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처음 산행 계획을 세울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화령 → 백두대간 능선 → 낙엽송 지대 → 묵은 임도 갈림길 → 조봉 → 흰드뫼 갈림길 → 황학산 → 흰드뫼 삼거리 → 조망 바위 → 옥녀봉 갈림길 → 백화산 정상 → 옥녀봉 갈림길 → 마원리 갈림길 → 능선 갈림길 왼편 → 묘지 → 마원리 농로 → 천주교 마원성지'의 11.9㎞, 6시간 30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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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산
높이: 912m
위치: 경북 문경시 문경읍
황학산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추를 이루는 황학산은 제3번 국도인 이화령 남쪽 6㎞ 거리에 솟아 있고 바로 옆에 덩치 큰 백화산(1,064m)이 있기에 잘 알려지지 않는 곳이고 이 때문에 호젓한 산길과 산마루에 펼쳐진 큰 억새밭과 참나무 숲길은 어느 산과 비교해 보아도 뛰어나다.
문경 방면 마원리에서 산행이 시작되면 밑에서 보이는 밋밋한 산세가 무척 수월해 보이지만 막상 산행에 임해보면 경사가 예상외로 급하고 또 정상에서 백화산으로 잇는 능선은 수많은 암봉과 가득한 수림으로 덮여 있어 고산다운 면모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도 하다. - 한국의 산하
백화산[白華山]
높이: 1,064m
위치: 경북 문경시 문경읍, 충북 괴산군 연풍면
백화산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않다. 문경의 백화산은 이화령 황학산 희양산과 함께 준령을 이루며 괴산군 연풍면을 병풍으로 두르듯 하고 있다.
시내에서 보면 남서쪽에 근접해 있으면서 북서쪽에 있는 조령산과는 이화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 등산로는 마성면과 문경읍 마원리 각서리 이화령 등이 있으나 문경 시내 쪽에서 가는 것이 편리하다.
점촌에서 문경역 방향으로 가다 문경교 직전에 왼쪽으로 꺾어지면 마원리 오서골 마을 회관까지 들어갈 수 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949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찾을 수 있다.
계곡 길을 벗어나자마자 급경사로 이어진다. 그리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어서 가는 중간중간에 길이 희미해지기도 한다.
안내 리본도 흔치 않다. 물론 이정표나 안내판도 없다. 봉우리에 도착하기까지는 소나무와 잡목 숲을 지나야 하므로 시야가 트이지도 않는다.
정상까지는 가파른 암봉과 갈대밭이 이어진다. 정상 동쪽에는 넓은 터가 있고, 남쪽 면은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주흘산과 운달산 희양산 등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산행 최우선 순위인 해발 1,000m가 넘는 산 중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를 이루는 백화산이 있다. 이런 산이 있다는 것도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줄 세우다 보니 알았다. 그리고 2019년 9월 산행 계획을 세우다가 암릉이 좋아 몇 번 갔던 조령산과는 이화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산이라는 것도 알았다. 고로 백화산도 이화령을 들머리로 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말인즉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산이란 얘기다. 그 때문에 정 갈만한 산이 없으면 가기 위해 산행을 뒤로 미뤄둔 산중 하나다.
3월 말, 5월 산행계획을 세우기 위해 각 안내 산악회 카페를 방문해 산악회로서는 장기계획인 5월 산행에서 내가 목표하는 산이 있는지 찾아봤으나, 없었다. 해서 고개와 고개를 연결하는 대간, 정맥 산행 팀이 가는 구간에 목표하는 산이 있을 수도 있어, 그 산행을 일일이 클릭해 해당 구간에 어떤 산이 있는지 확인했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 상세계획을 확인하는 건 일반 산행이 "묘적봉", "주왕산" 등과 같이 대표 산이나 봉우리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대간 산행의 타이틀은 "사다리재~이화령" 또는 “대간43-7(선자령)”과 같이 대간 종주 시 연결 구간의 들머리와 날머리 고개로 나타내니 대간의 도사가 아니라면 그 구간에 어떤 산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간 종주가 목표인 대간꾼에게는 구간에 무슨 산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상세계획을 확인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아니라도, 유명산이나 고개가 있다면 대간 팀을 따라갈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갈 만한 산이 없었으면, 가능하면 피하는 일요산행계획까지 일일이 클릭해 상세계획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5월 16일 한 산악회 대간 팀의 산행 구간 중 백화산이 있는 걸 발견했다. 백화산이야 대중교통으로 갈 수도 있는 산이나, 대중교통 이용 시 집에서 들머리까지 그리고 산행 후, 날머리에서 귀가까지 몇 번을 갈아타야 하는 피곤함(어떤 때는 산행보다 더 힘든)이 없고, 비용도 절반 정도인 안내 산악회가 간다면 그 팀을 따라가는 건 앉으면, 눕고 싶고, 말 타면, 종 두고 싶은 거와는 별개로, 합리적 인간이라면 당연하다. 물론 주어진 산행 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나, 대도시 근교가 아니라면 오히려 대중교통이 허용하는 산행 시간이 더 짧다!
