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하철 타고 훌쩍 갈 수 있는 곳

[소나무열매]

인천, 마음이 벌써부터 좋다

인천으로 가는 길이다. 도쿄 시부야에서 도큐토요코라인을 타고 요코하마까지 가던 30여 분의 전찻길이 생각났다. 그토록 원했던 도쿄 생활이었지만 생활에 찌든 도쿄진(東京人)들과 빌딩 숲 속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차피 서울 생활과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요코하마행. 단 30여 분만 가면 아예 다른 풍광이 반기는 그곳이야말로 생활의 오아시스였다.
다시 인천으로 가는 길. 그때 보던 창밖의 풍경과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달랐지만 마음은 그때와 비슷했다. 벌써 좋았다

경양식과 차이나타운
하필 인천우체국 앞으로 부랴부랴 달려간 이유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를 든든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천우체국의 건너편에 있는 ‘등대경양식’이 목적지였다. 나에게 경양식은 어릴 적의 그리운 향수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들어졌지만 인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전히 옛날 그 모습 그대로 경양식집 몇 군데가 성업 중이란다. 옛 분위기가 물씬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금 올드한 낭만적인 실내 분위기. 그 분위기에 취해 잠시 시간을 끌었더니 어느새 주문도 옛날 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크림수프 드릴까요? 야채수프 드릴까요?” “밥으로 드릴까요? 빵으로 드릴까요?” 재밌다.

38년 된 경양식을 맛있게 먹으니 이제야 걸을 힘이 난다. 다시 인천역 방향으로 걸어와 중부경찰서 맞은편에서 자유공원이 올려다보이는 옛 조계지를 걷기로 했다. 일단은 인천의 근대 건축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일본18은행에 들어갔다. 잘 갖춰진 모습에 놀랐는데 근대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꽤 흥미로운 볼거리다. 선물로 가져갈 수 있는 인천 개항장 탁본을 챙기고 다시 오른편 골목으로 가니 오래된 건물들이 계속 이어졌다. 커다란 콘크리트 금고가 인상적인 일본제일은행의 옛 건물과 보수가 필요해 보이는 일본58은행의 건물들에서는 아예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구경했다. 이곳에는 유난히 일제강점시대 옛 건물들이 많았지만 군산이나 목포처럼 씁쓸한 풍광은 아니다. 그 건물들은 잘 보수하고 정비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옛날 것들은 무조건 부숴버리고 새로 뉴타운을 지어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서울의 일부 동네들보다는 오히려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지그재그 골목을 따라 거닐다가 옛날 총독부의 인천 부청사로 쓰였던 중구청 건물을 지나니 차이나타운으로 길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차이나타운이라지만 사실 요코하마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고, 몇 년 전 왔을 때보다는 평일임에도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거대한 객잔을 연상시키는 중국음식점들, 그 지붕과 지붕을 연결하는 중국식 홍등, 길에 잔뜩 걸린 치파오와 싸구려 중국 다기 등을 구경하면서 중국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옹기에 구운 고기만두를 들고 길에서 냠냠거리며 차이나타운의 정서를 만끽하니 어느새 100년 전에 지은 중국식 사당인 의선당에 도착.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정리된다.

조계지 시절 외국인이 파티하던 곳, 제물포 구락부
차이나타운에서 삼국지 거리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제물포구락부에 갈 수 있다. 조계지 시절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밤마다 모여 파티를 벌이던 장소라고 하는데 잘 지어진 이국적인 모양새만큼이나 내부도 옛 모습을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당시의 이야기를 5대의 커다란 TV에서 계속 방영하고 있었는데 그 옛날 미국의 공사가 된 것처럼 준비된 의자에 앉아 제물포구락부의 지나온 이야기를 한참 동안 지켜봤다. 제물포구락부에서 계단을 오르니 자유공원이다. 멀리 인천항과 인천 앞바다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천천히 걸어서 제물포고등학교까지 걸어가서 1903년의 터널인 홍예문과 최초의 성공회 교회인 내동 성공회성당 옆길로 내려가니 신포시장으로 이어졌다. 양념치킨의 효시가 된 이곳의 닭강정은 여전히 인기 만점이다. 또다시 식탐을 억누르지 못하고 치킨 작은 그릇에 맥주를 한잔하고 택시를 잡아 동인천역 배다리로 향했다.


살아 있는 시간의 박물관, 인천 배다리
인천의 배다리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한 동네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헌책방들이 여전히 즐비하고 조계 시절 외국인들의 별장과 100년이 넘은 학교들, 성냥공장, 옛 양조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배다리는 현재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산업도로가 관통하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이곳에선 지금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배다리 지키기 운동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 중심에 있는 ‘스페이스빔’에 들렀다. 1920년대의 양조장 건물의 갤러리라, 도축업자들의 아지트였던 창고단지가 그대로 예술단지로 변화된 뉴욕의 미트 패킹 지역(Meat Packing District)이 떠올랐다. 2층에는 그동안의 배다리 일대와 인천의 소외계층들이 사용하던 많은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어 마음이 찡했다. 헌책방에서 몇 권의 책을 사서 근처의 옛 감리교 여선교회 기숙사 앞에 앉아 읽다 보니 해가 졌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산책의 방법 인천역에서 나와 차이나타운의 패루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간다. 차이나타운과 조계지의 건물들이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 조계지, 신포시장을 걸어다니고 아무 데서나 택시를 타고 배다리로 간다. 택시요금은 3000원 정도 나온다.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을 타고 간다. 1호선의 종점이 인천역이다. 차를 갖고 간다면 양화대교 남단에서 경인고속도로를 탄다. 러시아워라면 목동을 지나서 신월IC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서울역 앞에서 삼화고속버스를 타도 인천까지 갈 수 있다.
잘 곳은 굳이 1박을 해야 한다면 차이나타운 앞쪽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이 편하다. 오래된 호텔이지만 특급 호텔이라 편하게 쉴 수 있다. 예약 사이트를 이용하면 1박에 7만~8만원 선.
먹을 곳 등대경양식(032-773-3473)은 38년 된 경양식집. 돈가스 8000원, 비후가스 9000원, 스테이크 2만4000원이다. 자장면은 태화반점(032-761-1688)이나 풍미(032-772-2680)를 추천. 옛날식 자장을 먹을 수 있다. 신포시장 입구에는 닭강정집이 많다. 홍예문에서 제물포고등학교로 내려가면 삼치 골목이 있다. 5000원짜리 생선구이 백반집이 많다.
그 밖에 인천연안부두로 가서 해수사우나를 즐기거나 월미도로 가서 바닷바람을 쐬는 것도 좋다. 여유가 된다면 김밥 같은 도시락을 싸서 자유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