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조선 왕릉 탐방 [서울 헌릉과 인릉] 후기
<2023년 2월 11일>
518년 조선 왕조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우리들의 여정!
두 번째 탐방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자리하고 있는 [서울 헌릉과 인릉],
1422년에 조성된 헌릉과 1857년에 조성된 인릉을 탐방하며
600년(또는 160 여년)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한다.
헌릉(獻陵)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쌍릉이다.
태종(1367~1422, 재위 1400~1418)은 태조와 향처 신의왕후의 다섯째 아들,
조선 개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세자책봉 등 불만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1400년 등극, 재위 18년 동안 국정체재 등 중앙집권과 왕권 강화로
세종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기반을 마련, 1418년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종 4년 56세에 승하, 역시 56세에 2년 먼저 승하한 원경왕후 옆에 자리한다.
원경왕후 민씨(1365~1420)는 조선 개국 후, 남편의 등극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우며
4남 4녀를 출산하는 등 헌신했건만, 외척 견제로 남동생 4명 모두 죽임을 당하고
19명의 후궁을 들이는 등 배신감에 치를 떨었는데 ~~~, 지금은 화해를 했을까.
인릉(仁陵)은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이다.
순조(1790~1834, 재위 1800~1834)는 정조와 *유비 박씨의 아들로
11세에 왕위에 올라 대왕대비 정순왕후(영조의 계비)가 1803년까지 수렴청정,
34년 재위기간 중 천주교 박해, 당파와 외척의 세도정치, 자연재해와 민란, 전염병,
매관매직 등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으며, 조선이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1834년 승하 후 묘호를 순종이라 했으며, 1857년(철종 8) 순조로 추존.
순원왕후 김씨(1789~1857)는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로1802년 왕비로 책봉,
1809년 효명세자(추존 문조)를 낳았으나, 대리청정 중 22세에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1834년 손자 헌종(8세에 등극)과 1849년 양아들 철종(강화도령)의 등극으로 인해
두번의 수렴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63년간 이어가게 한다.
순조 승하 시, 파주 교하에 인릉을 조성하였으나, 1856년 헌릉 서쪽으로 천장하고
1857년 순원왕후가 승하, 순조와 합장하였다. 대부분의 석물들은 예종 1년(1469)
영릉(세종과 소헌왕후)의 천장과 중종 32년(1537) 희릉(장경왕후) 천장 당시
인근에 묻어 두었던 석물들을 다시 파내어 다듬어 사용한 것이다.
* '유비(綏妃) 박씨'는 많은 기록에서 수빈 박씨로 기재되고 있으나, 편안할 수 '綏'는 '기 드림 유, 드리울 타, 덜 훼,
편안할 퇴'로도 읽히며, 순조 23년 한글로 '유빈'이란 기록과 1901년(광무 5) 유빈을 유비로 추봉한 것을 근거로
'유비 박씨'로 기재함이 타당하며, 아직도 많은 기록은 '수빈 박씨' 또는 '수비 박씨'로 기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왕의 어머니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칠궁의 경우궁('유비 박씨' 신주) 안내 표지판에는 '유비 박씨'로 덧붙인 게
떨어지기도 하고, 옛 경우궁 터(안국역 3번출구) 표지판에는 지난 번에도 '수비 박씨'로 표기, 지금은 고쳐졌을까?
우리는 조선 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하면서, 왕릉의 주인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헌릉, 거기엔 태종과 원경왕후의 父母, 형제, 자녀들의 각가지 사연들은 물론 정몽주, 정도전,
함흥차사 ~~~, 태종이 승하한 5월 10일(음력)마다 내리는 太宗雨에, 태종에 의해 두 아들마저 잃고
능마저 천장되면서 '능'에서 '묘'로 그리고 종묘의 신주조차 폐함을 당했다가, 1669년(현종 10년)
다시 복위되어 종묘에 배향되던 날 정릉 일대에 내린 소나기, 260여년 쌓인 신덕왕후의 원통함을
씻어 주는 洗寃之雨까지 음미하며 산책로를 걷는다. 온화한 날씨라도 아직은 겨울인데
길섶의 생강나무는 이미 가지마다 봄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포시 봄소식을 전한다.
