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11/12 까지 19일간의 한국여행의 느낀점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본다.
1. 한국서 유심카드로 한국번호 (KT)를 받자 말자 제주세무서에서 밀린세금 1250만원을 빨리 납부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내가 3주간 사용할 번호는 과거 누군가 사용한 번호를 (내생각에) 중간 브로커들이 대포번호처럼 팔아 먹는것.
미국카드를 쓰지 않기로 했기에 현찰로 지불하면 항상 “현금 영수증 필요하세요””포인트 적립하세요” 말을 듣는다.
영수증은 필요없고 포인트를 적립할수 없는것이 그회사 사이트에 등록할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전번으론 본인인증이 불가하다. KTX 같은 교통도 예약이 불가하다.
외국에서 얼마나 살았든지 무슨일을 하고 있든지 신용점수가 좋든지 상관없다. 시중은행 미국지점을 오래 이용해도 국내 신용카드 한장 신청할수도 없다. 일단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한국의 경제에 부담을 줄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자(?)이고 그냥 확실하게 현찰내고 그범위내에서 서비스받고 만족하라는 말인듯.
여행자로 큰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한국이 그동안 그리고 지금도 경제범죄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 뉴욕에 비하면 한국음식이 아직도 저렴하다. 하지만 한국직장인들의 평균수입을 기준하면 물가가 많이 올랐다. 특히 빵값이 비싸다. 수입한 밀가격이 올랐고 버터등 유제품이 올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오른 수입물가이상으로 대기업이 이익을 챙기는 듯하다.
지하철역사에 있는 노브랜드 빵집도 싸지 않다. 어묵도 튀김도 마찬가지이다. 어디나 서민들에겐 먹고사는게 가장 큰 문제이다.
3.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하철에선) 무서울 정도로 말이 없고 (핸펀만 들여다 보거나 눈감고 헤드폰으로 뭔가를 듣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 2호선 먹자골목의 식당에서 보고 들은 젊은이들은 무척 말이 거칠고 누군가를 계속 블레임(blame) 하고 있다.
그것이 직장 상사이든 미래가 없다고 자기를 무시하는 여친이든 서울에 방한칸 마련해 주지 못한 부모이든 당선전 뿌린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이든. 술기운에 드러나는 그들의 내면엔 화가 무척 많은것 같다.
편이점이나 식당에서 젊은 알바생들이 “손님 결재를 도와 드릴까요 ?” 라고 말할때 “빨리 돈내라는 얘기죠!” 하고 농담하면 그들은 쓴 웃음만 짓는다. 농담도 할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어 보인다.
비록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누가 이땅의 젊은이들을 이리 힘들고 아프게 만들고 있는가 ?
4. 주중 낮에 지하철을 타보면 등산백 매고 산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 그룹으로 다니는듯. 그들이 어디를 가든 산행을 마치면 지하철역 근처 식당에서 회식을 하고 60대이전들은 노래방이나 2차를 가는 경우도 있지만 60대 후반을 넘어가면 식사후 커피숍에 담소하고 헤어진다.
그런데 식사때 대부분 술을 먹기에 커피숍에 대화는 담소가 아니라 목소리가 엄청커진다. (술취하면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것은 당연)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얘기들은 대부분 정치얘기이고 정치인들 욕이다. 노인이라고 지하철 공짜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나역시 저런 노인들처럼 늙어가겠지만 다행인것은 한국에 내가 없다는것.
내가 낳은 자식도 내말을 듣지 않는데 우리가 누구를 감히 바꿀려고 하는가 ?
5. 커피숍이 너무 많다. 누가 우수개 소리로 한국사람들은 커피에 환장한 민족이라더니.
블랙커피란것은 없고 무조건 아메리카노로 통한다. 나는 블랙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고 저지방우유를 타서 마시는데 한국에선 이것이 불가능하다. 일단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우유를 좀 줄수 있냐고 물으니 그럴려면 처음부터 라떼를 시켜야죠하고 젊은 종업원이 핀잔을 준다.
돈 천원 아낄려고 머리 쓴 불쌍한 노땅이 된 기분이다. 커피숍이 많고 메뉴가 많아도 그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소비자의 개인취향은 공급자(기업)가 결정한다.
6. 한국은 굉장히 안전하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은 곳이란 느낌을 받았다. 어딜가도 밤늦은 시간이라도 안심하고 다닐수 있고 비상시에 공무원들의 서비스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신속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버스, 지하철, 거리, 공원…. 어디서라도 누구에게 말을 걸면 무척 경계하는듯 하다.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면 결국은 자신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학습효과가 철저한듯.
