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의 큰 복
잠 3:13-18
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 3:13-18 / [지혜가 얼마나 값지고 하니] 얼마나 복되랴! 지혜를 찾아나서 슬기로워진 이들. 얼마나 복되랴! 통찰력을 지니게 된 이들. 14) 벌어들이려고 그토록 애쓰는 돈보다 지혜가 얼마나 더 값지랴! 순금을 얻는 것보다 통찰력이 얼마나 더 소중하랴! 15) 보석보다 더 값진 것이 지혜가 아니냔 말이다.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그 어느 것이 지혜만 하겠느냐? 16) 지혜와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하늘이 내려 주신 천수를 다 누리고 또 온갖 부귀 영화를 다 누리리라. 17) 이런 사람은 인생이 즐겁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날이 기쁘지 않겠느냐? 18) 지혜는 진정으로 ㄱ) 생명나무라. 지혜로워지기를 애타게 고대하여 슬기로워진 사람만큼 복된 사람이 있으랴? (ㄱ. 참조, 창3:22-24)
지혜와 명철이 주는 유익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13) 13절은 ‘아슈레이 아담’이라는 히브리어로 시작합니다. 이 표현은 시편 1편 1절의 ‘복 있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히브리어로 ‘아담’이나 ‘이쉬’는 모두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3절은 시편 1편 1절과 비슷하게 ‘복 있는 사람은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니’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얻다’라는 동사가 두 번 반복되지만 다른 단어입니다. 첫 단어는 ‘찾는다’라는 의미, 두 번째 단어는 ‘얻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찾는다와 얻다가 함께 나타나는 것은 ‘찾아서 얻는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찾아서 얻는 사람이 바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도다(14-16) 잠언에서 지혜의 가치는 여러 번 물질과 비교되면서 제시됩니다(2:4; 8:19; 16:6). 그러나 오늘 본문이 지혜와 부를 가장 상세하게 비교해 줍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여기 은을 얻는다는 것은 ‘매매로 얻는 이득’을 가리키며 정금보다 나은 이익은 ‘땅에서 얻는 열매’를 뜻합니다. 지혜는 장사를 잘하여 ‘은과 금’을 얻는 것과 농사를 잘하여 ‘소산’을 얻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또한 지혜와 명철의 가치는 진주나 그 외 사모하는 모든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지혜는 의인화되어 마치 그 오른손과 왼손에 소중한 보물을 들고 그를 찾는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양손에 보물이 가득하다는 것은 그가 나누어 줄 것이 많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생명 나무(17-18) 지혜가 인생의 길을 즐겁게 해주며 안전하게 가도록 도와주는 지름길로 나타납니다. 지혜와 함께 걷는 길은 즐거운 길이 될 것이며, 또한 그 길은 평화로운 길이 될 것입니다. 지혜를 가지면 삶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기에 재산과 명예와 수명을 손상할 수 있는 온갖 함정을 피하고 인생을 즐겁고 안전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혜는 물질적 부귀와 영광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생명 나무’로서 지혜를 가진 자에게 생명의 열매를 누리게 합니다. 잠언에서 생명 나무는 영적인 갱신과 회복을 상징합니다(11:30; 13:12; 15:4).
