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詩의 낯설음과 참신함을 위해
시는 짧은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충격을 주려면, 그에 걸맞게 낯설지 않으면 외면당한다. 러시아 문학가이면서 형식주의자인 빅토르 시클로프스키가 개념화한 것으로 알려진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는 친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 시작법의 중요한 용어이다. 낯설음은 끌림을 준다. 낯설음은 틀을 깬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신(斬新, 매우 새로운)을 준다. 한마디로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은 낯설음과 참신함이 생명이다.
낯설게 하면, ‘시선을 끈다는 말, 참신하다는 말,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는 말, 전율이 온다는 말, 처음 만난다는 말, 가슴에 오래 남는다는 말, 호기심이 발동한다는 말, 좋은 은유가 있다는 말, 뒤틀림이 있다는 말, 반전이 기막히다는 말’이 그때 탄생한다. 이를 위해 詩作을 하는 시인은 남다른 思考와 남다른 詩句를 발견해야 한다. 남다른 想像力이 더하면 錦上添花.
한 편의 시에서 남다르다거나 특별하다는 말은 시의 제목, 시의 첫 행, 시의 중간 중간이나 마지막에 깜짝 놀랄 색다른 구절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한 행, 두 행, 몇 행이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고 名詩로 만든다. 그 짧은 詩句가 때로는 살면서 암송하고 위로를 받고, 어떤 시구는 金言이 되기도 한다. 시인은 그런 시를 짓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못되더라도 적어도 노력은 해야 한다.
詩人들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장옥관 시인은 시 쓰기는 남과 다르게 쓰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유자효 시인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성복 시인은 항상 낯선 데로, 어려운 데로, 모르는 데로 향하세요라고 말하였다. 그래야 한 번 물면 대가리가 끊어지도록 꽉 물고 안 놓는 구절이 생기는 것이다. 솔직히 저도 행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시인은 낯설게 보려는 시선과 예민한 감각이 요구된다.
시를 통해 낯설게 하는 것을 알아봅니다. ① 첫 행부터 사로잡아라 ②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라 ③ 어구나 시구를 뒤틀어라 ④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라 ⑤ 비유比喩는 낯설게 한다 ⑥ 사유思惟가 낯설게 한다
1. 첫 행부터 사로잡아라
어떤 시인은 첫 행은 하늘이 내린다고까지 말한다. 그만큼 시의 첫 행은 그 시를 읽게 하는 문이다. 끌리고 사로잡는 것이 있어야 한다. 질문으로 시작하거나, 은유로 시작하거나, 궁금증을 유발하거나, 역설적이거나 땅기는 맛이 있어야 한다. 참 특별한 언어와 표현을 모셔 와야 한다.
풍경의 깊이 2
― 김사인
이 길,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작은 보따리로 울고 간 길
그리하여 슬퍼진 길
상수리와 생강나무 찔레와 할미꽃과 어린 풀들의
이제는 빈, 종일 짐승 하나 지나지 않는
환한 캄캄한 길
열입곱에 떠난 그 사람
흘러와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으로 주저앉았거나
깁고 닦는 느린 손길
골목 끝 남매집에서 저녁마다 혼자 국밥을 먹는,
돋보기 너머로 한번씩 먼 데를 보는
그의 얼굴
고요하고 캄캄한 길
[단상]
이 시는 첫 행이 시선을 끌고 궁금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길,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작은 보따리로 울고 간 길” 울고 간 사람은 누구며 왜 울고 갔을까? 살다가 가장 아픈 것은 기댈 곳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 시인은 울고 간 길을 ‘슬퍼진 길, 환한 캄캄한 길’이라고 한다. 골목 끝 남매집에서 홀로 국밥을 먹는 노인, 그의 얼굴에 주름진 ‘풍경의 깊이’가 읽혀진다. 그 풍경은 고요하고 캄캄한 길. 오늘 아니 10년 20년 뒤에 우리의 풍경의 깊이는 어떤 것일까?
2. 극적인 반전(反轉)을 만들어라
밋밋하면 싱겁다. 전환이나 반전이 있어야 놀라움을 자아낸다. 마지막에 놀랍게 끝을 맺는 방법이 있다. 이것을 영어로 Surprise Ending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반전과 놀라움은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잘갈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단상]
화창하고 환한 봄의 정원에 초대한다. 테이블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프리지어와 장미가 풍성하게 꽂혀있다. 맛있는 와인이 있고 그리고 함께할 사람이 기다리는 의자가 있다. 이 좋은 분위기도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당신이라는 존재의 무게는 잴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이런 멋진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호히 말하지만 이 시에서 마지막 행이 없다면 좋은 시가 아니다.
