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길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60번 버스에 오른다.
60
번이라니, 청주사람들은 그런 버스번호에 익숙하진 않다. 청주의 시내버스
에도 타도시의 그것처럼 60번이라든지 146번이라든지 하는 버스 번호가
있음에도 그들은 버스를 '조치원, 월곡'이나 혹은 '영운동 용암'이라고
부른
다. '조치원, 월곡'이란 바로 60번 버스 행선지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번호 대신 부르는 것이다. 마치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처럼
그것들은 순환하지 않고 오직 행선지만을 향해서 가기 때문이다.
청주 시가지는 ㄹ자형으로 뻗은 도로와 그 도로를 가로지르는 무심천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짜여져 있다. 대부분의 버스노선은 그 ㄹ자형 도로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으므로 청주시내의 버스노선은 거의 세 방향으로 일방운
행 된다. 조치원은 ㄹ자형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방
향으로 운행되는 60번 버스의 이름이 '조치원, 월곡'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버스가 시내를 순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운행되는 것이 그 이유이기는
하나 버스에 번호를 붙여 부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사실 시내버스에 번호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은 우습게도
얼마되지 않는다. 청주에서 거의 5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었음에도
그렇
다. 언젠가 타지에 사는 사촌동생이 학력고사를 치르기 위해 청주로
내려
왔을 때, '청주대학교에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해?' 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 앞부분에 크게 쓰여져
있을게 분명한 그 번호를, 버릇 때문인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
다. 그때 나는 매우 난처한 목소리로 '글쎄 내덕동 가는 거 타면 돼는데...'
라고 얼버무렸던 것이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나는 버스의 번호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나는 오랫동안 나에게 전혀
인식
되어지지 못했던 청주 시내버스의 번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있지만 거의 소용되지 않는 버스 번호는 버스운행의 일방성 때문이었다.
돌아오지 못하고 어딘가로 가기만 하는 버스. 존재하지만 인식되어지지 않
는 버스 번호는 참으로 밑빠진 독처럼 하염없게만 느껴졌었다.
버스가 복대동을 지나면서부터는 부쩍 몸체를 들썩거린다. 고개를 창쪽
으로 돌린 채 나는 잠깐씩만 눈 앞에 어른거리다가 이내 뒤쪽으로 사라져
버리는 시내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버스는 한층 가벼워진 몸을 이리저
리 흔들어대며 소란을 피워대는 와중이지만 버스 안은 제법 두꺼워진
침
묵이 완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터다. 창밖에서 현란하게 흔들리는 플라타너
스 이파리와 더불어 버스 안의 침묵은 한층 더 견고해진다. 화창한 날씨에
도 불구하고 길 양편으로 늘어진 플라타너스 그늘로 인해 갑자기 버스는
어두워지며 군데 군데 낡아서 기운 듯한 옷을 걸친다.버스는 어느새
시내
를 벗어나고 있다. 이제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은 부지런히 몸체를 움직이며
하늘을 가려 그늘을 만들어낸다. 이파리들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하늘의
색깔이 꼭 영화 '그랑부르'의 바다다. 그 선명한 파란색에 나는 오히려
거
부감을 느낀다.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만들어내는 그늘 속으로 나는
얼른
시선을 피한다. 플라타너스 그늘 밑의 세계로 나는 안전하게 진입한
것이
다. 어느덧 나의 시야는 온통 플라타너스 잎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려
한 생기로 가득찬다.
어릴 적 나는 만화경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세개의 거울을 댄 원통 속에
색색의 작은 종이들을 집어넣고 이리저리 돌리면, 거울의 모서리를
따라
종이들은 모양을 바꾸어가며 이리모였다 저리모였다, 춤을 추었다.
그 신
기하고도 아름다운 형상에 어린 나는 정신을 빼앗겨 만화경에서 종일
눈
을 떼지 못했다. 거울을 돌리면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색종이들을
보면
서 나는 화려한 원색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동경했다. 모든 어둠이나,
슬픔
이 존재하지 않는 곳, 항상 밝고 즐거우며 변화무쌍한 그 곳을 나는 찾아
가고 싶었다. 꿈꾸는 길은 그런 나의 기대에 꼭 들어맞는 곳이었다. 비록
원색의 무늬들은 아니지만 빛과 그늘만으로도 꿈꾸는 길은 충분히 근사하
게 화려했다.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한 어둠을 아마 어디에서도 나는
만나
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나의 좁은 행동반경을 고려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태어나서 이제껏 고향 충북 음성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 보지 못했다.