적용: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얻은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와 명철은 우리 영혼의 생명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일을 통해서 자기다움을 구축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남과 같아지려는 습관부터 없애야 한다.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부터 소개하겠다. 먼저 TV를 꺼라. 대중을 상대로 하는 모든 매체의 대중적인 정보를 차단하라. 디지털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당신의 일상을 '포맷'하라.-권민<자기다움>중에서. 지식은 스펙이며, 지혜는 생명입니다. 스펙은 돈으로 만들고 살 수 있으나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스펙은 세상의 것이지만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지식의 길이 아닌 지혜의 길을 가야함은 그 길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 설 교 >
지혜의 유익
잠언 3:11-20
[11-12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와 꾸지람은 때때로 성경말씀을 읽을 때 오고(딤후 3:16)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성경적 설교를 통해 온다(딤후 4:2). 그것은 때때로 질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도, 또는 환경적 어려움으로 온다. ‘경히 여기고 싫어한다’는 말은 옛날에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러하였듯이 그것을 무시하고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신다. 징계와 저주는 다르다. 하나님의 징계는, 성도의 죄를 미워하시지만 그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표이다. 히브리서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부모의 책망과 징계를 잘 받은 자녀가 좋은 인격자가 되며 선생의 책망과 징계를 잘 받은 학생이 좋은 학생이 되듯이, 하나님의 징계를 잘 받은 사람은 좋은 성도가 된다. 그는 더욱 거룩하여진다. 히브리서 12:10-11,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3-15절]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자는 행복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의 일생이 결국 불행으로 끝날 것이다. 지혜를 얻은 자가 복된 이유는 지혜가 금이나 은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금이나 은, 즉 돈과 물질적 부요가 행복의 한 요소이기는 하다. 돈이 없으면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도 없고 입고 싶은 옷을 사 입을 수도 없다. 돈이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은 맞다.
그러나 지혜는 돈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이 세상에는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 사람은, 돈만 가지곤, 우주의 근원과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없고, 또 죄씻음과 의(義), 영생과 부활과 천국을 얻지 못한다. 또 사람은, 돈만 가지곤, 예상하지 못하는 대형사고의 예방, 무서운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보장하지 못한다. 부자도 예상치 못한 큰 사고를 당하고 무서운 질병으로 죽는다. 그러나 지혜는 진리를 알게 하고 구원의 복을 얻게 하고 평안을 보장한다.
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며 우리의 사모하는 모든 것보다 낫다. 그 이유는 16절 이하에 나온다. 여인들은 대체로 진주목걸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여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장식품이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아하고 사모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지혜는 그 모든 것보다 귀하다.
[16-18절]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가 복되며 금과 은보다, 진주보다 나은 이유는 그 우편 손에 장수(長壽)가 있기 때문이다. 잠언 3:2는 우리가 하나님 계명에 순종하면 장수한다고 말했다. 본문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지혜이며 지혜는 영생의 길이다.
또 지혜의 좌편 손에는 부귀(富貴)가 있다. 부귀는 부요와 존귀를 말한다. 지혜는 물질적 부요를 준다. 가난과 궁핍은 복이 아니다. 잠언 3:9-10도 우리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의 창고가 가득 찰 것이라고 말했다. 경건한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었다(창 26:12-13).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토지 소산과 우양과 떡 반죽 그릇의 복을 받을 것이며 다른 이들에게 꾸어주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신 28:2-6, 11-12).
지혜는 또 존귀함도 준다. 지혜자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얻을 것이다. 다니엘은 고난의 위기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위기를 잘 극복하였고 그 후에는 더욱 높임과 존귀함을 얻었다(단 2:48; 3:30; 5:29). 또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며 그 지름길은 다 평강이다. 즐거움과 평안은 복된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데서 얻는 참 지혜는 평안의 길이다(사 48:18).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가운데 항상 기뻐함과 평안함을 누린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을 것이다(사 48:22).