백화산은 대간 중에 있는 산이라 백두대간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대중교통이 아니라도, 대간 종주 산행팀을 운영하는 산악회를 따라 산행할 기회는 많다. 그런데 대간 종주 산행팀에 하나 아쉽게 생각하는 건 격주 무박 산행으로 25~30km가량을 달리는 산행이 대부분이라는 거! 무박 산행이 아니면 산에 가지를 않았던 때도 있었으나, 몇 년 전부터 지리산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피한다. 그런데 통상 대간 종주 구간을 다시 반으로 자른 당일 산행으로 백화산 계획이 나타났으니, 산행 신청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아직 2개월 가까이 남은 시점에 차 한 대를 채우고 두 번째 버스도 거의 채운 상황이라 망설였다가는 산행 당일 그나마 빈 자리도 없을 거 같은 분위기였다. 많은 대간꾼도 무박 산행에 부담을 느껴서 당일 산행 구간에 몰려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3월 29일에 5월 16일 일요 백화산행(백두대간 이화령-사다리재)을 신청했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처음 선택한 자리 위치가 좋지 않아, 가능하면 좋은 자리로 바꾸기 위해 거의 매일 산악회 게시판에 들러 취소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마침 1호 차 그나마 좋은 자리의 등산객이 산행을 취소해 자리를 변경했다. 그래도 만족하지 못해 더 좋은 자리를 노리며 게시판을 들락거리며 상황을 보니, 산행 일이 가까워지자 취소자가 급증했다. 이런 경우 이유는 날씨밖에 없다. 해서 예보사이트에 들어가 중기예보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산행 주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전국적인 비다. 해서 이번 산행을 취소하고 그나마 오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토요산행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하며, 각 산악회 계획을 다시 샅샅이 훑었다. 없다! 해서 우중 백화산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중 산행을 싫어하는 등산객이 얼마나 많으면 취소자가 속출하더니, 두 대의 버스가 한 대로 줄더니, 거의 막판에는 성원에 미달해 산행 자체가 취소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성원을 채웠는지 산행 자체가 취소되지는 않아 우중 백화산행을 강행한다. 이번 봄은 거의 매주 우중 산행인듯한데….
올해 많은 우중 산행은 잠깐 내리거나 이슬비가 대부분이었으나, 예보에 의하면 1mm 내외의 비가 종일 내린다. 고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면하기 어려워 보여 갈아입을 옷을 들고 가기로 했다. 우산을 들고 가기는 하지만. 우중 산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으나, 간편식의 장점이 산행 중에도 먹을 수 있다는 거라 문제는 없고, 카메라는 작고 가벼운 걸 들고 가 비닐을 씌워 사용할 예정이다. 종일 비가 내려 추가된 짐은 당연히 버스에 두고 산행한다. 짐을 차에 두고 산행한다는 게 안내 산악회의 많은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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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잠을 설치고 새벽녘에 막 잠이 들었다가 알람에 놀라 기상해 밖으로 나가보니 내리는 비가 예사롭지 않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해서 바로 패드로 기상청 예보 사이트로 들어가 확인한, 백화산 근처 유명한 산(문경새재, 월악산 등) 기상정보도 종일 3mm 내외의 비다. 갑자기 어제, 토요일 아무 산이나 다녀오지 않은 게 후회됐다. 어제 산을 다녀왔다면 미련 없이 산행을 포기했을 텐데! 일주일에 하루는 산에 가자는 신조를 실천하기 위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은 후, 간편식으로 간단히 점심 준비해 배낭에 넣고, 방수 팩에 속옷부터 모든 걸 갈아입을 수 있는 한 벌을 챙겨 버스에서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 음식이 든 디팩 위에 올리고 배낭을 잠갔다. 이후 레인 커버를 꺼내 배낭을 감싼 후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47분경이다.
