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님께서는 뮤지컬 [카바레] 안에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하시는데, 그에 대한 저의 의견은 다릅니다.
[카바레]는 바로 그 두가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토끼님이 보신 카바레의 연출과 출연진들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제가 [카바레]를 본 것은 고등학생이었을 때입니다.
당시 이 작품의 우리나라 초연이 아니었나 싶은데, 민중극단, 대중, 광장의 세 극단이 연합하여 정진수씨 연출로 [아가씨와 건달들]을 초연하던 시기였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별관이 건재했을 시절이지요.
그때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는 이혜영이었습니다.
당연히 [카바레]의 안무와 총지휘는 설도윤이 했지요.
(당시 두 사람은 한참 연인이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결혼을 했지요. 아님., 그때 이미 부부였나... 하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__;)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모토아래, 가벼운 내용의 멜로드라마에 정치적 해석이 부재한 사회적 배경 등이 줄거리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별 생각없이 즐겁고, 해피앤딩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카바레는 의외적인 작품입니다.
내용이 즐겁기만 한 것도, 해피앤딩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너무 오래 전에 본 작품이라 세세한 것을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서도...)
이 작품은 [카바레]의 무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는 춤과 노래는 화려하기 그지 없지요. 그것이 이 작품을 다른 뮤지컬들과 같은 대열에 올려놓게 합니다. 즉 카바레적인 분위기를 흠뻑 즐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동시에 이 작품은 정치적 격동기에 쇼 비지니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딜레마와 자기 정체성 찾기를 보여줍니다.
쇼 비지니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에의 아부' '대중에의 아부'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나치에 대항한다거나, 자리를 털고 레지스탕트가 된다거나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요원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시대에 대한 양심과 분노가 있습니다. 여기에 [카바레]가 담고 있는 주제적 장점이 있는 것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극의 끝에서 연인들은 헤어지고, 카바레의 쇼는 계속되며, 광대는 '비코멘~ 비벵 베뉴~ 웰 컴'을 여전히 부릅니다.
그러나 극 도입부의 힘차고 신나게 울리던 그 노래와 극 마지막의 같은 노래는 이미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화려한 음악 속에 비애가 묻어있는 것이지요.
'우리네 사는 것은 쇼와 같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쇼는 계속되야 한다'라는 광대의 슬픔이지요...
당시 그 광대 역할(카바레 해설자의 역할)을 누가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 전 고삐리였고, 배우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열혈 연극광은 아니었으니까요) 그와 이혜영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으며, 그같은 주제를 잘 전달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