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야생 투어'… 캥거루 필립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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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캥거루 바다사자 돌고래 코알라…호주 남동부 캥거루 아일랜드에선 뛰어노는 자연을 일상처럼 만날 수 있다. 동물원도 사파리도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가 살아 숨쉰다.
캥거루 아일랜드: 바다사자를 만나다
맥주 거품 같은 파도 위로 작은 점이 헤엄쳐왔다. 말간 모래 바로 앞까지 온 이 동물은 비틀거리며 하나, 둘, 세 걸음쯤 해변을 걷다 옆으로 픽 쓰러졌다. 미소를 띤 편안한 표정으로 단잠을 자는 동물은 바다사자. 삼일 반 동안 바다 사냥을 마친 후 앞으로 삼일 반 동안 따스한 모래 위를 뒹굴며 휴식을 즐길 참이다.
호주 남동부 캥거루 아일랜드(Kangaroo Island)를 보금자리로 삼는 바다사자는 어림잡아 600여 마리에 달한다. 호주의 봄볕 아래 실 베이 자연보호구역(Seal Bay Conservation Park·해변 입장료 27.50호주달러·1호주달러=약 1090원)에 잠들어 있는 바다사자는 100여 마리쯤 돼 보였다. 눈 돌리는 곳마다, 심지어 해변으로 내려가기 위해 사람들이 설치해놓은 데크 아래도 바다사자들이 배를 드러내고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 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잠자는 바다사자 사이를 살금살금 발소리 내지 않고 걸어 다닌다. 바다사자는 밤하늘처럼 까맣고 큰 눈을 잠시 떴다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기지개를 켜고 나서 다시 누워 숙면에 빠진다. 문득 잠에서 깨 좌우로 고개를 돌리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도 태연하다.
호주인 가이드 팀 그릭(Grigg)씨는 "이 섬엔 바다사자의 천적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편하게 잔다"고 했다. "1800년대 바다사자 사냥이 성행했을 때만 해도 인간은 이 동물의 가장 큰 천적이었죠. 숲이 험한 캥거루 아일랜드엔 원래 원주민이 살지 않았어요. 동물의 왕국이었죠. 그런데 호주에 온 유럽인들이 바다사자를 잡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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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캥거루 아일랜드의 코알라와 바다사자는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도 잠시 일어나 눈을 껌벅이다 다시 잠든다.
실 베이에 바다사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이 해변으로 가는 숲이 유난히 깊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섬에 길을 내다가 1㎞ 길이 맑은 해변에 '동족의 비극'을 모르는 바다사자 수백 마리가 살고 있다는 게 발견됐다. 지금은 철저하게 교육받은 공인 가이드와 동행하지 않으면 이 해변에 들어갈 수 없다.
"이 해변의 바다사자들은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 생물인지 몰라요. 그래서 저렇게 평화롭게 숙면을 취하는 거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릭씨는 차를 급히 세웠다. "저기, 나무 위를 쳐다보세요. 둥그런 털북숭이 보이죠? 코알라예요. 이 섬에는 코알라가 너무 많아서 가끔 본토로 실어 나르기도 해요. 유칼립투스 나무가 위기를 맞을 정도로 코알라가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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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늘어뜨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코알라를 동물원에서 기르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이 까다로운 동물은 다른 코알라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하거든요. 한 마리 코알라를 키우려면 유칼립투스 나무 백 그루 정도를 심어야 하는데 그 나무가 또 아무 데서나 자라는 게 아니죠. 이 섬엔 이름처럼 캥거루도 굉장히 많이 살아서 가끔 저희 앞마당에 뛰어놀기도 해요. 그러고 보면 동물들의 섬에 제가 얹혀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니까요, 하하."
필립 아일랜드: 펭귄 행진을 따라가다
호주 멜버른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인 필립 아일랜드(Phillip Island)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이 산다. '요정 펭귄'이라고 불리는 이 펭귄의 키는 20㎝ 정도다. 필립 아일랜드 자연공원(입장료 20.60호주달러)은 매일 저녁 해질 무렵 사냥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요정 펭귄들을 관찰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갔다 귀가하는 펭귄들이 놀랄까봐 이들은 말소리를 줄인다. '펭귄은 눈이 약하므로 카메라 불빛에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설명에 카메라를 꺼내는 이도 없다.
해가 섬 뒤로 넘어간 10월 말 어느 날 오후 8시30분쯤. 처음 '퇴근'한 펭귄 서너 마리가 해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키 작은 펭귄들은 뒤뚱뒤뚱 해변으로 올라오고 나서도 가만히 뒤돌아서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모여서 함께 가려고, 같은 '동네'에 사는 수영 느린 동료를 기다리는 것이다. 열 마리 정도가 도착했나 싶더니 한 마리 펭귄이 무리를 향해 돌아섰다. 머릿수를 세듯 골똘히 '팀'을 쳐다본 다음 어느 순간 일제히 집을 향해 걸음을 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어느 작은 언덕 어귀에 다다르면 인사하듯 날개를 옆구리에 툭툭 치고 작은 집으로 쏙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펭귄의 행진은 수백 마리 펭귄이 차례로 뭍으로 올라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약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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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 진 아일랜드. '요정 펭귄'의 행진이 시작된다.
필립 아일랜드 자연공원 마크 쿨터(Coulter)씨가 펭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낮 동안 집 안에선 펭귄 아기가 천적인 갈매기로부터 몸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 아빠는 매일 아침 하루에 50㎞씩 바다에 나가서 자기 몸무게를 훌쩍 뛰어넘는 물고기를 뱃속에 담아 와서 저녁마다 아이에게 풀어놓죠. 9주쯤 지난 어느 날, 바다로 나간 엄마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새끼 펭귄은 하루쯤 더 기다려보기로 하겠죠. 하지만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아요. 상어에 먹힌 걸까요? 아니, 이제 아기 펭귄은 어른이 된 거예요. 직접 바다로 사냥을 나가야 하는 거죠."
까만 해변에 하나 둘 빗방울이 떨어졌다. 든든하던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깜깜한 집에서 아기 펭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펭귄의 행진을 따라가는 발걸음이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문의_ 호주 정부 관광청 (02)399-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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