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휴시복 (喫虧是福)일까
사람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는
한두 가지 좋은 추억만으로도 충분하다
반면에 상대를 오해하고 미워하는 데도
단 하나의 인과에서 기인되기도 한다
생각하면 세상에는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히는 일도 있고,
심장이 벌떡거리면서 진땀나는 일도 많다.
시공이 변화하듯 불원간 장독대에 쌓이는 함박눈을 바라보면,
어느새 마뭇가지에 물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윽고 눈을 감으면
우주의 떨림과 함께 내 마음의 원망과 분노가 말끔히 사라진다.
끽휴시복이란 말이 있다.
과연 손해를 보는 것이 바로 복일까.
요즘 밑지면서 장사하는 사람이 있고,
처녀가 시집 안 간다고 하는가 하면,
노인이 일찍 죽고 싶다는 것쯤이야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데 화투장 들고 돈 잃어준다는 웃음은
가면이고 상등 거짓말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많이'를 좋아하고 갈구한다.
돈 많고, 집 많고, 옷 많고, 복 많고 무엇이든 많이 갖고 싶어 한다.
사노라면 견물생심도 인지상정이라지만
먼저 역지사지와 견리사의(見利思義)가 더 중요하다.
어느 현령이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집 담장 때문에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사또에게 청탁해서 이기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이 걸작이다.
'친구! 천리길에 글을 보냄은
담장 때문인데 담장 하나 양보하면 또 무슨 상관인가.
가득참은 덜어냄의 기미요, 빈 것은 채움의 출발점이다.
내게서 덜어내면 남에게 채워지니 우선은 서운할 것이네.
밑지고 손해보면 밖으로는 인정의 온후함을 얻고,
안으로는 내 마음의 편안함을 얻으니 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네.'
인간은 이토록 용렬하고 영물스러우며 이해관계에 철저하다.
진실은 처음에는 초라하지만 끝내는 당당해져서 기다리는 인내가 있고,
거짓은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은 갈수록 불안하고 들통이 난다.
눈과 귀와 콧구멍은 둘인데
입이 하나로 독립한 것도 구과(口過)를 막고 진실을 말하라는 것 아닌가.
요모조모 살피면 사는 게 뭐 별것 없고,
결국에는 가지고 갈 것 하나도 없는 우리 인간이다.
세월이 가면 네 탓이 아니고 내 탓이라는 겸손과 양보도
줄글의 행간에서 깨우치게 된다.
'그럴 수 있다'와 '그럴 수 있지'의 차이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용서와 인내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의 찌꺼기를 치우는데 골몰한다.
타인의 잘못 한 한 가지를 용서하면
너의 두 가지 용서해 준다는 교훈을 익히고 있다.
-허학수 수필집 <바람 같은 인생> 중에서-
끽휴시복 (喫虧是福)이란 말이 찰떡을 한꺼번에 꿀꺽 넘기다
목에 막혀 켁켁거리기만 하는 것 같아서 찾아봤습니다.
喫(마실 끽) 虧(이지러질 휴) 是(바를 시) 福(복 복): 손해 보는 것이 복이다.
이익만 따지는 것보다 손해 보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더 좋다.
또 찾아봤습니다.
2012. 6. 26일에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옮겨보면 이후 복사했습니다.
정승 조현명(趙顯命·1690~1752)의 아내가 세상을 떴다.
영문(營門)과 외방에서 부의가 답지했다.
장례가 끝난 후 집사가 물었다.
"부의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돈으로 바꿔 땅을 사 두시지요."
"큰아이는 뭐라던가?"
"맏상주께서도 그게 좋겠다고 하십니다."
조현명이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여러 아들을 불러 꿇어 앉혔다.
"못난 놈들! 부의로 들어온 재물로 토지를 사려 하다니,
부모의 상을 이익으로 아는 게로구나.
내가 명색이 정승인데 땅을 못 사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
내가 죽으면 제사 지낼 놈도 없겠다."
매를 몹시 때리고 통곡했다.
이튿날 부의로 들어온 재물을 궁한 일가와 가난한 벗들에게 고르게 나눠 주었다.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에 나온다.
청나라 때 판교(板橋) 정섭(鄭燮)이 유현(?v縣) 현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고향의 아우가 편지를 보내왔다.
집 담장 때문에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현감에게 청탁해 이기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정섭은 답장 대신 시 한 수를 썼다.
'천리 길에 글을 보냄 담장 하나 때문이니,
담장 하나 양보하면 또 무슨 상관인가?
만리 쌓은 장성은 여태 남아 있지만,
당년에 진시황은 보지도 못했다네.
(千里告狀只爲墻,讓他一墻又何妨. 萬里長城今猶在,不見當年秦始皇.)'
이와 함께 '끽휴시복(喫虧是福)' 네 글자를 써 보냈다.
밑지는 게 복이라는 뜻이다.
그 아래 쓴 풀이 글은 이렇다.
'가득참은 덜어냄의 기미요, 빈 것은 채움의 출발점이다.
내게서 덜어내면 남에게 채워진다.
밖으로는 인정의 평온을 얻고, 안으로는 내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다.
평온하고 편안하니, 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
(滿者損之機, 虧者盈之漸. 損於己則盈於彼,
外得人情之平, 內得我心之安.
旣平且安, 福卽在是矣.)'
아우가 부끄러워 소송을 포기했다.
성대중(成大中·1732~1809)은 말한다.
"성대함은 쇠퇴의 조짐이다.
복은 재앙의 바탕이다.
쇠함이 없으려거든 큰 성대함에 처하지 말라.
재앙이 없으려거든 큰 복을 구하지 말라.
(盛者衰之候, 福者禍之本. 欲無衰, 無處極盛. 欲無禍, 無求大福.)"
떵떵거려 끝까지 다 누릴 생각 말고,
조심조심 아껴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 그 복이 길고 달다.
재앙은 부엌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배고픈 개처럼 틈을 노린다.
참고: 현령은 큰 현(縣)을 다스리는 수령. 현감은 작은 현(縣)을 다스리는 수령.
*조선 후기 큰 고을인 부, 목, 도호부를 제외하고 규모가 작은 고을인 군, 현의
숫자는 대전회통을 기준으로 225개, 이 중에 군(郡)이 77개, 현령이 다스리는
큰 현(縣)이 26개, 현감이 있는 작은 현이 122개이다.
-천안군+목천현+직산현=> 천안시
-양근군+지평현=> 양평군
*현이 작은 고을이라면
부, 목, 도호부는 큰 고을이고, 중급 고을은 군이라 할 수 있다.
그 아래 현이 큰 현과 작은 현으로 나뉜다.
여기서 도호부는 부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
순서로 보자면
목사, 부사, 군수, 현령, 현감이다.
각 고을은 여러가지 이유로 승격이나 강등이 이루어진다.
첫댓글 목사가 가장 높은거네요?
현감이 꼴찌이고
더 위로 위로 올라가면 임금님이 계십니다.
ㅎㅎ~~
사실 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지요.
밑지는 것이 남는거라는
말이네요.
살다보면 내가 좀 밑지는 듯이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그게 참 쉽지 않더라구요.
오늘도 나는 끽휴시복을 배우면서도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말보다 실천이 어렵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한자가
생전 처음 보는 글자...
아휴...
저러니 한자를 언제 다 배울꼬.
세종대왕님께 감사를...
저 한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한문이 아니라서
그럴겁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