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 김진광 회원님의 모든것.
-아동문예-발행인 박종현님과의 대담을 옮김니다. 시인 평론가 아동문학가의 진지한 삶과 문학관에서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 사료됩니다.-출처; 본화 카페 <솔바람> 김진광 회원 방에서 옮김-
<고향 사랑, 나의 삶과 문학>
약력
*동요와 동시 ,동화, 시 평론등 여러장르에서 활동하고있는 본회 회원
*1980<소년> 1986 <현대시학>추천와료료 등단.학. *한국동시100년에 발자취를 남긴 동시인 100명에 선정정
김진광(아동문학가) *김진광 동시선집.<시루뫼 마실 이야기>외 4권의 동시집. <모시나무>외 2
권의 시집. <한국현대 동시 논평과 해설> 평론집.
1. 나의문학과 삶 요약 *초등,중등 교과서에 작품게재
*신문 신춘문예. 기독아동문학상, 한정 동 아동문학상. 이육사 문학상. *관동문학상.강원문학상. 라이너마리아닐게창작상.월인문학상 상, 한국아동동 문학 창작상. 어효선 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한국동서문학상.등
*현. <월간문학><아동문예><아동문학평론><아동문학> <오늘의 동시문학>
등에서 평론활동
*<시와 소금> 편집위원. 삼척 동해신믄 논설위원.외-이하 생략-
1951년 2월 21일 6.25사변 중에, 강원도 삼척군 시루뫼마을(증산리) 39번지에서 아버지 김규경(金圭卿)과 어머니 김계년(金癸年) 사이에 4남 3녀 중 다섯째로, 우리나라 애국가 첫 구절의 배경인 ‘추암 촛대바위’가 마당에서 보이는 농어촌에서 출생하였다.
남매가 많다보니 학교에 갈 때는 비 오는 날은 우산이 내 차례에 오지 않아 밀가루나 곡식 부대를 눌러 접어서 머리와 등에 대고 허리에 줄을 묶어 다니기도 하고, 변변한 도시락 통이 내 차례에 오지 않기도 했다. 먹고 살 만큼은 땅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돈이 모이면 땅을 더 사려는 생각을 하였고, 맏형은 공업 고를 졸업시켜 취직을, 둘째는 농사를, 셋째인 나는 배를 탔으면 한 것 같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 후 1년간 아버지로부터 농사일과 바다의 고깃배 타는 법을 배웠으며, 그때 옛 시조집 한 권을 외우며 시 습작을 시작한 것이 나중에 시를 짓는 씨앗이 된 것 같다. 당시 우리 마을은 무동력 목선이었고, 멀미가 심해서 배를 타는 고충이 많아 진학을 시켜 달라 졸랐다. 그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대학진학을 허락하지 않아, 사관학교로 갈 준비를 하였지만 시력이 안 좋아서 꿈이 좌절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에게서 배운 걸로 어장배와 머구리배를 타며 밤에 공부를 하여 학비를 마련하고 ‘대학입학예비고사’에 합격 하여 강릉교육대학에 들어가 아르바이트와 자취를 하였다. 그때 학교 문집에 동시 1편(고추) 발표하였다.
태백시(당시 삼척군 황지읍) 화전국민학교에 첫 발령을 정식으로 받아가서 그곳에서 남진원 시인과 최도규 시인, 김완성 시인을 만나서 문학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동시와 시조를 쓰고 있었는데, 아동문학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최도규 시인이 중심이 되어 <감자아동문학동인>을 결성하고(권영상, 김종영, 김진광, 남진원, 마석규, 최도규) 1987년에 여섯 동인지 『해』(한림원)를 발간하였으며, 이후 2집부터는 마석규 시인이 빠진 5인 시집『감자』(2집~5집)를 1991년까지 내었는데, 최도규 시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모임이 해체되었다. 지금도 남진원, 김종영, 권영상 시인과는 가까이 지낸다.
그 곳에서 1979년 『기독교교육』지에 동요 ․ 동시 부문 ‘기독교아동문학상’ 당선(박화목 시인 심사), 1980년 새한신문사『지우문예(誌友文藝)』에서 김요섭 작가와 박홍근, 박화목 시인의 추천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아동문학 잡지로는 가장 오래된 『소년』지에 윤석중, 이원수 선생님께 동시 5편 3회 추천완료를 받게 되었다. 당시 소년지 편집장으로 일하던 김원석 시인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형제처럼 가까이 지낸다. 그는 평화신문과 평화방송 전무이사를 퇴직하고 현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 무렵에 동화를 써서 10여 편 잡지와 동인지 등에 발표하였다. 발표작품은 <탄광 마을의 꽃>(1978년 10월 22일『소년조선일보』), <벙어리 삽사리>(1979년 11월 4일『소년조선일보』), <바보의 웃음>(1980년 6월 1일『강원일보』), <지게꾼 할아버지>(1982년『소년』), <돌아온 아들>(1982년, 한국기독교 아동문학가 작품집『날개타고 올라간 흰둥이』), <해를 문 비둘기>(1984년 동인지『조약돌』), <짱구와 누렁이>(1984년 사보『매일유업』가을호), <지게>(1985년 사보 『효성』3월호) <디딜방아>(1985년 사보『현대』가을호), 동화서사시<녹두장군>( 1985년 동인지『조약돌』) 등이다. 화전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 1978년 6월 18일 정금자(鄭錦子)와 결혼하여 1979년에 김나영(金娜暎, 구 김진숙金眞淑)무남독녀를 낳았다.
