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 말아라. 티끌 같은 세상”
한북정맥4(축석령-임꺽정봉-백석삼거리-호명산-한강봉-챌봉-울대고개-사패산-자운봉-우이봉-상장능선-상장봉-솔고개, 44㎞,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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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산 기슭에 위치한 축석령(祝石嶺)은 의정부시 북쪽 관문으로 이 고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른다. 밤 열두 시, 소주 한잔 걸치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 한북 4구간을 시작했다.
옛날 호랑이가 많아 백 명씩은 모여야 넘을 수 있었다는 백석이고개를 지나 정맥길은 레이크우드 골프장에 가로막혀 좌측으로 우회했다. 미끄럽고 가파른 산허리를 타고 희미하게 산길을 만들어 도로로 내려왔다. 도로를 가로지르고 얼어붙은 논두렁을 걸어 이제 막 잠들기 시작하는 농가를 지났다. 개 한 마리가 짖어대자 소리는 소리를 물고 이어져 금세 동네는 들썩들썩 뒤척였다. 정맥은 개발되어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단지 뒤쪽으로 남아 있는 야트막한 동산은 이곳이 정맥길이었음을 유일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도시는 낮게 엎드린 산들을 타고 넘어 무한 세포 분열 중이다. 숨 가쁘게 살아남은 정맥의 흔적을 더듬어 테미산을 넘었으나 다시 아파트들이 강처럼 흐르고 있다.
새벽 3시쯤 드디어 도시를 가로질러 다시 산으로 들어섰다. 암릉을 타고 오르니 임꺽정봉이다. 봉우리 북동쪽에는 중랑천의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들쑤신 장작불 불씨처럼 양주시의 마을들은 점점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임꺽정의 생가가 있다는 양주의 새벽을 보며 벽초 홍명희의 소설을 생각했다. 소를 잡던 임꺽정의 칼은 비린내를 찾아 관아를 향했고, 백성들의 낫과 쇠스랑은 저녁 한 끼 고봉밥을 위해 산으로 숨어들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에게 저항은 역모였으나 나물죽으로 이어온 목숨들은 다만 꿈틀거릴 뿐이었다. 민란이 지나간 산자락에는 죽어간 자들의 피가 내를 이루었고, 왕과 고관대작들은 피 묻은 병기들을 거둬들여 성을 더 높이 쌓아 올렸다. 그리고 역사는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백석삼거리로 내려왔는데 아직 5시도 안 되었다. 버스에서 산개미님이 싸 온 햇반으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일어섰다. 어디서 접질렸는지 왼발목에 통증이 와서 오른발에 의지해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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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쯤 호명산에 도착했는데 아직 캄캄하다. 가평의 호명산보다 훨씬 아담하다. 조금 더 가니 한강봉이다. 여기의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들어가고, 북으로 흐르면 임진강이 된다. 이곳에서 올린 봉화는 송추를 거쳐 한양으로 길게 이어졌다. 정자에 오르니 북쪽 벌판에 백석읍내가 옅은 수채화처럼 펼쳐졌다. 새벽안개에 푹 우려낸 마을은 이제 막 검은 물이 빠지고 투명하게 깨어났다. 남쪽으로 챌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지나야 할 서울의 큰 산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백구님이 준 파스를 붙였더니 왼발목의 통증이 좀 가신 듯했다. 졸음을 참지 못해 눈을 감고 산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챌봉이다. 제일봉이라고도 하는데, 오두지맥은 이 부근에서 분기되어 서쪽 방향 오두산으로 이어진다. 장명산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한북정맥이 한강의 지류 하천인 공릉천 아래에 있어 공릉천 위에 있는 오두지맥이 진정한 한북정맥이라는 주장도 있다.