가장
먼 곳으로의 여행이라는 것이 고작 고교시절 수학여행을 갔던 설악산
즈
음. 내가 남은 여생을 보내는 동안에도 수학여행을 갔던 설악산 만큼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향인 음성
에서 태어나서 음성에서 중학을 마쳤고,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학
교를 졸업한 후에는 청주에서 몇 번 직장을 갖은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고향인 음성에서 지냈다. 여행이라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고,
제법
긴 외출이라고 해봤자 청주시내로 나들이를 나오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나의 이번 외출은 꽤 오랜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반년 가까이 임시직으
로 근무하던 전화국을 그만두고서 아예 시골 - 음성읍에서도 삽십분은 걸
어서 들어가야하는 - 집으로 내려가 내내 방구들 신세만 지고 있었던
것
이다. 2년이 넘게 나는 제대로 된 외출을 해본 적이 없다. 늘 같은 햇살이
늘 같은 모양으로 창문을 비추면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 아버지는 논으로
나가신다. 물론 나도 일을 거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왼손 엄지와
검지
를 못쓰게된 지금의 형편으로서는 일을 할래야 제대로 하지 못할 뿐더러
도리어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논일을 하러 나서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 터다. 때문에 집안 일이 모두 내 몫이다. 하지만 이젠 단촐해
진 살림이라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시골에서야 집 안을 반짝반짝 윤을
내고 가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사랑방 구석에 앉아서 라디오
를 듣는다거나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장난 삼아 만화 그림을 그리곤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가끔씩 옆집 검억이가 짖는 소리로 인해 오랫동안
쌓여 있던 정적이 깨어질 때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시골에서는 큰소리가
날 일이 없다. 오랜 침묵에 길들여진 나는 때로 라디오에서 갑작스럽게 들
리는 웃음소리나, 비트가 강한 음악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때
마다 놀란 가슴을 안고서 한동안 맥을 놓곤 하는데,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꿈꾸는 길이었다. 꿈꾸는 길에 대한 환영이 떠오르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방안을 맴돌곤 했다. 그러나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할 뿐 쉽게 집을 나설 수는 없었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
질 수록 집 안에서 끌어 당기는 알지 못할 힘에 이끌려 그것을 털어버리
고 외출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내내 마음 속으로는 한 번 다녀와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꿈꾸는 길에 대한 환영이 심해질수록 또 외출에 대한 다
짐이 강렬해질 수록 몸은 반대로 더욱 움직여지질 않았다.
아버지의 심부름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이곳에 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청주 시내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는 작은 아버지께 집에서 양봉한 꿀을 전
해주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오늘 청주에 오기까지 나는 내내 마음이 들떠 있었다. 오늘은 아
침부터 자못 흥분된 표정으로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보자기며 쇼핑백 등
으로 여러겹 싼 꿀단지를 들고서 나는 시외버스에 올랐다.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무엇보다 플라타너스의 숨결이 가까이서 느껴졌다.
여느 때 같았으면 우선 작은 집에 들러 꿀단지를 전해주고서 내 볼 일을
보았겠지만 오늘은 버스 정류장에 서자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듯 눈에
들
어오는 '조치원 월곡'버스에 나도 모르게 올라서고 말았다.
무거운 꿀단지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서 나는 플라타너스의 마법에
걸
려 한동안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버스가 신경질적 소음을 내며 멈추어 선다. 정류장에
손님들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퍼뜩 정신이 든 나는 그 곳에서 하차하는 승
객들에 묻혀 버스에서 내린다. 그곳은 '미호'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한
자로 정확히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호'가 '아름다운 호수
<美
湖>' 라는 것인지 혹은 '아름다운 집들이 있는 곳 <美戶>' 라는 것인지
지
명이 주는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미호'라고 발음할 때 입술이
동그
랗고 조그맣게 오므려지며 나는 소리가 좋아서 '미호'라는 곳을 무작정 좋
아하기로 마음먹었다. '미호'는 백여 가구가 채 못되는 아주 작은 마을이
다. 그리고 그애, 은주가 살았던 곳이다. 그애는 이 마을에서 청주시까지
통학을 했었다. 그애를 따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애와 이 길을 하염없이 걷곤 했었는데.......그때, 우리는 꿈많은 열여덟
소녀들이었다. 그리고, 꿈꾸는 길. 내가 언제나 갈망하는 그 플라타너스 길
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무엇보다 그애와 난 꿈꾸는 길을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통하는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애가떠난 후에는 나 혼자서 가
끔 이 꿈꾸는 길을 찾았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이곳, 미호마을에
내
려서는 한참이나 멍하니 걷다가 돌아가곤 했다.
