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역사
우리 나라는 기원전부터 저고리와 바지를 착용하여 왔는데 여기에 중국의 영향으로 지배계급은 겉옷으로 중 국의 관복을 받아들여 통일 신라 이후 조선시대까지 이중 구조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그 기본 구조는 우리 나 라 고유의 본성을 벗어난 것이 아니어서 동아시아 민족 중에 독특하게도 우리가 2000여년 동안 변동 없이 바 지, 저고리 형태를 입어왔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전통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알 수 있다.
1. 상대시대
1) 부족국가시대
고조선 시대
복식에 대한 기록으로, 단군 원년에 '나라 사람에게 머리에 개수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 아 이때에 이미 의복이 정제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우리옷의 기본 조형인 소매통이 좁은 저고 리에 바짓가랑이가 좁은 바지를 입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여
흰색을 숭상하는 부여의 백성들은 흰색천으로 된 대수포와 바지를 입고, 신은 가죽이나 풀로 엮은 초 탑을 신 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추울 때는 살쾡이와 여우 등의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삼한
삼한의 복식 생활을 보면 머리가 길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또한 이들 남쪽 부족 국가들도 직조기술이 발달했음을 넓은 폭의 곱고 가는 삼베를 잘 짰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2) 삼국시대
삼국시대에는 특히 의복의 재료인 직물이 크게 발달하여 견직물만 해도 주, 능, 사, 라 등으로 다양하게 생산되 었고, 모직물도 전, 백류, 포 등 여러 가지가 생산되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특색은 국가 체제의 확립 과 더불어 계층화된 신분제도로서 복식도 일부 특권층의 것과 일반 서민의 것에 차등을 둠에 따라 귀족복과 서민복으로 구분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3) 통일 신라 신대
통일 신라 시대의 복식문화는 백제 고구려, 그리고 당의 문화를 많이 수용했다. 그렇지만 통일신라 말기로 가 면서 정치적으로 혼란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복식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백성들의 복식이 사치해져 허식화되고 예절에 어긋나는 경향마저 띠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문란해진 복식 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 834 년에 복식금제령이 내려졌다.
2. 고려시대
고려의 정치적인 대외 관계는 고려의 복식제도에 3기로 변화를 가져왔다. 제 1기는 오대와 송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였고 제 2기는 원의 침입으로 몽고 복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긴 변화였으며 제 3기는 명의 영향권에 들면서 생긴 변화이다. 그러나 이런 대외 영향들은 주로 관복 제도에 변천을 가져왔을 뿐, 일반 복식은 우리 고유의 복식 구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복식생활에서의 두드러진 특징은 문익점에 의한 목면의 전래였다. 이것이 비단이나 명주를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던 서민의 복식 생활에 커다란 전환기 를 마련해 주었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의 복식은 개국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가 성종 5년 [국조오례의]의 편찬으로 의례복이 법제화되었고, [경국대전]의 편찬으로 백관들의 복식제도가 재정비되었다. 한편 서민 복식은 엄격 한 신분 사회제도에 묶여 직물의 종류, 색깔, 문양 등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보다 한층 심한 규제를 받았다고 한다. 조선조 중, 후기의 복식은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외국 문화의 간섭을 배제하는 한편, 독자적인 복식문화 를 형성해 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난 부분이 관복이다. 조선조 말엽의 복식이 단순 화되는 과정도 특히 관복에서 많이 나타난다. 조선조 중엽 이후의 복식은 실용화 내지 평등화 쪽으로 나아갔 다.
4. 개화기
개화기에 이르러 우리의 복식은 중국과 서양, 그리고 우리 나라 고유의 의상이 융합된 복식의 변천을 보여준 다. 의복제도의 개혁에 의해 남자복식은 관복의 변천, 사복의 변천 그리고 양복의 착용에서 복식의 변화를 살 펴볼 수 있으며, 여자복식도 한복의 개량과 양장의 착용에서 볼 수 있다.
남자복식
개화기를 거쳐 일제시대로 오면서 남자의 복식은 완전히 한복과 양복의 이중구조를 이루었다. 이렇듯 남자에 게 있어서 양복이 여자보다 쉽게 일반에게 수용 될 수 있었던 것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활동성이 좋은 양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복은 도시인 중심으로 착용되었고 농촌에서는 대다수가 한복을 입었다.
여자복식
도시인과 일부 해외 유학 지식인을 중심으로 양복이 착용되기는 했으나 남자들만큼 크게 일반화된 상태는 아 니었다. 대신 개화기에 등장한 개량한복 곧 통치마에 긴 저고리가 간편하고 활동적이라는 잇점이 있어 크게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농촌의 부녀자들은 여전히 전통 복식인 저고리와 치마에 마고자, 배자, 두루마기 등을 입었다.
5. 해방이후 우리나라의 한복
8.15해방으로부터 6.25사변 전까지는 일제로부터 받았던 복식제도 통제에 대한 반발로 한복을 많이 입었으 나 6.25사변으로 인하여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직장여성들이 양장하는 경향이 많아지게 되고 그 방면의 관심과 연구가 높아짐에 따라 우리 옷은 불편하고 낡은 것으로 인정되어 발전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고유한복이 명절이나 행사 때에 입는 예복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 부터는 한국의 현대사 또한 군사독재와 혼란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과정의 거듭 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속에서도 나름대로 경제가 성장되고 사회, 문화 등도 꾸준한 발전을 보였다. 복식생활도 이에 따른 조용한 변 천을 거듭하였던 바 간편하고 기능적인 신생활복이 등장하여 착용하였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명절복, 파티 복, 무대복으로 입혀지게 된 한복은 지극히 짧은 저고리에 바닥까지 끌리는 길고 폭넓은 치마에 장식을 많이 한 형태가 유행의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치마는 플레어 스커트처럼 재단하여 넓고 길게 하였으며 치마 속에 페티코트를 입어 더욱 퍼지는 실루엣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실루엣의 한복에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보이려 는 욕구는 70년대 중·후반에 오면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요란하고 화려한 한복은 민족 고유의 전통미를 해친다는 비판을 받게되어 90년대 들어 점차 색과 형태가 전통적인 한복으로의 회기로 나 타나 중간색이 많이 사용하거나 전통적인 색상배합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특히 개량한복의 일상복화는 새로운 형태의 한복 사랑으로 이어져 1996년 12월 4일 첫째 토요일을 「한복 입기의 날」로 문화체육부가 선포하면서 전국에 한복 입기의 바람을 불게 해, 계속해서 한복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
한복이란 간단히 말해서 한국 고유의 옷을 뜻합니다. 짧은 저고리와 긴치마의 여자옷, 저고리와 넓은 바지의 남자옷을 말합니다.
한복은 쭉 뻗은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조화를 이룬 우리 나라의 전통 의상입니다. 여성은 짧은 저고리와 넉넉한 치마로 우아한 멋을 풍겼으며, 남성은 바지 저고리를 기본으로 조끼와 마고자로 멋을 냈습니다. 백의민족답게 기본색은 흰색이었으며 계절에따라, 신분에 따라 입는 예법이나 소재, 색상이 모두 달랐습니다. 결혼과 같은 특별한 예식에는 평민들도 귀족이 입는 화려한 빛깔의 옷과 장신구로 한껏 멋을 냈습니다. 최근 국내에는 한복의 장점에 실용성을 가미한 개량 한복이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