1981~1984년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 정동국민학교로 직장을 옮겨서 관동대학 국어교육과에 편입하여 야간에 공부하였다. 그곳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엄창섭 교수의 따뜻한 도움과 시 강의를 들었으며, 강릉에서는 예전부터 함께 활동하던 <조약돌>동인인 김원기 시인, 엄성기 시인, 김교현 시인 등과 <솔바람>동요문학회를 조직하였다.
그때 내 동요가 작곡된 곡이 10여곡 있다. 작곡된 동요는 김승환(솔바람), 안동은(물새), 정인호(이슬, 주님의 손길, 발자국, 정말우습네)등이 작곡가에 의해 작곡이 된 동요이다. 나중에 ‘초록빛 바다’를 작사한 박경종 선생님이 다리를 놓아 이호섭(바다, 추석날) 외에도 김공선(바람개비), 김대현(꽃배), 김은석(해바라기, 교회당에서) 등 유명 작곡가가 곡을 붙여준 작품이 있다.
최근에 다시 <솔바람>동요문학회와 <한국동요음악협회> 등에서 활동하며, KBS 노랫말 선정 5편, 2016 대한민국환경예술축제 환경부장관상(노래경연대회 대상), 불교방송(BBS)에서 주최하는 제 8회 어린이 청소년 찬불동요제에서 <우리 스님 좋아하는 이유>(작곡 김남삼)가 대상을 수상하였다. 근래에 들어 이문주 작곡(자전거 타기, 널뛰기, 담쟁이처럼, 어린이 아리랑, 참 좋은 사이, 닮은 꼴,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의 노래, 삐뚤빼뚤 삐뚤빼뚤, 에밀레종), 오세균 작곡(가곡 ‘바람의 말을 믿고’, 동요 ‘피아노 치는 바다 게’등), 마용일 작곡(아파트 사람들, 난 천방지축인가 봐), 이재석 작곡(참 좋은 사이), 이용수 작곡(가곡‘낙엽을 보며’, 동요‘친구 생각’과) 등이 있다.
1984년에 첫 동시집 『바람개비』를 발간하여 정동진 역 앞 해수욕장에서 천막을 치고 노 젖는 배를 타며 팬티바람으로 출판기념회를 가졌는데, 박경종 선생님, 엄창섭 교수, 김원기 시인, 안효선 동화작가, 김종영 시인 등이 참석했는데 사회는 남진원 시인이 보았다. 이 무렵에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에 편입하여 3년간 야간에 다니며 학사학위(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를 받았다.
1985~1993년 중등으로 직장을 옮겨서 도계중학교와 도계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는데, 이때 일반시 전문잡지로 이름이 알려진『현대시학(現代詩學)』주간인 전봉건 선생님께 사사를 2년간 받았으며, 본 잡지에 1986년 추천을 받았다. 전봉건 선생께 주로 작품을 압축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글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는 작품 수준이 미달하면 이름 있는 원로라고 해도 작품을 게재하지 않았고, 자식 결혼식 때도 시인들에게 거의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동해안 어촌을 배경으로 한 서사시집『시루뫼마실이야기』를 발간하여 <강원아동문학상>(1987년), <한국동시문학상(1988년)>을 수상하였다. 이 시기에 <한정동아동문학상>(1991년), <향토문화상>(1993년)을 받았다.
동시집『물새는 이쁜 발로 시를 쓴다』(1991년)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수시집으로 출간해주었다. 시집『벽은 가슴에 박힌 못을 사랑으로 만든다』(1994년)를 발간하여 <강원문학상시부문>(1995년)을 받았다. 1996년『대관령 시인』동인이 강릉을 중심으로 창립되었는데, 창립동인은 권숙자, 김경미, 김남구, 김수정(초대회장), 김일남, 김진광, 김학주, 남진원, 돈연(스님이며 첼리스트 도완녀 남편), 송준영(잡지사 발행인), 안문효, 이복재, 함영덕, 홍유선 등이며 2001년도까지 6권이 나왔다.
삼척여고에 근무하면서 야간에 강릉대학 교육대학원에 나가 국어교육학과 과정을 마쳤다. 석사학위 논문은 최병우 교수의 지도로『박목월 동시의 형태적 특성에 관한 연구』(1999년) 논문집을 발간하였다. 장호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시집『참매미는 참말만 한다』(1999년)를 발간하였다.
2001년 3월~2002년 8월까지 함백중고등학교 교감으로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는 동안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의 ‘아라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진용선 시인이랑 <아라리문학회>을 함께 하였다. 2002년 9월부터~2006년 2월까지 삼척여자고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이 기간에 <관동문학상본상>(시집『모시나비』로 2004년 수상), <삼척시민상>(2005년), <강원교육상>(2006년)을 받았다. 『탄전문학』(정연수 탄전문학연구소장 발간)3호(1994년)부터 13호(2004년)년까지 탄광촌을 소재로 한 지역성(locality)작품을 발표하여<월인문학상> (2007년)을 받은 바 있다.