미호마을에서 조치원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전문대와 교원대가
자
리하고 있다. 때문에 요 몇년새 가게가 부쩍 늘고 학생들이 북적거리지만,
강의가 없는 휴일이나 방학 때면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버스에서 내려선
나는 터벅터벅 길을 건너서 건너편 정류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달리
할 일
도 없을 뿐 더러 작은아버지 댁에 늦지않게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이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나는 청주시내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미
호 마을의 버스 정류장 앞에는 '다미회'라고 하는 생선회집이 있다. 다양한
맛의 회를 판다 <多味膾>.라는 의미로 쓰였겠으나, 나는 그것을 볼 때마
다 언젠가 요란스럽게 지구의 종말을 떠들던 사이비 종교 '다미선교회'를
떠올렸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리곤 했다. 과연 종말이란 존재하는
것인
가라는 물음이 나에게는 강렬하게 든다. 끝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물론 언
젠가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지
금의 생활, 하루하루 반복되는 나의 생활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
다. 언제나 오늘의 뒤엔 또 오늘이 있다. 오늘을 보내면 다른 오늘이
그리
고 또 다른, 그러나 오늘과 별반 다를게 없는 오늘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
나 변화란 없다. 모든 것은 정해진 순서대로 아무런 변함없이 진행된다.
심지어는 일상에서의 벌어지는 하찮은 문제거리라도 규칙적인 리듬을 갖
는다고나 할까. 이렇듯 나의 일상은 하찮고 규칙적인 운동일 뿐이다.
그런
하찮은 일에도 끝이 존재한다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종말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대의 버스가 속력을 줄이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 간다. 빨리 꿀을 전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을
정류장에 선 채 버스를 그냥 보내버린다. '신탄진'으로 향하는 좌석버스 한
대, '내덕동, 꽃동네' 행 버스 두 대, 그리고 '용암, 영운동' 행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육거리 시장 안에 있는 작은아버지의 포목점에 아버지의
정성이
담긴 꿀단지를 한시라도 빨리 전하기 위해 나는 멀리서부터 오는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어 세워야했다. 그러나 한동안 그러지 않았다. 나는 잠시라
도 그곳에 머물고 싶어졌던 것이다.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 내리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주어진 외출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는지도
모르
겠다.
멀리서부터 다시 한 대의 버스가 다가온다. 지나간 몇 대의 버스와는
달
리 정류장으로 가까이 오면서부터 속력을 줄이고 있다. 아마도 이 곳에서
내리는 손님이 있기 때문이리라. 버스는 '금천동, 일신여고' 라는 표지판을
달고 있다. 운전수는 손님을 내리면서 앞문도 동시에 연다. 그러면서
나에
게로 시선을 준다. '빨리 올라타'라는 무언의 명령이다. 나는 약간 당황스
움을 느낀다. 그러나 머뭇거림도 잠시, 나는 버스에 오르고 만다.
버스는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나의 '꿈꾸는
길'
로 진입한다.
그애, 은주는 만화그리기를 좋아했다. 수업시간이나 자습시간이면 그애
의 책이며 노트가 빈틈없이 만화의 주인공들로 가득 찼다.
"이것 좀 봐, 널 그린거야."
그애는 가끔씩 내 모습을 그린 그림을 나에게 내어놓곤 했다. 그애가
그
린 내 모습이란 지나치게 로맨틱한 눈빛을 가진 소녀였다. 마치 순정만화
의 여주인공 같은 내 모습이라니. 도대체가 나같진 않았지만, 그애가
그려
준 내 모습은 하나도 빠짐없이 내 일기장 속에 고이 보관되었다.
그애에게는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수다스럽
고 허영심이 많은 데다가, 성격도 급하고 남의 험담하를 즐기는 그애와
나는 생각해보면 통하는 구석이란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가끔씩, 반
아
이들에 관한 험담을 자랑삼아 떠들어 대는 그애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하지만 그애의 남 욕하기는 말할 당시 뿐
이고 마음 속에 담아 두거나 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욕을 하며
떠벌리고 다니다가도 막상 그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도와주곤 했으니까. 그애의 그런 점이 그애를 미워할 수 없게 만
들었다.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그애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
난
그때까지 누구하고도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좋아하는 아이가 생기더라도
그건 내 마음 속에서만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감정일 뿐이었다. 누군가
에게 내 마음을 열어 보인다는 것이 나는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감
정이 받게 될 상처를 두려워했다.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내 성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애와 둘도 없는
친
구사이가 되었다. 모든 건 그애의 걱실거리는 행동거지며,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버스는 오래지 않아 청주시내로 들어선다. 시계탑을 지나고, 시외버스터
미널을 지나고, 무심천을 건너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우회전을
해서
진로백화점과 남궁병원을 지나 버스는 어느덧 육거리시장에 닿는다.
버스
에서 내려서는 십여 명의 사람들 속에 묻혀 나는 육거리 시장 안으로
들
어간다. 버스 정류장에서 첫번째 보이는 과일 가게 옆 골목으로 몇 걸음만
들어가면 작은아버지의 포목점이 있다. 골목을 돌아 스무 걸음 쯤 걸어서
'평화 포목점'이라는 작은 입간판 앞에 서면 유리문 안에 작은 어머니
작은 아버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아버지는 반갑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진숙이 이제야 오는구나, 어서 와라"
작은 아버지는 의자를 내어놓으며 자리를 권한다. 작은 어머니도 덩달아
일어서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몇마디의 인사말이
오가
고 잠시 침묵이 흐른다.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탓에 대화거리가 없는 이
유도 있지만, 어른들과 대화하기를 꺼리는 숫기 없는 내 성격 때문에
작은
아버지와의 대화는 자주 끊긴다.
