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와 천재는 노력의 차이
어렸을 때 즐겨 듣던 이야기 가운데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는 게 있습니다. 느림보인 거북이와 발빠른 토끼의 경주, 당연히 사람들은 토끼가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입니다. 자신의 빠른 발에 자만한 토끼가 낮잠을 자는 동안, 거북이가 부지런히 결승점을 향해 기어갔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리 남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자만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패배할 뿐입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IQ가 좋다고 해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을 앞지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바보와 천재는 IQ의 차이가 아니라, 노력의 차이일 뿐입니다.
<개그 콘서트>를 보면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가운데 <개그 콘서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이 프로그램을 봤을 것입니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서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봉숭아 학당’이란 코너를 제일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연변 말투로 개그를 하는 장면도 재미있고, 시시때때로 끼여드는 맹구도 재미있습니다.
극중에서 맹구는 다른 친구들이 말하는 내용을 새롭게 가공하면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런 맹구를 다른 친구들은 바보라고 놀립니다. 그래서 맹구는 때때로 자신이 바보인 것을 한탄하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바보는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보를 이런 식으로 정의 내리고 나면, 풀리지 않는 단어가 또 하나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지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능은 말 그대로 지적 능력입니다. 즉 ‘생각하는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생각하는 능력에도 무척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생각을 통해서 말을 하기도 하고, 잔머리를 굴리기도 하며, 수수께끼 같은 문제도 풀어냅니다. 또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것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것도 생각하는 힘이지요. 이처럼 ‘생각하는 능력’에는 무척 다양하고 광범위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능이란 말은 쉽게 정의를 내리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바보 역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뇌의 작용, 지능
생물학적으로 보면 지능은 중추 신경계의 기능에서 생겨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각 기관과 뇌의 활동이 만들어 낸 일을 지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히 무엇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뇌만의 작용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뇌는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면서 나타나니까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날개가 없어도 새처럼 날 수 있고,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은 없지만 다른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이 탄생하기 전, 그 어떤 생물체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생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동물들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인간말고도 여러 동물들이 뇌를 갖고 있습니다. 뇌가 있다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요? 단지 차이는 인간의 생각은 고도로 발달했다는 점이겠죠. 다른 동물도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 수준은 굉장히 낮고 보잘것없을 뿐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설명하면, 인간은 주어진 자극을 무척 다양하게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뇌의 작용이요, 지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능은 외부 환경과 매우 관련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능 지수 검사
어느때인가부터 인간이 지닌 생각의 힘을 하나의 수치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령 “맹구는 머리가 나쁘다.”고 말할 때 맹구의 머리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만큼 나쁜지 알려면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가 좋고 나쁨을 판별하기 위해서 지능 지수 검사를 합니다. 이것을 흔히 IQ 검사라고 하지요. IQ 검사는 프랑스의 심리학자인 비네(1857∼1911)가 아동들 가운데서 정신 박약아를 골라내기 위해, 1905년에 처음으로 고안한 것입니다. 지적 능력을 간단하게 수치로 만들면, 여러 명을 한 교실에서 교육시켜야 하는 공교육에서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IQ 검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원인은 아마도 제1차 세계 대전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에 뒤늦게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전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병을 짧은 시간 안에 선발·육성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IQ 검사를 실시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IQ 검사를 통해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춘 장병에게는 작전 임무를 띠게 하고, 머리가 비교적 나쁜 장병에게는 머리보단 체력을 필요로 하는 임무를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방법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시작한 IQ 검사 방식을 바로 오늘날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IQ가 보여 주는 상징성
지능을 수치로 표시할 수 있게 되자 여러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가령 미국에서는, 흑인 아이들의 IQ 검사의 평균 결과가 백인 아이들의 평균 결과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흑인들의 평균 IQ는 90 전후이고, 백인들은 100 전후로 나타났던 것이죠. 이것을 근거로 어떤 사람은 백인이 선천적으로 흑인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IQ 격차는 단순히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만 나타났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백인이더라도 대도시에 사는 아이들의 IQ가 농·어촌이나 탄광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IQ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대도시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중산층 자녀의 IQ가 하층민 자녀의 IQ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백인이 흑인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해야 할까요? 대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농·어촌에 사는 아이들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야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IQ 검사 방법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사 문제는 검사받는 아이들과 같은 또래 아이들 75%가 풀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합니다. 문제를 푸는 방식은 나이와 관련을 맺기 때문이죠. 3살 때에는 대부분의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입이나 코 등을 가리킬 줄 알며, 사진이나 그림 속의 물건을 알아냅니다. 7살 때에는 75%의 아이들이 자신의 오른손과 왼쪽 귀를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10살 때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숲이나 나무, 서울, 부산 등과 같은 단어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IQ 검사 문항은 철저하게 평균치에 해당하는 문제들로 만들어집니다. 가령 IQ 검사 문항에 이런 것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교회와 도서관에서는 ○○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해 학생들 대부분은 ‘정숙’이라고 답을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나 도서관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산골 오지에 있는 학생들이 이 정답을 쉽게 맞출 수 있을까요? 즉 도시에서는 이 답안이 상식처럼 통용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백인과 흑인의 경우도 이와 유사합니다. 흑인의 경우에는, 노래하며 떠들썩한 가운데 종교 의식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정숙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라면 지능 지수가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게, 도시 아이가 시골 아이보다 우월하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능 검사에서 요구하는 평균적인 환경에 살고 있지 않는 아이라면 당연히 지능 지수는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머리 좋은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지능 지수는 환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환경만이 지능 지수를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선천적인 영향도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23개씩의 염색체를 물려받습니다. 이 염색체 가운데 몸무게, 키, 혈액형, 머리카락, 수명 등을 명령하는 정보 신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능을 명령하는 유전자도 있을 것입니다.