[19-20절]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땅[지구]을 세우셨다. 지구는 공중에 떠 있는 약 6섹스틸리온 톤 무게의 거대한 공이다(1섹스틸리온은 10의 21제곱이다). 이 공이 하루에 한 번씩 자기 스스로 돌며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돈다. 지구에는 그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중력]이 있고, 지구의 중심에는 약 5,000도의 불이 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또 지구 표면에는 35만종 이상의 식물들이 있고 약 4,000종의 동물들과 약 6,000종의 파충류(기는 짐승들), 약 80만종의 벌레들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땅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이 땅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다.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의 세계이다. 그것들은 규칙적이게 하늘에서 움직인다. 지구가 속한 은하수는 1,000억개 이상의 별들로 구성되었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들이 약 1,000억개 있다고 한다. 또 창공에는 약 8,600가지의 새들이 있다고 한다. 하늘은 참으로 광대하고 신기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다. 지구가 가진 물의 총량은 약 1억 3,600만 입방킬로미터이며 그것은 지구 전체를 약 2.7킬로미터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며, 이런 물들은 5대양 6대주, 및 작은 바다들과 호수들을 이룬다. 또 바다 속에는 약 21,700가지의 바다 생물들과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다. 그는 공기 중의 수증기들과 바람의 이동을 주관하신다. 기상대는 우리나라의 고기압과 저기압 전선의 이동을 예측해 알려주지만, 그것의 원인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와 지식으로 비와 눈, 구름의 이동, 기압과 바람을 주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싫어하지 말고 달게 받자.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순종하며 즉시 회개하고 고치자.
지혜를 얻은 자는 복되다. 지혜는 금과 은보다, 또 진주보다 귀하다. 우리는 지혜를 가장 귀히 여기며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지혜는 장수와 부귀, 즐거움과 평안의 길이며 또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복된 지혜를 사모하며 소유하자.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고 하늘을 펴셨고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 즉 성경 교훈을 순종함으로 지혜를 받아 복된 삶을 누리자.
지혜를 얻은 자
잠언 3:13-18 / 평화교회 임대식 목사
우리 성도님들, 설날 연휴를 잘 보내셨습니까? 설날이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덕담을 나눕니다만, 우리 성도님들 이 한 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2월 한 달은 구약의 잠언서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신앙과 생활의 지혜를 배우겠습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온전한 학문을 배우려고 하면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는 율법이요, 둘째는 예언이며, 셋째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율법이 있고 예언서가 있으며 또 지혜 문학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가운데 특별히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는 이 지혜 문학에 속하는 책들입니다. 그 중에 2월 한 달은 잠언서의 주제를 네 가지를 택해 말씀 가운데 은혜를 받겠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애꾸눈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사진기가 없었기 때문에 이 장군은 죽기 전에 자기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난 화가들을 불러 초상화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어떤 화가는 장군의 마음을 헤아려 양쪽 모두 성한 눈으로 그렸습니다. 장군은 애꾸눈 초상화도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성한 눈을 그린 것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더욱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한 이름 없는 화가가 나타났습니다. 장군은 초상화를 부탁했는데, 이번에는 매우 만족해했습니다. 이 화가가 장군의 어떤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겠습니까? 그 화가는 장군의 옆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성한 눈이 있는 옆모습을 초상화에 그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한 눈만 보이고 감은 눈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대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감추고 싶은 부분은 다 감출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화가는 매우 지혜로운 화가로 소문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렇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온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필요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이 지혜를 참으로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한 말씀 13절 이하를 읽으면 “지혜를 얻는 자와 명철을 얻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하였습니다.
사실 지혜는 은이나 금이나 진주로 표현된 돈보다 더 귀합니다. 미련한 부자는 오히려 돈으로 말미암아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혜는 높은 지위보다 더 귀합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도 지혜가 모자라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는 지식보다도 귀합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우리는 많이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르므로 손해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보다 더 귀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란 알고 있는 그 지식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되기에 힘써야 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지혜는 과학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과학의 진보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 세상의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생활이 편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제는 과학이 덜 발달해서가 아니라, 이 과학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 복제의 문제, 환경의 문제, 원자력의 문제 등등 참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에 현대인이 봉착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혜를 말할 때 이 세상에 속한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분별해야 합니다. 흔히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이란 처세술에 능한 사람, 요령껏 살아가는 사람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지혜는 이런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 지혜를 가지고 장난하다가는 오히려 세상에 피해를 주고 감옥 속에 들어가 앉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입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에 보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양에 이런 재미있는 고사,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나라의 환공이 고죽을 토벌하였을 때, 출발할 때는 봄이었고 돌아올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주위 환경이 완전히 변하여 길을 잃었습니다.