삼척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면서(2007년 9월~2010년 2월) 옛 삼척공고와 5년제 삼척전문학교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강원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학교 정원, 새 교사 건물, 체육관, 헬스장 및 골프연습장, 기숙사를 지었으며, 핸드볼 전국체전 2회 우승, 한중일 핸드볼대회 우승을 이루고 이때 배출된 국가대표가 이은비 외 2명이다.
하장중고등학교 교장으로 3년간 근무하면서 하장중고등학생, 교사, 학부모, 동문회, 지역민과 두타문문학과 동해문인과 함께하는 시낭송회를 3회 개최하였다. 그리고 사물놀이패를 활성화하여 강릉 단오제를 비롯한 전국대회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우리나라 농어촌 학교를 대표하여 러시아에서 교류 공연을 하는 등 학교와 지역과 나라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하장중고등학교와 하장초를 통폐합(가곡지역 가곡중고와 가곡초 퉁폐합)하려는 강원도교육청과 삼척시청에 교장이 앞장서서 동문회(김복수 회장)와 손잡고 투쟁하여 통폐합하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다.
이 무렵 문학상은 <이육사문학상>(2008년), <라이너마리아릴케문학상>(2009년)을 수상하였으며, 동시집『아이, 깜짝이야!』(2010년)를 발간하여 <제9회 한국아동문학창작상>과 <제3회 어효선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평론은 한국문인협회 월간지『月刊文學』(2002년, 2008년, 2013년 동시월평), 『아동문예』(1989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도 동시월평), 『아동문학』(서평), 『兒童文學評論』(1995년도 계평), 『한국동시문학』(2003년도 서평) 등 그 외 많은 시집의 서평을 썼다. 그동안 쓴 아동문학 평론과 성인문학 평론, 각종 세미나 강연 등의 원고를 모아 700페이지 정도의 두툼한 『한국 현대동시의 논평과 해설』(2016, 아침마중)을 펴냈다. 평론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동문예 발행인 겸 주간인 박종현 선생님 때문이다. 중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고 1989년 ‘월평란’을 쓰게 한 것이 시작이었다.
시비(詩碑)는 본인이 세운 것이 아니고 지역이나 단체에서 필요에 의해 세워진 것임을 밝힌다. 삼척고등학교 동문회관기념비 <봉황산에 올라>(모교 삼척고등학교정문), <도계전정고교가비작사>(학교), <산업전사안녕기념비시>(도계기차역전), <도계초교 교훈탑시>(학교), 삼척 도계<C.C골프장기념비시>(도계C.C골프장)가 있다. 충남 보령시 주산면 삼곡리 26번지에 김진광의 시비 ‘아내의 구두를 닦으며’가 <샘실 마을 시와 숲길 100인문학비촌>에 건립되었다.
촛대바위가 보이는 작가가 태어난 마을(시루뫼마실)에 삼국유사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나오는 신라시대 수로부인과 관련된 ‘임해정’ 복원과 ‘해가사비’ 건립, 드레곤볼 건립을 추진하였으며, 그곳의 임해정에 김진광의 시<임해정>이 판각으로 걸려 있으며, 그 시가 고향 마을과 촛대바위가 있는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의 철길 터널 벽에 새겨져 그림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 염창역에 시 <버섯>이 게시 되었고, 중학교 2-1 국어교과서(금성출판사)에 시 <담쟁이넝쿨>, 구 초등학교 6-2 국어교과서에 <그네>가 실렸다.
사회활동으로 우리나라 최장수 시낭송회의 하나인 두타시낭송회(2018년 3월 현재 341회)회장, 삼척문인협회 회장, 강원문인협회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대외협력위원,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 2회, 총동문회 자문위원, 총동문회부회장, 봉황재단 이사, 동양장학회 이사, 삼척시청 인사위원, 오십천수석회 고문, 포스크파워삼척화력발전 공동대책위원회 자문 등을 역임 또는 현재 맡아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에 중등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여 『시와 소금』편집위원, 『시선』자문위원, <삼척동해신문>논설위원 일과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글을 쓰다가 심심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술과 차도 마시고, 지역과 전국의 아는 후배들의 시도 지도하고, 두타시낭송회에서 시를 낭송하고, 30여년 해온 수석 탐석과 감상을 한다. 한국시집박물관에 보물급 시자석(시子石)을 기증하여 여러 사람들이 감상하도록 하였다.
2. 나의 문학관
-다양한 삶의 일부로서의 문학
지금까지 글 같지도 않는 어쭙잖은 시를 써서 문단에 등단한지도 40여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이제 문학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내가 보는 문학이란 ‘다양한 삶의 일부’인 것이다.
내가 처음 글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배도 타고 농사도 지으면서 1년 간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돕고 있을 때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우연히 우리나라 고시조 집을 한 권 얻게 되어 그 걸 송두리째 외웠던 것이 나의 문학에 최초의 불씨가 된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배를 타고 농사를 짓는 일이 힘들어서 느낀 일을 일기나 시 형식을 빌어서 썼다.
