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기영 앵커: 내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오늘 뉴스데스크는 장애인 편의시설, 이거 과연 따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없애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차별나게 따로 만들 게 아니라 노약자나 임산부, 더 나아가 장애가 없는 사람도 모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범용시설로 만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조승원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하루 45만 명이 오가는 서울 신도림역. 이 역에 있는 장애인 전용 리프트와 화장실을 몇 명이나 이용하는 지 살펴봤습니다.
왜 아무도 쓰지 않는걸까? 장애인 아닌 대학생들이 이 시설들을 이용해봤습니다. 먼저 휠체어 리프트.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리프트가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뭔가 신기하다는 듯 사람들의 시선이 쏠립니다.
● 고현전(대학생) : "사람들이 막 쳐다보더라고요. 저도 그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화장실이라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닙니다. 장애인 화장실은 일반 화장실과 떨어져 통로 쪽으로 나와 있고 남녀 구분도 없습니다.
● 이태정(대학생) : "다른 남성이 들어올까봐 불안한 것도 있고, 하나밖에 없으니까 사람들이 일단 쳐다보잖아요."
10년전부터 '장애인 편의 시설' 설치가 법으로 의무화되면서, 여기저기 '장애인 전용' 시설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말만 '장애인 전용'이지, 사실은 '장애인 차별시설'에 가까운 것들이 많습니다.
장애인 성미정씨가 건물에 들어가려다 말고 그냥 지나쳐 갑니다. 20층짜리 이 빌딩 정문엔 장애인 경사로가 없습니다.
건물 한 바퀴를 빙 돌고나서 성씨는 후문 쪽에 있는 '장애인 전용' 출입구로 들어갑니다. 지하철역에서도 성 씨는 차별을 느낍니다. 휠체어가 개찰구를 빠져나갈 수 없어서 남들과 달리 비상문으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습니다.
일본 나고야의 중부공항. 공항에서 지하철로 통하는 개찰구는 모든 출입구가 다 널찍널찍합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따로 다닐 필요가 없는 겁니다.
화장실에도 '장애인 전용' 팻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애인도 일반 화장실을 쓸 수 있도록 모든 칸이 넓게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이 공항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지 않고, 모든 시설을 함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런 것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 양원태 위원(장애인 인권포럼) : "장애인도 특별한 배려, 특별한 취급이 아니라, 동등하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함께 쓸 수 있다는 건, 모두가 편안하게 느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지하철 역 계단에서 힘든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몸이 아프거나 무거운 짐을 들었거나 또 어쩌다 유모차를 끌고 나왔을 때 같은 경웁니다.
그때 그곳에 장애인 편의 시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계단을 오르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좁은 개찰구를 빠져나오느라 진땀을 흘릴 필요도 없을 겁니다.
● 한명숙(주부) :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차라리 다른 개찰구도 널찍널찍하게 만들면 더 편하지 않을까요?"
장애인 편의를 위해 만든 저상 버스를 봐도 그렇습니다. 장애인이 탈 수 있도록 턱을 없애고 나니, 노인이나 임산부도 편안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 정영순(임신 5개월) :"제가 몸이 무거운 상태니까요. 확실히 편하다고 느낄 수 있고요. 아이가 있다 보니까 아이도 편해하고 이동하기가 편하다고 느낍니다. "
장애인이 편하게 느끼는 시설을 만들어 다 같이 쓴다면 누구에게도 나쁠 게 없다는 얘깁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구별 없이 모두가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시설. 말은 좋은데 왠지 그러려면 돈이 꽤 많이 들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구청으로 갑니다.
길에서 구청 현관까지 계단이나 턱이 없어서 쉽게 올 수 있습니다. 처음 지을 때부터 턱을 만들지 않았고, 남아있던 계단 하나는 6년전에 3백만 원 정도를 들여 없앴습니다.
● 최원용(서울 양천구청 총무과) : "생각보다 돈이 많이 안 들고요. 오히려 계단이랑 장애인 경사로를 따로 따로 설치하는 것보다 돈이 더 적게 듭니다. 사실은."
큰돈이 든 건 아니지만, 편안함은 모두에게 돌아갔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오는 주부. 여행 가방을 든 민원인, 그리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까지도 무척 편해진 겁니다.
보통 계단을 먼저 만들고 나서 옆에 장애인 경사로를 만듭니다.
만든 쪽에선 '특별한 배려'라고 하지만, 사용하는 쪽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계단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 '특별한 배려'를 베풀거나 받을 필요가 없었고 그런만큼 누구나 평등함을 느꼈을 겁니다.
MBC 뉴스 조승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