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없는 길(3)/ 일타스님
그녀가 만석꾼인 안부자 집에 태어날 때 그 집은 대구 삼덕동에 있었는데, 허름한 노인이 찾아와서 대문을 두드리며 묻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이 댁에서 여자 아기를 낳았는지를 알아보고자하여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부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노인을 사랑채로 불러들인 다음 내실로 사람을 들여보내 알아보게 한 결과, 방금 딸을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허름한 노인은 다시 물었습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아기의 오른쪽 발 복숭아뼈 밑에 빨간 점이 있는지를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갓난아기의 발에 불을 비추어 살펴보니, 과연 빨간 점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노인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부자가 곡절이 있음을 알고 약주를 대접하며 그 사연을 물었습니다.
"저희 늙은 내외는 저 수성못가에 살고 있습니다. 일찍이 아들을 하나두어 결혼을 시켰지만, 아들은 가난한 것이 한이라며 북만주로 돈 번다고 가서 행방불명이 되어버렸고, 홀로 남은 며느리만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어찌나 효부였던지 시부모를 모시는 정성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며느리는 우리 노부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수성못 가에 자그마한 선술집을 차렸습니다. 술을 받아다가는 찬 물을 타서 마을 사람들한테 팔아 우리 부부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습니다. 젊은 과부가 술을 판다고 하니 이런 저런 남자들이 모여들어 술을 사 먹었기 때문에 세 식구는 끼니 걱정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며느리 덕에 편안히 살았지만, 며느리는 추운 겨울에도 솜옷 한 벌 제대로 못해 입고 맨발로 지내다 보니 감기가 들었고, 감기가 폐렴이 되어 기침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하더니, 병원에 가서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지난 봄에 죽어버렸습니다.
며느리가 죽고 난 뒤에 저희 늙은 내외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불쌍하게 죽은 며느리 생각을 한시도 놓지 못하였는데, 어제 저녁 꿈에 며느리가 나타나 절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불효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오늘 산 너머 부잣집에 태어납니다. 제가 아버님 어머님을 꼭 도와드릴 것이오니 너무 걱정마옵소서.'
그리고는 일어나면서 복숭아뼈를 가리키는데, 보니까 빨간 점이 있었습니다. 잠을 깨어 아내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녀도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도 밝고 며느리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 발길이 저도 모르게 이 집에 미쳤습니다만, 이제 말씀을 듣고 보니 틀림없는 저희 며느리의 환생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석꾼 안부자는 노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한데다, 구중궁궐 같은 만석꾼 집 안채에서 방금 낳은 아이의 오른발 복숭아뼈 밑에 붉은 점이 있음을 알아맞힌 것 등을 미루어 노인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부자는 당장 필요한 생활용품도 주고 좋은 논 열마지기를 주어 노인 부부의 생계를 도와주었습니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안교수의 어릴 때 별명은 '술집 며느리'가 되었고, 할아버지인 안부자가 야단을 해서 나중에는 부르지 않았지만 네 다섯살까지는 '술집 며느리'라고 놀려서 많이 울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이야기를 끝낸 다음 안교수는 말했습니다.
"스님들께서 전생 이야기를 자꾸 해주시니 그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틀림없습니다. 보살님이 전생에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님을 봉양한 공덕으로 금생에 만석꾼 집에 태어난 것 아니겠습니까?"
"구정물에 손 한 번 넣어 본 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상추쌈조차 옆에서 싸서 주면 받아먹기만 했습니다. 평생을 무엇이나 뜻대로만 하고 호강만 하였는데, 결혼해서 남편을 잃고 이제는 하나뿐인 자식까지 잃었으니, 이 모두가 술을 판 과보요, 전생의 인과응보인 것 같습니다."
시부모 봉양을 지성으로 한 복은 복대로 받았지만, 술장사를 하면서 좋지 않은 업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아들을 일고 정신을 잃는 업보를 받은 것임을 그녀는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신의 인과응보를 분명히 깨달은 안교수는 완전히 정상인으로 돌아와, 현재 매우 의미깊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길(3)/ 일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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