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공부방
보이차산14
21) 포랑산(布朗山)
위치 : 서쌍판납 맹해현에 있으며 원래 맹해차창 1차 가공 소재지에 속합니다.
보랑산 보랑족향은 맹해현 동남부에 위치합니다. 동경99°56´—100°41´,북위21°28´——22°28´, 동쪽는 경홍시 대맹룡진 접경지역이고 남과 서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경선길이는 70.1키로이며 서북쪽은 "타락진"과 인접하고, 북과 동북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개 :
맹해현 남방 80여km 거리에 위치하고 면적이 1016.34평방미터이며 동서횡으로 대략38키로, 남북 종으로 28키로 정도이고 인구는 평방 킬로미터 당 17명정도입니다. 향정부 주둔지는 해발 1220m로 현청에서 91km 떨어져 있습니다.
전 향의 지형은 산악지대로 경내의 산들은 첩첩이 목화솜을 모아놓은 듯한 골짜기와 골짜기가 교차하는 곳입니다. 평균 해발 1216미터이고 최고점은 북부 "三垛山" 삼타산 해발2082미터로 방원 13평방키로미터되니 고봉이 우뚝 솟아 있은 모습이죠! 보랑산 전경을 볼수 있은 곳입니다. 남부산계열 중에 최고봉입니다. 남부산계열은 삼타산 부터 시작되는데요
미얀마 경계지역인 "了望台山" 료망태산까지 이어집니다. 보랑산 전경을 종횡하고 보랑산을 동서 2곳으로 나눔니다.
보랑산은 전국에서 유일한 보랑족향 입니다. 2000여년전 "濮人" 보인들이 이곳에 정착했고 이 곳을 “濮满山” 보만산이라 불렀습니다. 엣날에 "曼桑、曼新" 만상, 만신은 선위사 관리지역이였고 나머지지역은 맹혼 족장 관리에 속하는 지역이였습니다. 민족의 이름을 따서 후에 布朗山 보랑산 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50년 맹혼구 소속, 1953년 보랑산 보랑족 자치구로 설정, 씨쐉반나 따이족 자치구(주) 소속. 1958년 보랑산 구로 지정 1969년 오일공사 설립, 1973년 보랑공사가 되었습니다.
1984년 구 로 설정, 1987년 보랑산 보랑족향으로 지정.
현 경내의 남부산구역 남과 서는 미얀마 국경 지대로 현부와 91키로 거리로 1016평방미터 면적 인구 1.6만입니다.
보랑족 전체가 불교를 믿습니다. 보랑산은 전국에서 유일한 보랑족 향이죠! 보랑족 역대적으로 "보만" "보인" 등으로 불렸습니다. 해방 후 국가에서 "보만" 이라는 명칭을 보랑족이라 개명하였습니다. 2009년, 전 마을에 7개 촌민 위원회가 생겼고 52개 자연마을, 63개 마을 주민소조로 나뉘며 전체 농촌 가구 수는 4126가구로 총 인구는 19,014명이며, 이 중 가업 인구는 18,619명입니다.
풍습:
보랑족은 소승불교를 보편적으로 믿습니다. 불교사찰는 보랑족의 다양한 문화행사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전통교육을 받고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입니다. 보랑족의 남자는 7~8세에서 112세까지 모두 절에 가서 중이 되어야 하며 부처님의 지도 아래 傣文 따이족 문자와 간단한 불경을 배우고, 체계적으로 교칙과 교리를 배웠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남성에게만 한정되어 있으며, 소수의 총명한 보랑족 여성도 종교행사에서 부처님의 경을 읽고, 강의를 듣고, 부처의 일을 하면서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와 傣文 따이 문자를 배웁니다.
보랑족은 가무에 능합니다. 풍부한 노래와 춤 가무 문화가 있고 전통 음악은 索、笙、宰、拽 ( 색,생,재,예 ) 4 류로 분류합니다. 민간무도은 가무,고무, 무슬무등 몇가지로 나눕니다.
보랑족의 주요축제는 파수정, 개문절, 관문절 등입니다. 이들은 명절 때마다 고정된 행사장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명절을 즐겼습니다.
보랑산 차산 :
보랑산은 저명한 보이차 산지로 산중의 촌 산채는 크게 반장, 노만아, 만신룡 등 몇곳으로 나눕니다. 국내의 학자들은 " 보랑산에 차를 심은 역사를 보면 4000여년 전" 이라고 고증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소모한 첫 차엽들이며 현지 주민들의 조상들이 심어 놓은 것입니다. 전문가의 고증에 따르면 보랑산민 들은 고대 백보민족의 후손으로 오늘의 보랑족, 와족, 덕앙등 민족을 말합니다. 역사상 백보민족은 남쪽으로 이주를 했었은데요 이들이 바로 중남반도에 앙코르와트로 대표되는 당대의 명문을 세웠습니다.
외국으로 멀리 나간 이들의 조상과는 반대로 국내에 남아 있던 보랑족, 덕앙족 등은 민국시대 때까지 밀림에 머물며 이곳 방원 1000여 평방킬로미터의 보랑산에서 해돋이를 멀리하고 일몰을 떠나지 않았다합니다. 그래서 보랑산 산속의 주민들은 운남 원생태의 토착민족이며 진정한 운남인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천년간의 폐색, 천년간의 은둔이 있었기에 보랑산민들은 자연과 잘 통했을지 모릅니다. 이곳에서는 백초를 먹고, 백미를 맛보고, 수많은 자연의 선물을 자신의 잔에 담아내고, 산의 진기함을 강건한 몸의 영양으로 만들고, 그 찻잎을 바로 보랑산에 길들이고 재배하였습니다.
1982년 다원이 도급을 받은 후, 가정 생산과 관리를 실시하여 차잎이 보랑산 농민 경제의 주요 공급원이 되면서, 신다원의 발전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1988~1990년 보랑산의 반장마을에 다원부지 200목를 차례로 개척하여 "무성발육묘 번식(삽입)" 기술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 이후 "양문명" 당서기는 찻잎의 발전을 보랑산민들의 빈곤 탈출을 위한 중요한 조치로 꼽아 그 후 몇 년 동안 생태차 재배는 보랑산 보랑족의 중요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2004년 이후 보랑산의 찻잎 가격이 올라 농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주요 산업이 되었습니다. 2008년에, 전 향에 다원 면적은 28,005목으로, 생산량은 464,900백 킬로그램에 달했고, 찻잎 산업은 천만 위안 이상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보랑산의 차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약을 치지 않는 녹색의 건강한 생태차입니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다우들에 사랑을 받습니다. 많은 보이차 상인들이 보랑산의 우수한 자연과 생태 조건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정수를 받아 다우에게 품격 있고 순수한 보이차를 제공합니다.
첫댓글 운남성 포랑산(보랑산) 기슭의 보랑민족에 대한 이야기.
종교와 풍습등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 많은 중국의 소수민족을 다 알 수야 없겠지만
보랑족은 처음 듣는 민족명이기에 더욱 흥미로웠지요.
보랑족 이야기와 함께
보랑족들이 보랑산에서 채엽한 차로 만든 보이차.
무척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제가 마신 숱한 보이차 중에서
보랑산에서 나온 차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야 보랑산이니 보랑족이니 자체를 몰랐기에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앞으로 보랑산의 보이차를 만나게 된다면
그 신비한 종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기억하면서
마실 것 같아요.
오늘도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