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경북 구미의 왕산 허위선생과 박정희
(2019년 민족문제연구소 수련회를 다녀와서)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박종선
2019년 7월 4일 목요일
(사)민족문제연구소는 전국적으로 13,000여명의 회원이 후원하고 있으며 30여개의 지부․지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05년 설립된 부천지부는 220여명의 후원회원이 있습니다.
18년간의 노력으로 <친일인명사전>이 편찬하였으며, 2018년에는 그동안 축적되었던 자료들을 전시할 수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하였습니다.
본부와 각 지부․지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에 대해 회원들게 보고드리고, 지부간 활동과 사업을 공유하며 특히 활동을 열심히 하는 지부에 공로패를 수여하기 위해 1년에 한번 전국회원 수련회를 갖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설립되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구미지회에서 수련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구미를 처음 가는 길이라 수련회를 다녀와서 느낀점에 대해 몇자 적고자합니다.
첫 번째, 왕산 허위선생 가문의 독립운동 내력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왕산(旺山)”
서울 동대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이어진 도로 이름이 “왕산로”입니다.
허위선생은 1895년 명성왕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키셨으며, 특히 1908년에는 의병총대장이 되어 서울진공작전을 수행하시어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셨습니다. 그 진격한 도로를 왕산로로 지었습니다. 구미출신의 왕산선생의 호가 서울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허위선생께서 1908년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신 이후 아들들과 수많은 후손들은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상해로 진출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이어갑니다.
왕산의 손위 형님 성산 허겸은 1922년 71세의 고령에도 부하 30명 이끌고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던 중 동대문경찰서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십니다.
허위선생의 제자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의사는 백야 김좌진장군과 의형제를 맺고 무장독립투쟁을 이끌었으며, 박상진의사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약산 김원봉선생은 ‘의열단’을 조직하여 일제 고관대작과 친일파를 처단합니다.
허위선생의 3남 허준은 백야 김좌진장군과 같은 집에 살면서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5촌 조카 허형식은 만주의 백산흑수(白山黑水)사이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인 영웅으로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겸 총참모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광야’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육사의 어머니가 바로 범산 허형의 딸인 허길이며, 허형선생은 허위선생과 사촌이 됩니다. 즉, 이육사선생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왕산 허위선생과 사촌입니다.
한마디로 왕산가문은 전체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독립운동가가 많아서 그 분들의 업적이 혼동이 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립운동사에 있어 명문가문입니다.
그 분들의 희생과 노력에 비하면 우리에게 알려지고, 알고 있는 내용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겨우 6분만 공훈은 받으셨다고 하니 국민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때입니다.
두 번째, 왕위 허위선생의 후손들 사진입니다.
‘100년만에 만난 사촌들’이란 제목으로 걸린 사진 속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미국, 키르키스탄 등 세계 여러곳에 흩어져서 살고 계시는 후손분들이 모습이 있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시대의 거대한 흐름 앞에 친일파처럼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왕산의 아들들은 해방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구소련과 북한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자랑스런 조상들을 두셨지만 기억해주지 않은 조국을 원망하지 않고 굳굳하게 살아오신 후손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
이제는 우리들이 이 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기억해야합니다.
세 번째, 친일파 박정희전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생가터 부근에 조성되고 있는 박정희기념관과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에 1,000억이 넘는 혈세가 투입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박정희전대통령을 쿠테타를 통하여 정권을 잡고 3선개헌을 통하여 18년간의 독재정치를 하였지만 우리나라의 산업과 발전을 이끈 대통령으로 기억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삶에는 1939년 만주국의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하고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1942년에는 일본육군사관학교까지 졸업하고 해방전까지 중위로 복무하여 독립군을 탄압하고, 해방이후에는 남로당 활동을 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희전대통령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이제는 박정희전대통령의 일생을 모두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함께 알려야 하며 그의 삶에 대해 국민들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도록 맡겨야 합니다. 언제까지 숨기고 찬양만 해서 되겠습니까?
해방이 된 후 69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공존하는 구미!
독립운동과 친일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삶속에서 진행중 입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끊임없는 고민을 할때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1BC475D1F4E932E)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E17475D1F4E9318)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FD7475D1F4E9431)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576475D1F4E950A)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6AA475D1F4E973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4A5D475D1F4E992A)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632475D1F4E9C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