3. 어구나 시구를 뒤틀어라
뒤틀림이 낯설게 한다. 시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야 한다. 시적인 것은 일탈逸脫에서 생긴다. 꺼칠꺼칠하게 느껴지는 뒤틀림이 있어야 한다. 계단을 올라갈 때처럼 한 꺾임에서 한 꺾임으로 나아가는 것. 그 계단마다 인생이 들어가게 짓는 것. 뒤집어야 제 맛이 나는 것. 털컥 걸리어 넘어질 뻔한 감동이 있어야 한다. 아득한 느낌을 주는 시구를.
서해
―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단상]
표현상 특징은 도치법, 설의법, 활유법이 있다. 첫 행과 둘째 행이 도치되었다.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는 설의법이다. 서해 바다가 다른 바다와 비슷하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는 바다를 생명체로 나타냄으로써 당신이 계신 곳을 좀 더 생생하게 나타낸 활유법이다.
이 시는 화자가 바다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서 ‘당신’에 대한 역설적인 태도를 드러나게 한다. 그러나 서해는 그리운 공간이다. 내 마음 속에서 파도치고 있다. 그립지만 당신을 위해 가지 않겠다는 역설이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보러 가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태도.
[사전]
활유법(活喩法): 무생물을 생물인 것처럼, 감정이 없는 것을 감정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수사법. 예를 들면 ‘나를 에워싸는 산’, ‘울음 우는 바다’ 따위이다.
4.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라
깜짝 놀랄 구절 하나 새롭게 발견하면 그것이 名詩를 만든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시선을 다르게 하고 사고를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삐딱하게 새것이 없나를 살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르게 보고 사고하다 보면 나만의 스타일이 생긴다. 시는 말의 장난이 아니라 생의 아픔이 스며든 것이어야 한다.
프라하 일기
― 허만하
비가 빛나기 위하여 포도가 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돌의 포도. 원수의 뒷모습처럼 빛나는 비. 나의 발자국도 비에 젖는다.
나의 쓸쓸함은 카를교 난간에 기대고 만다. 아득한 수면을 본다. 저무는 흐름 위에 몸을 던지는 비,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물안개 같다. 카프카의 불안과 외로움이 잠들어 있는 유대인 묘지에는 가보지 않았다. 이마 밑에서 기이하게 빛나는 눈빛은 마이즈르 거리 그의 생가 벽면에서 보았다.
돌의 길. 돌의 벽. 돌의 음악 같은 프라하 성. 릴케의 고향 프라하. “비는 고독과 같은 것이다.”
엷은 여수처럼 번지는 안개에 잠기는 다리목에서 창녀풍의 늙은 그림자가 속삭인다.
“돌의 무릎을 베고 주무세요. 바람에 밀리는 비가 되세요.”
중세기 순례자의 푸른 방울 소리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따라온다.
“그리고 당신이 돌의 풍경이 되세요.”
젖은 포도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기교와
비에 젖는 지도의 일기.
프라하 칼프펜 거리는 해거름부터 비였다.
[단상]
제가 참 좋아하는 자주 읽는 詩이다. 이 시에서 한 구절을 뽑아서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인데 시집 발간 후 유명해진 시인이 되었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멋진 새로운 발견이다. 누구도 비를 보고 이런 표현을 생각하지 않는데 허만하 시인이 처음 발견한 것이다. 여행 중에 시의 배경에 나오는 길을 저도 걸어보았습니다. 허만하 시인이 며칠 동안 머무르면서 경험하고 즐기며 시를 썼다는 길을 저는 하루 동안 있었지만 이런 ‘프라하 일기’를 쓰기 시작도 못했는데 시인은 대단하다. 비가 내리고 포도가 반짝이고 발자국은 비에 젖고, 카를교 난간에 기대어 쓸쓸함에 젖는다. 허만하 시인의 멋진 포착이다. 이것은 시가 되는 순간포착이 아닐 수 없다.