작은 아버지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나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린
다. 열평 남짓의 가게 안은 갖가지 색의 천들로 화려하다. 문이 있는
쪽을
제외한 삼면의 벽에는 천을 감아 놓은 두루마리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
다. 문 맞은 편의 벽 쪽에는 주로 원색의 천들이, 문 양쪽으로는 스트라이
프며, 체크 무늬, 꽃 무늬크고 작은 땡땡이 무늬의 천들이 놓여있다.
문쪽
유리벽에는 면으로 된 이불커버와 베갯잇 등이 쌓여 있고 문 바로 옆에
원통형의 쓰레기 통이 놓여 있다. 가게 한가운데에도 갖가지 천들을
진열
해 놓은 진열장이 있다. 진열장 뒷편으로 사람 둘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공간이 있다. 작은 어머니는 그곳에 둥근 의자를 놓고 앉아 계시
다. 작은 어머니가 앉아 있는 의자 뒤쪽으로 난 문을 열면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작은 어머니는 이불커버며 베갯잇 등을 만드신다.
작은
아버지와 나는 한가운데 놓인 진열장 앞 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다.
작
은 아버지가 볼 일이 있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참, 아버지가 드리라고......."
나는 생각난 듯 꿀단지를 내어놓는다. 처음 가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
터 작은 어머니는 내 손에 쥐어진 꿀단지에 시선을 주곤 했지만 나는
짐
짓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던 것이다. 이제 더이상 아무도 꿀단지에 시
선을 주지 않게 되자, 나는 그것을 그들에게 내어 놓았다.
"며칠 놀다가 가려무나."
작은 아버지는 이 말을 툭 뱉어 놓고서 밖으로 나가신다. 물론 내가 오래
머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사치레로 하시는 말씀이다. 작은
어머
니와 나와의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계속된다.
"나이가 들었으면 나이값을 해야지, 언제까지 집에 틀어박혀 지낼 것이
여. 진숙이 여기와서 가게 일이나 돕지 그려. 혹시 알어. 밖에 나왔으문 니
좋다는 사내놈 하나 나타날지"
작은 어머니의 말투는 언제나 못마땅하다는 투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며, 대하는 태도도 역시 그렇다. 내가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 정도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작은 어머니의 생각이 사실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나에겐 달리 무엇을 해서 살림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내 삶에 관한한 '열심히' 라든지, '새롭게' 라든지,
'희망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라는 것이다. 작은 어머니의
가시
박힌 말들은 내가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리 듣기
좋은
말들은 아니다.
"제가 있으면, 도리어 작은 어머니 번거로우실 거예요. 뭐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죠. 오늘도 오래 머물 작정은 아니예요. 작은 아버지 들어오시면
인사드리고 금방 집에 내려갈거예요. 저 한텐 신경쓰지 마세요"
나는 시선을 내리깐 채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내 목소리는 가게 안에
진열된 천들의 화려한 색채에 묻혀 버린다.
"어떤 놈은 뭐 태어날 때부텀 일을 배워 갖고 난다냐. 다 지가 헐 나름
이지. 또 니가 그렇게 된 건 어렸을 적 일이 아니냐. 지금은 또 그때랑은
다르고"
작은 어머니는 내가 손가락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믿고
계시다. 고3 때 포목점에서 사용하는 재봉틀을 만지다가 실수로 두 가락
을 천과 함께 박음질했다. 그 후로 신경이 끊어져 못쓰게 된 것이다.
물론
손가락을 못쓰게 된 것이, 성격이 더욱 내성적이 된 원인이기도 하다.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나는 작은 아버지 댁에 머물렀다. 사실
작은 집이 청주에 있기 때문에 내가 청주로 진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분 다 가게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집안 일이 작은 어머니에게는 무척
버거웠던 참이었다. 작은 어머니는 내가 집안 일을 도울 수 있을거라는 기
대를 내심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집에서 통학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
다. 물론 고등학교 때 나는 무척 부지런한 편이었다. 아침이면 사촌들에게
도시락을 싸주었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 청소며 빨래를
도
맡아 했다.
하지만 손가락을 잃은 후부터 나는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작은어머니에게는 큰 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좀 어떠시냐. 여전허셔?"
한동안 가게 안을 감싸던 침묵을 깨고 작은 어머니가 말을 꺼낸다.
"예, 잘 지내세 ......."
