喜怒哀樂之未發(희노애락지미발), 謂之中(위지중) ;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 謂之和(위지화).
희노애락의 감정이(喜怒哀樂之) 채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未發) 중(中)이라 일컫고, 그것이 모두 발현되어(發而皆) 자연과 도덕규범에 부합하는 것을 일컬어 화(和)라고 한다(謂之).
中也者(중야자), 天下之大本也(천하지대본야) ; 和也者(화야자), 天下之達道也(천하지달도야).
중이라고 하는 것은(中也者) 천하의(天下之) 모든 이치와 질서의 근본이요(大本也), 화라는 것은(和也者) 천하의 인간들이(天下之) 따라야 할 길이다(達道也).
致中和(치중화), 天地位焉(천지위언), 萬物育焉(만물육언).
중화(中和)의 지극한 경지에 이르므로(致), 천지가(天地) 제자리를 잡아 운행의 질서를 따를 수 있고(位焉), 그 사이에 만물이(萬物 무성히 자라는도다(育焉)!
한자풀이
喜(기쁠 희 xǐ) - 기쁘다, 즐겁다, 임신하다, 빛나다, 흥성하다, 좋아하다, 기쁨, 경사.
怒(성낼 노 nù) - 성내다, 화내다, 꾸짖다, 나무라다, 기세가 오르다, 힘쓰다, 성, 화, 기세.
愛(사랑 애 ài)- 사랑, 자애, 인정, 물욕, 탐욕, 그리워하다, 소중히 하다, 아끼다, 즐기다.
樂(노래 악 yuè/낙lè/요yào) - 노래, 음악, 연주하다, 즐기다, 즐거워하다, 다스리다, 바라다, 좋아하다.
未(아닐 미 wèi) - 아니다, 못하다, 아직 ~하지 못하다(not yet), 아니냐?, 미래, 장차.
發(필 발 fā) - 피다, 쏘다, 일어나다, 떠나다, 나타나다, 드러내다, 밝히다, 들추다, 계발하다.
中(가운데 중 zhōng) - 가운데, 안, 사이, 마음, 중도, 절반, 부합하다, 맞다, 적중, 바르다, 고르다.
而(말 이을 이 ér) - 잇다, 같다, 만약, 뿐, 따름, 그리고, ~로서, ~하면서.
皆(다 개 jiē) - 다, 모두, 함께, 다 같이, 두루 미치다, 견주다.
節(마디 절 jié) - 마디, 관절, 예절, 절개, 기념일, 풍류, 절도, 알맞은, 절약하다.
和(화할 화 hè) - 화하다, 화목하다, 온화하다, 순하다, 화해하다, 같다, 합치다.
本(근본 본 běn) - 근본, 뿌리, 줄기, 원래, 근원, 본성, 바탕, 조국, 고향, 본가, 근거하다.
達(통달할 달 dā) - 통달하다, 통하다, 이르다, 달하다, 현달하다, 이르다, 통용되다, 갖추다.
致(이를 치 zhì) - 이르다, 다하다, 부르다, 보내다, 그만두다, 주다, 곱다, 풍취, 정취, 취미.
位(자리 위 wèi) - 자리, 곳, 위치, 지위, 방위, 위치하다, 자리 잡다.
焉(어찌 언 yān) - 어찌, 어떻게, 어디, 어디에, 보다, ~느냐?, ~도다, 그러하다, ~와 같다.
萬(일만 만 wàn) - 일만, 만무, 대단히, 매우, 많다, 여럿, 절대로, 전혀.
物(물건 물 wù) - 물건, 만물, 사물, 일, 재물, 종류, 사람.
育(기를 육 yù) - 기르다, 자라다, 어리다, 낳다.
여운 해설
喜怒哀樂之未發(희노애락지미발), 謂之中(위지중) ;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 謂之和(위지화).
희노애락의 감정이 채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일컫고, 그것이 모두 발현되어 자연과 도덕규범에 부합하는 것을 일컬어 화(和)라고 한다.
기쁨(喜) · 노여움(怒) · 슬픔(哀) · 즐거움(樂)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未發)를 '中'이라고 한다.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이 모두 발현되어 자연과 더불어 인간 사회의 모든 도덕규범에 들어맞는 상태를 '和'라고 한다. 나는 처음 이 구절을 읽고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서양철학을 내 머릿속에서 내려놓았다.
