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힘찬이 형이 나눠준 자료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각조 1위로 통과한 선수들이 주 경계대상이었고 *표로 표시되어있었다.
조 2위로 본선에 오른 선수 중에는 강우성만이 유일하게 *표로 분류되어 있었다.
웅이에게 기습적인 일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후의 경기에서는 전경기 무실게임으로 경기를 마쳤다.
분석 자료를 머릿속에 담은 공구탁은 라켓을 꺼내 들고 숙소 옥상으로 향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아이들도 모두 옥상으로 올라왔다.
공구탁이 워밍업을 위한 가벼운 스윙을 시작했고 아이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숨소리만 커져갈 뿐 누구도 장난을 치거나 말을 하지도 않았다.
함께 같은 연습장에서 운동을 하는 동료이기도 하지만, 경기장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서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라이벌임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조금씩 지쳐갈 무렵 민주가 시원한 오렌지 쥬스를 들고 올라왔다.
“힘찬이 오빠가 너무 무리하지 말래.”
아이들은 민주가 따라주는 쥬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공구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톱모양의 반달이 하늘에 걸려있고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빠! 응원해 줄 거지?>
아버지를 떠올리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민주가 다가오고 있어서 간신히 울음을 참아냈다.
체육관은 공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넓은 체육관에 남녀 각 6대씩 12대의 테이블만 놓여있었다.
줄어든 테이블 수만큼 팽팽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장내방송이 대진 추첨을 위해 코치 선생님들을 본부석으로 불렀다.
잠시 후, 힘찬이 형과 선생님이 추첨결과를 들고 아이들 앞으로 왔다.
공구탁과 민호가 1조에, 웅이와 봉구가 2조에 편성되었다.
1조에는 강우성도 있었다.
“일단 조5위 안에만 들어가면 마지막 3차 선발전까지 갈 수 있다.”
“전원 최종 선발전까지 간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알았나!”
“네~!!!”
아이들은 주의사항을 듣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파도~! 파도~! 파이팅~!!!”
선생님과 민주, 힘찬이 형이 아이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아이들은 지정된 테이블로 향했다.
같은 팀끼리의 자체 경기에서는 예상대로 공구탁과 웅이가 승리했다.
나중에 동률일 경우에 대비해 동료들을 구제할 방법으로 3-2의 게임스코어를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구탁은 세 번째 경기에서 강우성을 만났다.
초등 탁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선수였다.
전날 웅이에게 패하긴 하였지만 여전히 위압적인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지난 수개월 동안 강우성을 분석하고 연습을 했지만 관록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세 번째 게임을 내주고 3-1로 승리했다.
강우성에게 악수를 청하자 멋쩍은 웃음과 함께 손을 힘껏 잡아주었다.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라이벌에 대한 우호적인 몸짓처럼 느껴졌다.
경기를 마치고 휀스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아직 경기가 남아 있는지라 인터뷰는 자제하고 있었다.
기자들을 피해 빠져 나오자 힘찬이 형과 민주가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어렵지는 않았어?”
“DVD에서 보지 못했던 서브 때문에 약간 당황했었어요.”
“그래, 나도 보고 있었는데 금방 방법을 찾아내더라. 아주 잘했어!”
공구탁은 힘찬이 형이 들고 있는 리그전표를 보았다.
웅이도 아직 전승을 달리고 있었다.
봉구와 민호도 아직은 큰 무리는 없어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파도초교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태풍의 눈이 되어있었다.
“역시 파도초등학굡니다!”
C중학교 감독선생님이 힘찬이 형과 선수들을 발견하고 다가오며 너스레를 떨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백발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와 함께였다.
“조힘찬 선생님! 인사하시죠. 저희 학교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C중학교 감독선생님은 노신사를 교장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조힘찬입니다.”
“아~ 반가워요. 그...그런데 우린 어디선가 만났던 것 같은데...!”
“선생님의 기억이 맞을 겁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은영 씨를 따라 댁에 갔다가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그래! 이제야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군!”
“오면서 우리 정선생에게 들었는데 군인이시라고...?”
“그 군인이 조선생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
“하던 공부를 마치고 오느라 남들보다 늦었습니다.”
“...훔~!!!...”
교장선생님의 표정에서 복잡해진 심경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