그 가운데 지혜 있는 관중과 습붕이 함께 있었습니다. 관중이 하는 말이 “이럴 때는 늙은 말에게 배워야 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험 삼아 늙은 말을 풀어주고 그 뒤를 모두 따랐더니, 마침내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산길에 들어서니 먹을 물이 없어서 모두 기갈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습붕이 말하기를 “개미란 놈은 겨울에는 산의 남쪽에, 여름에는 산의 북쪽에 서식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개미집 아래 여덟 자를 파면 거기에는 반드시 물이 있다는 말을 들었사오니 한번 산기슭 남쪽으로 돌아 개미집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하였습니다.
그래도 하였더니 먹을 물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비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말하기를 “관중이나 습붕같이 지혜 있는 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말이나 개미를 스승으로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성인의 지혜를 스승으로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성인의 지혜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하늘로서 내리는 지혜를 나의 것으로 소유하는 더 큰 지혜를 우리는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지혜를 우리에게 더 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지혜를 배우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 주시는 지혜를 찾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사람 되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데,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나는 모든 것을 다 안다,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지도자 밑에서 바르게 훈련을 받아 바르고 지혜롭게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바르게 지도받을 필요가 있는데, 우리 인생을 바르게 인도하고 지도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배우고 익힘으로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잠언서의 요절은 9장 10절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란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면,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우리 자녀가 학교 공부도 우등생으로 높은 점수를 받습니까?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께로서 나오는 것이니, 그 근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물질이 필요합니다. 건강도 꼭 있어야 합니다. 힘과 권력이 있으면 큰소리치면서 행세할 수 있습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만, 이런 부나 권력이나 지식 등등을 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 지혜의 근본이란 말씀은 잠언서에 계속 되풀이 되어 나오는 말씀인데, 여기 이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왜 지혜의 근본인가, 그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지혜가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혜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계신가,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고 계신가,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고 계신가, 우리가 이런 것들을 분명히 알 수 있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도 경외하지도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그 다음 이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편지할 때 “그런즉 너희는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며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런고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이지 이해하도록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지혜가 육신이 되어 우리 곁에 나타났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1-2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지혜의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셨으니 곧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지혜를 얻는 길이요, 참 기쁨과 참 행복을 누리는 일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지혜로운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자기 생명을 멸망할 자리에서 구원받는 지혜보다 더 뛰어난 지혜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분별해야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보다 더 고귀한 일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골로새서 2장 3절에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지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교훈을 믿고 그대로 행하면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지혜로운 건축가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지혜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은 내일을 말합니다. 내년을 생각하고 훗날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영원에 대해서 말하면 뭔가 낯설어 합니다. 이번 설날에도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았습니다.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고향을 찾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라면 뭔가 의아해 합니다. 영원까지 이르는 지혜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요, 영원까지 이르는 구원의 지혜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그러므로 이제 복된 설날을 맞이하여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생명의 의미를 내 것으로 소유하며, 더욱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참으로 구원받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가 얼마나 귀한 줄 아십니까
