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도: 마시자, 마시자, 이 밤에 꽃으로 장식된 잔을 들고 잠시 동안 환락에 취하도록. 마시자, 사랑을 북돋우는 흥겨운 전율 속에, 그 눈이 내 마음에 대해 전능의 힘을 휘두르니까. 마시자, 사랑은 입맞춤을 좀 더 뜨거운 잔에서 얻으리라.
일동: 마시자, 사랑은 입맞춤을 좀 더 뜨거운 잔에서 얻으리라.
비올레타: 여기 모인 여러분들 속에서라면 흥겹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자는 모두 어리석은 바보짓을 할 뿐입니다. 즐깁시다, 순식간에 꺼지기 쉬운 것은 사랑의 기쁨, 피었다 덧없이 지는 한 송이 꽃, 두 번 다시 즐기는 일은 없어요. 즐깁시다, 뜨겁게 흥겨운 음악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 일동: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비올레타: 살아 있는 동안은 마냥 즐겁게.
알프레도 아직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겠죠.
비올레타: 사랑과 인연이 없는 자에겐 쓸데없는 소리에요.
알후레도: 이렇게 되는 것도 내 숙명이죠.
일동: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
〈라 트라비아타〉는 오페라 전체를 모르더라도 스토리나 몇 개의 아리아를 알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페라이다. 그런데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은 흥행 실패였다. 실패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비올레타 역을 맡은 살비니 도나텔리가 비운의 폐결핵을 앓는 여자주인공 역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담은 〈라 트라비아타〉의 배경이 당시 관객들에게 낯설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주인공의 신분이 당시의 도덕에 위배된다는 점도 대중의 반감의 원인이었다.
초연의 실패로 베르디는 무대의 배경을 1700년대로 바꾸고 가수진을 교체하며, 곡을 약간 수정하였다. 이후 베니스의 산 베네데토 극장에서 수정된 작품으로 재공연을 하였고, 〈라 트라비아타〉는 비로소 흥행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 뒷면에는 ‘부도덕’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 《동백꽃 아가씨》는 영국에서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거부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라 트라비아타〉는 1856년 영국에서 초연을 가졌지만, 비평가들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전 유럽의 관객들은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베르디의 오페라에 열광했으며,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베르디의 중기 오페라 3대작 중의 하나가 되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버림받은 여자’란 뜻이다. 원작인 뒤마의 《동백꽃 아가씨》는 뒤마가 당시 파리의 고급 매춘부인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쓴 소설이다. 소설의 성공 이후 뒤마는 5막짜리 희곡을 완성시켰으며, 1852년 첫 공연을 가졌다. 베르디는 2년 정도 파리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 때 뒤마의 《동백꽃 아가씨》를 보고 난 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오페라 작업에 착수하였다. 당시 베르디는 마르게리타 바레치를 일찍이 여의고 소프라노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장인과의 신뢰와 당대의 관습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인정받지 못했다. 주위의 상황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뒤마의 《동백꽃 아가씨》를 본 베르디는 본인이 처한 현실을 극에 투영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비올레타라는 인물이 과거 화려한 가수였던 스트레포니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1958년 런던왕립오페라극장 〈라 트라비타〉 공연에서 비올레타 역을 맡았던 마리아 칼라스
〈라 트라비아타〉의 성공은 비올레타의 역을 맡은 가수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비올레타가 전막에 걸쳐 등장하며, 각 막에 따라 요구되는 성악 기량과 연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방에서 연기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 이 오페라는 오로지 비올레타의 가수로서의 역량과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어 가야 한다. 거기에 비올레타는 복잡한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인물이다. 알프레도에 대한 혼란스런 마음과 사랑의 떨림,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여주인공까지 다채로운 성격을 연기해야 하는 것으로 어려운 역할이다. 특히 알프레도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아, 그인가’와 이어지는 곡 ‘언제나 자유롭게’는 오페라에서 비올레타의 흔들리는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중요한 장면으로 가수의 연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면이다. 여기에 더해 10분가량 연속으로 아리아-레치타티보-카발레타를 노래해야 하는 부분은 가수가 기교와 파워까지 겸비해야만 가능한 장면이다. 디가에타니는 그의 저서 《오페라의 초대》에서 비올레타 역에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스핀토 소프라노,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모두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 만큼 비올레타 역은 어려운 역이면서도, 소프라노 가수에게 자기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역인 것이다.
파리 고급 매춘부 비올레타는 파티에서 순진한 청년 알프레도를 소개받는다. 1년 후, 알프레도는 1년 전부터 그녀를 마음에 담았다며 구애를 하지만, 비올레타는 이를 거절한다. 한편, 비올레타는 홀로 있던 중 알프레도에 대한 혼란스런 본인의 마음을 깨닫는다. 결국 비올레타는 파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알프레도와 동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알프레도의 부재 중 찾아온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아들의 결혼을 이유로 알프레도를 떠나라고 비올레타를 설득한다. 제르몽에게 설득된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떠나지만, 알프레도는 이에 배신감을 느낀다. 파리의 파티장에서 비올레타를 만난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심한 모욕을 준다. 충격을 받은 비올레타는 쓰러지며, 사람들은 모두 알프레도를 비난한다. 시간이 흘러 홀로 남은 비올레타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고 제르몽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는다. 모든 사실을 알프레도에게 밝혔다는 제르몽의 편지에 비올레타는 이미 늦었음을 알고 슬피 운다. 뒤 늦게 찾아온 알프레도,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비올레타는 곧 알프레도의 품에 쓰러져 생을 마감한다.
첫댓글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