그 때, 가게문을 열고 여자 둘이 들어온다. 문을 여는 동작과 함께 작은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손님과 작은 어머니와의 대화로 인해
가게
안은 새로운 공기를 갖는다. 그들은 이불감을 고르고 있다. 아마도 신접살
림에 쓰일 것일 성 싶다. 작은 어머니는 이것 저것 이불감들을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안쪽으로 자
리를 옮겨 앉는다. 그들의 시선과 손이 연신 갖가지 종류의 천들을 탐색하
고 있다. 평소엔 무척 무뚝뚝하게 생겼다고 느꼈던 작은 어머니의 입술이
가볍게 들썩거리며 온갖찬사의 말들을 만들어낸다.
그애는 입술이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그 작고 도톰한 입술을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쫑알대었다. 남 험담하기를 즐겼지만, 남에 대해 찬사를 늘어
놓는 것도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넌 아주 지적인 분위기를 가졌어'라든
지, '나는 네가 춤을 추는 것을 볼 때면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한
것
으로 착각을 한다니까.' 라는 것 등이 그애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들이었
다. 그때마다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애의 칭찬들이 마음으로
느껴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그애가 있어서 즐거웠다. 그
애는 내가 춤 추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항상 무용시간이면 내 파트너가
되기 위해 친구들과 자리를 바꾸곤 했다. 반 친구들에게 시범을 보인다거
나, 무용대회가 열릴 때면 그애가 가장 먼저 나를 선생님께 추천했다.
덕
분에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춤을 고교시절 내내 마음껏 출 수 있었다.
그 앤 '니가 무용반 애들보다 훨씬 더 잘 춘다. 너도 무용반에 들 수 있으
면 좋을 텐데'라며 항상 아쉬워 했다. 우리 학교에는 대학진학을 위한
무
용반이 있었다. 그애들은 항상 길게 기른 머리를 하나로 총총하게 묶고 다
녔다. 그애들이 자습시간에 무용실에서 무용 연습을 하기 위해 나가거나
방과 후에 무용교습소에 다니는 것을 보면 나도 내심 부러운 생각이
들곤
했다. 은주가 옆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나는 내
마음
을 밖으로 드러내진 못했다. 하지만 왜 나도 안타깝지 않았겠는가. 그애가
'우리 나중에 꼭 같은 대학가자. 넌 무용과에 가고, 난 산디과에 가고.
그
러면 참 좋겠다 그지?' 라고 말할 때면, 나도 '그래 그러면 정 좋겠다'라
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
었다. 무용은 커녕 대학에 간다는 것도 내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무용반 애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날아갈 듯 춤추는 것을 보는
것
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우리집 가정형편으로는 무용 의상을 마련할 형
편이 못 되었던 것이다. 그건 대학 진학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 겨우
논 몇마지기 농사로 먹고사는 집안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대학에 간
다고 우겼다면, 아마 아버지는 나를 마당으로 내몬 채, 빗자루로 후려치며
욕을 해대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9급공무원 시험을 치르거나, 작은
회
사에 취직을 하길 원하셨다. 그러다가 시집도 가고, 애도 낳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원하셨던 것이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팔자가 세진다는 말
을 항상 하셨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께 대들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건 마음 뿐이었다. 아버진 내가 학교에서 무용시간이면 빛나는
인물이 된다는 걸 모르고 계셨다. 하긴 그건 아버지의 관심 밖의 이야기니
까. 난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었다. 일찍 홀로 되시고 이제껏 혼자 힘으로
삼남매를 키우셨다. 우리 삼남매에겐 아버지가 거역할 수 없는 경외의 대
상인 것이다.
"예, 둘러보시고 오슈."
내내 갖가지 천들을 탐색하던 손들은 다시 오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
진다. 작은 어머니는 기운이 빠진 듯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신다.
"에고, 까다롭기는, 어디 가문 머 특별한 게 있나. 맨 똑같지"
다시 가게 안은 작은 어머니와 나 둘만이 남겨진다.
"진숙이 너두 시집가야헐 텐디, 어디 슨자리라도 알아보까?"
작은 어머니는 화제를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리신다.
"아니예요, 전 시집 안가요. 아버지 모시고 살아야죠. 그리고 누가 저
좋
다고 하겠어요? 나이도 많고, 하나 내세울 것도 없는데......."
"야,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잖냐, 허긴 지 맴이 안차서 그러는 것이지,
넘 탓이 아니고. 너 정신 차려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것이여"
작은 어머니는 한참이나 잔소리를 하신다. 사실 그런 잔소리가 듣기
싫어
서 나는 친척 집 방문하기를 꺼린다.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들이 하는
소
리가 얼마나 남에게 큰 상처와 귀찮음을 주는 것인지.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 삶 안에서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
다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삶들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고 끼워
맞추려
애쓴다. 더불어 주변의 삶들도 자기 마음대로 일반화된 삶의 잣대로
재어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가위를 들고 재단하려 든다. 나는 이미
내 삶에 익숙해졌다. 가끔 '꿈꾸는 길'을 달리며 내재된 욕망을 깨우는
일
조차도.