잠언 3:13-18 / 찬송 430장 / 서울산정현교회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지혜에 대한 찬양 시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에 대한 송영과 같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13-15절까지로 지상 최고의 가치인 지혜의 위상을 밝히고 노래하는 부분입니다. 지혜는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가졌음을 노래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16-18절까지로 지혜가 가져다주는 복락들을 소개하고 찬양하는 부분입니다. 여러 가지 복들 가운데 지혜가 주는 가장 최고의 축복은 생명나무를 얻게 한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생명나무’는 창세기 2장 에덴동산에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어 먹게 하신 나무 중에 생명나무가 에덴동산 중앙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인간의 범죄와 함께 상실된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이 더 이상 이 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두루 도는 화염검을 가진 천사들을 통해 지키게 하시고 죄인들의 접근을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 생명 강가에 여전히 서 있습니다. 이 나무는 곧 영생을 상징합니다. 인간이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이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영생할까봐 더 이상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씻고 용서받은 인간은 이 생명나무 실과를 다시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는 사람은 이 생명나무를 얻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지혜가 그 정도로 가치있는 것임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재물 곧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보물, 명품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비싼 대가도 지불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위험조차 무릅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값비싸고 귀한 것이라고 해도 인간에게 장수와 마음의 행복까지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지혜는 세상의 귀하다고 하는 것들이 주지 못하는 것까지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지혜는 이런 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지혜는 부귀와 장수는 물론이고 마음의 행복과 평안과 생명까지도 담보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자기 아들들(후손들)에게 알려주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의 노래를 통해서 사람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전하셨던 ‘팔복’과도 비슷한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본문인 잠언 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성경 원어대로 배열하자면, “복이 있다. (누가?) ~한 사람은...” 이런 구조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솔로몬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에 대한 선포와 같은 맥락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은 단순히 물질이나 장수나 명예 같은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복입니다. 오늘 성경이 쓰였을 당시에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대명사가 은과 금, 진주 이런 것이니까 그것들에 견주어 복을 표현했는데, 오늘 본문을 메시지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지혜는 은행에 저축한 돈보다 훨씬 값지고, 지혜와 맺은 우정은 고액연봉보다 낫다.
지혜의 가치는 온갖 화려한 장신구보다 낫고, 네가 바라는 그 어떤 것보다 귀하다.”
메시지성경은 오늘날의 현실에 좀 더 깊이 공감되게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길을 가며 영생을 얻고 누리게 되는 것이 세상에서 재물과 명품과 추구하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귀한 것을 얻고도 전혀 귀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 오히려 이 귀한 것을 얻었는데도, 여전히 은금 진주와 같은 덜 귀한 것들을 얻으려고 오늘도 찾아 헤매고 목말라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정작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꾸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기웃거리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집을 나가지 않은 맏아들이 태도입니다. 아버지가 불평과 불만에 싸여 있는 맏아들에게 뭐라고 얘기합니까? 누가복음 15:31입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맏아들은 이미 아버지의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돌아온 둘째 아들 앞에 놓인 잔칫상과 입혀진 옷을 보면서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줄 뿐만 아니라,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지혜를 얻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길입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15-17절은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가 인도하는 곳은 안전한 길입니다. 때로는 그 길이 좁고 협착해서 음침한 골찌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가 인도하는 그 좁은 길로 반드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의 끝에는 결국 생명과 풍성함과 승리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겉으로 볼 때는 좁아 보이고 남들보다 어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받는 길이라면 그 길 끝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던 아브라함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이 지혜의 길로 날마다 걸어가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지혜와 지식
잠언 3:11-18 / 한해원 목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하여 필요한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초대교회 지도자 야고보는 특별히 우리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은 다 지혜가 부족한 까닭입니다.
잠언 3장 15절 이하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있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아는 지혜를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희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를 얻은 자에게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치는 정금보다 낫고 진주보다도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장수와 부귀가 지혜를 가진 자에게 따른다고 지적합니다. 지혜의 길은 즐겁고 그 첩경은 평강이며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지적합니다.