몇 개의 잡봉을 넘어 아침 9시 반쯤 울대고개에 도착해 버스에서 아침을 먹었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는 울대고개는 양주시 장흥면에서 의정부시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데, 높고 험하여 넘을 때 답답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꽤 오래 쉬고 나서 사패산으로 출발했다. 장흥송추우회도로 공사로 올라가는 진입로 산 밑자락이 깊게 절개되고 있었다. 밧줄을 타고 올라 40분쯤 희미해진 길을 따라가니 안골에서 사패산으로 오르는 익숙한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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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패산 너른 바위에 앉으면 탁 트인 조망은 어디 비할 바가 아니다. 젖은 머리 위로 겨울 햇살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남쪽으로 닭 벼슬 같은 포대능선의 연봉이 홰를 치면 자운봉에 이르러 모든 울음들은 포개져 거대한 고요가 되었다. 서남쪽 오봉능선 너머로 오늘 지날 상장능선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후미를 기다려 단체사진을 찍고 포대능선으로 향했다.
호젓한 길만 걷다가 오랜만에 많은 산객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자운봉 밑에서 잠시 쉬었다가 우이암 쪽으로 향했다. 도사님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 따라가기가 버거웠지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졸졸 따라다녔다. 전날에도 45킬로 구간을 뛰어 힘들 만한데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썩은 고목들을 꺾고 뽑아내 길을 만드는데 임꺽정이 울고 갈 것 같다. 3년 후 내 다리는 멀쩡할 것인지 장담할 수가 없다. 오봉갈림길을 지나 우이봉을 찍고 북쪽 비법정탐방로에 들어섰다. 지금부터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군사도로인 듯한 우이령고개를 가로지르면 곧 상장능선을 만난다. 상장능선은 굴곡이 제법 있어 쉽지 않았다. 능선의 왼쪽 끄트머리에 솟아 있는 상장봉은 생김새가 우뚝하고 장수와 같은 기상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간 큰 산객들이 지나는지 어마어마하게 큰 통바위 한가운데로 사다리 모양의 줄이 그어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해 봉우리를 끼고 왼쪽으로 우회하는데, 깊이 내려갔다가 다시 상장봉 뒤쪽으로 오르는 너덜길이 장난이 아니다. 다시 능선에 올라 보니 남쪽으로 인수봉, 백운대가 북한산 연봉들을 거느리며 우뚝 솟아 있고, 북동쪽으로 도봉산의 오봉이 다정하게 늘어서 있다. 몇 년 전 바위 타는 사람들 따라 삼봉까지 갔다가 오도 가도 못해 발을 동동거리다 구조대원에 매달려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큰 바위만 보면 무조건 우회하곤 했다.
솔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낙엽이 쌓여 미끄러웠지만 크게 어렵지 않았다. 상장능선을 탄 지 한 시간 남짓 되어 날머리 솔고개에 도착하니 오후 세시 반, 44킬로 15시간이 넘는 긴 산행이 끝났다. 송추IC 근처의 풍년고을식당에서 저번 구간 한이 맺혔던 삼겹살 파티가 벌어졌다. 5시가 넘어 도착할 것 같다는 후미의 연락을 받고 솔별 대장님은 랜턴을 챙겨 상장봉으로 다시 올라갔다. 어둑해질 무렵 후미와 대장님이 무사히 도착했다. 그 이후로도 대장님의 헌신을 깊이 생각하느라 막 떠들면서 술에 취해 갔다. 산개미님은 자울자울, 사인암님은 저번 구간 벌주 마시느라 숨이 가쁘다. 마호님과 대작하다간 사망할 것 같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차에 탄 이후는 기억이 없다.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던 구간, 가장 낮게 밤을 걸었던 구간이 그렇게 끝이 났다.
첫댓글 정맥을 하시면서 좋은인연 오래 간직하실것 같은 손변님을 보게 됩니다.
써내려간 글도 그렇고 시골집 아궁이속의 따뜻한 군불같은 분이라 생각드네요
날머리에서 삼겹살 많이 드셨죠 다음구간 마무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ㅎㅎ 방장님 덕분에 삼겹살 원 없이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기다리던 산행기 즐감합니다.
나중에 책을 내셔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한구간이라도 함께 지원산행을 해야 하는데 그리 될려나 모르겠군요.
이제 본격적인 겨울입니다.
안전산행하세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아이고, 대장님 감사합니다. 겨울철 어느 산행에선가 뵙게 되겠지요~~~
역쉬!손변님 산행기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물줄기 처럼 거칠 것 없이
명쾌합니다.
걸어온 길 되새김질 해보니 또 새로워
집니다.
손변님 덕분에 삼겹살 잘 먹었습니다.