대체로 나는 남들의 이야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짜증이
일기도 한다. 평소에는 귀찮음의 정도에서 그치고 마는 것들이 어느
때는
한층 더 신경을 건드린다.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장 쉽게 피하는
방법은 그들이 떠드는 대로 그냥 놔두는 것이다. 어쩌다가 말 한 마디
잘
못 던졌다가는 몇 배의 잔소리로 돌려 받게 마련이다. 그렇게 떠들다가 지
치도록 두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말을 하나도 듣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들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그들의 말이 많이
맞
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이제와서 내가 어쩌겠는가. 이미 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 것을. 타인의 말 한마디로 이제껏 생활 속에서 진행되어
굳어진 삶이 방식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겐 그럴 마음이
전
혀 없다. 어느 코미디언의 말대로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나는 음성행 버스에 오른다. 오랜만의 외출
때문인지 몹시 피곤하다. 걸음이 무겁고 머리가 아프다. 자리에 앉자
모든
피로가 동시에 밀려옴을 느낀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때 누군가 옆자리에
앉는 느낌을 받는다. 눈을 떠서 옆자리의 사람을 확인하고 싶지만, 쉽게
눈이 떠지질 않는다. 예전의 그도 그렇게 살며시 내 옆자리에 와 앉았다.
서늘한 한기를 가득 묻힌 옷자락이 내 팔을 스쳤을 때, 나는 눈을 떴다.
그는 나를 보며 가만히 웃었다. 그의 맑은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웃음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름이 뭐예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나에게로 향하는 것인지
확인
하기 위해 그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분명히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난데 없이 이름이 뭐냐니, 난 당황스러웠
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그가 의아스러우면서도 왠지 느
낌이 나쁘지 않았다. 난 어떻게 대답해야할 지 몰라서 피식 웃음을 흘린
채 시선을 떨어 뜨렸다.
"좀 크게 웃어봐요. 난 아가씨 이름이 '침울'이나 '눈물'이 아닐까 생각했
어요.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길래......"
너무나 당돌하게 파고드는 그의 말에 나는 대답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퍽퍽한 마른 미소가 조금 새어나왔을 뿐이다.
"아, 제가 너무나 무례했죠? 죄송해요. 전 김용현이라고 합니다. 진짜
이
름이 뭐예요?"
그는 하얗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이 너무나 해맑아 나는
더우기 움츠러 들었다.
"숙녀에게 함부로 이름을 묻는 건 실례인가? 그럼 이름을 묻진 않겠습
니다. 나중에 말하고 싶을 때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때 나는 그로 인해 내마음이 오래
도록 아프리라는 것을 그러나 그 아픔을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휴학중이라는 그는 복학을
하기
전에 고향에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제대를 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모든게
낯설게 느껴진다고 말하며 그는 예의 하얀 웃음을 흘렸다. 그의 하얀
웃음
을 보면서 나는 더욱 슬퍼졌다. 나는 그런 웃음을 짓지 못하기 때문이었
다.
'김. 용. 현.' 그의 아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가 내
앞
에 나타나 하얗게 웃을 것만 같다. 문득 나는 눈을 떠서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본다. 그가 어느날 문득, 그날처럼 갑작스럽게 내게로
돌아
올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아니다. 그와 같은 웃음은
한
번도 지어보지 못했음직한 세파에 시달린 중년의 얼굴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준다. 어둠이 나에게 아무런 볼거리도 주지 않으려
한다. 나는 바투 창으로 고개를 드밀어 보지만 눈 앞에 보이는 건 캄캄한
어둠 뿐이다. 대신 창문에는 버스 안의 풍경이 어린다. 옆자리의 남자가
잠을 자고 있다. 그리고 일그러진 나의 얼굴이 보인다. 보기 싫게 주름진
얼굴이다. 다시 눈을 감는다. '사랑해'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
게 말하지 못했다. 가슴 시리게 그를 사랑했지만.
그때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그가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모르는
일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렇게 안타깝게 그리워하고 있을 때 절실해
지는 감정일 뿐이다. 그는 나를 쉽게 잊을 것이다. '사랑해' 라고 쉽게
말
했던 것처럼. 나는 어떤가. 그때 나의 머뭇거림은 사랑했던 대상에 대한
머뭇거림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에 오래
괴로울 테지만, 또한 언젠가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나는 깨달을 것
이다. 그렇게 나는 쉽게 포기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그가 떠나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될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의연하게 그를 보냈다. 네가 가더라도 난 슬퍼하지 않아, 라는 것을 그에
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껏 내가 지었던 어떤 표정보다도 더욱 밝게
웃으
며 난 슬픔을 기뻐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가 돌아서서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돌아섰다. 등 뒤로 느껴지는 그의 안타까운 눈빛을 무시하려 애
썼다. 멀리서 그가 탄 버스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를 태운 버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내 버스가 지나간 흔적을
쫓으
며 내 시선은 거두어 지질 않았다. 그가 떠난 터미널 앞 식당에서 나는
기
름이 둥둥 뜬 맛없는 순두부백반을 사먹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서 밥
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아, 라고 그가 내게 말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허
름한 식당에서 시선에 쫓기며 혼자서 밥을 사먹는 고통을 나는 즐겼다. 이
젠 마음껏 외로워야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그가 떠난 지 일주일 후 나는 그의 아이를 지웠다. 그때도 후회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아이의 생각을 했다. 나의 허물로 인해 세상에
고
개도 내밀어 보지 못하고 떠나고만 내 아기에 대해서.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욱 행복한 것인지 모른단다. 라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아기
가 다음엔 나같은 못난 여자가 아닌 좀더 행복한 여자의 뱃속에 잉태되길
바랬다. 진심으로.