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지식을 많이 구합니다. 다들 교육을 받으려고 대학을 가려고 합니다. 대학원도 가려고 합니다. 지식은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할 것은 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식을 바로 쓸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식과 과학이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과 공포 가운데서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원자탄 시대, 미사일 시대에 사는 우리는 큰 전쟁만 나면 어느 나라에 가도 피난처는 없습니다. 이 과학의 지식과 기술로 이루어진 핵무기를 잘못 쓰면 전 인류가 멸망을 당할 위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만 구하면 안됩니다. 이 지식을 바로 쓸 수 있는 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물질을 구합니다. 경제발전은 필요합니다. 돈도 필요합니다. 인간의 육신생활은 물질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물질을 바로 쓸 수 있는 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물질을 바로 쓰지 못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까지 망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만 구하여서는 안됩니다. 물질을 바로 쓸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권세와 권력을 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권력은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권력을 꼭 바로 써야 합니다. 권력을 바로 쓰지 못하여 자신과 민족과 국가를 망친 권력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무솔리니나 히틀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악덕 권력자들이었습니다. 권력만 구하면 안됩니다. 그 권력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사랑을 구합니다. 사랑은 물론 귀합니다. 여기에도 사랑을 바로 구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없는 사랑은 자신도 망치고, 가정도 망치고, 또 사회에 해독을 끼칩니다. 사랑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혜는 무엇입니까? 몇 가지로 실제적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지혜라고 하는 말은 지식이라는 말과는 뜻이 조금 다릅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말은 아는 것의 총량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혜는 지식을 바로 쓰며 범사에 바른 길을 택할 줄 아는 지력 또 슬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많지만 미련한 사람이 있고, 지식이 좀 부족하지마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만은 부족하고 이 지식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슬기까지 얻도록 힘써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혜는 무엇을 분간, 혹은 분별할 줄 아는 슬기를 의미합니다. 참과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슬기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이 분별의 슬기가 꼭 필요합니다. 선이냐 악이냐를 분별하여 선의 길을 걷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이 잠간이냐, 영원한 것이냐를 분별하여 순간적인 향락, 유익보다도 영원한 행복을 추구할 줄 아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욱더 복잡하여 집니다. 세계 정세를 보나, 나라들의 정세를 보나, 교회 정세를 보나 지혜로운 지도자가 필요하고 교회 안에서도 지혜로운 장로, 권사, 집사, 교인들이 요구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지혜를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습니까? 지혜 탐구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을 읽고 배우는데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에게 지혜가 있게 하는 책입니다. 구약가운데 특별히 잠언이나 전도서를 지혜문학이라는 명칭으로 부릅니다. 특별히 지혜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잠언 4장 7절에는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합니다. 9장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또 시편 53편 1절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여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없다고 부인하는 자는 가장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온갖 악을 자의로 행합니다. 악을 행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며 선을 행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또 신약에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결론으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지혜가 예수님 안에 또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그대로 행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매일 성경을 읽고 배우세요.
제가 이런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요사이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사다 두기는 하지만 읽지는 않아서 성경 위에 먼지가 많이 쌓여 있다고 하면서 만일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성경책 위에 있는 먼지를 일시에 같이 턴다고 하면 먼지가 너무 많아서 한 이삼일 동안 해가 가리워 질 것이다.
여러분의 성경은 어떻습니까? 매일 성경을 읽고 배워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세요.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하세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세요. 무엇이나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교훈과 그 뜻대로만 사세요.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솔로몬 왕과 같이 세상의 다른 것들보다도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어떤 일을 당하든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기 필요한 지혜를 항상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면 후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미신도 많고, 거짓 종교도 많고, 거짓 선지자나 지도자들도 많습니다. 이때에 우리가 신앙의 바른 길을 걸어 갈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사람들을 삼가라"(마10:16)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교훈을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배우고,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여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신앙의 바른 길을 걸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의 가치
잠언 3:13-17 / 양재천 목사
