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경시했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에 가도록 가요나 팝송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노는 시간이면 몇몇 아이들은 모여 앉아 외국어로 팝송을 부르곤 하였다.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아버지께 꾸중을 들을까 봐 가슴이 두근거려 감히 그 노래를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짝으로부터 자기 엄마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을 녹음해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젊고 현대적인 엄마를 가진 그 아이가 살짝 부러웠다.
그 이후에도 팝송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케 세라 세라’만큼은 절대 잊지 못하게 하는 사건이 일 학년 오 반 교실에서 있었다. 당시에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조금만 틈을 주면 수업하지 말고 놀자고 졸라대곤 하였다. 담임선생님이자 국어 선생님이셨던 이영희 선생님은 그런 우리들의 꼬임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완고한 분이셨다. 언제나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로 교실에 들어오시는 선생님은 우리들의 허튼소리를 용납하지 않으셨고 늘 수업에 충실하셨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선생님께서 틈을 보이셨고 우리들은 그 의외의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은 교탁을 우리에게 내주셨고 몇 명의 아이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사달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한 아이가 나와 ‘케 세라세라’를 불렀다. 제 흥에 겨운 그 아이는 가수처럼 손짓까지 하며 열심히 불렀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자리로 채 돌아가기도 전에 선생님의 노여움에 가득 찬 호통이 온 교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케 세라세라가 될 대로 되라의 뜻을 가진 스페인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호통에 낄낄대며 노닥거리던 우리들은 너무 놀라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도대체 열여섯 살짜리가 될대로 되라가 무슨 말이냐고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시던 모습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열여섯! 뜻을 세우고 정진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나이다. 여러 다른 사연으로 실업계로 진학했지만 중학교때 성적이 상위권에 있던 아이들이다. 그런 우리들을 선생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격려하시고 호통치시면서 우리를 자극하셨다. 선생님 자신도 시인으로, 대학원생으로 끊임없이 정진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 주셨다. 흔한 팝송을 아무 생각 없이 부르다 오지게 혼난 우리 반 아이들은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거의 모두가 대학에 진학했다. 선생님은 분명 그 호통 끝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좋은 말씀을 해 주셨을 텐데 그것은 기억에 없고 케 세라세라만 남았다. 그래서 그랬을 거다.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건 절대 가지면 안 되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까닭이다.
일 학년 오 반, 그때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다른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일 학년이 끝나기 전에 난 선생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의정부에 사는 내가 어떻게 그 먼 선생님 댁까지 갔었는지 모르겠다. 오라 하시지 않았는데 불쑥 찾아 가는 반죽 좋은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 학급의 무슨 행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오신 선생님은 내 손에 토큰 몇 개를 쥐어 주셨다. 뜻밖의 배려에 당황해 어쩔줄 몰라 하는 나를 다정히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았었다.
엄마의 사랑을 당연한 듯 받으며 자라난 철부지 딸이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 훌륭한 안내자였던 선생님의 노고에 제대로 인사를 드린 적이 없음을 새삼 깨달아 속으로 크게 외쳐본다. 선생님! 그때 그렇게 아무 생각 없던 우리들을 깨워주시고 혼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허경옥 님은 아주 행운아 이십니다
학창때의 스승님 께서 지금까지 사랑의 지도 바른생활의 가르침을 받고 있으면서 성장을 하고있으니 큰 복입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보람이 크시구요 사제간의 돈독한사랑 영원히 함께 하시길 기원할게요 두분
화이팅 하세요💙
네! 라일락 선생님 말씀에 백 번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학생들을 위하는 사랑, 제 정신 차리게 하는 카리스마는 정말 압권입니다.
교수님의 논리적이고 칼칼한 말씀은 많은 학생들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 각성제같은 거름으로 저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호사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라이락 님은 참 모범생이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도 야행성이었던 지 12시, 자정이 넘어 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 "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가슴 적시는 팝송을 들으며 지냈는데요.
라노비아, 노노레타, 디 영 원스, 컴백 투 미, 온리 유,
(이태리어, 영어를 우리나라 말로 적으려니 웃음이 나오네요)등등...
저는 그 때 그 노래들이 그렇게 좋았고 그 사이사이 흘러 넘치는 편지 사연들이 그렇게 좋았답니다.
선생님의 감동적인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