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설계의 결함
울산대 산업공학과 정연민 교수
원자력 발전이라는 사악한 문제
원자력 발전, 테러, 소프트웨어 정책 등과 같은 문제를 의사결정에서는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라고 한다. 이를 어려운 문제나 까다로운 문제라고 순화 의역할 수도 있지만 원래 영어에는 “못된, 사악한, 짓궂은, 위험한” 이란 뜻이 있으니 그냥 사악한 문제로 번역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1) 문제가 잘 정의되지 않으며 안정적이지 않다. (2) 해법에 도달하는 분명한 종료 점을 정의하기 어렵다. (3)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4) 쉽게 시도해보고 버릴 수 있는 해법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5) 대체 해법이 주어지지 않는다. 해법이 없을 수도 있고, 수많은 잠재 해법이 존재할 수도 있고, 또 수많은 해법은 생각도 못해봤을 수 있다.
사악한 문제의 반대편에 순한 문제(Tame Problem)가 있다. 인간은 문제를 대개 순한 문제로 보는데 길들여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원자력 발전과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도 순한 문제로 보고 인간이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과신을 보인다. 그 대표적 예가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일본의 원전 관계자는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일본 원전은 설계 시 해일과 같이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원자력 발전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기준을 이용한다. 네 가지 기준은 안전성, 경제성, 지속가능성, 보안상 위험성이다. 이 기준에 대한 원전의 적합성 여부는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토론을 거쳐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지 않으며, 경제적이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테러, 핵확산 등에 취약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예를 들면 2009년 MIT의 보고서를 보면 25달러/톤의 탄소세를 내어도 원전, 석탄, 가스의 kWh의 비용은 8.4, 8.3, 7.4 cents가 되어 가스가 여전히 가장 경제적이라는 지적이 있으며, 우라늄의 채굴, 농축, 원전 폐기 및 폐기물 보관, 원전 사고 등의 전 과정을 고려하면 원전이 더는 환경 친화적이지도 않으며 그 비용은 가스를 이용한 발전에 비해 4~5배에 이를 것이라는 다른 연구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는 주로 핵 산업에 대한 야심을 가진 일본, 프랑스 및 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서 원전을 추진하였다. 지구 온난화를 핑계로 원전의 확장을 시도하고 이를 ‘원전 르네상스’니 ‘그린에너지’로 분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현재 54기의 원전 가운데 90%이상의 원전이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이런 세계적 추세에 애써 귀 막고 눈 막으며 원전을 추진하려는 세력이 있다.
한국의 원전은 대개 제2세대 원전에 속한다. 이 원전은 요사이 설계된 제3세대 혹은 제 3세대 + 원전 보다 안전성이 1/100 정도라고 보고 있다. 한국 원전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1. 한국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아 원전 사고 시 피해가 전 국민에게 미칠 수밖에 없다. 한편 원전의 핵 단지화가 이루어져 후쿠시마 원전 4기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과 같이 원전의 연쇄 사고가 우려된다. 고리, 월성 원전은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한 지역인 부산, 울산, 포항 가까이 있어 그 피해는 수백만 명에 미치며, 울산, 포항의 산업단지가 피해를 입어 석유화학산업이 멎고, 자동차와 선박의 수출이 불가능하며, 철 공급이 중단되어 한국경제 자체가 불능에 이를 수 있다.