재개발을 위해 막아 놓은 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비구름에 정상이 가린 족두리봉을 감상하며 대조시장을 통과해 6시 2분경 불광역에 도착했다.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나보다 10여 분 늦게 동명탕을 떠난 마을버스도 동시에 도착했다는 거다. 예정대로 6시 6분 지하철을 타고 양재로 달려 6시 48분경 평소보다 썰렁해 보이는 역에 도착했다. 하긴 비 때문에 각 안내 산악회도 평소 산행 계획의 50%에 미치지도 못하는 일정만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으니, 등산객의 성지라는 양재역도 평소보다 한산한 게 당연했다. 버스가 정차할 예정인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기 위해 12번 출구로 나가자 내리는 비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 귀찮으나, 배낭을 뒤져 우산을 꺼내 쓰고 외교원을 향해 갔다.
내리는 비를 구경하며 지나 주와는 달리 썰렁한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나 국립외교원 앞에 가기까지 도로를 지나는 버스를 관찰했으나, 산악회 버스는 한 대도 없었다. 비는 사람이 이불에서 나오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국립외교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할 일도 없어 비를 맞고 있는 꽃과 주변을 사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6시 59분에 전면 LED에 "안일지맥"이라고 표기한 버스를 선두로 5대의 버스가 도착했다. 역시 이 산악회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기본 수량은 채운다. 해서 계속 이 산악회를 더 많이 이용하고, 해서 더 몰리고[富益富 貧益貧]. 그런데 "안일지맥" 여긴 또 어딘가? 해서 구글링해 보고 뭐 이런 정도까지 지맥을 나눠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뭔가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민족인가? 아니면 인간의 종특?
먼저 도착한 다섯 대의 버스 중 네 번째 버스 전면 창 LED에 "대간40-34 이화령 사다리재"라고 표기된 버스가 114번째 해발 1,000m가 넘는 산, 백화산을 가는 버스다! LED 표기인즉, 이 산악회의 40번째 대간 종주팀이, 34번 구간인 이화령에서 사다리재까지 달린다는 거다. 물론 대간꾼이 아닌 이상 저 구간에 있는 봉우리나 산을 어떻게 알겠는가? 당연히 사전 학습이 없었다면, 백화산 가는 버스를 찾아 헤맸을 거다. "이거, 백화산 가죠?"라 묻지 않고 당당히 버스에 올라 내 자리를 찾아 가 비에 젖은 배낭을 빈자리 아래에 두고, 최대한 편하게 앉은 후 주위를 둘러봤다. 기록상 28석 중 인솔대장 포함 17명이 끝까지 남아 대간을 달린 3열 버스에 두 자리가 붙어 있는 내 자리 바로 옆은 며칠 전에 취소했고, 통로 건너 자리에는 배낭이 놓여 있었다.
산악회 신청 현황을 보며 양재 탑승의 닉네임 "월광"이라는 대간꾼이 궁금했는데, 주인은 없고 배낭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배낭을 자기 자리에 두고 빈자리가 많으니 좀 더 좋은 자리에 가 앉았을 거로 생각했는데, 버스가 죽전을 들러, 남은 대간꾼을 태우고 들머리인 이화령을 향해 출발하자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등산객이 그 배낭을 가져다 자기 옆자리에 두는 게 아닌가. 고로 통로 건너 자리의 대간꾼은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얘긴데, 그럼 내 앞자리 승객은 그 자리가 비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저런 별 시답지 않은 생각과 추측을 하다 보니 버스는 덜컹거리며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충주휴게소다. 양재에서 7시에 떠났고, 현 시각이 8시 11분이니, 1시간 10분가량 걸렸다. 이렇게 가까웠나?