뇌 과학의 최근 주제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양철학은 2천 년이 넘도록 이성을 규정하였다. 서양철학의 근본은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다. 이성과 감정의 대립, 삶과 죽음의 대립, 선과 악의 대립, 자연과 인간의 대립, 몸과 정신의 대립,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좌와 우의 대립이다. 이를 구조주의에서는 이항대립(二項對立, binary opposition)이라 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변증법적 논증인 정반합(正反合)이다. 이 문제를 현대 과학으로 풀어보려 했던 것이 지난 15년간의 내 공부이자 연구였다.
공자의 손자 자사는 기원 4세기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감정의 氣(기), 그 기가 채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中'이라고 했다. 그리고 발현되어 調和(조화)를 이룬 상태를 하늘의 내린 性라고 하였다. 중이라고 하는 것은(中也者) 천하의(天下之) 모든 이치와 질서의 근본이요(大本也), 화라는 것은(和也者) 천하의 인간들이(天下之) 따라야 할 길이다(達道也). 중화(中和)의 지극한 경지에 이르므로(致), 천지가(天地) 제자리를 잡아 운행의 질서를 따를 수 있고(位焉), 그 사이에 만물이(萬物) 무성히 자라는도다(育焉)!"
그야말로 天人合一(천인합일)이다.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는 四端是理之發(사단시리지발) 七情是氣之發(칠정시기지발)이라 규정했다. 사단은 理에서 발현되었고, 칠정은 氣에서 발현되었다. 理와 氣가 하나냐 둘이냐의 문제가 바로 '理氣 一元論(리기일원론)'이냐 '理氣二元論(리기이원론)'을 규정짓는 것이다.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으로 유명한 퇴계 이황(1501~1570)과 고봉 기대승(1527~1572)의 그 유명한 '썰전'이 바로 이 중용의 이 구절에서 기인한다.
사단(四端)은 맹자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근본으로 한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선(性善) 하다고 보았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싹(端)이다.'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싹이다.'
'사양하고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싹이다.'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싹이다.'
공자는 『공자가어』에서 칠정(七情)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何謂人情(하위인정)? 喜怒哀懼愛惡欲七者(희노애구애오욕), 弗學而能(불학이능)."
"인정(人情)이란 무엇을 이르는가?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증오, 욕심의 7가지의 감정을 말하는데, 이는 배우지 않아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다. "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본능인 원초적인 감정을 말한다. 칸트가 말한 선험적(先驗的)인 것이다. 서양의 끝없는 논쟁인 '본성(Nature) vs 양육(Nurture)'이냐의 문제가 동양에서 훨씬 먼저 이루어졌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인연, 그리고 '사칠 논변(四七論辯)'
어려서부터 비범하고 총명했던 기대승은 7~8세의 어린 나이에 소학과 효경을 떼고, 23세 때 사마시에 응시해 진사·생원의 양과에 합격했다. 32세가 되던 1558년에 식년 문과 을과(文科乙生科)에 장원으로 합격했다. 이때부터 승문원 부정자와 예문관검열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홍문관 부수찬겸 검토관이 되어서는 언론의 개방을 역설하기도 했다.
1558년 문과에 등과하면서 관직을 제수 받은 고봉은 서울로 올라와 평소 흠모했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집을 방문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지만, 두 사람은 마치 십 년 지기와도 같았다.
