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는 내 인생을 바꾼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다. 또 크레타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품은 크노소스 궁궐이 있는 곳이다. 이집트의 건축물이 거대함과 질서 정연함을 자랑했다면, 크노소스 궁궐의 건축들은 다양하고, 섬세하고, 인간적이다. 언뜻 보면 초라할 수도 있는 건물이지만, 사람들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사랑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지중해를 가르는 밤배에 몸을 싣는다.
지중해의 섬, 크레타로 가기 위해 밤배를 탔다. 대략 1440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리스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크루즈 산업이 크게 발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고정 승객을 보유하고 있는 노선이 바로 수도 아테네에서 크레타로 가는 야간 항로이다. 아테네 인근 항구에서 저녁 9시에 승선하면, 다음 날 아침 8시쯤에 크레타의 중심도시인 이라클리오(Iraklio)에 도착한다. 나도 이 밤배에 몸을 싣고 푸른 지중해를 가르며, 미지의 섬 크레타로 향했다.
위대한 영혼을 찾아서
"크레타로 가는 밤배"에 대한 로망이 간절했던 이유는 박수인 선생이 쓴 <크레타로 가는 밤배>라는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였다. 책 내용도 좋았지만, 제목이 정말 멋지고 낭만적으로 들렸다. 크레타로 가는 밤배! 가끔은 이런 단순한 감동의 여운을 따라 훌쩍 길을 떠나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팍팍한 살림살이에 이런 지중해 유람의 호사를 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바가지를 긁어대는 마누라 잔소리를 짐짓 못들은 체하며, 혼자서 크레타로 가는 밤배에 오른 것은 엘 그레꼬(El Greco, 1541-1614)라는 르네상스 말기의 화가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그리스 작가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르네상스 시대가 마감되던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화단에 나타나 파격적인 화풍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다가, 돌연 스페인으로 자리를 옮겨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던 엘 그레꼬의 고향이 바로 지중해의 섬 크레타이다. 나는 당시 엘 그레꼬에 대한 평전을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고향 크레타를 비껴갈 수가 없었다. 이라클리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엘 그레꼬의 초기 작품을 직접 봐야 직성일 풀릴 것 같아, 아테네를 거쳐 크레타로 가는 지중해 답사 여정을 결행하게 된 것이다.
엘 그레꼬의 고향 크레타를 방문하는 것은 예사로운 호사가 아닌데, 여기에 덤으로 하나 더 붙는 것이 있다. 크레타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영혼의 자서전>을 집필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크레타는 "위대하다"는 표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리스 최고의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 "내 인생을 바꾼 책" 한 권쯤을 가지고 있는데, 내게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 어떤 책이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든다. 내 인생을 바꾼 책을 쓴 사람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이고, 그가 바로 크레타에서 태어나서 크레타에 묻혔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20세기에 부활했다면, 아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시인 호메로스를 따라 <오디세이아>라는 같은 제목을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엘 그레꼬가 크레타에 체류할 당시 그린 초기의 그림 <그리스도의 매장>
사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가 지금으로부터 2800여 년 전에 추구했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호메로스가 인류의 영원한 고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인간 정신의 승리"를 노래했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역시 "인간 정신의 자유"에 대해 폭풍과 같은 문장을 쏟아냈다. 호메로스의 세계가 그리스 신화의 여러 신(神)과 대비를 이루는 인간과 영웅들의 얘기가 가득했던 것처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세계에는 독선적으로 우주의 질서를 노정하고 있는 신에 대해 저항하는 자유로운 인간이 등장한다.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Zorba)가 그 주인공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주인공 조르바야말로 호메로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이며 오디세우스이다.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신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다. 그리스 정교회의 종교적 독단에 문학으로 저항했던 그는 결국 파문에 처해지고, 그의 무덤은 파문을 받은 그리스 사람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나무 십자가로 꾸며지게 된다. 지금도 크레타의 이라클리오 시(市) 한 복판에 나무 십자가가 외롭게 서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이 있다. 20대 초반 시절, 내 청춘의 피를 끓게 만들었던 책의 저자가 그렇게 누워있다니, 마음 한구석에서 애잔한 바람 한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묘비명은 망자(亡者)가 살아생전에 직접 쓴 휘갈겨 쓴 글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