나는 가끔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를 뿌리쳤더라면, 지금의 시간이 어
떻게 흘러왔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또 그애가 내 옆자리로 옮겨 앉
는 것을 막았더라면 내 삶이 지금과는 다르게 진행되어 있지 않을까에 대
해서도 생각해본다. 그래, 만약 그들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
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내 구실을 잘하는, 마음의 상처를 아무에게도
들어
내 보이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나
와 같은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서 그에게 줄 따뜻한 저녁을 차리며, 다음날
아침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에 대해서 고민하는 그런 삶을 살고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지난 일이다. 이제 아무것도 돌이킬 수
있
는 것은 없다.
버스에서 내려서 나는 호젓해진 시골길을 걷는다. 사방은 캄캄한 어둠
뿐이다. 멀리서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빛은 희미한 존재만을 알려주
고 있다. 조심조심 바닥을 디디며 나는 어둠에 익숙해지려 애쓴다.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이 윙윙 거리며 귀를 때린다. 나는 한발을 디딜 때마다
아라베스크 동작을 취해본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서엇, 다시,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서엇
....."
무용실에서 아라베스크를 연습하는 내 모습을 그애는 크로키해 주곤
했
다. 흐릿한 연필선들이 모여서 어느새 나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청순한
모습으로 발레를 하고 있다. 그애와 둘이 있으면 나는 내가 무용수가
된
것 같아 행복했다. 두 손을 배꼽 앞으로 모으고, 발꿈치를 엇갈리게 하여
두 발이 평행이 되게 놓는다. 어느새 나는 새하얀 발레복을 입고 있다.
머
리에는 진주가 박힌 왕관을 쓰고, 지그프리트 왕자를 그리워하는 오데트
공주가 되어 백조의 호수를 흥얼거린다. 두손을 앞으로 들었다가 오른 팔
을 위로 올리면서 뒤꿈치를 살짝 든다. 넌 무용을 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
복해 보여, 그애가 말했다. 그래, 난 무용을 하고 싶어 항상 춤만 추면서
살거야, 내가 공연을 하게 되면 네가 와서 스케치 해줘. 나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이번엔 왼쪽 팔을 위로 올리고 오른 팔을 밑으로 내리면서 다시
한번 뒤꿈치를 살짝 든다. 우리 같이 서울가지 않을래? 너에게 '백조의 호
수'를 보여주고 싶어. 표는 내가 구해볼께. 어느날 그애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나는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만날 기대로
흥분
되었다. 하지만 난 주말이면 시골집에 가야하는데, 아버지가 기다리셔. 쉽
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나를 그애는 답답해했다. 이번 한 번만
안가면 안 돼? 학교에 일이 있다고 하면 되잖아. 우리 몰래 가자. 그애와
나 둘이는 비밀 계획을 세우고 나서 무용실 바닥에서 한참이나 뒹굴며 웃
었다. 두 팔을 양 쪽으로 벌리고 발을 평행으로 다시 배치한다. 그 앤
날
기다리고 있었다. 청주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그애와 약속한 날 아침까
지도 나는 정말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기 전에는.
이번엔 돌기동작이다. 두발을 겹쳤다 풀었다 하면서 양 팔은 공기를
안는
듯이. 세상이 돈다. 돌아간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한참을 망설이다
고속
버스터미널에 난 늦게야 도착했다. 길 건너에서 그애의 모습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날 기다리는 그애를 보는 순간, 나는 겁이 났다.
내
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나에겐 꿈을 꾸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금기를 깨고 있는 것이다. 다시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애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애가 뛰기 시작했다. '진숙아' 나를 부르며 뛰어오는
그애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진숙아' 그애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그 때, '끼이익' 자동차의 신경질적 소음과 함께 세상의 시간이 멈
추어 버렸다. 마지막 정지 동작, 우아한 몸짓으로 두 팔을 위로 올려
원을
만든다. 두 발은 뒤꿈치가 엇갈리게 평행으로 배치한다.