두 사람의 지위와 신분 지역 차이는 컸다. 당시 퇴계는 58세로 학문으로는 현인의 경지에 이른 '성균관 대사성', 지금으로 보면 서울대학교 총장이었다. 반면, 32세의 고봉은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초급 관료였다.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과 26세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퇴계는 열린 마음으로 고봉을 논쟁의 상대로 받아들였다.(출처 오마이뉴스 임영렬)
퇴계는 주희를 따라 理氣二元論(이기이원론)을 옹호하였다. 이에 대해 기대승이 “칠정 이 외에 달리 또 사단이라는 정이 없다”라는 생각에서 이황에게 해명을 요구함으로써 문제가 발단되었다. 이에 이황은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여 "사단은 이가 발현하는데 기가 거기에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현하는데 이가 거기에 타는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사단리발이기수지七情氣發而理乘之칠정기발이리승지)." 이황은 이성(理性) = 理, 감성(感性) = 氣로 바라보고 이와 기를 서열이 있는 貴賤(귀천)으로 보고 이성이 감성을 다스려 인간이 짐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바라보았다. 지금으로 치면 퇴계는 서양철학을 옹호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욕망을 별개이자 대립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理가 氣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理=善, 氣=惡이다'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발로였다. 물질과 에너지가 아인슈타인에 위해 E = mc²이라는 공식을 도출했다. 빅뱅 우주론은 우리 우주가 한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물질과 에너지도 감성과 이성도 하나다. 현대과학이 밝힌 결과는일원론이다.
“(전략)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이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에 빠지려는 것을 보게 된다면,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에게서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端)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四端〕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맹자 공손추 상편
동양철학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렇기 때문이다. 한문도 어려운 데 풀어놓은 말은 더 어렵다.
감정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인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감정을 규정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노스이스턴대학의 심리학 석좌교수이자, 하버드 의과대학원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정신의학과와 엑스선과 의사로도 재직 중이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며, 인간은 이성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감정에 휘둘리기만 하는 존재일까? 감정은 실제로 무엇인가? 과학자들의 고전적 견해를 한쪽으로 제쳐놓고 그냥 데이터만 살펴보면, 감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설명을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감정은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당신의 신체 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당신의 문화와 양육 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한다.
개인의 감정 경험이 개인의 행동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성되며, 우리가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환경의 설계자이자, 감정의 설계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 개념은 사람들 사이의 집단 지향성을 통해 사회적 실재로서 존재한다. 우리가 서로의 감정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동물임을 자각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시작해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내일을 바꿀 수 있다."
뇌는 거대한 신경회로망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이다.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도를 수련하고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뇌의 회로를 사회적인 뇌로 교화하는 것이다. 평판과 여론이 처벌과 보상이 명료해야 한다. 그래야 감성과 이성이 동시에 제대로 발현하는 것이다.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그래서 필요하다.
中也者(중야자), 天下之大本也(천하지대본야) ; 和也者(화야자), 天下之達道也(천하지달도야).
중이라고 하는 것은(中也者) 천하의(天下之) 모든 이치와 질서의 근본이요(大本也), 화라는 것은(和也者) 천하의 인간들이(天下之) 따라야 할 길이다(達道也).
나는 中을 거대 우주에 작용하는 힘인 질량이 있는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인 인력(引力) 즉, 중력(重力, Gravity)이다. 실질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전자기력이지만 거대 우주에 항성을 만들고, 행성, 거대 은하, 빛의 경로 역시 중력이 작용한다. Chaos에서 질서가 생기는 Cosmos의 과정이야말로 천하의 이치와 질서의 근본이요, 이러한 질서가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연주되는 것이 바로 Harmony인 和이다. 화는 천하 모두가 달성해야 하는 길인 것이다.
致中和(치중화), 天地位焉(천지위언), 萬物育焉(만물육언).
중화(中和)의 지극한 경지에 이르므로(致), 천지가(天地) 제자리를 잡아 운행의 질서를 따를 수 있고(位焉), 그 사이에 만물이(萬物 무성히 자라는도다(育焉)!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천하의 근본인 中과 천하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길인 '和'는 미래지향적이다. 중과 화를 인간세의 모든 사람들이 지극하게 따르고 실천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지난 200백 년 동안 인위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급속도로 올려놓고 있다. 인간의 문명과 편리를 위해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결과이다.
지구가 급속도로 뜨거워지고 있다. 밸런스가 붕괴되고 지구가 스스로 자정능력을 잃고 있다. 천지가 제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조화가 깨져 붕괴되고 있다. 중과 화가 붕괴되면 만물은 자랄 수가 없다. 인간의 식량이 되는 풀이 멸종한다.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지 못하면 그 몫은 온전히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가 멸종의 대상이 된다. 지구의 최상위포식자는 바로 우리 인간이다. 중용의 가름침이 현대 인간들에게 필요한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