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이명박식 경제제1주의' 에 저항할 것 "

[파랑도]

▲ 한국작가회의 도종환 사무총장. 그는 시집 <접시꽃 당신>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 홍성식	도종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제제일주의로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에 우려를 보이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환경훼손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되고, 남북문제에 관한 접근방식 역시 동포애적 관점이 아닌 실용·경제주의로 전환될 가능성이 보인다. 교육정책마저 자본에 맡기겠다는 태도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물질중심주의와 경제제일주의 탓에 사람들의 삶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문학은 이에 저항할 것이다."

1984년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등의 시집을 내놓으며 독자들에게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민중적 서정시의 큰 힘'을 절감케 해준 시인 도종환(54)이 한국의 대표적 진보문인단체 '한국작가회의'의 사무총장이 됐다.

한국작가회의는 1974년 '민주화를 위한 양심적 작가의 현실참여'를 기치로 내걸며 출범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개편)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단체. 지난해 단체 명 앞에 붙은 '민족'이란 단어를 유지하느냐, 떼느냐를 놓고 회원들간 논쟁을 거쳐 올 초 '한국작가회의'라는 새로운 이름의 현판을 내걸고 업무를 시작했다.

2008년은 한국작가회의가 바뀐 이름을 내걸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는 첫 해. 동시에 지난 10년간 지속돼온 진보정권의 시대가 마감되고 보수적 성향의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는 해이기도 하다. 시인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발전'과 '자유를 위한 투쟁', '인권 신장'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문인단체 한국작가회의의 실무책임자인 도종환 총장은 올해를 어떻게 맞이할까.

14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을 찾아 도종환 사무총장을 만났다. 그는 '단체 명칭을 한국작가회의로 바꾼 이유', '이명박 정권에 대한 견해', '작가로서의 계획',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 등을 차분하지만 명쾌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 '한국작가회의' 사무실 입구. 판화가 이철수의 글씨로 쓴 현판이 보인다.
ⓒ 홍성식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를 거쳐 한국작가회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단체의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
"세상은 다민족·다문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민족'이란 가치론적 개념을 가지고 활동하던 시기는 20~30년 전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식민지와 분단체험을 거치며 우리에겐 민족이란 개념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족주의의 범위가 그 당시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넓어졌고, 이를 담아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외국문인들과의 교류가 있을 때 민족이란 단어 때문에 '극우단체가 아닌가'라는 오해를 받는 것도 문제였다. '소수의 재야문인단체'라는 이미지를 털고, 명실상부 한국의 문학인을 대표하는 조직이라는 느낌을 주고싶었다. 하지만, 인권과 평화, 자유와 통일, 환경 문제 등에서 우리 단체가 견지해온 태도는 바뀐 이름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진보적 성향의 정권이 통치한 10년이 끝나고, 국민들은 경제발전을 약속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진보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의 위상도 재정립되지 않겠는가.
"작가가 쓰는 시와 소설은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닌 동시대인과의 교류다. 과거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한 체재가 인권탄압과 분단, 환경문제 등이었다면 이제 그 체재가 자본과 물질만능, 경제제일주의 등으로 변했다. 고조화된 양극화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고, 그로 인해 독자들도 사라졌다.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해진 탓에 책도 읽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민들이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체재를 선택한 것이라 본다. 그러나, 문학은 물질을 삶의 근본으로 삼는 비인간적 태도에 저항해야 한다. '80:20 사회'가 많은 수의 사람들을 소외감과 열패감에 빠뜨리고 있다. 이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어야하는 건 문인의 책무다. 그걸 생각한다면 작가들의 역할이 이전 시대보다 오히려 더 커지지 않을까."

