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월 친구 수진이가 지금의 남편 용준씨를 논산훈련소로 배웅하는 길을 내가 따라나섰다
남친을 떠나보내고 올 친구의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해서 나선길였다
나는 처음보는 훈련소의 낯선 풍경이 재미나기도 하고
그곳에서 만난 대학 동기들도 반갑고 했지만 친구는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몹시 울적해 했다.
그 때 그 기차에서 만난 카톨릭신학생
기차 창 밖을 내다보며 묵주를 만지작 만지작 하는 모습이 기독교인인 내게는 생소했다
염주와 다르다는 것은 알았다.
순천역에서 내려 여수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탔는데 누가 옆자리에 앉기를 청한다
"웬떡이냐 했죠" 이렇게 농담하셨지만 저는 내심 살짝 긴장하고 경계를 했다
그러니까 "저 나쁜 사람아녜요. 카톨릭신학생이고 신부될 사람이니까 안심하세요!"라고 얘기하셨겠지
내가 받은 인상도 선했고 느낌도 편안했으니 옆자리에 앉으시라고 비켜주었을 것이고
그렇게 만남이 시작되었다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오후 5시 여천 용기공원에서 16년 만에 다시 만났다
27살과 25살, 그리고 이제 41살과 43살
그때의 여리고 장난기 있는 웃음은 온데간데 없고 잘 자리잡은 단단하고 굳건한 바위가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외모의 변화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듯이 내면의 변화역시 내가 다 느끼지 못할 만큼 깊이있게 성숙되었을 것이고 사제로서의 지난 삶 가운데 다듬어지고 다듬어져서 모난 곳 없기 곡선을 그리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리라
편안하고 진솔하고 진지하고 따뜻한 사람의 냄새다
저녁 식사 전에 소호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커피숍에서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잠시 생각했었다 지금의 내 처지를 그대로 솔직히 고백할건지 감추어 둘건지..
딸애와 상의 끝에 솔직하기로 했다 둘러대는 것 보다는 그 편이 16년만에 이 먼곳까지 나라는
작은 존재를 찾아와 준 그분에 대한 예의라고 결론내리고 덤덤하게 털어놨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많이 컸겠네요! 라고 말했다
여수 정영희는 잘 살거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지금이 그 때인가보다 새로운 변화를 앞에 두고 또 ,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는 그 때
그리고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였는가 보다
내 마음의 정리는 다 되었다 그걸로 됐다 여타의 다른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다만 나는 하나님 앞에 앉겠습니다
내 영혼을 정결케 하시고 내 마음을 정직하게 하소서
나와 내 가족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름다운 축복의 통로가 되어
아버지의 사랑이 흘러가 적시는 길이 되게 하소서
안이함과 이기와 욕심에 젖지 않게 하시고 나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소서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서른에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주일날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금요일 미사가 끝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해요
그 때부터는 온통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기쁘게 해줄까를 궁리하고
토요일은 서울에 가서 한아름 새로운 자료를 안고 돌아와서 선생님들을 드렸어요
한 달에 한번은 직접 편지를 썼죠 300통의 ~ 주일학교 아이들이 120명에서 240명으로 늘었어요
가는 성당마다 아이들이 늘었어요 내가 사랑한다는 걸 아이들이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학교 운동회 때에는 신부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같이 뛰고~
그러면 아이들이 우리 신부님이라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할 떄 그 빛나는 얼굴, 그 환한 얼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이 아이들에게 일회적이 아닌 꾸준히 해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했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안젤루수 합창단을 만들었고 11년간 그 일을 아이들과 함께 했죠
지난 11월에 다른 분에게 넘겨줄때까지 "
유럽에서 합창단 순회공연 사진들을 싸이홈피에서 본 적 있다
아! 저런게 사랑이구나
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과 나누는 방법을 나는 신부님에게서 보았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기억을 갖겠는가!
맑고 깨끗한 그리고 밝은 사랑,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사시는 분
나도 저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16년 만에 지인을 만났습니다 잊을 수 없는 생의 한페이지를 썼습니다 편안하고 진솔하고 진지하고 따뜻한 사람의 냄새를 맘껏 맡았습니다 행복한 사람이지요~~
특별한 인연이네요 주일 이면 신부님과 수녀님의 배웅을 뒤로 하고 올때 마음이 경건해 지곤 합니다. 이 나이에도 내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 들로 주위를 둘러 볼 뜸이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영희씨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신과 함께 한다는 건 다름 아닌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 참으로 진실한 - 그런 게 아닐까요. 우리는 먼 곳에 있는 신만 바라보면서 가까운 곳의 인간을 모르는 체 하는 건 아닌지.... 신이 바로 내 곁의 한 누추한 인간임을 역설했던 톨스토이의 소설들이 생각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내 곁의 그 한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완성되고, 그게 바로 신이 우리에게 준 의무라는 것,
네 선생님 말씀에서 진정한 양심을 배웠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네 이웃을 돌보기 보다는 이름 올리게에 급급한 현실에 실소 했었습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영희씨!! 이 글 읽으면서 울었어요. 나와 내 가족에게 함께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름다운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달라는 아름다운 기도... 16만에 다시 만난 훌륭한 인격의 멋진 신부님!! 영희씨에게 인생의 그런 아름다운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 두분의 만남이 최근에 가슴아프고 감동적으로 읽은 코엘료의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가 생각나네요. 이미 읽었을지 모르지만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영희씨! 화이팅!!
네~ 아직 읽어보지 않았어여^^ 꼭 읽겠습니다! 사람냄새 아름다운 사람냄새 좋아요~~ 그렇지요~? 우리에게서 그런 향기가 발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