주위를 보면 키가 유달리 큰 아이, 유달리 체중이 무거운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부모로부터 키 크는 데 유리한 유전자나 비만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유전자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먹지도 않는데 키가 부쩍부쩍 자라는 아이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능이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더라도,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라지 않으면 머리가 좋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전자는 단지 외부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쉽게 조직하는 능력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능을 명령하는 유전자만이 반드시 인간이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머리가 좋은 것은 단순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IQ가 낮다고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지능을 완벽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능 검사는 단지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지적 능력 가운데 몇 가지 정해진 특징만을 측정하는 데 그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지능 검사에는 수리, 언어, 공간 지각 능력 따위를 측정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컴퓨터를 고치는 능력이나 자동차를 고치는 능력을 측정하는 항목은 없습니다.
만약 자동차 정비사가 자동차 정비 능력을 측정받는다면 천재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수학자가 수리 항목만 검사받는다면 역시 천재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수학자에게 자동차를 고치라고 하면 제대로 고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자동차 정비사에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정답을 맞추기가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지능 검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힘 가운데서 단지 몇 가지 항목만을 검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 항목도 평균적인 표본을 뽑아서 만든 문제로 구성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단순히 IQ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생각하는 힘은 스스로 기를 수 있다
어떤 친구는 자신은 IQ가 낮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스스로 IQ가 낮다고 생각한다면,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발명가 에디슨의 말처럼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머리에 넣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임신부들이 태교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만 골라서 먹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습니다. 모두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대부분 머리가 좋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여러 가지 자극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우리처럼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사람이 머리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좋은 음악도 듣고, 좋은 책도 읽으면서 많이 생각하고 토론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습득한 지식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몸에 익숙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자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뇌는 아주 복잡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단순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뇌는 단지 주어진 자극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수행할 뿐입니다. 자극만 받아들이고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면 뇌는 제대로 발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의 원천은 결국 자신의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부모의 노력에 의해서,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이 되면 그 때부터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맹구가 되자
몇 년 전에 서울 대학교 문과 대학 수석을 차지한 학생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무려 5년이나 늦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낮에는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고 밤에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이 공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등 학교 때까지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의 노력이 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은 내성적이지만 모든 일에 적극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수학 문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생각하면 풀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죠. 평범한 얘기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이야기였습니다. 고등 학교 때까지 성적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실시한 IQ 테스트에서도 높은 수치를 얻은 것도 아닌 그가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결국 후천적인 노력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 어떻게 하나요? 풀리지 않는 문제를 호기심과 끈기로 끝까지 해결하려고 합니까? 아니면 금방 정답지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쁘지?’라고 자학하나요?
차라리 <개그 콘서트> ‘봉숭아 학당’의 맹구처럼 모든 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 어떨까요? 맹구는 늘 다른 친구가 어떤 얘기를 하면 무조건 새롭게 다른 얘기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 코너에서는 맹구의 머리가 나쁜 것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맹구처럼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에든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면 분명 그 친구는 머리가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맹구처럼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면, 머리가 좋아질 것입니다.
[ 김범수 한국 철학 사상 연구회 ] / 꿈을담는 희망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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