-문인들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의 활동과 이명박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작가는 본질적으로 시대와 불화하는 존재다. 인수위의 경제제일주의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이 많다. 대규모 토목공사는 환경을 훼손시킨다. 운송의 방식은 운하를 거쳐 철도 그리고, 도로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운하를 통해 물류를 이동시키겠다는 정책이 온당한지 모르겠다는 게 중론이다. 수십 년 걸릴 공사를 정권 임기 내에 마치겠다는 과욕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풀과 나무, 생명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통일문제 역시 동포애적 관점을 가지고 실사구시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실용과 경제주의에 입각해 바라본다는 것도 걱정스럽다. 인간이 빠져있는 것이다. 교육도 시장중심으로 재편될 것 같다. 자본에 교육을 맡기겠다는 태도는 학교와 교육단체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는 자립형사립고 설립은 공립학교와의 격차를 심화시켜 공교육 붕괴는 물론 계층간 위화감까지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문학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이를 극복할 방안은 없을까.
"시장중심의 사고가 득세한 시대가 왔고 문학의 그 가치와 생명력을 잃어간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에서 작가의 역할은 경제적 가치만으로 재단될 수 없다. 모든 예술의 기본인 문학을 전사회적 차원에서 보호·육성할 필요성이 있다. 문학이 살아나야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와 드라마, 연극도 활성화된다.

시오노 나나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외국작가들의 역사와 과학에 대한 지식을 보며 놀랄 때가 많다. 한국의 작가도 이들처럼 창작을 위한 전문적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이 있어야 한다. 정부와 뜻 있는 기업이 젊은 작가를 선발해 그들에게 생활에 대한 걱정 없이 2~3년간 창작과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제도가 절실하다. 매번 때가 되면 노벨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로 한국이 시끄럽다. 그런 반짝 관심이 아닌 지속적인 애정과 투자가 있어야 한국문학의 질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 홍성식	도종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기 이전에 시인이다. 시인으로서 올 한해 계획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건, 전교조 해직교사 시절이건, 사회활동을 바쁠 때건 글을 쓰는 일에 게으른 적이 없다. 작가는 무엇보다 작품을 쓰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곧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가 나온다. 이것 말고도 산문집 몇 권을 더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문학엽서 배달'이란 제목으로 연재도 할 계획이다. 5월엔 동시집이 나올 예정이고, 10번째 시집도 준비중이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소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런 '지역 불평등'을 해소할 복안은 있는지.
"결국은 소통의 문제다. 지방에 연고를 둔 문인들은 서울의 사정을 잘 모르고, 서울지역 문인들은 지방에 대한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다. 소외감은 이런 것에서 오는 것 같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의 목소리를 꼼꼼히 들을 것이다. 소통 부재를 해결하는 방법의 첫걸음은 귀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닐까."

-올해 한국작가회의는 어떤 사업을 추진하게 되는지.
"가장 큰 행사는 오는 10월에 개최 예정인 '세계작가와의 대화'다. 동구권 작가들이 대거 초청돼 인간과 문학이란 보편적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한국의 작가들과 나눌 것이다. 5월에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행사'가 열린다. 8월에는 '만해문학 심포지엄'이 준비되고 있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남북 문학교류가 단절 없이 진행돼 북한의 문인들이 남한을 방문하는 기회도 생겼으면 좋겠다."

-아직도 '책에서 길을 찾는' 독자들에게 신년 덕담 한마디 부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 바삐 살고 있다. 빠른 삶은 병든 삶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느리고 고요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게 쉽지 않겠지만 느리고, 건강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회복하자고 말하고싶다. 주중엔 일만 하고, 주말엔 TV 앞에서 잠만 자는 생활에서 탈피해 시 한 편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는 삶, 청안(淸安; 맑고 편안한)의 삶을 지향했으면 한다."

-시와 인터넷, 시인과 네티즌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결국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다. 시인으로서 네티즌들에게 해주고싶은 말이 있다면.
"문학(시인)은 독자와 '가치 있는 소통'을 하길 원한다. 네티즌은 새로운 시대 소통의 주체다. 단순한 소통이 아닌 가치 있는 소통의 소중함을 함께 찾아나가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청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