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배운지 이제 8개월쯤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 우리 소리, 우리 가락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군요.
그러나 듣고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할까요?
나도 할 수 있을까?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자치센타 교양 프로그램에 있는 사물놀이 강습방에 신청을 했습니다.
처음엔 몸도, 마음도 따라주질 않아 진도 성과가 없더니 이제는 혼자서도 연습할 만한 성취는 있나 봅니다.
시골의 특성상 풍물의 공연 기회는 많은것 같습니다.
인원수가 부족하여 머릿수 채우는 쓰임새로 공연에 몇번 참여 했습니다.
지난 12월에는 양평군 국악협회에서 주관하는 관내 사물팀들의 경연대회에서 웃다리 연주곡으로 금상을 받았네요.
참가팀은 15팀 정도.
다른 연주자들에 묻어가는 실력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곳이 이곳 '풍물세상'입니다.
그동안 도둑 고양이처럼 흔적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이런 열린 공간을 마련해 놓으신 松風 카페지기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나눔이 될지 모르겠으나 배우면서 느낀 생각들을 쓴 글들을 올려 봅니다.
어울림에 대한 단상
홍 성 열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자연에 가까워지는 줄 알았다.
높은 하늘, 깨끗한 공기, 맑은 물, 파란 숲이 있고 소음과 멀어지면 자연과 더 가까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내 자유의사에 따라 움직이며 행동할 수 있으면 자연 속에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자연은 환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여유에서 찾아야 했다.
나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 어느 적막한 곳에서도 고요함을 느낄 수 없음을 알았다.
더 부지런해야 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 속에 있으나 자연을 느낄 수 없으면 소외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잃었다.
내 소리도 잃었다.
누군가 나를 보아줄 사람이 없고 내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나를 잃어가는 일이다.
무기력함이 단지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생체현상임을 느끼는 순간부터 자신을 잃는 일이다.
자연은 어울림이다.
단지 숲이 있어서가 아니라 맑은 물과 어우러져야 자연이다.
별이 많아서가 아니라 깨끗한 공기가 함께해야 자연이다.
나를 잃었다는 건, 내 소리를 잃었다는 건 내가 어울려야 할 대상과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울림의 세상에서 존재감을 상실한다는 건 도태 되어가는 자연 현상이다.
나도 결국 이렇게 사라져 가야 하는 걸까?
내가 사는 면은 총인구가 6천 6백여 명밖에 되지 않은 작은 시골이다.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가까운 곳이라 시골이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지만 차에 치여 죽는 것보다 사람에 치여 죽을 것 같은 곳을 한 시간만 벗어나면 도로 옆으로 사람 지나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한산한 마을이다.
이웃 분의 안내로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사물놀이 수강 신청을 했다.
수강생은 총 20명 남짓으로 보이는데 일주일에 두 번 수강하는 날에 참석해 보면 참석인원은 항상 10명 안팎이다.
농사를 짓는 분이 많다 보니 일손이 부족할 때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그래도 가정이 있는 주부들이 대부분인데 바쁜 시간 쪼개어 여가를 즐긴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개강된 게 3월 초인데 5월에 두 달이나 늦게 참여하게 되어 진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두 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몇 년씩 배운 아마추어의 경계를 넘은 분들이 많아 이제 기초를 배우려고 버티는 게 자칫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강사의 노련한 강의 솜씨가 초보자와 숙련자의 간격을 크게 느끼지 않게 한다.
물론 숙련자들은 지루한 시간이 많았겠지만 다들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 고맙다.
불편해한다는 것을 느꼈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간혹 도움이 될까 인터넷 동영상을 찾아보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강사의 강의가 훨씬 배우기 쉽다는 뜻일 게다.
누군가에게 부담되고 공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기 위해 나름 배운 것을 열심히 연습해 보지만 원래 박자에 무딘 데다가 몸까지 굳어 있다 보니 쉽지 않다. 그러나 마음만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 주면 좋겠다.
