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깬 색감과 패턴으로 이뤄내는 작품
아직도 신부는 다홍치마에 연두저고리를, 시어머니는 푸른 계열의 치마를, 친정어머니는 붉은 계열의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한복 디자이너 윤은숙의 한복을 만난다면 이제까지의 고정관념이 깨질 듯하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오묘한 색감에 독특한 패턴은 ‘한복은 결혼이나 명절 때만 입는 전통 복식’이라는 고루한 생각을 바꿔놓을 것이다.
- ▲ 심은지씨 화보촬영
‘한복이 저렇게 예뻤어?’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 특히 지난해 결혼한 탤런트 정태우 부부의 한복 웨딩촬영은 한복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만들었다. 탤런트 박상민의 한복 웨딩촬영은 또 어떤가. 일반적인 한복이 아닌 궁중 전통 복식을 현대적으로 재현해 독특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작품이 완성됐다. 박상민 부부는 결혼식 당일에도 이 한복을 입었다. 이들의 한복은 모두 윤의한복 윤은숙 한복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그녀의 한복은 독특하고 눈에 띄면서도 세련된 감각으로 특히 연예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색감과 패턴의 실험을 통해 태어나는 아름다움
- ▲ 윤의한복 윤은숙 디자이너, "한복의 세계화, 고정관념을 깨면 가능합니다"
“모티프는 자연이 될 수 있는 건축물이 될 수 있고, 전통 복식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왕후가 입던 옷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패턴에 약간 변화를 주기도 해요. 볼수록 단아한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인 것 같아요.”
한복의 분위기는 색감과 패턴에 의해 좌우된다. 그녀의 한복은 흔히 쓰지 않는 색깔을 과감히 이용한다. 어두운 계열의 보라색 치마나, 갈색 저고리는 물론이고, 평범한 분홍색이나 노란색마저 독특한 느낌이 든다. 모두 염색을 통해서 찾아낸 색깔이다.
“염색을 하다 보면 수백 가지의 색깔을 찾아낼 수 있어요. 어떤 색을 보고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염색하면서 발견하는 거죠. 그렇게 찾아내는 색깔들은 모두 예뻐요. 염색을 하면 예쁘지 않은 색이 없어요. 또한 염색을 한 번 했나, 두 번 했나에 따라 색감이 달라져요. 염색하고 발색하는 과정을 열 번 이상 반복하죠.”
염색에는 옷감으로 만든 후 염색하는 ‘후염’과 실 자체를 염색해서 옷감을 만드는 ‘선염’이 있다. 선염의 경우 두 가지 색의 실을 이용해 독특한 매력의 색깔을 찾아내기도 한다. 금색과 검은색 실을 섞어서 직조할 경우 안정적인 톤의 컬러가 완성되는 것이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천을 겹쳐 사용해 독특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컬러의 믹스도 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소재의 천을 겹쳐 사용함으로써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시 질감이 느껴지는 소재에 양단을 믹스 매치하면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모시는 가벼운 느낌의 소재인데, 양단으로 포인트 컬러를 주면 전체적으로 무게감을 주게 되죠. 두 소재의 조화에서 독특한 느낌이 생겨나는 거죠.”
- ▲ (좌)배우 박상민♥한나래부부 (우)배우 정태우♥장인희부부
한복을 이브닝드레스로 입는 그날까지
윤은숙 디자이너는 한복과 함께한 지 벌써 20년이 됐다. 그녀는 “한복과 함께할수록 애정은 더 깊어지고, 그 매력의 깊이를 알게 된다”고 고백한다.
“제가 만든 한복은 4년 전에는 ‘저게 뭔데’ 하는 반응이었어요. 그때 한복이 지금에 와서야 반응을 얻는 경우도 있어요.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보다는 제가 만들고 싶은 한복을 만들었어요. 대중은 긴가민가해도, 연예인들은 쉽게 받아들이는 것도 그 때문이죠.”
지금의 한복은 결혼이나 명절 때나 입는 전통의상일 뿐이다. 그녀는 한복이 일상복이 되는 날을 꿈꾼다.
“아직까지도 한복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분위기예요. 한복이 그저 민족 복식으로만 보이는 게 싫어요. 자기네 복식을 외면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안타깝죠. 한복을 일상생활에도 입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색감이 중요해요. 한복에 많이 쓰이는 노란색이나 빨간색은 평상시에 입기는 부담스럽죠. 톤 다운된 색감은 튀지 않아서 얼마든지 생활에서 입을 수 있거든요.”
그녀는 한복의 세계화를 꿈꾼다. 한복을 그저 한국인의 복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나아가 외국인에게 ‘나도 입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LA에서 열린 한일복식전 워크숍에 참가한 적이 있었어요. 미국에는 기모노를 입는 모임이 있더라고요. 기모노를 입고 워크숍에 나타난 서양인을 보고 정말 부러웠어요. 우리 한복도 그렇게 되려면 패턴을 많이 바꾸어야 해요. 예전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패턴을 다양하게 보여줘야 하죠. 그렇게 되면 한복을 이브닝드레스로 입을 날도 오지 않겠어요?”
윤은숙 디자이너는 올 가을 파리에서 패션쇼를 마련할 예정이다. 그녀도 당장 한복이 서양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물꼬를 틀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해서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한복이 일본의 기모노나 중국의 치파오처럼 패션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윤은숙은 바로 그 초석을 마련하고 싶다.
- ▲ (좌)파티플래너 지미기♥제임스 페이튼 부부 (우)'바람의 나라' 의상제작
/ 여성조선
취재 두경아 기자 | 사진 박종혁
취재협조 윤의한복(02-517-7300, www.yoon-hanb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