1. 가장 귀한 보화, 지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이 이 세상에 어떤 보화보다 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정금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은’만 해도 귀한 보석인데 ‘정금’, 곧 ‘순금’은 얼마나 귀한 것이었겠습니까? ‘진주’는 ‘순금’과 함께 당시 최고의 보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는 당시 최고의 보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며 보석뿐만 아니라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 곧, 우리 스스로가 여기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보석 카탈로그를 총동원해도 지혜와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기자는 무엇 때문에 지혜에게 이런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마13:44절 말씀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보화가 숨겨진 밭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밭에 숨겨진 보화가 바로 우리가 영원히 사모할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래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지혜안에는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소망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가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려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팔아야 합니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가질 때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정욕입니다. 탐심입니다. 사욕입니다. 방탕입니다. 지식과 교만과 명예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보화를 찾아다닌 한 나그네는 이것들을 다 팔아 하나님의 보화를 자기의 소유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2. 장수와 부귀
이런 궁극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더불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는 자가 누리게 될 풍요의 복도 함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고 했습니다. 빈손이 없습니다. ‘양손에 떡’이란 말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혜는 떡에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부귀와 영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해도 만약 장수의 삶 즉, 건강의 삶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주님은 이를 실제로 증거해주십니다. '내가 오늘 밤 네 영혼을 찾아가리니 네 소유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특히 시16:11절 말씀에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고 했는데 이 말씀과 비교할 때 주의 우편의 영원한 즐거움이란 결국 ‘영원한 삶, 영생의 삶, 장수의 삶’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왼손에는 부귀가 있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의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부귀는 한자로 부(富)와 귀(貴)인데 부는 물질을 말하고 귀는 명예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순종하는 자는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자가 누릴 복은 결국, 그 손이 수고한대로 먹고 누리게 될 이 땅의 복입니다. 속이는 자의 삶은 결국, 그 끝이 멸망의 길임을 성경은 한결 같이 말씀하고 있지만 정직한 자, 의로운 자의 삶은 결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는 삶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부요를 간구하는 기복적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3. 즐거운 길, 지름길
그래서 지혜를 얻은 자의 길을 즐거운 길입니다. 아름다운 목적지가 반드시 있고 그곳을 바라보면서 소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즐거움이 있는 길입니다. 가면 갈수록 그 소망이 가까이 오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그 즐거움이 더 해집니다. 또한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지름길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말하는데 그 길이 모두 평강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평강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있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잠언은 이 지혜를 얻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14절 말씀에도 ‘얻는다’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광부들이 갖가지 채광기술을 고안해 지하 깊숙이 묻혀있는 광물들을 잘도 찾아내듯이 그렇게 지혜를 우리의 얄팍한 기술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지혜가 있는 장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멕시코 역사에 보면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로 결정된 사람에게 열두 달 동안 온갖 부와 향락을 마음껏 누정한 지름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영원히 즐거울 생명의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은보다, 정금보다, 진주보다 귀한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는 영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혜의 근본
잠언 3:13-18 / 292장(통415) / 대전서부교회
①옛날에 한 임금이 외아들인 왕자를 위하여 가장 지혜로운 며느리를 고르고자 이런 방법을 썼다. 임금은 며느리 감으로 입후보한 처녀들을 궁전에 모으고 시험 문제를 제시했다. “너희들에게 쌀 한 되씩을 주겠는데, 이것만 가지고 한 달을 살다가 다시 이 자리로 모여라.” 참으로 억지 명령이었다. 대부분의 처녀는 중간에 포기하고 더러는 멀건 미음을 쑤어 먹으며 참았으나 뼈만 남아 아름다운 모습이 간데없이 사라졌다. 한 달이 지나자 처녀들은 모두 궁궐로 돌아왔는데 그들의 몰골은 인력거에 실려 올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아름답고 건강한 처녀 하나가 힘차게 걸어왔다. 처녀는 뒤에 쌀을 가득 실은 꽃수레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처녀는 임금에게 아뢰었다. “내려 주신 쌀 한 되를 모두 떡을 만들어 팔았더니 쌀 두 되가 되었나이다. 떡이 하도 잘 팔려 남은 돈으로 잘 먹고도 또 남았기 때문에 쌀 한 달구지를 헌납하나이다.” 임금은 이 처녀를 며느리로 삼았다. ②옛날 칼리프(이슬람교단의 지배자)에게 평생을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광대가 있었다. 어느 날 광대가 실수를 하여 칼리프는 사형을 명했다. 그러나 칼리프는 잠시후 한 평생 자신을 위해 수고한 사람을 그냥 죽이기에는 안됐다는 마음이 들어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빠지기 전에 죽을 방법을 선택하라고 자비를 베풀었다. 시간이 다 되어 묻는 왕에게 광대는 웃으면서 “예, 늙어죽겠습니다”고 대답하여 위기를 피했다고 한다. ③옛날 그리스에 유명한 애꾸눈 장군이 있었다. 장군은 죽기 전에 자기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난 화가들을 불러 초상화를 부탁했다. 장군은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또 어떤 화가는 장군의 속마음을 짐작해 양쪽 모두 성한 눈을 그린 것이다. 고민하고 있는 장군 앞에 아주 어리고 이름도 없는 화가가 장군의 초상화를 그려보겠다고 나타났다. 장군은 미심쩍었지만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매우 흡족해 했다. 그 화가는 장군의 성한 눈 쪽의 옆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④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칼라일(Thomas Carlyle)은 ‘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행운과 행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없다는 것이다.’고 했다.