누가 ‘당신의 문학관이 무엇이냐?’ 하고 물어오면 전처럼 그냥 웃기만 할 나이는 지난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쓴 글을 살펴보면 순수시도 있고 사회 참여시도 있다. 내 생활이나 생각 또한 내 글과 같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다가 저건 아니다, 누군가 얘기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내가 나서서 얘기한다. 내 일 만 관련될 때는 참는 편이지만, 여러 사람의 이익이나 생활과 관련 될 때는 내가 좀 미움이나 손해를 보더라도 할 말을 잘 참지 못하는 성미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동심의 글도 쓰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노래하고, 로맨스도 스케치하고, 삶의 어둠도 표현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글도 쓴다. 즉, 내가 보는 ‘문학이란 다양한 삶의 일부’인 것이다.
세상은 다양한 것이다. 자연인 하늘, 바다, 강, 산, 들판이 어우러져 이 세상은 더 아름다운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꽃만 보더라도 제 각각의 모양과 향기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 세상에 빨간 색의 꽃만 핀다면 어떨까?
요즘은 세계화․정보화 시대인 한편 다양화․개성화 시대인 것이다. 모더니티의 특색이 진보, 보편성, 규칙성에 근거한 것이라면 포스트모더니티는 차이성, 특정성, 불규칙성 등으로 볼 수 있다. 즉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것을 수 없이 대량으로 찍어내던 산업시대와는 사뭇 달라졌다. 아파트조차 그 내부를 수요자 요구에 맞추어 준다고 한다. 요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여자들의 옷차림도 옛날처럼 한 가지로 유행하기보다는 자기 몸에 어울리게 다양하게 개성화 되었다. 문학 또한 한 방향, 한 가지 색깔, 같은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다양하게 세계를 조명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구촌이 교통, 통신, 방송, 그리고 최근에는 컴퓨터․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급격한 발달로 한 지붕 아래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여러 나라와 지역의 정치, 종교, 문화, 인종, 교육을 많이 접하게 된다. 선진국이라서, 백인이라서, 잘사는 나라라서, 여당이라서 자신들을 우월하게 생각하며 상대를 낮춰보아서는 안 된다. 종교나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상대를 인정해주고, 소통하고,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다양한 동물들이, 사람들이, 종교들이, 새들이, 나무들이, 꽃들이, 열매들이, 생각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문학도 현실을 뿌리로 한 다양한 생각이 꽃피고 열매가 맺어질 때 더 풍성하고 아름다우리라. 나는 한 가지 만의 이즘을 반대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사물 현상이나 체험에서 느낀 점을 빨래하듯 많이 두들기거나 쥐어짜지 않고 쉬운 언어로 솔직하게 바로 쓰는 편이다. 그리고 생각날 때나 글을 발표할 때 다시 한 번 시의 의미를 생각하며 시의 구성과 표현의 옷을 입히며 다듬는다. 평론을 쓰기위해 많은 작품을 읽으며 내 시를 돌아보는 기회를 삼으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내 삶 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문학 활동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 문학은 내 몸 속에 버릇이나 습관이나 취미를 넘어서 관습이나 종교나 철학 수준에 와 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이제와 그 짓거리를 버리기는 좀 고약한 병에 든 것은 확실하다.
요즘은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람의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이다. 문학은 작가의 정신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분신이다. 내가 일구고 씨 뿌리고 가꾸는 마음 밭의 문학이 종교처럼 나를 또한 가꾸고 삶이 힘들어 쓰러지면 가만히 다가와서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고 손에 호미를 쥐어준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내가 가꾸는 양식들이 공해가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일상적인 삶(특히 체험한 삶)을 시로 승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시와 삶이 합일하지 못하는데 괴로움이 더 크다. 하지만 좋은 시 창작을 위하여 신들린 무당이 굿판에서 굿을 하듯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글을 쓸 것이다. 여러 장르의 글을 두루 쓰지만, 특히 동시를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3. 김진광 동시집, 시집 작품 평과 얽힌 이야기
(1) 첫 동시집 바람개비와 서사동시집 시루뫼마실 이야기
•첫 동시집 바람개비 발간에 얽힌 이야기와 작품 평
1984년 7월 10일에 첫 동시집 바람개비(아동문예)를 펴내고 출판기념회는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 역 앞바다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박경종, 김원기, 엄창섭, 최도규, 김종영, 남진원, 조규홍, 안효선 외 학부모들이 참석하였고 해수욕복 차림으로 남진원 시인이 사회를 보았다.
시집이 처음이라서 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시제목의 글씨는 당시 근무하고 있던 정동초등학교 조규홍 교장, 축하 서예글씨는 ‘초록빛 바다’의 작가 박경종 선생님, 머리말 겸 시해설은 ‘보리밭‘과 ’과수원길‘로 알려진 박화목 시인님, 각부별 동시평을 아동문예 발행인 박종현, 평화방송전무이사인 김원석, 김원기 시인, 엄창섭 관동대학교 교수가 써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원고료로 감사 표시도 못 한 것이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
박화목 시인은 ‘머리말’에서 <동화적인 시세계>란 제목으로 세 가지 얘기했다. 첫째, 시작태도에서 자연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엿보게 하며, 남다른 감각 체험이 형상화 된 것을 볼 수 있다. 둘째, 이 시인의 특색은 향토와의 연계성이다. 싯귀마다 향토의 숨결이 깃들어 있고, 향토미를 빚어내려한 노력을 역력히 엿보게 한다. 셋째, 이 시인의 시에서 내가 생각해 본 점은 시의 내용 속에 도입하려고 시도한 동화적인 세계다.