4구간 수고 많이하셨구요!
울 정맥6차팀원 모두♡합니다^^
ㅋ 백구님 파스 고마웠어요. 술자리에서 너무 설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ㅎ 손변님 겸손의 말씀을~~ 좋은 분위기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담 구간이 기달려지네요ㅋㅋ
ㅎㅎ 뭐 좀 헐렁하게 살면 좀 어떤가요? 그렇지요? ㅋ
ㅋ 맞습니다 쫌 헐렁하게 좋습니다~~^^
산행기가 재미난 소설을 읽는것 처럼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사진과 곁들여 사실감도 있고 기다린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ㅎ 지부장님, 감사합니다. 한 해 잘 정리하시고 또 힘찬 새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그쪽이 고향이셨군요. 넉넉하고 포근한 마을들 같았어요. 담에 뵐 기회가 있기를요~~
동지를 지난 겨울비가 찬듯 촉촉히 내리는 아침에... 손변님의 산행기를 읽어 내려가니 따뜻하게 촉촉해집니다.^^
기행의 기록, 한편의 다큐멘트리가 또 기록 되었군요.
큰소리(?)를 내시는 것도 아닌데.. 뼈속까지 잔잔히 스며드는 부드럽고,
잔잔한 글로 겨울비 내리는 수요일의 아침을 시작합니다.
또 한구간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과분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올해가 다 지났군요. 마무리 잘 하시고, 좀 더 나은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캬~~제목부터가 남다르다능~ㅎ길지 않아도 충분히 가는걸음 느낄수 있는 산행기! 발목은 좀 괜찮습니까? 아침부터 삼겹살땡깁니다.ㅋ 글,그림 잘 보고 하루 시작합니다.
유리 운영자님 댓글을 보면 항상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머잖아 뵐 거 같은 예감이...ㅎㅎ 임꺽정 주제가요~~
참으로 수기를 , 산행기를 구구 절절 구간마다, 기억 해내어 잘도 옮겨 표현을, 아주 딱맞게
잘 옮기셨네요, 손변님 산행기를 보노라면 또 한번의 그길위에서의 느낌과 생각들이 마구마구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또 한구간을 행복해함서 걸어 내엇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사패산까지 함께 걸어서 참 좋았어요. 덕분에 두령님이 제 사진도 찍어 주시고 ㅎㅎ
정치가 썩으면 절딴나는건 민초들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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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한심하긴 매일반입니다.
유토피아씩이나는 바라지 않지만
작금의 어지러운 작태를 보노라면 ...
도사님 따라가다 여럿 작살났다는 전설 전합니다
ㅋㅋ 어쩐지...그런 전설이 있었군요. ㅎ 작살나기 전에 그만 멀리할까 봐요~~~
맛깔나는 산행기 잘 보고갑니다. 삼겹살 생각나게 하시는군요;;;ㅎㅎ
ㅎ 삼겹살에 소주가 생각나는 저녁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한북정맥 졸업전에 삽겹살 드실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다행입니다ㅡㅎ
앞으로도 좋은 분위기 계속 이어주세요 ^~^
대장님 덕분에 즐거운 산행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손변님 맛난 후기글 잘 보고 갑니다~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ㅎ 오키짱님이 제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담 구간에 또 봬요 ~~~
함께해서 즐거운 한북정맥
산행기 잘 보고갑니다
다음부터는 뭐든 조금씩 챙겨갈께요
김장김치, 오징어요. ㅎㅎ
산행기가 실지 가고있는것처럼 느껴지네요
잘보고 갑니다 한구가 고생했습니다
대장님, 응원 감사합니다. 뽀송뽀송한 연말연시 되시구요~~~~
혹시 작가선생님 ..??
유유히 흐르는 문맥들이 가히 문학을 많이 접해본 분 같은 강한 느낌이 많이 드는군요
남다른 클래쓰가 너무나 부러운 1인입니다^^
손변님의 글을 한번더 정독하고 추운날 수고로운 발걸음 수고많으셨고
내년에도 건강하고 활기찬 행보 이뤄나가는 한해되시길 기원합니다
손변님 ,6차팀원 여러분 댁내 두루두루 평안하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ㅎ 과분하게 읽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뽀송뽀송한 새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