딱히 내려야 할 이유는 없었으나, 버스가 출발하기를 멍청히 기다리기도 뭐해 비를 뚫고 휴게소 건물로 가 볼일을 보고 이거저거 구경 후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버스 출발 직전 여성 대장이 인원 파악 겸 이번 산행 지도를 나눠주고, 버스가 출발하자 늘 그렇듯이 이번 대간 구간과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산행 대장이 하는 얘기를 몇 마디 들어보니 딱히 주의할 사항이 없어, 이번은 특별히 신경 쓸 만한 구간은 없다고, 결론 짓고 계속 책을 읽었다. 아, 주의, 하나 산악회 게시판의 계획은 13.2km 거리에 주어진 시간 6시간 30분인데, 대장이 나눠준 산행 계획 지도에 의하면 13.2km에 6시간이다. 30분이 짧다! 인솔대장의 설명에 의하면, 평소에도 6시간이면 충분한 구간인데, 비가 내리면 본능적으로 빨라지는 경향이 있어 더 일찍 도착하기 때문에 6시간으로 했다고, 물론 게시판에 6시간 30분으로 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경우 그 시각까지 기다리겠으나, 가능하면 산행 시작 예정 시각 9시 10분부터 계산해 대략 6시간 후인 15시인 오후 3시까지 도착해 달라고 했다. 어쨌든 마감 시각은 오후 3시다!
8시 50분이 지나자 버스가 힘겹게 고개를 오른다. 이화령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라, 등산화에 비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배낭에서 미니 스패츠를 꺼내 착용하고, 비상용 먹거리를 제외한 여벌 옷가지 등 모든 걸 꺼내 버스 빈자리에 두고 안전띠를 잘 채웠다. 산행 준비를 다 마치고 버스가 이화령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김이 서려 흐린 창을 커튼으로 닦고 밖을 보니, 보이는 거라고는 산기슭이고 가끔 추월하는 자가용이다. 아니 이 비에도 차를 끌고 와 등산하는 꾼이? 하긴 우리도 뭐! 그렇게 힘겹게 오르던 버스는 9시 5분에 이화령 정상에 도착했다. 이화령은 지난 2019년 1월 조령산을 오르기 위해 방문한 이후 2년만인가[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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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6분 계단을 따라 백두대간 능선에 오르는 거로 산행을 시작했다. 당연히 모든 등산객은 우의를 뒤집어썼으나, 나는 우산을 들었다. 대략 3분 정도 오르자 능선에 도착했다. 그런데 능선에서 잠깐 헷갈렸다. 평소 조령산을 올랐던 기억에 따라 능선에 오르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따라가면 백화산에 이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좌회전했는데 앞섰던 몇몇 대간꾼이 우회전을 하고 있었다. 뭔가 꺼림칙해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망설이며 같이 주저하고 있는 꾼에게 왼쪽이 백화산 방향이 아니냐고 쓸데없는 질문을 하며 지도를 확인하기 위해 폰을 꺼내는 순간, 우산을 든 여성이 오른쪽이 맞는다는 거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솔 대장이다. 과거 조령산에 올랐던 방향과는 반대로 가야 하는데 조령산 방향이 맞는단다. 물론 인솔 대장이 틀리면 안 되니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소 조령산은 문경에서 택시를 타고 이화령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반대편인 괴산에서 이화령에 도착해 대간 능선에 올랐다는 걸 깨달았다. 방향이 완전히 반대다. 그걸 고려하지 못했다.
