발전을 가로막는 좋지 않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북핵 문제는 복합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북핵 문제는 동아시아 지역에 대하여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하고 관심이 많은가를 보여준다.
· 동아시아 시대, 우리의 과제 : 우리 나라는 지금 새로운 국제협력의 조정기에 적응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이 지역에서 새롭게 위상을 조정해 나가는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발전 잠재력을 지닌 중국, 침체기에 들어선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 대륙 간 물류 통행로와 함께 천연가스 등 자원의 보고인 러시아, 그리고 국제 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북한 등과 새로운 경제협력 시대를 열어 가는 길목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 변화는 중국에게 제조업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과 맞물려 물류·금융·비즈니스·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으로 활로를 열겠다는 '동북아 경제중심' 발상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뛰어난 시장의 보완성과 함께 우리 나라는 '동아시아 경제 활력의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는 경제·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반경 1,000km 이내에 중국 동부 연안 지역을 비롯하여 일본, 북한, 러시아 연해주 등을 포함하는 인구 10억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은 철강, 정보통신, 석유화학, 에너지 등 각 분야에서 산업별 상호 보완성과 자본 및 기술·노동력 등 생산요소의 활발한 이동으로 역내 경제협력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러시아와 그동안 소외된 북한이 물류·자원·노동 등의 협력을 통하여 참여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은 자명하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는 오랜 남북 대립과 단절 상황 속에서 사회 불안이 체질화되고, 지역감정과 보·혁 대립 등으로 견디기 힘든 정치·사회적 병폐들이 확산일로에 있는 실정이다. 국가이익이나 전체 국민이익보다 집단주의와 정쟁 구도를 통한 소집단 이익이 앞서는 실망스런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지연과 학연으로 얽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엘리트주의도 점입가경이다. 위험이 느껴진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사회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역사 흐름의 전환점에서 국론을 수렴, 통합하여 이에 대응할 만한 준비가 아직 미흡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상대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상대해야 할 강대국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움직여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안보 문제나 경제 문제를 막론하고 무차별로 정쟁의 도구로 삼아 작은 기득권에 몰두하는 사이에 그들은 국익 앞에서는 어떠한 정쟁이라도 용서받지 못하는 정치 체제를 확립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이익 앞에서는 결코 특정한 일부 소집단이 나설 수 없게 체제적 장치와 관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이건 중국이건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동아시아는 미-중 시대가 가속화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초보적인 진전을 이룬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국제 경제 환경인 것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기회와 위기'의 실체는 이중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하나는 미-중 시대의 도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대응이다. 새로운 미-중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줄 기회는 적극적인 외세 활용을 통한 정체성의 재확립이다. 미·중 양대 시장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경제적 활력을 뒷받침하는 정치 메커니즘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새로운 국가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응전에 실패한다면 IMF 관리 체제 같은 재앙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북한 문제도 미-중 시대에 따르는 '기회와 위기'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외부 도전에 대한 응전은 대외·대내 양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대외적 대응을 위해서는 미-중 시대를 의식한 국제적인 '시장협력'을 중시하는 체제 메커니즘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내부는 취약하고 외부의 힘은 거세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응집력이 강한 범국가적 정치 리더십이 긴요하다. 폐쇄적인 권위주의와 지나친 정쟁은 응집력을 해치고 돌이킬 수 없는 혼란과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모든 분야에 걸쳐 지속적인 개혁이 관건이다. 지역감정과 보·혁 갈등, 빈부 격차와 노사 갈등도 획기적인 해소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들을 방치한 채, 급변하는 외부 환경의 영향 아래서 국민통합과 경제발전을 향한 장기 비전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자기 개혁에 성과를 보이는 만큼, 새로운 국가 이미지와 경쟁력 있는 국가 브랜드를 창출하고, 이를 통하여 국가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대응과 동시에 남북한 관계 개선 문제도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예상치 못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것이 '북한카드'로 나타나고 있는 측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핵 문제'는 반 테러라는 군사 안보적 측면과 함께 동아시아 경제권의 급변이라는 경제적 측면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서 남북한 관계 개선은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 이해관계의 하부구조인 셈이다. 여기에 '동북아 경제중심' 문제도 뒤얽혀 있는 형국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100년과는 전혀 다른 미-중 시대라는 국제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이것을 위기로 맞을 것인가, 아니면 기회로 활용할 것인가는 운명론에 속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의지와 행동에 달렸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국제 환경이다.
에필로그 - 사스와 흑사병
중국이 '사스'로 큰 몸살을 앓았다. 중국에서는 '비전형 폐렴' 또는 줄여서 '훼이디엔'이라고 한다. 유행성 독감 정도의 치사율이라는데 '괴질'로 취급되면서 한동안 심각한 걱정거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모든 생활의 초점이 경제발전에 모아지고 있던 중국에서 전혀 새로운 유행성 질병이 출현하여 경제에 위협은 물론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사스가 중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감지된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언론의 보도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 정부가 싫어하는 것은 보도하지 않던 관행이 깨져 사스 보도가 연일 대서특필된 것이다. 20세기 초 쑨원이 대중연설 때마다 강조하던 '거리에 침 안 뱉기'도 실현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명절인 노동절이 '위생절'처럼 분위기가 바뀌어버린 것도 사스의 영향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사회 변화들이 정치 개혁의 도화선이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보기도 한다. 오늘날 중국의 변화를 이끄는 힘은 시장경제의 놀라운 발전에서 나오고 있다. 사스의 영향도 시장경제라는 환경 아래서 사회에 주는 충격이 극대화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변화는 중국 안에서만 감도는 것이 아니다. 사스 같은 사건에도 민감하게 변화를 타는 중국 사회의 변모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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