1. 성경은 지혜에 대하여 많은 교훈을 준다.
1)세상 제일의 보물은 지혜라고 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4:7)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잠3:14-15) 2)지혜를 소유한 자는 인간이 해 아래서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인간이 해 아래서 바라는 것 세 가지는 장수와 재물과 존귀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3:18)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잠3:16)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잠3:35)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4:8) 3)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지혜를 버리지 말고 지혜를 사라고 하였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잠4:6)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23:23) 4)이렇게 지혜가 중요하다. 솔로몬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천번제를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솔로몬의 소원을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대하1:10)라며 지혜를 구하였다. 지혜를 구한 그에게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재물과 영광을 함께 주었다(대하1:12). 5)지혜는 인생의 모든 보물 창고를 여는 마스터 키(master key)다. 이 키를 소유한 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의 삶을 생명과 번영과 존귀와 화평으로 이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문제도 지혜가 있으면 그 문제를 복으로 바꿀 수 있다. 이 귀한 지혜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2. 만사 뿌리가 중요하다.
먼저는 뿌리가 죽어있던지 부실하면 죽던지, 잘 자라지 못하고, 결실하기기 어렵다. 또한 그 뿌리가 어디에 놓여있느냐가 중요하다. 식물은 뿌리가 어디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결실이 달라진다. 장수와 재물과 영광과 화평을 낳는 지혜의 뿌리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根本)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이 구절에 지혜를 얻는 비결이 있다.
1)지혜의 시작은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는데 있다. 지혜의 뿌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데 있다는 말은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지으시고, 지금도 그 모든 것을 운행하신다고 성경은 주장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1-2).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까지도 지으시고 주관하신다고 주장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지혜가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1:7).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함이 지혜의 시작이 된다. 하나님과 잇대어 사는 것이 지혜를 얻는 첫 번째 비결이다. 여러분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가? 그를 믿고 의지하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참으로 복된 자요 참 지혜를 소유한 자다.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알고 믿고 의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지혜를 갖고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고 의지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지혜자다.
2)지혜의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를 얻는 두 번째 비결이다.경외(敬畏)라는 말은 원어로는 ‘이르아’, 영어 단어는 ’fear’로 두려움을 뜻한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를 얻는 두 번째 비결이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①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잘 듣는다. 영이신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으로 나타내셨다.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음으로 얻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으로 구분 할 수 있다. 계시된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기록된 말씀은 성경이다. 선포된 말씀은 바로 내가 적을 둔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다. 이 말씀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는 자는 하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영혼이 소성하고, 풍요로워지고, 영광을 얻게 된다(사55:1-5). ②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지켜 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을 때도 큰 힘을 발휘하지만 행할 때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듣고 행하는 자가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이 사람은 지혜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하는 길이 있다. 성실함으로 신앙생활에 참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