7. 호텔에서 밤에 네플릭스를 통해 한국드라마를 여려편 보았는데….. 결국은 돈이 관심이고 주제이고 결론이다. 돈이 권력이고 돈이 남녀관계를 포함해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스토리들이다.
돈을 차지하거나 돈을 가진 상대와 결혼하거나 돈을 잘버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자식교육에 미친 부모들이나 아니면 돈을 격하시켜 ‘공중에 나는 새처럼 살고자하는’ 현대판 마태들의 설교가 주제이다. (마태복음에 공중에 나는 새도 주님이 먹이시는데 우리가 뭘먹고 어떻게 살지를 걱정하지 말라는 귀절)
내가 사는 미국도 비슷하지만 이정도는 아닌것 같다.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에 사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돈이란 권력과 평생 싸워야 하는 윤회의 구속이다.
8. 한국티비는 채널이 많아도 내용은 세가지이다. 뉴스와 연애프로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계속 강조하는 세일즈방송. 파는 물건은 달라도 그들의 레파토리는 항상 같다.
내가 있던 기간에는 뉴스의 내용도 크게 두가지 였다. 돈과 연예인 그리고 사기의 주인공으로 전청조와 남현희가 등장했고 신당창당이냐 아니냐를 두고 젊은 정치인과 회유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연애프로는 매일 그사람이 그사람인듯 한데 별로 우습지도 않은 얘기로 웃고 울고 감탄하는 과대연기만 계속된다.
이거 몇년전 한국에 왔을때 보았던 것들 아닌가 ? 시간은 흘러도 티비의 내용과 관심은 그대로 인것 같고 인간욕망의 개정판을 계속 보는것 같다.
3천년전 유대민족의 왕이였던 솔로몬이 전도서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지.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니 해 아래에 새것이 없다고. 그렇다면 티비는 새것을 알리는 뉴스(News) 가 아니라 이전 것을 상기시키는 올스 (Olds) 라고 해야할듯.
9. 한국의 호수공원중에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라하여 광교호수공원을 찾았다. 솔직히 일산의 호수공원이 더 마음에 든다. 광교는 수원과 용인의 경계지역을 강남과 연결시키는 대형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결과로 탄생한 부동산 투기지역인 느낌을 받았다.
호수공원을 둘러싼 브랜드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커피숍과 식당들이 가득하다. 일단은 현재집가격이 분양가이상이 되면 거주자들은 싫어할 이유가 없고 이곳이 천하명당이라는 자부심도 가질수 있지만 이런 저수지와 호수지역을 고층아파트지역으로 바꾸기 위해 드러난 곰의 재주뒤에 목돈을 챙긴 인간들도 많았을듯.
10. 한국이 많이 변해도 상전벽해란 말이 나올정도의 방문지역은 부천이였다. 상동역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변해도 너무변했다. 미국 오기전 80년대 중반 구로구에 살았기에 부천은 자주 가던 지역이였다. 그땐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사람들’에 나오는 서민적인 여유와 순수함도 있었던 시절이였다. 모두들 가난했으니까. (소설은 80년도 중반 부천시 원미동을 배경으로 함)
그소설에서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주인공에게 어느날 김은자라는 전주의 재래시장 만두집딸인 고향친구가 전화를 한다. 그녀도 부천에서 살고 있으니 꼭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주인공은 시간을 내기 힘들고 별로 만날 마음이 없어 약속을 몇번 미룬다.
그런데도 그친구는 계속 전화를 했고 내일밤 자기가 일하는 곳에 꼭 오라고 한다. 은자는 부천나이트에서 미나박이란 가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내일이 고별공연이라고. 그동안 돈을 좀 모아 신사동에 스탠드바를 열었다고 했다.
밤무대가수로 일하면서 기타를 치는 남자를 만났고 서로 가진게 없어 월세방에 살림을 차렸는데 임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둘수 없어 무대에 오를때마다 불러오는 배를 감추기 위해 천으로 배를 묶었는데 나중에 애가 뱃속에서 죽었다고.
주인공은 다음날 밤 택시를 타고 은자를 보러갔고 나이트의 구석에서 은자의 마지막 공연을 본다. 그날 미나박이 부른 노래가 한계령(양희은곡)이다. (EBS 오디오북 버전)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30-40년전 부천에 살았던 사람들도 지금의 부천인들도 한줄기 바람처럼 살고 싶었겠지만 산을 내려가 도시에 살아야만 했던 미나박들이다. 불야성같은 이도시의 밤에 녹아 있는 슬픈 시간들은 잊혀졌지만 김은자로 돌아와 그시간을 기억하는 이런 여행도 나에겐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