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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필요해 6화] 오지랖의 습격에 대처하는 자세 '자존감 키우기'
이상하게 군대에는 오지랖이 넓으신 분들이 많다. 특히 신병 친구들이 오면 그 오지랖 프로세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성격, 취미, 말투, 식습관, 목소리,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모든 것을 파악한다. 어쩌면 내가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거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주변에서 쿡쿡 찔러대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회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 때문에 참았던 말들을, 군대에선 돌직구로 던져주기 때문이다. 눈치가 없어서 사회에선 모르던 내 단점과 습관들을 속속들이 알려준다. 다리를 떤다던가, 음식을 소리내어 먹는다거나, 손이 족발처럼 생겼다던가(?) 등 말이다. 여기서 몇가지만 고쳐도 인간이 갱생이 되어 제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오지랖의 특징이 '지적질'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그냥 다 욕이다. 선임이라서 '어머머 이색히...'라며 따귀라도 갈겨주고 싶은 말을 들어도 뭐라 할 수도 없다. 계속 듣다보면 '내가 이거 밖에 안되나...'라는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나만의 장점이나 특징이었던 것들도 잃고는 한다. 물론, 민폐스러운 단점들은 고쳐야 겠지만, 나의 정체성이나 나만의 특징들은 잃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캡슐로 보호해서 살아서 장(?)까지 가야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이면 내가 가지고 있던 빛을 잃을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춰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너의 시선이 느껴져...
왜 우리는 그렇게 오지랖을 의식하는 것일까? 두세살은 어린 선임이 "나이를 어디로 다 드셨나..." 같은 파리 더듬이 빠는 소리를 늘어 놓아도 쉽게 이성적으로 무시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저런 소리들이 욱!하는 분노를 넘어 마음의 상처가 되고는 한다. '내가 나약한가?'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사실 시선은 매우 강력한 권력이다. 항상 감시받는 느낌만큼 괴로운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심대상으로 분류되어 온갖 집중을 받는 상황에 '무시'를 받고 '인정'도 못받는 상황이 되면 그것보다 슬픈 상황은 없다. 신병 초기에 힘든 것이 물론 업무가 힘든 것도 많지만, 털어놓고 기댈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주변이 전부 시선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얼어붙은 듯 꼼짝 못하게 된다는 것은 타인과 나 사이에 지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선은 권력의 관계이다. 타인이 우리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은 모두 시선을 통해서이다.
- 박정자, <시선은 권력이다> 中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보스턴, 1890)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이런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中
불난 집에 물(?) 끼얹는 법
가장 중요한 방법은 내 스스로 보호필름을 붙이거나 필터링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지랖의 습격'이 신병때는 상처로 다가오지만, 계급이 올라갈수록 짜증을 유발한다. 쉽게 말해 '화'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꼭 '오지랖' 뿐일까? 이번 고비가 지나면 다음 고비가 오는 나날들속에 '화'는 이미 우리와 죽마고우, 지기지우, 자웅동체(?)가 되어버렸다. 그 유명한 네로(검은 고양이 아니다)의 스승이었던 루시우스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 고찰을 하였다. 화의 원인은 염장꾸러기 선임이나 오늘 식당메뉴가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부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화'를 인정하는 순간 더 크게 키우고 결국은 내 손해다. 무조건 '참자'라는 말이 아니다. 감성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화의 원인은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쉽게 믿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명백하고 확실해 보이는 것도 그 자리에서 바로 승인을 해서는 안 된다. 더로는 거짓이 진실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판단에 앞서 반드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자명해진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화에 대하여> 中
무엇보다 공정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화가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더 고집스러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심각하게 화가 난 것이 그 화의 정당성을 입증 하는 것인 양, 그 화를 붙잡고 자꾸만 더 크게 키운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화에 대하여> 中
목적지를 늘 잊지 말자
가장 확실한 정답은 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이 카레를 했는데 밥이 없는 것 처럼 황당하고 슬픈 상황이라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다.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사형을 선고를 받는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불편한 길을 택했기에 죽음까지 맞이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확신과 진실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길을 몰라 묻고 다녀도 좋고, 길을 잃어서 헤메도 좋다. 다만 목적지는 늘 잊지 않아야 한다. 꿈, 가족, 연인 등 각자의 목적지 말이다. 그러한 확신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웃으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 알베르 카뮈, <이방인> 中
내려 놓을 건 내려 놓자
미래도 불투명하고, 좋았던 일들도 전부 과거일 뿐이고, 지루하기보다는 외롭고, 무섭고 서글퍼지는 기분.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TV에서 웃고 떠드는 개그맨들도 아마 이런 감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니 말이다. 모든 상황을 혼자만 생각하던가, 주변의 의견만 듣고 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온갖 집중을 다하는 고민거리도 결국은 삶의 수 많은 페이지 중 어느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다만, 지금은 '군대'이기에 밖에 보다 조금 더 심각하게 느껴질 뿐이다. 무겁게 혼자 다 들고 있지 말고, 내려 놓을건 내려 놓고 주변에서 힘들어하면 좀 도와주자. 혼자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 보면, 옆에 가서 얘기하며 함께 밥이라도 떠 먹여주고(?) 말이다.
지금 우리의 고민은 인생이란 수많은 페이지, 수많은 사진들중에서 하나 일 뿐이다.
자존감과 관련된 책들
박정자. 2008. <시선은 권력이다> 기파랑.
알랭 드 보통. 2011. <불안> 은행나무.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2013. <화에 대하여> 사이.
알베르 카뮈. 2011. <이방인> 민음사.
알베르 카뮈. 1997. <시지프 신화> 책세상.
헤르만 헤세. 2009. <수레바퀴 아래에서> 민음사.
아리스토텔레스. 2013. <니코마코스 윤리학>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