아동문예 박종현 발행인은 제1부 시해설에서 <자연 서정의 향토시>란 제목으로 동시 해설의 어려운 점을 얘기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 일반적인 독자들의 이해 부족, 동시는 어린이들도 읽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여진 시인데, 쉽게 씌여진 시를 다시 더 이해가 쉽도록 해설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김진광 시인의 동시에는 향토적인 주제와 서정이 넘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이에 해당하는 좋은 시로 윷놀이, 일벌, 집터, 감나무골 아이들을 평하였다.
당시 소년지 편집장이었던 김원석 시인이 제2부 시해설 <삶과 아름다움의 조화>란 제목으로 작품평을 하였다. 도시의 물질문명에 닳고 닳은 뭍사람의 삶이 아니라, 바다에 투망하고, 바다와 싸우며,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우직하고 순박한 삶, 어떻게 생각하면 인간의 원초적인 삶을 바다의 아름다움에 비추어 그리고 있다. 바다와 싸우되 투쟁적이 아닌 서로 순응하는 모습을 작품으로 형상화 하여 보여 주고 있다. 예시 작품으로 동신제, 뱃사람이 되려면, 아내, 뱃사람 가슴에서 등의 작품을 평하였다.
당시 강릉교육청장학사를 하며, 동요 단체 <솔바람>을 엄성기, 김진광, 김교현 등과 창립하여 앞에서 이끌어가던 김원기 시인이 제3부 해설을 써주었다. 동시 제목을 ‘바람개비’로 하기위해 어제 동시를 급히 썼다고 했더니, 시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나무랐다. 김진광, 그는 산문 같은 사람이다. 아니면 잡초 같은 사람이다. 그를 만날 때 마다 그런 인상을 받는다. 그의 인간성에서 받게 되는 인상처럼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잡초밭에서 있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그의 시는 수수하고 강하다. 그리고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것이 그의 시의 독특함이요, 그의 인간성의 매력이다. 예시 작품으로 어머니․2, 어머니․3, 완행열차, 당고마기의 노래, 고향 등의 작품을 평하였다.
초등학교 교직에 근무하며 관동대 야간 국어교육과에 다닐 때 강의를 해주던 엄창섭 교수가 제4부 해설을 써주었다. 가슴과 손이 따뜻한 김 시인은 일상적인 사물을 잘 정제된 시어로 빚어내는 언어의 마술사다. 그러나 가장 미더운 것은 그가 신의 목소리를 지닌 위대한 시인으로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풀밭’ 예시 생략)만상이 잠든 깊은 밤에도 시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의 영혼이 항시 깨어있기 때문이며, 항시 마음이 순박하여 계산이 어두운 그의 곁에 있으면 향훈이 있기 때문이다. 첫 시집 작품을 해설에서 보았듯이 필자는 향토서정시와 바다체험을 통한 산문적인 시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서사동시집 시루뫼마실 이야기에 얽힌 이야기와 작품 평
우리 6남매와 4촌들도 모두 고향을 떠나 살았다. 우리 큰형이, “너는 어리숙해 서울 같은 도시에 살 그런 생활 태도로 적합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지키면서 자질구래한 집안일과 조상의 산소 돌보기, 지역의 일, 고향과 지역 관련 작품을 쓰며 살았다. 형제들 중에 누군가 고향 집안 일을 맡아해야 하기에 좀 어리숙한 나를 설득한 것이리라. 지금와서 나이들어 생각하니, 그 결과가 나에게도 그리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고향을 지키고, 고향의 글을 쓰며(지역성, locality), 고향을 사랑했으므로.
서사동시집 시루뫼마실 이야기도 60호 남짓한 농어촌 동해안의 사라지고 있는
고향 마을 이야기를 쓴 작품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지막하게 살아가는 어부들의 원초적인 인간 냄새, 끈질긴 생명력, 노동의 현장, 가난과 죽음 전설과 인정을 산문서사시로 표현하려고 했던 시도이다. 이것 또한 돈으로 계산이 어려운 고향 사랑이 아닐까?
1986년도 초가을쯤인가, 대학 후배인 권영상 시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의 연작 동시 발표가 끝났는데, 다음에는 강원도 삼척에 사는 김진광 시인께 지면을 줄까(?)하던데 연작 계획이 있으면 연락해 보라는 것이었다.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어촌(동해안 고향 마을 이야기를 중심으로)에 대해 연작시를 쓰려고 적어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견본용 원고를 연작 동시로 대충 정리하여 박종현 발행인을 만났고, 돌아오는 길에 그 원고를 가지고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던 유경환 선생님을 만났다. 당시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라 조선일보 입구에 군인이 총을 들고 있었던 것 같다. 신문사에 들어가기 전에 나의 신분 확인, 유경환 선생께 아동문학가 김진광을 아는지 확인 등을 통해 만났다. 유경환 선생님은 초면인 나를 위해, 논설을 쓰시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주었다. 대충 원고를 넘겨보고는 민속에 가까운 글이니, 독자인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방향으로 퇴고하여 발표하라 일러주며, 아동문학 책을 한 보따리 챙겨주었다. 바다를 소재로 한 서사동시(1986년 11월호 ~ 1987년 10월호)를 본지에 85편을 발표하고, 책 한권이 되어 『시루뫼마실 이야기』(1988년, 아동문예에서 원고료로 시집 발간비를 일부 보조)를 발간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박종현 발행인이나 고인이 된 유경환 선생님의 아동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맙다. 이 작품집으로 제 10회 한국동시문학상을 안겨주어 감사하다.