왕자의 난으로 인해, 일찍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의 꿈이
제대로 꽃 피었을까,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15세기를 열었던 태종 왕릉에서
19세기를 열었던 순조에게로 향한다. 아까부터 들려오던 대형 스피커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젠 아예 왕릉을 들었다 놨다 한다. 국정원 규탄,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민노총 등의 시위인가 보다. 어제 저녁 뉴스, 북한 건군절 열병식 장면이 크게 다가온다.
어머어마한 신형 무기들과 함께, 3대 세습에 어린 딸의 모습까지도 한꺼번에 ~~~.
즐겁고 소중한 두 번째 조선 왕릉 탐방! 훗날 추억을 위해 사진을 올립니다.
♣ 걷는 재미의 반은 먹는 재미라는데, 통나무집 회장과의 특별 인연으로
별관실 전체를 통으로 마련해준 유남님 자넷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 지난 1월 계명원 지원금과 관련, 국제의료기가 제공한 '침 세트' 배부가 있었습니다.
카페지기님,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참가자 28명(존칭생략) 김호영, 김호영 가족, 꽃게, 날샘, 다금바리, 더열정, 도르곤, 돌고래, 돌고래 가족, 말미잘, 망아지,
망우산, 멍게, 볼보, 석천, 송파, 수현, 수현 동행, 아피오스, 원님, 유남, 입꽃, 자넷, 주경남, 청파, 해바라기, 햇님, 허브향.
만남 : 양재역 9번출구 ~ <버스 이동(741번)> ~ 헌릉과 인릉 재실 ~ 매표소 ~ 헌릉 탐방 ~ 산책로 ~ 오리나무숲 데크길 ~
인릉 탐방 ~ <점심 - 통나무집> ~ <버스 이동(452번)> ~ 양재역 ~ 정도전 산소 터 ~ <헤어짐 : 양재역에서 마무리>
헌릉 <퍼온 사진>
만남의 장소, 양재역 9번출구, 엘타워 앞마당
서울 헌릉과 인릉 재실
서울 헌릉과 인릉 매표소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인릉
인릉과 헌릉 중간 지점 여유공간에서 자기 소개 방식의 반가운 인사 나누기
준비 체조. 가족회원 허브향님의 리딩이 봄향기처럼 부드럽다.
카페지기 아피오스님의 인사, 국제의료기 제공 '침 세트'배부 및 다음 인제 원대리 버스 도보 안내 말씀
헌릉(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쌍릉), 향로만 있고 어로가 따로 없다. 판위도 보이지 않고 ~~~.
*** 오랜 세월 토사 등에 의해 부분 훼손되고 묻혔다는 문화해설사의 얘기가 있긴 하다.
정자각의 월대를 보면 유독 낮긴 하다. 통상 3단 이상인데 ~~~. 토사 등에 의해 묻혔다는 주장을 입증이나 하듯.
정자각 신문을 통해 바라본 능침, 태종과 원경왕후가 나란히 ~~~. 6백여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관계가 원만하겠지.
[소전대] 조선 초기, 즉 태조의 건원릉, 신덕왕후의 정릉과 여기 헌릉에만 소전대이고, 세종 영릉부터는 [예감] 설치.
[태종의 신도비] 1424년(세종 6)에 세운 신도비
*** 신도비는 4대 세종까지만 있고, 문종부터는 비석이다.(비석도 숙종 대에 와서 세우기 시작)
***세종의 신도비는 여주로 천장 시, 옮기지 않고 묻혀 있던 것을 세종대왕 기념관(동대문)으로 옮겼으며 여주 영릉에는 비석이다.
귀부(龜趺)와 비신은 전란 등으로 많이 훼손되었으나, 이수(螭首) 부분의 조각은 아직도 섬세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세종 때 세운 신도비의 훼손으로, 1695년(숙종 21) 다시 세운 태종의 신도비
귀부(龜趺)의 머리는 거북이 아니라 용의 머리인 듯하다.