나는 길바닥에 주저 앉아 버린다. 그애의 영상이 떠나지 않는다. 이제
세상에 그애, 은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애는 나에게 꿈을 심어주려
했다.
내 삶의 금기를 깨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애, 은주는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신을 외면해버린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진숙
아, 넌 왜 너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거니?' 그애가 말했다. 이
세상
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 내마음을 누구보다 그애, 은주가.가
장 잘 알았다. 난 두렵다. 나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다시 일깨우는 이.
그리고 누군가 다른 사람을 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꿈을 꾸는 것이.
길바닥에 한 참이나 주저앉은 채로 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그
애가 보고 싶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내 소중한 꿈.
멀리서 손전등 불빛이 걸어오고 있다. 동그란 모양의 빛이 흔들리면서
다가온다. 나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입을 길게 벌
리며 그의 웃음을 흉내내어 본다. 그리고 걷는다. 불빛이 가까이 다가선다.
"진숙이냐? "
아버지다. 아버진 나를 힐끔 보시더니 다시 내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신
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걷는다. 어둠 속에 오직 하나의 빛을 의지하며
아
버지와 나는 걷고 있다. 작은 빛은 어둠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덩이며,
길
가운데 놓인 돌덩이들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가려준다. 난 네가 세
상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작은 빛이 되줄께. 그의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에게 눈이 멀어버린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세상이 온통 어둠
뿐
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제는 어둠만이 내 삶이라
는 것을 인정한다. 섣불리 행복해지려 노력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아버지
가 들고 있는 작은 손전등 불빛도 언젠가 꺼져버릴 것이다. 그땐 다시
나
혼자다. 어두운 길을 혼자 걷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얘야, 숙모가 별다른 말 안하시든?"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으신다.
"아버지 건강하시냐고 물으시던데요? 그래서 아직 정정하시다고 그랬죠.
그리고 꿀, 정말 고맙게 잘먹겠다고요."
내 혼처가 혹시 나지 않았느냐는 것을 물으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
는 일부러 딴청을 부린다. 아버진 다시 아무말이 없으시다. 나이 든 딸이
안타까우신 게다. 난 이대로가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소
리로 내어 말하지 못한다. 옆집 검억이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제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손전등을 끄고 방으로 들
어 가신다. 나도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을 하며 내 방으로 들어선다. 아주
오랜만 인듯 방안의 물건들이 반갑다. 불을 끄고 펼쳐진 이부자리로
몸을
집어 넣는다. 피로가 몰려온다. 나는 눈을 감는다. 낮에 보았던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떠오른다. 그 화려한 생기 가득한 길이 다시 보고싶을 것이다.
그의 하얀 웃음처럼, 나의 눈을 멀게 한.
첫댓글 부끄러운 졸작에 많은 뜻있으신 분들의 한마디 꼬집음을 원합니다.^^ 바닷바람에 때를 벗기고 돌아와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글을 쓰고 싶군요^^.
글 정말 잘 쓰시네요. 문장력이 거의 프로작가수준이십니다. 감성이나 발상도 수준급(하루키를 연상시키는...그러면서도 여성적인 성실함이 녹아있는)이시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너무 설명과 묘사중심이다 보니 글 전체에 생동감이나 흥미를 끌만한 면이 부족하네요. 글 전체를 조망하면서 독자들이
다음이야기를 기대할 부분을 찾아보세요. 다음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설명이 계속되면 독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되죠. 그점만 보완하면 아주 작품입니다. 건필~~
그럭저럭 문장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군요. 다만 문장 수식이 아직 껄끄러운 면이 있네요. 시간이 나는대로 꼼꼼하게 살펴본 답글을 달아보죠. 예전에 쓰셨던 작품이니 오자, 틀린 띄어쓰기는 당장 다듬어낼 짬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군요. 바다 바람 잘 쐬고 오세요.
졸작에 남겨주신 고평에 감사드리며, 언제 시간을 내어 아쉬운점을 고쳐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오자나 뛰어쓰기에 문제를 지적해주시니 부끄럽기 짝이 없군요. 세상을읽는사람님, 아직도 국문법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제가 하염없이 부끄럽군요.... ^^
윗 분의 말씀처럼 무척 안정되고, 깔끔한 문장들이네요. 기존 작가가 쓴 것 처럼 매끄럽구요. 그리고 전개가 약간 늘어지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이 소설의 주제와도 상관이 있는 것 같아서 괜찮구요.(개인적으로는 역동적인 걸 좋아하지만^^) 세밀하고 담담하게 이어지는 묘사 같은 것들이 일상의 지루함을보이는듯.
그니까 내용과 형식이 들어맞는다고 할까.. 하지만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존작가가 쓴 느낌이 드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네요. 그냥 기존의 것을 비슷하게 답습한 느낌. 그 느낌을 벗어나보려는 시도도 작품활동에 도움이 될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