작품해설 <‘시루뫼 마실 이야기’의 시사적(詩史的) 의미(동시로 해양문학의 지평을 열다)을 쓴 엄창섭 평론가의 해설 끝부분을 옮긴다. “우리 시사에 바다를 소재로 하여 산문서사시의 지평을 열어 보인 김진광 시인의 동시는 정제되고도 섬세한 시적 처리를 거친 것임을 파악할 수 있다. 그의 시편에는 형사에 응축된 칙칙함이 전혀 없다. 맑고 투명하고 건강한 시심을 잘 음미해 보면, 단아한 품격도 확인 품격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그토록 그가 못내 사랑해 잊지 못한 『시루뫼마실 이야기』는 자신의 시적 영토를 구축한 새로운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2)시집 ‘모시나비’ 작품 해설/ 남진원 시인
―시적(詩的) 진리의 신화적(神話的) 선택
김진광 시인이 여섯 번 째의 시집을 묶어냈다. 이전의 시집 중에는 동시집이 세 권 성인시집이 두 권이었다. 이번에 발간하는 시집은 성인시가 수록되었기 때문에 그의 시적 면모를 알아보기 위하여 전에 펴낸 두 권의 시집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김 시인은 아동문학을 하면서 일반시도 꾸준히 써서 전봉건 선생으로부터 현대시학에 추천을 받은 작가이다. 나와의 인연은 70년대 중반 태백시 화전국민학교에서 근무할 때부터이다. 그곳에서 함께 문학의 꿈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 문단 30년을 바라보는 중견문인이 되었고 6권의 시집을 내기에 이르렀다. 내가 여섯 번째 시집의 글꼬리를 달게 되었으니 이 또한 문우로써 큰 광영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낸 첫 성인 시집 「벽은 가슴에 박힌 못을 사랑으로 만든다」에는 77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첫 시집에 드러나 있는 이미지는 버림, 허물어지기, 부끄러움, 죄, 탐욕, 아픔, 빚, 죽음 등이다. 그에게 있어 시는 거울이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부끄러워하며 조용하게 삶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었다. 시편마다 삶의 정서가 진하게 묻어나고 있다.
잘 죽는다는 건/ 어렵습니다/ <죽다> 뜻을 가진 많은 우리말 중에/ 하나를 잘 골라/ 정말 잘 죽는다는 건/ 살기보다 더더욱 어렵습니다
제목이 <잘 죽는다는 건>에 나오는 시의 끝 연이다. 잘 죽는다는 건 살기보다 더 어렵다고 토로한다. 현실적 삶에서 진정한 살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삶에 대해 관조적 자세를 지켜내는 그의 시편들은 자아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문제를 매우 친근하게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두 번 째 낸 성인시집 <참 매미는 참말만 한다> 시집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에 대해 화해하고자 한다. 현실에 대한 삶의 무게가 짙어질수록 그와 맞닿아 있는 죽음의 문제는 항상 삶의 화두이다. 죽음에 대해 진지해진다는 것은 삶에 대한 진정성을 갖는 수단이기도하다. 그의 시는 고뇌의 늪에서 길어 올린다. 따라서 아픔도 슬픔도 치유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눈은 빛나고 있다. 그 이어짐의 길 위에서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환상의 소리와 사물에 눈을 뜬다.
오전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쯤/ 새벽 예배를 떠난 사람들도 있는데/ 아직 누워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루 중 가장 깨끗한 뱃속을/ 수천 수만의 벌레 울음이 비질을 한다 -중략- 감나무의 참매미 한 마리/ 조그만 온 몸으로 복음을 전한다/ 아직 누워있는 사람들 위로/ 사정없이 자동차가 질주한다/ 매미가 복음을 전하는 사이에도/ 아직 여물지 못한 감 몇 개가/ 이 세상으로 뚝 하고 떨어진다.
― 두 번째 시집 「참매미․1」에서
김진광 시인의 작품 속에서 ‘매미’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전도사이다. 그 소리는 생명의 푸른 소리이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깨우는 외침의 소리이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서 관심과 안타까움의 대상은 여물지 못한 감 몇 개가 세상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에 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것은 곧 거울을 들여다보는 내 삶의 일부 또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말한다. ‘정말 아무 일 없을까?’ ‘아름답다 말하겠지’ ‘사람도 지면서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고 그는 죽음의 저편을 향해 제스처를 한다.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그의 여섯 번 째 시집 <모시나비>를 읽으면 그 작품 속에서 삶의 고통, 아니 죽음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환상이다.
모시옷 곱게 차려 입고 나들이 나오셨나요
어머님, 오늘 저승은 한가한가요
살아생전 그 흔한 관광 한번 못 가 보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관광 나오셨네요.