크노소스 궁전을 찾아서
크레타 섬에서 엘 그레꼬 박물관과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을 답사하고 나면 문화 답사는 대충 끝나게 된다. 신심(信心)이 투철한 사람은 초대교회의 선교사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다가 풍랑을 만나, 크레타 섬에 표류하게 되는 장면을 떠올리고(사도행전 27: 1-44), 바울의 제자였던 디도가 세웠다는 옛 성당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젊은 유럽 관광객들을 제외하면(크레타에는 누드 비치가 많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라클리오 시 외곽에 있는 크노소스(Knossos) 궁전 유적지를 향해 시외버스를 타게 된다. 유럽 문명의 출발지라고 알려져 있는 미노아 문명의 본산이 바로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이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신전을 보고 온 사람이 "유럽 문명의 본산"이라고 알려져 있는 크노소스 궁전을 처음 보게 되면 크게 실망하게 된다. 얼핏 보면, 너무나 작고(사방 약 122 미터), 보잘 것 없이 작은 건물로 가득한,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룩소르(Luxor)가 제주도쯤이라면, 솔직히 지중해 그리스 문명의 본산인 크노소스는 여의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왜 유럽 사람들이 스스로 "모든 빛은 동방으로부터(Ex Oriente Lux)"라고 말해 왔는지 짐작이 간다. 지중해와 유럽에서 보면 모든 문명의 시발점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위대했던 동방 문명이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쓸어내리며 찬찬히 유적지 내부로 걸어들어 가면,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든다. 거대한 열주(列柱)가 일렬로 서 있어 일사불란한 느낌을 주는 이집트의 거대 도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우선 평지가 아니라서 궁궐 내부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내부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직선으로 뻗은 길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후대에 크노소스 유적지를 발견하고 관광지로 개발했던 사람들이 만든 길만 곧게 뻗어 있을 뿐, 원래 궁전 터는 온통 미궁처럼 난 좁은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은 더욱 그렇다. 강력한 절대 군주가 존재했던 이집트의 건축물이 거대함과 질서 정연함을 자랑했다면, 크노소스 궁궐의 건축들은 다양하고, 섬세하고, 인간적이다. 비슷하게 생긴 건물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는 미노아(Minoa) 왕이 거주했다고 믿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기원전 2 천년에 태동한 크레타 섬의 고대 문명을 '미노아 문명(Minoan Civilization)'이라 부른다. 기원전 2 천년에 최고 정점에 달했던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400년까지 지속되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미노아 문명의 청동기 문명이 그리스 내륙에서 온 철기 문명의 침입자들에 의해 정복당했다는 설에서부터 산토리니 섬 부근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 폭발과 이에 따른 쓰나미 때문에 크레타 섬의 원주민들이 몰살당했다는 설까지 다양한 이론이 미노아 문명의 갑작스런 소멸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미궁(迷宮)의 궁전에서 꽃핀 사랑
크노소스의 궁전 유적지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은 그리스에 살아있는 '전설의 고향'인 셈이다. 아테네의 왕 에게우스(Aegeus)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모두 아버지로 둔 테세우스(Theseus)는 신인(神人)의 양면성을 갖춘 아테네의 영웅이었다. 당시 아테네와 크레타는 적대적인 관계였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아테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야만적인 요구를 계속했다. 매 9년마다 각 7 명의 아테네 소년 소녀를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르(Minotaur)의 먹잇감으로 바치라는 것이다. 9년마다 아테네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인신공양의 제물로 잡혀가는 아테네 소년 소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슬퍼하는 곡소리였다. 크레타의 괴물을 죽여 버리기로 결심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고향 아테네를 출발하여 미로(Labyrinth) 속에 숨어 있다는 미노타우르를 죽이기 위해 크레타 섬에 상륙한다. 그런데 테세우스의 용기와 용모에 마음을 빼앗긴 소녀가 있었으니, 바로 미노아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Ariadne) 공주였다. 미모를 자랑하던 공주는 미로 안에서의 전투를 앞두고 있던 테세우스에게 둥근 실타래를 주면서,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 것을 기원한다. 미로에 숨어들어간 영웅 테세우스는 크노소스의 궁전 유적지처럼 생긴 미로 속에서 괴물 미노타우르스와 생명을 건 싸움을 펼친다. 결국 승리를 거둔 테세우스는 풀어놓았던 실로 출구 방향을 잡고, 미로에서 살아 돌아온다.