내가 뭘 착각하고 있는지 깨닫고 앞서간 대간꾼을 따라 군사용 계단을 따라 헉헉대고 5분 정도 오르자 백화산 방향을 혼동해 망설이는 동안 날 추월했던 대간꾼 모두가 철조망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능선을 가로막고 군사 시설이 있었고, 당연히 철조망의 출입문은 잠겨 있었다.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우왕좌왕하는 꾼들을 보며, "아니, 이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백두대간 종주를 하겠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철책 문 정면에서 좌우를 둘러보니 철책을 따라 왼쪽으로는 하산, 오른쪽으로는 군사시설을 우회해 능선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로 보여, 앞에서 망설이고 있던 대간꾼에게 오른쪽으로 따라가라고 일러주고 그 뒤를 바로 따라갔다. 역시 예상대로 20여 미터를 가자 철책이 끝나고 길은 능선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우왕좌왕 후 철책을 우회해 올라간 길이 철문에서 고작 10m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10여 미터를 더 가자, 두 번째 철책과 문이 나타났다. 군사 시설은 이 두 번째 철책 내에 있었고, 두 번째 철책에서는 첫 번째와 달리 우회하는 길이 왼쪽으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뚜렷하게 나 있었다. 두 번째 철책을 우회한 다음 다시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 계속 전진하자 처음으로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게 10시 2분으로 백화산까지 남은 거리는 5.8km!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정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상석이 있었다. 조봉[鳥峰]이다. 이화령 건너는 조령산[鳥嶺山], 여기는 해발 673m의 조봉! 조봉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비가 좀 약해지면 우산을 접어 손에 들고, 강해지면 다시 활짝 펼치고, 눈에 보이는 건 반경 10여 미터라 찍을 것도 없었으나, 카메라에 빗물이 들어갈까 봐 꺼내지도 못해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전진하는데, 등산 앱이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폰을 꺼내 확인하니, 해발 912.8m의 황학산[黃鶴山]으로 까만 소, 대간 인증 봉우리다! 황학산 과거 우두령에서 출발해 황학산에 갔었는데[산행기]? 인증에 관심 없는(그리고 비가 강하게 내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찍을 분위기가 아니라) 나는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지금까지 뒤만 졸졸 따라왔던 앞선 대간 팀을 따라 계속 갔다. 그 시각이 10시 47분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능선을 따라가며 비에 젖은 꽃과 앞뒤가 텅 비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길을 사진으로 남기며 전진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먼저 길 상태가 백두대간치고는 꾼이 다닌 흔적이 없었고, 앞서간 팀이야 열심히 달리는 꾼이라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하나 뒤에서 따라와야 할 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해서 폰을 꺼내 등산 앱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확인 결과 백화산이 아니라 황계산이라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선 등산객을 따라나선 게 실수다. 해서 바로 방향을 틀어 다시 황학산 방향으로 갔다.
헉헉대고 다시 황학산 정상에 도착하니, 인솔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수고했다며 웃는다. 그리고 기념으로 인증을 다시 찍으라며 사진을 찍어 준다. 덕분에 황학산 인증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게 인증을 찍고 있는데 나를 엉뚱한 방향으로 인도했던 팀도 도착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스스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달은 게 아니라, 인솔 대장이 전화로 알려준 거였다. 이번 산행은 한 산악회 백두대간 40기 종주팀의 대간 산행이라 인솔 대장을 비롯해 대부분이 서로 아는 사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되돌아온 4명과 인솔 대장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걸 보고 백화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11시 43분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얘기했던 백화산 직전의 암봉에 도착했다. 원칙은 그 암봉을 넘어가야 했으나, 뒤에서 농담을 주고받던 4명의 팀이 나를 추월해 암봉에 자리를 잡고 서서 내리는 비를 무시하고 점심을 먹는 바람에 암봉을 넘지 못하고 암봉을 내려가 우회해야 했다. 비는 내리나 평소와는 달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배낭에 간편식이나마 점심이 있었으나,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배낭을 열고 디팩을 꺼내고 하는 과정이 번거로워, 점심은 포기하고 이런 때를 대비해 배낭 허리 벨트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미니 에너지바를 꺼내 요기를 대신하며, 헉헉대고 다시 급경사를 오르자 백화산 0.1km라는 표지가 있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 시각이 11시 59분으로 처음 목표했던 12시 이전 백화산 도착을 달성했다. 30분 가까이 알바를 했음에도! 주변에 아무도 없어 사진을 부탁할 상황도 아니라 폰을 꺼내 셀카를 찍은 후 주위를 둘러보고 다음 목표인 사다리재를 향해 바로 출발했다.
