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엄마 여의고 할머니댁에 얹히러 가는 날
새엄마 손에 이끌려 당도했을때
내고향 4월의 조치원은 낮은 구릉마다 복숭아 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이었다
종달새는 하늘높이 떠서 지저귀고
이제 키를 늘리고 있는 보리밭은 윤기가 흘러 반짝이고
"누가 저렇게 언덕마다 꽃밭을 만들었을까?"
어린 마음에도 그 꽃밭이 너무나 아름다워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 사날 지나자 시름시름 떨어져 꽃비로 날리던 복사꽃잎들,
그게 울 할매 할배 등골을 휘게하는 농삿거리라는 걸
오래지 않아 알수 있었다
에미잃은 손녀딸이 집에 와 있어도 슬퍼 할 새도 없던 울 할배
아침부터 어둑할 때까지 복상밭에서 놓여날 줄 몰랐다
잎눈이 틔기전 복상 나무밑을 일일이 파서 일구고
( 뿌리까지 산소가 들어가도록 한다고 했다)
봄엔 잎이 피자마자 소독을 시작하고
복사꽃이 지고나면 열매가 커질 때마다 두벌 세벌 솎아내고
어지간히 자라면 회푸대로 접어 풀칠한 봉투를 열매마다 싸줘야 했다
어린 나도 놀틈이 없었다
길에서 깡통을 주워오면 할배가 가위로 오려 열매 봉투 묶는데 썼다
봉투만들랴 솎아놓은 복숭아 주워 담으랴..
열매가 투실투실 익어가면 할배는 아주 밭에서 침식을 하셨다
연일 따서 손수만든 복숭아 나무상자에 성한것만 골라담아
갯수 표기하고 "이 갑 진" 할배이름써서 납품하고....
나는 크고 탐스런 복숭아를 먹어 본적이 별로 없다
매일 벌레먹고 낙과된 복숭아가 산더미로 쌓였으니 좋은 놈은 내차지가 아니었다
태풍이라도 불면 낙과 떨어지는 소리가 콩마당질처럼 볶아치고
바람에 나뭇가지가 쩍쩍 갈라지던 소리를 할배는 한숨도 못자고 듣고 계셨다
복숭아를 다 따고 나서야 원두막을 헐고 할배가 집으로 거처를 옮기신다
그렇다고 일이 끝난것은 아니다
잎이 다지고 나면 복숭아 나무 센떼(가지치기)를 하셨다
그 나무 밑에서 나는 종일 잘려진 나무를 한데 모으고
어둑한 저녁 아직 종아리가 성성하시던 우리 할배는 복숭아 가지를
리어카 가득 실고 앞에서 끌고 나는 뒤에서 밀면서 집으로 돌아와 하루일과를 마친다
그때 할배가 대충 손발을 씻고 저녁을 드시고는 이내 잠자리에 드시면서
하시던 말씀
"저녁이면 천년은 살것 같고 아침이 되면 당장죽을 것 같네"
힘든 농사일에 대한 푸념을 그렇게 하셨다
복상밭에 대한 좋은 추억? 한가지 있기는 하다
열매를 딴다고 땄어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쉬 물르는 열매라서
좀 일찍 수확하는게 정석인데 어쩌다 잎에 숨겨져 못보고 지나친 열매를 늦게 발견할때가 있다
손에 닿기만 해도 툭 떨어지던 농익은 복숭아
왜 복숭아를 여인의 살결로 비유하는지 그걸 보면 알수 있다
옷고름 풀리듯 저절로 술술 벗겨지던 과피를 열고 한잎 크게 베어물면
입안으로 퍼지던 달콤한 수밀도의 맛
그맛은 정말로 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귀농 귀촌을 꿈꾸지만 복숭아 과수원은 노땡큐다
지금은 모든 도구가 현대화 되고 가위로 양철을 오리지 않아도 되겠지만
복숭아 따는 날 복숭아 깔끄러기가 온몸으로 배겨들던 그 고통은 지금은 견딜수 없을것 같다
아마 다른 작물도 나름대로 애로가 있을거라고 짐작은 하고있지만 말이다
할배
복숭아밭 장배기
흉터처럼 맨 땅 다진 자리에
봄마다 원두막을 짓던 울 할배
못 자국 깊이 팬 이음새마다
다시 못 치고, 노끈 칭칭 동여
칠순의 몸 추슬러 세우셨다
젊은 사람도 힘들다는 과수원 일
바지런 떠느라 늙을 새도 없었는데
할배보다 먼저 늙어지던 과수들이
거푸 열매를 사산해 버리던 어느 해,
이젠 과수 농사 끝이라며
원두막 재목은 땔감이나 쓰자고
펑펑 내리쳐 눈물같이 헐어 내셨다
그리고 몇 년
잎 떨군 나무처럼 맨몸으로 휘청이다
세상 끈 놓던 날
에미 잃은 내 손만은 차마 놓지 못하셨다
따순 아랫목만 봐도 할배 자리 같고
할배 좋아하던 김치찌개처럼
세월 푹푹 익혀 밥상에 얹곤 하는데
그리움 딱지 앉은 자리
아직도 허물지 못한 원두막으로 서 계신
울 할배
첫댓글 아!정말 글 잘쓰시네요!부러워요!언젠가 손님이 찾아와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그러마고한 책을 쓰니라 수백권의 책을 읽고도 모자라고 아직도 첫권을 완성 못했네요!조치원은 내 대학동기가 고향이었는데 왼빼지요,미들 라이트헤비를 뛰던 친구요!연락이 끊겼네요!이 석주 친구 이름요!소식이 올려나 기대해 봄니다.
왼빼? 전문용어네요 ㅋㅋ
고향이란게 그렇네요 어릴적 친구 다 떠나고..그 할배의 복상밭은 아파트로 변했는데 그 보상금은 새엄니 아들이 이복누나들은 한푼도 안주고 홀딱 가져가고..부모님 안계신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닙니다
소설가이시고 시인이시네요
글에서 복상털이 묻어납니다
글에서 복상털이 묻어나다!
완전히 싯귀네요
@로즈 마리 저도지금은 세종시에 산답니다...
한편의 아름다운 수필을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어느농사고 어려움이 있는듯 하네요
정말로 껄끄러운 털과 여름과일이고 잘 무르는 통에 어려움과 고충이 배가 됐을듯요?
제가 알러지가 있어서 복숭아 따는 날은 온통 두드러기가...예효~~
좋은글 읽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히 읽고 가요
넘 현실감에 ...감탄
존넘은 팔고 벌레먹고 물른것만 ....
저녁이면 천년을 살것 같고 아침이면 당장 죽을것 같다는 할아버지의 고단한 삶과 돌아 가시면서 손녀딸의 손을 놓지 못하는 풍경이 오버랩 되면서 눈물이
핑 하고 돕니다. 삶이란 현실은 왜이리 처연 하기만 할까요!
글이 기네요
정말 맛있는 글이며 ~~~ 그립구 싶은 마음속의 글들입니다
세종시
도원문화제
백수문학
저도 눈물이 나서
행복한 주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조치원역과
고려대캠퍼스
늘 가슴에 남아
정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