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린 다 같이 내조의 여왕에 빠져있다.
드라마라면 사극이나 겨우 보는 우리 남편조차도 내조의 여왕 할 때만큼은
순순히 채널권을 넘겨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본다.
우리만 좋아하는게 아니라 시청율도 꽤 높은 편이어서 주인공인 천지애(김남주)의
패션도 덩달아 뜨고 그녀의 엽기어록도 인터넷 곳곳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녀의 엽기 어록은 예를들면 이런 거다.
백화점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되지 않자 민망함을 구제하기 위해 한다는 말
"아, 카드 마그네슘(마그네틱)이 손상됐나봐"
자기 남편 회사 사장인 허태준을 백수로 착각하여 위로한다고 하는 말,
"너무 힘들어 하지 말아요 백수 400만 시대라잖아요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죠 인생사 다홍치마(새옹지마)라는데"
"당신 뒷바라지 열심히 하다가 이런 토사구땡(토사구팽)을 당할 줄이야"
"나침반(주사위)은 던져졌는데...."
그녀가 그녀 방식의 단어나 사자성어를 쓸 때마다 잘 몰라서 그런거지만 얼마나 귀엽고 귀여운지...
주위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고 이거거든 하고 조롱 섞인 지적을 당해도 그녀 엽기어록은 절대 기죽는
법이 없이 언제나 독야청청 나홀로 꿋꿋하다.
천지애어록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그녀의 친구이자 천적이자 숙적인 양봉순(이혜영)을 겨냥해서
혼잣말처럼 잘 내밷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거다.
"지지배, 재수 꽃다발이야"
나는 저 말이 너무 좋다. 내가 엄청 싫어하는 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재수 없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모양새가 눈에 거슬릴 때 흔히 하는 말인데 지금은 죽은듯 하지만 한때는 저 말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입버릇처럼 떠돌아다녔다. 빠르게 발음해서 "재섭써..."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비록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닐지라도 내 마음을 후벼파는 비수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재섭써"라는 말을 질색
했다.
그런데 "재수 꽃다발"은 재수 없다는 말과 같음 의미임에도 얼마나 부드럽고 귀엽고 미학적인가
"재수"라는 부정적인 단어에 "꽃다발"을 갖다붙임으로써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달콤하고
아름답게 요리를 한 것이다. 꽃도 그냥 꽃이 아니라 다발꽃이다 재수가 다발로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재수 꽃다발"이란 말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즐겨 쓰게 되었다.
물론 상대방을 향해 직접 공격하지는 못한다. 눈꼴 시린 사람이 나타나면 뒤돌아서서 혼자 중얼거리듯이
저 말을 한다
"너 정말 재수 꽃다발이거든....!!!"
며칠 전에 어느 카페에서 <부블>이라는 닉네임을 보았다 부블,부블,부블 하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부블이 무슨 뜻이냐 물었다 "부드러운 블랙"을 줄여서 부블이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가 감히 블랙에
부드러움을 가미할 생각을 했을까? 재숫때가리 없는 "재수" 에다 그 이쁜 "꽃다발"을 감미한 것만큼이나
재치있고 감칠맛 난다. 사랑스럽고 운치꺼정 있다고 하면 몰매 맞을까?
저런 것들이 내 마음에도 필터처럼 내재해 있으면 참 좋겠다. 나쁜 것 험악한 것 부정적인 것들이 나에게로
왔을 때 그 반대 이미지를 섞어서 따스하고 부드럽게 순화시키고 정제 시킬 수있는 자정 능력이
내 마음 어느 곳에 있다면 정말 멋질텐데. 불가능할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영혼을 살찌우는 일을 그리고
내면을 갈고 닦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 저런 필터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험악해져 가고 있다 사람들도 점점 까칠해지고 차거워지고 우리가 쓰는 말도 점점
거칠게 비수화 되어가고 있다. 하여, 우리를 오그라들게 한다. 말이, 생각이, 행동이 들어오고 나갈때 저런
필터가 절실히 필요하다 /꽃섬
첫댓글 아하, 잼있다.ㅎㅎ 재수 꽃다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