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陽山)서원을 찾아서
德庵 李 德 熙
계묘년 시월 이십육일 담수회 유림지도자 연찬회 참석차 대구 반월당 현대백화점 앞에서 출발 팔공산 자락 군위 한밤마을을 찾았다.
제2석굴암 옆에 위치한 양산서원에서 문화관광해설사와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이 맞았다.
고려의 순절충신 경재 홍로의 종가가 자리 잡고 있는 한밤마을에 자리 잡은 양산서원은 이전에 있던 세덕사를 1786년 사람들의 공의에 따라 승호하면서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 경재 홍로를 위시한 부림홍씨 다섯 위를 제향하고 있다. 서원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1리 속칭 서원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경재 선생의 유허지에 세워졌다. 양산이란 원호는 서원의 뒷산이름에서 온 것인데, 양산에서는 경재선생 행적이 중국 고대 백이. 숙제의 수양산에서의 행적과 닮은 데다 지명마저 같아 선생의 도의와 충절을 높이기 위해 양산서원이라 이름을 붙었다.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 1649년에 현 서원 터에 경재를 제향하는 용재서원이 처음 세워졌다 훼철되었다. 1711년 다시 율리사를 창건하여 경재를 제향해오다 국령에 따라 훼철된 뒤 1783년 세덕사를 창건하였다. 세덕사는 경재와 더불어 문광공 홍귀달, 우암 홍원충 세 위를 합향하였으며, 3년 뒤인 1786년에 마침내 양산서원으로 승호하였다.
양산서원이 세워진 뒤 바로 다음해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어 예조에도 글을 올렸으나 사액과 미사액을 구분치 말고 양산서원도 사액서원의 정례에 따르라는 답이 내려왔다.
1820년 중건, 증축하면서 서원의 규모를 완전히 갖추었다. 당은 흥교, 좌실은 입니, 우실은 구인, 루는 읍청이라 현판하였으며, 읍청루 옆으로 물을 파서 만무당이라 하였다. 사묘와 동서재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1826년 경재의 경재선생실기를 초간하고 목판을 양산서원에 보관하였으며, 이 시기를 전후하여 목재 홍여하의 휘찬려사 목판도 함께 보관해왔다. 1868년 7월에 이어 9월에 거듭 본읍 다섯 서원에 대한 훼철령이 내려와 10월에 부득이 세 분의 위패를 강당에 옮겨 모시고 묘우를 훼철하였으며, 11월에 다시 위패를 뒷산 기슭에 묻고 당당과 동세재도 허물었다. 양산서원이 세워진 후 82년이 지난 때였다.
1872년 종손 홍영수를 중심으로 양산서원 묘우 복설을 시도하다가 홍영수가 압송되어 곤양으로 일 년간 유배를 가면서 중단되었다. 1897년 양산서원 유허에 세 분을 기리기 위해 척서정을 창건하였다. 척서는 서산에 오른다는 뜻으로 경재의 행적이 일찍이 백이. 숙제가 서산, 곧 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숨어 살다 죽었다는 고사와 닮아 붙인 이름이다. 척서정 판액은 향산 이만도가 썼으며 척서정기는 척암 김도화가 찬하였다.
1948년 척서정 내 묘우를 양산폭포 옆으로 이건하여 척서정 판액을 달고 경재의 갱장지소로 삼고, 구 척서정은 양산서당으로 개판하여 경재의 추모지소로 삼았다. 이후 척서정과 양산서당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1990년 8월 7일 양산서당 장판각에 보관해오던 휘찬여사 목판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진정되었으며,. 2011년 12월 200년 가 까이 양산서원이 보관해온 경재선생 실기와 휘찬여사 목판을 학술발전과 영구보전을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하였다. 2015년 10월경재선생실기와 휘찬여사 목판을 포함한 한국국학진흥원이 기탁 받아 보관해 오던 목판 육만여 판이 유네스코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15년 4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삼년가량의 공사 끝에 양산서원을 복원하여 준공식을 가지고, 10월 향내 유림과 인사들의 뜻에 따라 이전 세 분의 위패를 환안하고, 목재 홍여하와 수원 홍택하 두 분을 추가 배향하였다.
묘우는 겹삼칸으로 묘호가 숭덕사이고, 당은 열 칸, 누는 겹삼 칸으로 이전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흥교당, 읍청루라 현판하였으며, 동서재는 각 3칸으로 이전 정당 협실의 이름을 가져와 입니재와 구인재라 현판하였다.
양산서원복원기문은 조동걸 박사가 양산서원묘우 복원 상량문과 읍청루 복원기문은 홍우흠 박사가 썼으며, 판액은 전해 오던 구 현판의 글씨를 모사하여 걸었다.
양산 오현은 경재 홍로와 문광공 허백정 홍귀달, 우암 홍언충, 목재 홍여하, 수원 홍택하를 배향하고 있다.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 조상의 얼을 지켜온 후손 들이 자랑스럽고 보람찬 나날을 보내 타의 귀감이 된다.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문중의 보람된 삶의 흔적이 눈앞에 선하다.
癸卯年 菊花之節 德庵精舍 閑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