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35, 천국잔치
1960년대 말, 수 년 만에 부산지방에 억수같은 눈이 내린 날이다. 교통편도 거의 두절되다시피 해서 겨우 시내버스만 간간이 다니는 정도였다. 어찌어찌 어렵게 '초량12교회'에서 매주 수요일(서울 '수원정'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에 열리는 천국잔치에 참여했다.
세칭 동방교의 노광공교주가 지병인 당뇨합병증으로 1967년 6월19일 세상을 하직한 후 신도들의 이탈방지와 세상의 끝이 임박했다는 긴장감 조성을 위하여 세칭 동방교에서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주요 거점별로 그 지역의 신도들을 모이게 해서 천국잔치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집회를 열고 있었다.
부산지방에서는 모두 '초량12교회'로 모였다. 무당집 굿판 비슷하게 제법 거나한 제물들을 차려놓고 소위 성무라는 춤을 추고 탄식조의 성가등을 부르면서 설교를 듣는 그런 집회방식이다. 여기에 참석하지 않으면 신앙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믿음이 희미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참석의 채근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도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매주 마다 열심히 그 천국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다. 열심이 있는 신도들은 지성금을 듬뿍 내는것은 물론, 상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들도 자진해서 내야 하는 것이다.
(수원정에서의 행사 모습, 제물을 차려놓고 신도중의 누군가가 고깔모자를 쓴 특유의 복장을 차려입고 행사중에 웃기는 장면인듯 한데 신도들에게 둘려쌓여 있는 우측 중간부분에 아브넬 노영구, 베드로 양학식이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보인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있는 여자가 사르멘 김숙자인듯 하다.)
특히 눈이 억수같이 내려 쌓인 그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양학식 베드로목사와 히스기야(연단선님출신 여신도)가 부산의 '초량12교회'에 특별히 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노광공 교주가 세상을 떠난 후 그분이 다시 재림해서 베드로목사와 히스기야에게 임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원래 음양(陰陽)의 양성(兩性)을 다 가지고 계신 분인데 양(陽)의 현신은 베드로목사이고 음(陰)의 현신은 히스기야라는 것이다. 이 히스기야라는 여신도는 원래 나와 같은 '사상8교회' 출신으로 믿음이 솟아나서 (특출하다는 세칭 동방교식 표현) 서울 대기처로 불리워 올라가 일등선님으로 열심히 껌을 팔아 세칭 동방교에 지성금을 바치는 얼굴이 희고 덩치가 작은 예쁘장한 처자였다.
죽은 교주가 양성(兩性)으로 나뉘어 이 둘에게 현신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신앙 그 자체인 세칭 동방교의 노광공이 육신으로 현신해 왔다니, 모두가 그들을 하늘같이 떠 받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수작이지만 그때는 그것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믿었고 그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하늘 하늘한 잠옷을 입은 히스기야가 세칭 동방교의 부산 '초량12교회' 아래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실내계단의 오른편 작은방(자료#1)에 베드로 목사와 같이 있다가 둘이서 그 방을 나와 계단을 사뿐 사뿐 걸어올라 신들린 듯한 몽롱한 눈길로 2층 성전에 올라서면 모두가 그윽한 존경과 감격의 눈길로 그들을 우러러보며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 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얼마나 고통을 당했으며 지금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위하여 예비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하면서 신도들을 얼치고 매치면 모두 그 한마디 한마디에 울음보와 웃음보가 터지는 것이다. 가히 전형적인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의 발작증상이었다. 공갈과 협박, 회유와 다짐의 시간들이 점점 고조되고 천국잔치는 절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날밤에 40대 후반의 베드로목사와 30대 초반의 히스기야는 세칭 동방교 부산 '초량12교회' 아래층 오른편 작은방에 나라히 이불을 덮고 잠들게 되었다. 음양으로 현신한 교주 '이래 할아버지'는 원래 음양이 한 몸이기 때문에 같은 잠자리에 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누가 그 명을 거역한단 말인가. 당시 '초량12교회'의 다말장로(후에 이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의 이름뿐인 꼭두각시 총회장을 지낸 이일우목사의 부인)는 이튿날 아침 그들이 자고 일어난 방에 들어가 이불 밑에 손을 넣어 보았다고 한다. 참 짖궂기도 한 양반이다. 깔고 잤던 요밑이 축축하게 젖어 있더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자료 #1---
부산의 '초량12교회'는 지금의 초량 대로변 정발장군 동상이 있는 길 건너편 골목안에 위치해 있었다. 전형적인 일본식 구조의 2층 목조 건물로 대지는 40여평 되었을까, 건물은 1층과 2층이 똑 같이 2-30평 내외, 도로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골목에 연접해서 서향한 대문에 붙어있는 쪽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은 마당이 있었다. 왼편으로 수도가 있었고 그 안쪽에 부엌시설, 대문에서 오른편으로 장독대, 안쪽으로 쑥 들어간 마당 끝에 화장실이 별도로 있었다.
