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41
3주간에 걸쳐 정독했던 책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내용으로 650여 페이지에 헤도로토스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우크라이나 역사는 단 한 줄로 요약되었다. 스카타이와 훈족.
일천한 지식으로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기에는 백지에 가까웠다.
우크라이나는 스키타이의 황금 유물들이 출토된 지역으로 기마민족의 발상지, 스키타이는 기원 전 선사시대부터 서에서 동으로 이동을 했다. 그 후 수 세기가 지나고 동쪽에서 이동한 기마 민족의 한 일파인 훈족이 우크라이나 습지를 넘어 당시의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동고트족을 밀어내면서 연쇄적 민족 이동을 야기했다.
우크라이나는 북방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이 발틱해를 넘어 동남진하면서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동남쪽 저지대에 자리잡은 일명 코자크(경비병, 자유인, 약탈자를 의미하는 터키어에서 유래)로 불리는 전사 집단이다.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를 가로지르는 드니프로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민족들이, 정치 세력들이 교차되는 곳으로 그만큼 복잡한 민족 구성과 종교, 문화의 경계가 혼합된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지역이었다.
코자크는 10개 이상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자포리자 코자크는 대표적인 우크라이나 코자크이고, 돈 코자크는 대표적인 러시아 코자크다. 니콜라이 고골의 <타라스 불바>는 자포리자 코자크를 소재로 했고,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이삭 바벨의 <적군 기병대>는 돈 코자크가 주인공이다.
역사에 대반란이라고 알려진 1648년 봄에 시작된 코자크 봉기는 16세기 말 이후 일곱 번째 큰 봉기였다. 폴란드는 이전 여섯 번의 봉기는 진압했지만, 일곱 번째 봉기는 진압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컸다. 이 반란으로 전 지역의 정치지도를 바꾸어 놓았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현대 우크라이나의 기본으로 여기는 코자크 국가를 탄생시켰다. 1654년 1월 8일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주도한 반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주군인 모스크바 공국의 알렉세이 로마노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것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길고도 복잡한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몽골 지배 하에서는 금장 칸국의 지배를 받다가 몽골 제국이 무너지고 폴란드 왕국, 리투아니아 왕국의 영향권 이래있었다. 모스크바 공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드니프로강 좌안 지역이 직접적인 지배를 받는다. 20세기 초 영국인에 의해 철강 산업이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 주에 설립되면서 수많은 러시안 인들이 유입되었다. 철강과 석탄 중심의 공업지대가 돈바스 지역 산업을 활성화 시켰고 이때 후에 소련의 당서기를 지낸 흐루쇼프 부친과 브래즈네프 조부가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1917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광산 기술자로 일하다가 혁명 이후 볼셰비키당에 가담해 눈부신 경력을 쌓았다. 고르바초프도 1934년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조부는 체르니히우 지방에서 이주해온 것이다.
따라서 돈바스 지역의 민족 정체성은 그만큼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결말이 쉽게 점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97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우호조약을 파기했을 뿐만 아니라 1994년 부다페스트 의정서도 파기한 것이다. 이 의정서에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는 대가로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북한의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핵을 포기한 약소국의 미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반추해 볼 여지가 있다.
첫댓글 이 책을 통해 또 하나의 퍼즐을 완성했다.
주류 세계사 관점에서 보면 변방의 잊혀진 세계사였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인다.
힘의 논리에 영토가 강탈 당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도 밝지만은 않다. 우리는 내부에서부터 썩어버렸기 때문이다.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은 과연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