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형왕릉]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1971년 2월 9일에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구형왕은 '양왕'이라고도 하며 김유신의 증조부이다.
521년 가야의 마지막 왕이 되어 532년 신라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구형왕릉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이 돌무덤은 그 형식에 있어 일반 분묘들과 달리 각 층이 단을 이루고 있는
방형으로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내리는 경사면에 잡석으로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있으나 후면은 갈수록 경사가 커져서 각 층의 등급의 높이 에 따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석렬은 전면에서조차 직선이 아닌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모퉁이도 뚜렷하지 않고 정상은 봉분과 같이
타원의 반구형을 이루고 있다.
■ 구형왕릉
화려한 철기문화의 꽃을 피우고 고대일본과 백제, 신라의 중계무역으로 낙동강 유역의 최대 세력으로 자리하였던
가야국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구형왕의 무덤이 왕산자락에 자리한다.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도 없고 무덤의 형태도 특이한 이곳은 아직도 그 이름을 확정짓지 못하고
‘전(傳)’ 구형왕릉이라 이름 불리는 전설 속의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당시 이 지역이 가야 연맹의 대표성을 가졌던 금관가야의 세력권에 있었고
여러 고증으로도 가야 왕실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구형왕]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제10대(재위: 521~532) 마지막 왕으로, 시조인 수로왕의 9세손으로 성은 김씨이다.
겸지왕의 아들로 521년에 즉위하여 532년 신라 법흥왕에 항복했다. ‘구충왕’ 또는 ‘구해왕’, ‘구차휴’라고도 표기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19년(532)조에 “금관국의 임금 '김구해'가 왕비 및 세 아들인 장남 노종, 중남 무덕, 계남 무력과 함께 국고의 보물을 가지고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금관가야가 멸망하자, 신라는 이들을 예로
대접하고, 왕에게 상등의 벼슬을 주고, 그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고 하였다. 구형왕 때 금관가야는 멸망하였으나
그 왕족은 신라 진골귀족으로 편입되어 '신김씨'라 칭하면서 신라의 왕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신라 무열왕계와 결합하면서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구형왕릉]
왕릉의 모습은 마치 작은 피라미드처럼 수많은 천연바위를 단단하게 맞물리게 쌓아 만들었고,
중앙으로 용도를 알 길 없는 작은 감실이 이채롭다.
순장제도와 돌널무덤으로 대표되는 가야 양식과도 어울리지 않고 장군총 등
고구려 초기 돌무지무덤과도 차이가 난다.
[구형왕릉 돌담]
전면 중앙에서부터 높이 1m 내외의 담이 둘러져 왕릉을 보호하고 왕릉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면 전체 높이가 7.15m로 하단 길이 25m이며, 동쪽 4단 중앙에 가로, 세로 40cm, 깊이 68cm의 석문이 마련되어있다
[구형왕릉 중문]
[보능각]
[보능각 입구]
■ 덕양전(경남 문화재자료 제50호)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가락국 10대왕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구형왕릉의 재실이다.
금서면의 왕산 북쪽 기슭에 가락국 최후의 왕 '구형왕의 능'이라고 전해온 석총이 있었는데, 1793년(정조 17)
김해김씨 문중에서 여기에 ‘가락국양왕릉’의 비석과 각종 석물을 신설하여 왕릉의 형식을 갖추었다.
그 때 왕릉의 수호와 재실을 겸하여 덕양전을 창건하고 종전에 왕산사에 전하여온 기록 및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1년에 두번 춘추향례와 삭막향화를 드리고 있다.
532년(신라 법흥왕19) 양왕은 금관가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수정궁으로 옮겨와 5년 뒤 죽었다.
그후 향화를 계속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는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1898년 승선전(수로왕 능침)이 사액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였다.
1930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991년 중건하였다.
[덕양전]
왕산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왕산사는 없어지고 무덤을 위한 재실이 있었다고 한다.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목궤 속에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옷, 그리고 활과 칼 등의 유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구형왕의 후손들이 1793년 '덕양전'을 세워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하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