5. 비유(比喩)는 낯설게 한다
비유(比喩):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
비유比喩는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빗대어 말하기 때문에 당연히 낯설어 보인다. M.H. 에이브럼스에 의하면, 비유는 의미의 비유와 말의 비유로 나누는데 ‘의미의 비유로는 직유, 은유, 상징, 활유(의인)), 인유와 인용적 묘사, 풍유와 우화, 대유(제유, 환유), 중의법 등이고, ‘말의 비유’로는 도치, 과장, 대조와 모순 어법, 반복과 열거, 영탄과 돈호법, 역언법, 수사적 의문법, 완곡 어법이 있다. 이런 것들은 낯설게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인은 비유와 시적 언술이 뛰어날수록 좋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첫사랑
―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더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 낸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단상]
꽃, 눈, 싸그락, 난분분, 바람 한 자락, 햇솜 같은, 봄, 덴 자리 등의 단어들이 눈에 띈다. 화자는 나뭇가지에 핀 눈꽃과 봄꽃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는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 ‘한번 덴 자리’ 등의 시구를 통해 쉽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때로는 아픈 상처로 남는 첫사랑의 속성을 노래하고 있다. 비유적이면서 역설적인 시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이다. 또 이것은 봄이 되어 눈이 녹은 후 꽃을 터뜨리는 나무의 모습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눈꽃도 쉽게 생기지 않음을 보여준다.
6. 사유(思惟)가 낯설게 한다
관찰의 깊이가 사유의 깊이를 만든다. 이경림 시인에 말에 의하면 “현상現象(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상태)들이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 말을 듣고 꼼꼼히 받아적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현상이 바로 詩라는 말과 같다. 그것들 속에는 시인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말하려 하는 메타포(metaphor, 은유, 비유)가 적나라하게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현상 즉 상황은 실제 그대로 메타포이다. 계속 이경림 시인의 말에 의하면, “현상이 본질이며 관념이며 시라는 것이 가슴 저리게 와 닿을 때 뜰 앞의 잣나무가 더도 덜도 아니게 뜰 앞의 잣나무로 보일 때 시인은 비로소 시인이 되리라.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시인은 순간순간 천근만근 이 욕망을 뜯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비극적 존재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숲과 새
― 오규원
떡갈나무 하나가
떡갈나무로 서서
잎과 줄기를
잎의 자리와 줄기의 자리에
모두 올려놓았다
그 자리와 자리 사이로
올 때도 혼자이더니
갈 때도 혼자인
어치가
날다가
갈참나무가 되었다
[단상]
이 시는 독자에게 “나는 사람으로 사람다운 생각을 제 자리에 올려놓고 살고 있는가? 아니 한 시인으로 시인다운 생각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있는가? 올 때도 갈 때도 혼자인 어치처럼 모두 어딘가로 저 홀로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한 것. ”날다가/ 갈참나무가 되었다“에 이르면 가슴에 찌르르 어치가 운다. 어느 날 나무가 된 화자를 본다. 우리 인간은 흰 홑이불도 버거워 하다가 홀로 가는 사람이 아니던가, 어치처럼.
빈 병
― 이경림
집으로 가는 길, 담 모퉁이에 기대어 있었다
녹색을 입고 있었지만 빈속이 다 보였다
골 뚜껑을 훤히 열어놓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 속이었다
몇몇의 눈발들이 기적처럼
그의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는 너무 깊어진 생각 때문에 몸이 무거운 것 같기도 했다
속엣 것을 다 쏟아내 너무 허전한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저 아득히 저 너머로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예정된 무슨 운행運行처럼
나의 두 발이 교차하며 그의 앞을 지나왔다
마치, 그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을 거슬러 와
그토록 빈 병이 되어 서 있는 일처럼
[단상]
이 시에 드러나 현상은 간단하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모퉁이에서 발견한 빈 병을 본 그대로 쓴 시이다. 그러나 독자는 이 시를 보고 빈 병만 본 것인가? 독자들은 생을 다 건너와 허허로운 속을 다 보이며 서 있는 한 인간을 발견했으리라. “그때 예정된 무슨 운행처럼 나의 두 발이 교차하며 그 앞을 지나왔다”는 부분에 이르면 빈 병과 시인은 같은 우주적 공간 아래 같은 길을 거슬러 가는 동질의 존재가 되어 있다. 인생의 본질에 대한 생각, 아픈 인생사가 젖어든 생각, 존재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이 사유를 깊게 하는 것이 아닐까? - 牙虎
[출처] 시론(詩論) 3 - 詩의 낯설음과 참신함을 위해|작성자 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