― 「모시나비」전문
하나의 시적 진리를 신화적 물음에 의해 환상으로 선택하였다. 그것은 영혼의 불꽃을 가져와 새로운 불꽃으로 피어오른다. 그 불꽃은 발견에서 얻어지는 순수한 광채이다. 그가 그려내는 손길에서 하나의 뚜렷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하는 길은 환상적 꿈꾸기를 통해서 이루어낸다.
나비를 돌아가신 어머니의 화신으로 여기는 것은 삶의 위안이며 자기 영혼에 대한 위로이다. 자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죽음의 세계에 대해 지적 탐색을 갖는 통로가 되고 이러한 시적 작업은 앞으로도 상당히 진행될 현재 그리고 미래형이다.
그는 반성적 거울을 통해 저 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부끄러움을 지나서야 만나지는 사물에 대한 따뜻함과 사랑을 줍는다. 그리고 다음 시처럼 끝없는 자기 정화의 고행 길에 들어서며 기뻐한다.
유유히 흐르기만 하네/ 저기 강물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져도//
강이 내려다보이는/ 강 언덕에 집을 짓고/ 한 십년 말없이/ 강을 바라보고 싶네//
(중략)저기 보게나/ 강물에 몸담고 서 있는/ 강 언덕의 미루나무/ 밤낮 없이 몸을 씻네. ― 「한 십년 강물을 바라보고 싶네」일부
김진광 시인의 고향은 삼척시 증산리라는 바닷가 마을이다. 그 마을 이름을 시루뫼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어려서부터 바닷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바다는 그에게 있어 에너지의 원천이다. 2002년 가을 삼척문인협회지 「삼척문단」에 <바다와 나>란 수필을 발표하였다.(내용 소개 생략) 김진광 시인이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기에 바다는 시인의 문학적 성장에 매우 중요한 인자因子가 되었다. 그는 바다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고 바다에 몰입할 수 있었고 바다는 끝이면서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략)
함백항 입구에 갔다./ 갱구는 막혀 있고/망아지만 한 개 몇 마리/ 컹컹 짖고 있다./ 굴속에서 갱이 무너져/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 영혼이/ 아주 막힌 갱구를 향하여/ 사람들이 사는 쪽으로/컹컹 짖고 있었다./ 개들이 밟고 선 폐석 더미가/ 먼 - 지질 시대/ 공룡의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개의 꼬리 뒤로 감추며/ 죄에 쫓기듯 돌아섰다./ 다시 푸른 하늘을 향해/컹컹 개들이 짖고 있었다.
― 「함백항 폐광 입구에서」전문
돌아가신 어머니가 모시나비로 환생하여 이승에 소풍 나온 것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컹컹 짖는 개의 울음소리는 이승을 향해 짖는 분노의 음성이다. 갱 속에 있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개 몇 마리의 울음소리로 쏘아 보낼 때 죄에 쫓기듯 돌아서는 시적 화자는 이 시대의 아름답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개의 울음소리는 먼 지질시대 공룡의 소리로 환치하며 원초적 환생을 통해 비윤리적이고 비 진실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있다.(중략)
시인은 많아도 시가 드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는 시인이 많은 시대에 시인의 얼굴과 소리가 아닌 언어로 그의 몸짓을 대신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모습 들여다보기 ∙아픔을 치유하는 환상의 소리와 사물에 눈뜨기 ∙철저한 자기반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정화 ∙세상을 향해 보내는 그리움의 눈빛 -이런 모습들은 그가 언어로 빚어낸 환상적 꿈꾸기의 색깔들이다. 꾸준히 진행해 온 일련의 작업 속에서 특기할 점은 지적 순환의 긍정적 의미와 배반적 의미를 축으로 하여 시적 진리를 신화적 물음에 의해 환상으로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적 순환의 긍정적 의미를 서정적 자아로 보여주었고 배반적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들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그의 시가 지성의 새로운 경이성을 얻게 되는 가능성을 천진난만하게 기대해 봐도 되리라는 데 의문을 갖지 않는다.
4. 앞에서 못 다한 이야기와 마무리
박종현 『아동문예』 발행인이 작년에 ‘삶과 문학’ 청탁을 하였다. 아직 작품을 쓸 날이 많은데 하는 생각에 조금만 더 있으면 칠순인데, 그 때 청탁해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박옥주 편집국장이 청탁을 해서, 강원도에 선배인 박유석 시인을 소개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필자가 연락하여도 소식 두절이었다. 그 때 이미 감기로 폐렴이 되어 사경을 헤맸다고 한다. 다음으로 임교순 선배를 소개했는데, 그의 대표동요인 교과서에도 오래 실린 ‘방울꽃’ 작곡과 오래된 귀한 사진을 넣어 잘 만들어져서 다행이다. 다음엔 꼼짝없이 필자 순서라서 기존의 『삼척문학통사』에 실었던 자료와 시해설 등으로 작성했더니, 아동문학과 일반시와 평론과 동요가 뒤섞여서 두서가 없는 글이 된 것 같다.
앞에서 이야기가 안 된 동시집으로는 『아이, 깜짝이야!』(2010, 아동문학세상)가 있다. 이 동시집에 실린 동시로 어효선 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창작상을 받았다. 엄기원 선배께서 작품해설을 써주었다.