남향으로 된 건물의 1층은 중앙부위에 2층으로 올라가는 실내 나무 계단이 일직선으로 2층까지 연결되어 있고,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기준으로 왼편에 마루와 큰방 하나, 침구며 잡동사니들을 넣어두는 골방 하나, 오른편으로 작은 방 하나와 그 안쪽에 잘 사용하지 않는 조그만 부엌 하나가 딸려 있었다. 이 부엌에는 바깥의 작은 옆 골목과 연결되는 쪽문도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다가 비상시에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 16, 부산 '초량12교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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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이 정녕 거룩한 천국잔치의 밤이었던가,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의 광란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그 사건이후 히스기야와 같이 서울로 귀환 한 양학식 베드로목사는 또 다른 여러 가지 구실들이 더해져 세칭 동방교의 악명높은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어느날 정재덕 요나단목사가 세칭 동방교에서 ‘악령’이라고 지칭되면서 제거된 후 양학식 베드로목사도 이렇게 심판을 받았는데 그는 다시 2대 교주 노영구의 부름을 받아 세칭 동방교의 일선에 잠시 나서게 되었다. 그래도 세칭 동방교내에서 그만한 인재가 없었던 모양이다. 신도들을 얼러고 후려치고 이끌어 몰고가는 그런 인재 말이다.
내가 세칭 동방교 상부의 부름을 받고 서울 '수원정' 대기처로 올라 갔을때는 그는 거의 옛날과 같은 실권을 회복하고 있었고 히스기야라는 여신도는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수 년 후 양학식 베드로목사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인터넷검색 자료 #2, #3)되어 복역 후 출소하는 그를 그의 아들 양수언이 곧 바로 차에 태워 어디론가 잠적한 후 다시는 세칭 동방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아직까지 생사의 여부도 소식도 알려진 바가 없다.
---인터넷검색 자료 #2---
신도들 진정, 세칭 동방교 간부들 수사
경향신문 1973.02.22 기사(뉴스)
신도들 진정, 세칭 동방교 간부들 수사, “꺼팔이등 시켜 헌금강요”
서울시경은 22일 상오 세칭 동방교 간부들이 신도들에게 껌팔이등을 시켜 금품을 뺏어오고 있다는 신도들의 진정에 따라 수사에 나섰다. 정모씨등의 진정에 따르면 세칭 동방교 간부들은 서울 부산등 대도시에서 나이어린 신도들에게 껌팔이, 외래품장사등을 시켜 하루 1천원~5천원씩 교회에 바치게 하고 있으며 이돈을 내지 못할때는 매질까지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검색 자료 #3---
6천만원 손배소송, 세칭 동방교신도 65명, 법률구조협통해
경향신문 1974.12.07 기사(뉴스)
대한법률구조협회는 6일하오 세칭 동방교 신도였던 이정옥씨(27,서울 관악구 흑석동 200의 45)등 65명을 대리해 세칭 동방교를 상대로 6천8백54만9천1백65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법률구조협회는 이씨등이 지난22일 세칭 동방교 간부에게 지성금등의 명목으로 6천여만원의 재산을 빼앗겼다고 주장, 진정서와 함께 법률구조신청을 내어 법률구조에 나서 것이다.
장준택변호사를 통해 제출한 이 소장에서 원고들은 “세칭 동방교의 대표이사인 양학식씨등 4명이 지난 4월30일 상습사기및 상습공갈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지성금이란 명목으로 빼앗긴 신도들의 재산을 마땅히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댓글
천국잔치에 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네요. 노광공이 죽기 전 성민들을 수원정에 모아놓고, 다 이루었다. 너희들은 참 좋겠다. 하면서 축복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얼마 후에 노광공은 죽었다는데, 전도사들은 이레 조부님이 성민들이 갈 천국을 준비하러 가셨다고 선전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선전이고 사기인지... 당시는 감격에 젖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