능침으로 올라가 석물들을 본다. 석물의 숫자는 두 배로, 넓은 능침 구역이 가득하지만, 선정릉에 비해 석물의 크기는 작다.
헌릉 탐방을 마치고, 산책로 산보
생강나무 가지마다 봄소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우리에게 훈훈함을 전한다.
자고로, 휴식은 언제나 꿀맛이다.
헌릉을 떠나 오리나무숲 데크길로 인릉으로 향하는데, 아까부터 시작된 국정원 앞 시위대의 함성과 노래 소리가 대단하다.
*** 고성능 스피커로 이렇게 산천을 뒤집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 전달은 되련만, 오히려 귀가 따가워 구호가 뭔지 들을 수가 없다.
[인릉]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이다.
1857년(철종 8)에 세운 비석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 선포 후, 광무 3년(1899) 숙황제(순원왕후는 숙황후)로 추존하고 광무 4년(1900)에 세운 비석
인릉의 능침 구간, 석물이 단출하다. 합장릉이지만 혼유석도 하나만 설치.
*** 석물의 상당 부분은 인근에 묻혀 있던 영릉과 희릉의 석물을 다시 다듬어 사용.
헌릉과 인릉 매표소를 나서니, 대형 스피커와 시위대 그리고 경찰. '국정원 규탄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 핵심.
횡성한우 전문점, [통나무집] 별관실을 우리 일행이 독차지.
우리 일행과 특별한 인연으로 별관실을 통째로 내어준 통나무집 회장님과 함께 ~~~. 유남님 외, 두루두루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회장님이 고등학교 11년 후배이기도 하여 갑자기 동문 모임 기념 샷 한 컷.
차를 마실 수 있는 정원도 있고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 뒤쪽이 별관실.
정원 안쪽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이렇게 우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
정원에서의 담소, 어느새 행복이 온 정원에 가득하다. 온 세상이 마냥 즐겁다.
왕릉 탐방, 산책 그리고 즐거운 식사에 茶까지 ~~~, 양재역에서 멀지 않은 삼봉 정도전의 산소 터를 찾아 본다. 5백 여m나 될까.
양재고등학교 정문 입구, 말죽거리공원 초입에 서초구청이 세운 정도전 산소 터 표석이 있다.
*** [동국여지지]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무덤을 발굴, 시신이 없는 두개골을 찾았으며,
발굴된 두개골은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 있는 삼봉의 가묘에 매장하였다고 한다.
삼봉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도 나누고 ~~~.
이렇게 두 번째 조선 왕릉 탐방 일정은 양재역에서 마무리. 오늘도 즐거웠습니다. "WE GO TOGETHER!"
감사합니다.
첫댓글 오늘도 완벽한 후기입니다. 덕분에 역사 공부 많이 했습니다. 조선왕릉 탑방이 더욱 흥미진진, 매우 만족입니다. 청파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점심 시간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매우 만족!!!
우와~ 청파님의 해설은 일타 강사님 강의였습니다
또 후기 사진과 설명으로 보충 수업까지 정말 감사합니다.열심히 수업하는 학생이 된 거 같아 좋은 하루였습니다^^
벌써부터 다음 탐방이 기대되네요...
과찬의 말씀에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매우 좋습니다.
귀 기우려 주시는 회원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고맙습니다.
청파님의 일목요연한 설명과 사진들이
관심을 더 집중하게 만드는것같네요~
많은 공부하고 행복한 탐방길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묵묵히 그러나 확실하게 도와주심에 무한 감사드려요.
고맙습니다.
그냥 쓰윽 둘러보면 별 얘깃꺼리가 없을것 같은 왕릉 탐방인데 역사적인 인물 배경 건축물 등등...
너무 상세한 설명에 정말 감사드려요
수고 많으셨어요
함께라서 즐겁고 든든하답니다.
감사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주시는 청파님께 감사합니다.
함께 걷는 길, 언제나 즐겁습니다.
유려한 몸풀기 체조, 도움 주셔서 무진 고맙구요.
덕분에, 행복 가득!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