2. 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는 원래 30년 수명으로 설계되어 있었으나 10년 수명 연장을 받았고, 83년 가동한 월성원전 1호기도 수리 후 재가동이 추진되고 있다. 원전의 고장은 처음에 많이 발생하고, 이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 말기에 다시 고장이 빈발해지는 욕조(bath tube) 함수의 형태를 보인다. 따라서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 원전 1호기는 큰 원전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물며 수리 부품의 일부가 폐기 부품을 재활용한 채 납품되어 수명 연장 원전의 신뢰성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원전 사고는 후쿠시마, 체르노빌과 같은 치명적 디스토피아로 직결될 수 있다. 원전의 단계적 가동 중지, 수명연한이 끝난 원전의 폐기를 위해 시민이 조직되어야 하고, 공급위주의 전력 정책이 수요 조절 정책으로 바뀌도록 시민사회와 산업체의 전력 수요에 대한 절제와 효율이 요구된다. 사악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의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당혹스런 진실- 원전의 결함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도 있지만, 실은 진실은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원전에서 가장 위험한 사고는 노심손상사고다. 이는 노심이 녹아내리는 것으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가혹한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원전관계자가 주장하는 노심손상확률(CDF)은 5X10-5/원자로 년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주장이 근친상간적 확신의 증폭에 근거한 거짓임을 입증한다. 지금까지 가동된 원자로는 총 582기 (14,400원자로 년) 였고 이 가운데 11기가 중대 노심손상사고를 내었다. 이는 원전관계자가 주장하는 확률보다 15배나 많으며 1309 원자로 년마다 한 번씩 사고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상업운전 중인 원전이 439기이니까 노심손상사고가 훨씬 빈번하게 수 십 년에 몇 번씩 일어날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원전은 안타깝게도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1986년4월 26일 혹독한 원전사고를 낸 체르노빌 원전은 비상정지 (전문용어로 SCRAM이라 한다)시 냉각시스템이 노심을 식히지 못해 노심붕괴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3기의 비상용 디젤 엔진이 있었다. 그러나 비상용 디젤 엔진은 가동 시작에 15초가 걸렸고 냉각펌프를 가동하기 위한 완전한 출력을 얻기 위해서는 60-75초가 걸렸다. 한편 원자로의 지붕과 터빈실에는 안전 규정을 무시하고 가연성 재료인 비튜멘이 사용되었으며, 원자로 냉각수에 수포가 증가할 때 핵분열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어렵게 설계되었으며, 원자로 반응을 느리게 할 수 있는 제어봉이 1.3m 짧게 설계되었다.
2011년 3월 11일 지진에 이은 13~15m의 쓰나미로 걷잡을 수 없는 원전사고를 낸 후쿠시마 제1 원전도 실은 결정적 설계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은 9.0 Mw의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으며, 처음에는 해발 35m에 건설될 예정이었으나 냉각수를 끌어 올리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 해발 25 m에 지어졌다. 또 비상용 펌프와 발전기가 터빈실 지하층에 있어 침수의 문제점이 지적되었으나 설계변경 없이 그대로 설치되었다. 이후 1990년 새로운 규제에 따라 2호기와 4호기용 3기의 추가 디젤 엔진이 언덕에 설치되었으나 스위치 장치는 여전히 침수 위험이 있는 터빈 건물에 있었다. 한편 5.7m의 방파제는 쓰나미를 막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한국의 원전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원전은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과 다른 가압경수로라서 흑연감속로나 비등수형 원자로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압경수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열과 방사선에 의해 연료봉의 손상이 쉽다. Xenon 135 와 같은 부산물을 관리하기 어렵다. 오래 지속되는 폐기물의 양이 많고 매우 유해하다. 냉각수는 부식성이 강하고 방사능을 가졌다. 비등점을 높이기 위해 150 기압을 유지하는데 이는 고비용 용기, 파이프, 밸브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방사능을 가진 증기의 대기 유출 위험이 상존한다. 한편 1979년 미국 쓰리마일 섬에서 노심이 녹아 내린 TMI 원자로는 가압경수로였다. 우리나라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2세대 원전이나 현재 중국 등에서 건설되는 원전은 3세대이다. 그런데 하나의 예로 3세대 원전인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은 지금의 경수로 보다 100배 안전하다고 주장되고 있다.
원전의 설계 결함과 복잡성은 사소한 문제들이 예상치 못한 상호 작용을 통해 거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정상사고로 이어진다. 원전 시스템을 설계, 시공, 가동, 유지 보수하는 사람도 시스템을 하나에서 열까지 완전히 파악할 수도 완벽하게 만들 수도 없다. 따라서 원전관계자는 사소한 이상조합이 파국으로 이어져 머피의 법칙을 관철하고야 만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원전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공개실시 해야하고 설계결함을 보완해야 하며 수명연장원전이나 고장이 잦은 원전을 신속히 가동중지시켜 중대원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한편 3세대 원전에 비해 안전성이 현저히 낮은 제 2세대 원전은 점차로 가동을 줄여 나가야 한다.
공학은 원래 안전성과 경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근시안적 경제적 이익에 눈멀어 안전을 쉽사리 망각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원전 설계도 결코 안전성이 첫 번째 목표가 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