나로 인해 강의 진행 속도가 늦어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만은 수시로 한다.
수강한 지 두 주쯤 지났을까? 길놀이 공연에 참여하라 한다.
북 장단은 치기 쉬우니 할 수 있다고 권유하지만, 선뜻 나서기가 부담스럽다.
그러나 오죽하면 나에게까지 참여하라 했겠는가 싶어 머릿수나 채운다는 심정으로 하루 배우고 다음 날 초대 받은 이웃 동네 친목모임 행사 공연에 참석했다.
난이도 높은 길놀이 장단도 있겠으나 나 같은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쉬운 두 가지 장단만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준비한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공연에 참여해보니 이 장단이 저 장단인 듯, 저 장단이 이 장단인 듯 뒤죽박죽되어 어떻게 두드리고 다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배우지도 않은 리듬의 두드림으로 따라가고 있을 때도 있었다.
누군가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 보았다면 배꼽을 잡고 웃었을 일이다.
내 소리를 낸다는 것.
화음을 맞추는 일이다.
튀는 소리가 아니라 정확한 소리를 내는 일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약속된 소리를 내야 하는 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어울림이다.
어울릴 수 있을 때야 존재의 가치가 있다.
작은 소리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외치는 몸부림처럼 정성을 들여야 한다.
사물놀이에서 어울림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전통의 풍물놀이가 근세에 예술적 공연형태의 사물놀이로 바뀌었으니 사물에서 어울림의 뜻을 헤아리자면 풍물놀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굿의 성격을 가지고 변형되온 풍물은 놀이, 춤, 재담, 노래, 연극 등이 나뉘지 않고 같은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다.
놀이 속에 굿의 성격이 있으니 당연히 신께 기원하는 염원이 있을 것이고, 여럿이 모여 함께 즐기는 성격이 담겨 있으니 친목과 단합의 의미를 가진 것이 풍물이다.
같은 염원으로 하나로 묶는 목적이 명분이고 그 명분을 승화시키는 행위가 어울림이다.
현대적 해석의 사물은 꽹과리는 천둥을, 징은 바람을, 북은 구름을, 장고는 비를 의미한다.
사물놀이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되어 어깨가 들썩여진다.
자연의 소리에 빠져들면 神明이 나게 되는 모양이다.
신명이란 사물이 의미하는 자연의 소리가 조화로울 때 기쁨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다.
사물에서의 어울림은 다른 사물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몰입이 없으면 절대로 흥이 나지 않는다.
흥이 나지 않았다면 어울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게다.
공연이 끝나고 숙련자들만 참여하는 다음 공연 장소에 몇 명은 내 차로 이동했다.
승차한 숙련자 중 일본인 여성 수강생이 다른 수강생들과 나누는 대화에 귀가 쏠린다.
보통 여자들의 수다겠거니 흘려 듣는 편인데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남편 얘기다.
대충 남편의 이러 저러한 말과 행동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이다. 한마디로 남편 흉보는 소리다.
그런 면에선 한국 여성들과 다를 게 없구나 하고 속으로 웃는데 다른 수강생 한 분이 말을 던진다.
"그래도 앞에선 한마디도 못 하지?"
"예.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맞불 놓으면 큰일 나요"
갑자기 '큭'하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심각했을 무거운 얘기가 이렇게 쉽게 정리될 수 있단 말인가?
남편을 보진 못했지만 참 어울리게 잘 살 것 같다.
마흔쯤 되었을까? 마음 씀이 예사롭지 않다.
참아야 하는 순간을 안다는 것,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는 것.
이 또한 어울림을 위해 필요한 것일 게다.
2016. 5.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분과
1952년 1월 대전 출생
저서 : 친구에게 띄우는 명상편지
하루 5분의 긍정 dododo
일상에서 철학을 만나다
첫댓글 안녕하셔요~~~
구수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소리랑 카페에 옮겨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