미노타우르스를 죽이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괴물의 속박에서 벗어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아름다운 아리아드네 공주와 함께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꿈속에서 주신(酒神)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아리아드네는 이미 자신의 아내로 점찍어 놓았으니, 낙소스 섬에 그녀를 내려놓고 가라고 요구한다. 결국 불쌍한 아리아드네는 낙소스 섬에 홀로 남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 테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눈물을 흘린다.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를 대표했던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유명한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는 낙소스 섬에 홀로 남게 된 아리아드네의 모습과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디오니소스(바쿠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멀리 바닷가에 사랑하는 사람 테세우스가 타고 가는 작은 배가 보인다.
티치아노가 그린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
크레타 섬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전설의 고향만이 아니다. 그리스 최고신이었던 제우스(Zeus)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Cronus)는 아내 레아(Rhea)가 낳은 아이들을 다 잡아먹었다. 자기 후손이 반란을 일으켜 자리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기 남편이 헤스티아(가정의 여신), 데메테르(추수의 여신), 헤라(결혼의 여신), 하데스(지하세계의 신), 포세이돈(바다의 신)을 차례로 잡아먹자 레아는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들 제우스를 살리기 위해 크레타의 이다(Ida) 산의 동굴에 숨겨둔다. 제우스는 아말테아(Amalthea)라는 염소의 젖을 먹고 자라서 장차 올림푸스 12신의 최고자리에 오르게 된다. 유럽 최초의 문명이었던 미노아 문명의 고향 크레타에서 그리스 최고신이 탄생했다는 전설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문명과 신의 세계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있고, 인간이 있기 때문에 신이 있다는 그리스의 신관(神觀)은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느끼는 "인간과 같은 성품을 가진" 신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유대인이나 무슬림처럼 초월해 있는 유일신을 믿지 않는다. 인간처럼 사랑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리스의 신들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집트가 죽음의 문화였다면, 그리스는 삶을 긍정하는 문화이다. 그리스에서는 신도 인간처럼 삶의 기쁨과 행복을 추구한다. 삶에 대한 무한 긍정이 시작된 곳이 바로 크레타 섬이고, 그 문명의 한 복판에 크노소스의 궁전 유적지가 있다.
스토리텔링은 역사보다 위대하다
무질서해 보이는 미노아 문명의 유적지, 크노소스 궁전은 이집트의 거대한 사원에 비하면 미로와 같이 보이는 초라한 곳이다. 그러나 일견 무질서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크노소스의 작은 건물과 미로와 같은 길에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미노아 문명의 유적지를 찾는 사람들은 거대한 건물을 보기 위해 크노소스 궁전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수 천 년 전부터 크레타 섬에서 들려오던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지중해를 가르는 밤 배에 몸을 싣는다.
크레타 섬에 가장 높은(2,454 m) 이다(Ida) 산 정상에 제우스가 탄생했던 동굴이 있다. 산 아래 크레타의 마을에서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사랑에 빠지고 분노에 몸을 떨 때, 신과 인간은 하나의 마을을 이루면서 역사를 시작했다. 신과 인간이 함께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역사보다 위대하다. 실제로 미로 속에 소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르스가 숨어 있었는지, 이다 산의 동굴에서 제우스가 고고(呱呱)의 울음을 터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스토리텔링은 바로 그러한 믿음을 받치고 있는 굳건한 장치이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와 제우스 신의 불행했던 탄생의 신비를 다시 떠 올리며, 사람들은 크레타로 가는 밤배에 몸을 싣는다. 그들은 모두 아름다운 지중해를 가로 지르며,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