비는 계속 내려 시야가 10m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 찍을 풍경도 없었으나, 그래도 이런 상황이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카메라가 아니라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12시 43분 평전치를 통과해 1시 37분에 사다리재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하산으로 대간 산행은 끝났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4명의 팀이 다시 나를 추월할 분위기였으나, 우산을 썼음에도 이미 속옷까지 젖었고, 등산화도 물이 들어가 질척거리는 상황이라 빨리 내려가 신발을 벗고 싶어, 속도를 내는 바람에 그들 4명과 인솔 대장을 포함 6명이 한 팀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사다리재에는 앞서갔던 두 명의 대간꾼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다리재에서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까지 마시고 너덜의 급경사를 하산해 버스가 기다리는 마을회관을 향해 내려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급경사의 너덜을 내려가는 길이라 한 걸음 한 걸음을 대단히 조심스럽게 디뎌야 해, 생각보다 하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비록 비는 내렸으나, 후덥지근하고 기온이 높아 목이 바짝바짝 타지만, 이미 물은 떨어진 상황이라 옆으로 들리는 요란한 물소리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계곡을 만나기만 바라며 갔다. 그리고 2시 8분에 마침내 계곡을 만났으나 물의 상태가 마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누런 훍탕물! 해서 주변의 나뭇잎에 맺힌 비를 핥아먹으며 내려가 2시 17분경 마을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마을로 향하는 길은 산에서 내려온 계곡이 개울을 이루고 있는, 그 개울 따라 나 있었다. 해서 개울로 들어가 등산화에 묻은 진흙은 씻고 코로나로 마을에 주차할 수 없어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버스로 향했다. 이번 대간 산행이 끝난 시각으로 2시 2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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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버스에 타 신발을 벗고 싶은 심정에 추적거리는 비를 뚫고 버스에 도착하자, 문 앞에 있던 여성 꾼이 버스 내에서 여성 동무들이 옷을 갈아입는 중이라며 버스에 오르는 걸 막아, 배낭을 버스 짐칸에 두고 맨몸으로 개울로 갔다. 그리고 등산화를 벗고 그대로 물로 들어가 진흙이 잔뜩 묻은 옷을 씻고 양말도 대충 씻었다. 물론 등산화도. 그리고 등산화를 손에 들고 맨발로 다시 버스로 갔다. 예상대로 여성 동무들이 옷을 다 갈아입은 상태라 배낭을 짐칸에서 꺼내 버스에 탔다. 배낭과 등산화를 한쪽에 잘 두고 옷을 갈아입을까 했으나 귀찮아서 그냥 입어서 말리기로 하고 슬리퍼를 끌고 다시 개울로 갔다. 그런데 가는 중에 인솔 대장이 3시 넘어야 도착할 거 같다는 던 버스로 오고 있는 마지막 여성 꾼을 만났다.
그 시각이 대략 2시 45분경으로 역시 대간꾼은 다르다는 게 마감 시각은 지킨다. 해서 인솔 대장을 찾아 마지막 등산객이 도착했다고 알리기 위해 대장을 찾으니, 비를 피할 수 있는 마을 창고에서 그녀 포함한 한무리의 대간꾼이 막걸리 파티를 하는 게 보였다. 그 여성 꾼이 도착했다고 알리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 꾼을 핑계로 하산 주를 마셔야 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거에 놀란 듯! 어쨌든 그 소식을 알리고 개울로 들어가 양말을 빨고 있는데, 산에서 한 쌍의 등산객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아니, 대장 말에 의하면 여성 꾼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저 두 사람은 뭐지? 다른 산악회인가? 다 씻은 후 다시 버스로 돌아가 내 자리로 가려고 보니 마지막에 도착한 한 쌍 중 여성이 내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내 자리가 맨 뒷자리 바로 앞으로 위치가 좋았다. 해서 뒤돌아서서 옷을 다 갈아입기를 기다렸다. 자리에 가 앉았다.
양말과 등산화를 마르기 좋은 위치에 두고, 우산도 펼쳐서 말리며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책도 보기 싫어 유튜브만 뒤적거리는 사이에 막걸리 파티를 끝내 대간꾼이 도착해 3시 15분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여주 휴게소에서 10분 휴식 후 5시 32분에 양재역에 거로 이번 백화산행을 마쳤다.
산악회 백두대간 팀의 계획대로 "이화령 → 조봉 → 황학산 → (알바) → 황학산 → 백화산 → 평전치 → 사다리재 -(접속 1.9km)→ 분지리 안말"의 14.93km(트랭글 기준), 5시간 20분의 백두대간 산행이었다. 이동 5시간 14분, 휴식 6분, 알바 30분 포함!
산행 내내 비구름 속에 갇혀 있었던지라, 조망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으나, 능선 곳곳에 전망대를 설치한 거로 봐서는 날이 좋으면 뛰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대간 산행이었으나, 114번째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오른 것으로 만족한다.
첫댓글 그날 옷을 갈아입고 왔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