이 동시집 한 권을 읽고, 지은이가 고등학교 교장이라면 아마도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재미있는 동시를 쓰다니?’ 하고 말이다. 김진광 시인은 문학인 이전에 존경 받는 교육자이며, 법이 없을 만큼 착하게, 아름답게, 그리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박한 서민의 모습과 마음이 그대로 배어있다. 또한 작품에 조금도 덧칠하지 않은 자연의 정직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후략)
동시집 『김진광 동시선』(2015, 지식을 만드는 지식)은 한국동시 100년의 중언으로 1908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아동문학사를 빛낸 시인 111명의 대표작을 가려 뽑은 시집 중의 한 권이다. 제1부에는 ‘너희들, 김치 한번 먹어 봐!’ 외 28편의 동시집에 게재되지 않은 시가 실렸고, 제4부의 맨 뒤에는 ‘장편 서사동화시’ 「녹두장군」을 실었다. 이 작품을 발표 당시는 군부 독재 정치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기원하며,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의 일대기를 소재로 하여 쓴 서사동시이다.
평론집은 맨 앞부분 ‘문학과 삶 요약’에서 한 말로 대신한다. 최근에 낸 시집『시가 쌀이 되던 날』(2017, 시와 소금)은 강원문화재단의 지원금으로 발간한 6부와 별책 부록 시집 속의 서사시집 『민족의 나침반 이승휴』이 담긴 220페이지에 달하는 의미 있는 시집이다. 우리 지역 출신 성심여대 인문 대학장을 지낸 선배 시인께서 책을 받아보고, “이 시집이 김진광 시인의 종합이고, 결실이다.”고 했다. 신현득 선배는 “시인으로 교육자로 민족운동가로 너넉히 살아오신 자취를 시 편장(篇章)에서 읽었다.”고 했는데, 이 뜻은 이승휴 서사시집을 읽고 한 말이다.
필자는 별책 부록 시집 속의 서사시집 『민족의 나침반 이승휴』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동안 이승휴는 고려후기의 탁월한 사상가이며, 문장가이며, 올곧은 정치가이며, 탁월한 외교관이었다. 그는 서사시 『제왕운기』를 지어 삼국유사와 함께 우리가 단군의 후손인 단일민족임을 밝히고, 발해를 최초로 우리 역사에 포함시켜서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의 야욕을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고려 후기의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입으로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이었을 때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었다.
이 작품은 삼척문화원에서 1995년에 발간한 『실직문화』 제6집에 실렸던 글을, 원고지에 쓴 옛 작품을 다시 옮기는 과정에서, 관련 여러 책을 보며 공부를 더하여 대거 보완한 작품이다.
이승휴의 생애, 문집, 정치 활동 등에 관한 서적과 논문은 많이 발표되고 있으나, 동안거사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2016년에 발간한 김익하 장편소설 『소설 이승휴』 달랑 하나 뿐이다. 여기에 이승휴를 소재로 한 장편 서사시가 하나 더 보태진다면, 소설과 서사시 양대 문학 장르로 동안거사를 문학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금상첨화가 아닐까? 하는 좁은 생각에서 공부를 더하여 『민족의 나침반 이승휴』을 다시 써 보았다. 서사시지만 일어난 연대를 밝히고, 아래 에 각주를 달아서, 운문을 통하여 이승휴의 정신은 물론 생애와 역사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보았다.
이 작품을 쓰기위하여 다시 동안 이승휴에 관한 논단, 논문, 관련 여러 서적을 읽으며 공부를 많이 한 기회가 되어 탈고 후 기뻤다.
2017년 봄 이승휴 유허지 천은사에서
필자는 우리 맏형의 말처럼 좀 어수룩하고 계산이 어두워 도시에 살 놈이 못 된다 하여 고향에 남아 살았다. 그 동안 집안 일, 지역 일, 향토 문학과 문화 일, 2세 교육, 고향과 지역을 소재로 한 작품 쓰기, 삼국유사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로부인 관련 ‘헌화가’와 ‘해가사’ 터 복원 일을 앞장서 추진, 우리 마을 바다를 소재로 한 서사동시집『시루뫼마실이야기』,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서사시집 『민족의 나침반 이승휴』발간이다. 이 일은 이승휴가 살았던 삼척지역 뿐만 아니라, 고려말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 민족 정체성을 일깨운 올곧은 정치가요, 외교관의 얼을 후세에 문학으로 알리는 일이다. 얼마 전에는 삼척 디지털 백과사전 교육 분야를 맡아 온 힘을 다해 정리를 하고 큰 박수를 받았다. 이제 지역에 문학 창작으로 할 일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남은 여생은 욕심은 줄이고 배려하고 배풀며, 후배들 문학지도, 취미생활과 여행,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야겠다. 아동문학를 하는 선배들 중에는 고인이 되신 박경종 선생님, 늘 격려해주시고 따뜻하게 배려해주시는 김종상, 신현득, 문삼석, 엄기원, 김완기, 임교순, 박종현, 김원석 선배님들처럼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첫댓글 훌륭한 회원과 같이 하고있음은 우리 <솔바람> 회원의 자랑이며 롤 모델입니다. 많은 지도 바람니다.
멋지십니다
좀 쑥스럽네요. 부지런하고 배려가 깊으신 향호 선배님, 이완 시인과 조약돌, 솔바람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진광 선생님의 삶과 문학 잘 읽었습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