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21,28-32)
엄마가 보고 있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시길 희망합니다.
순종한다는 것,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말을 듣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대로 하겠다고 말해놓고 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 사람은 말을 잘 듣는다.’고 하면, 귀로 듣는 것을 뛰어넘어 행동으로 옮겼을 때
말을 잘 듣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의로운 길을 가르치는 요한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했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요한의 말을 “믿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을 믿었기에 그분의 뜻에 순명 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귀로 들었으면 그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말씀을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1).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은 그야말로 “폭탄선언”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선전포고”로 들렸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고, 스스로 내로라하는 사람으로 뽐내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머리가 큰 것이 아니라 가슴이 따뜻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손발에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자신들의 세속적인 권력과 인기와 명예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요한을 기피 하였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였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싫습니다.” 하고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 또 다른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면서
시원스레 대답만 하고 행동으로는 딴짓했습니다.
말만 있고 실행이 없으면 더 큰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신뢰하고 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못 한다고 하면 다른 방안을 강구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밭에 나가라고 했습니다.
긴박성을 말해줍니다.
아들이 무슨 계획이 있든지 그것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함을 암시합니다.
순명은 미룰 일이 아닙니다.
사실, 선이 무엇인지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행동하는 믿음의 소유자, 말을 잘 듣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결정적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 집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마태7,24-27참조).
우리는 결정적으로 심판의 폭풍 속에서도 든든히 서 있어야 합니다.
행동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주님의 뜻을 실천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자기가 취해야 할 태도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은 끝내 뉘우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극약처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인 취급하고 무시한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흉보고 험담하며 욕하지 마라.
먼저 자신을 속이는 네 마음속을 봐라.
머리와 입술이 빠른 사람은 마음이 늦습니다.
그래서 알고도 거부합니다.
그것이 교만이고 불순명입니다.
말만 있고 행동이 없는 사람은 낚싯바늘만 있고 미끼가 없는 낚싯대와 같습니다.
아무리 낚싯바늘이 좋아도 고기가 물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나 아무리 좋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은 쓰레기와 같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 앞에서 결정한 것은 미루지 말고 그분의 뜻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민첩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행동이 없으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고, 시작은 아무리 늦어도 빠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학교에서 반 ‘급훈’을 응모하였는데 ‘엄마가 보고 있다.’가 뽑혔습니다.
이걸 제안한 친구는 수업 중에 장난을 치다가도 이 급훈을 보면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그 학생은 집을 떠나 외지에서 공부하는데 엄마와 찍은 사진을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그 방에 놀러 왔는데 한 아이가 책상 위의 사진을 엎어놓으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엄마가 나가셨다. 신나게 놀자.”
누군가 보고 있으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쳐다볼 때 자기도 모르게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마디도 숨길 수 없다.
사람의 길은 주님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분께서는 그의 모든 행로를 지켜보신다”(잠언5,21).
사람에게 인정받고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주님 눈에 꼭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언제 행할 것인가?
미루지 않길 바랍니다.
제일 적당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물쭈물, 어영부영, 할까말까?’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고’,
‘갈까 말까?’할 때는 ‘가자.’ 미루지 말고 지금!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