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은 어디에서 오는가?/ 엡3:14-16
최근에 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니까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나라 사람
들 가운데 약 25 퍼센트가 우울증 환자이거나 우울증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
다. 여기에 정신 분열증이나 신경증 환자,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더 나
아가 귀신에게 사로잡혀 완전히 혼돈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까지 치면 그 비율은
한층 더 높아질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정신 질환과 귀신들림은 구별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혼돈을 일으킬 만한 증세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우
리의 정신이 약해지면 마귀가 제일 먼저 찾아옵니다. 정신이 약해진 틈을 타서 우
리를 마음대로 노략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정신병인지 귀신병인지 구별을
못할 정도가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정신이 약해진다거나 마음에 어떤 문제가 생긴
다는 것은 우리 인격뿐 아니라 삶을 위해서도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나라에 이런 정신적인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 나라
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도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선진국병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 즉 잘 사는 나라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라
는 말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미 18년 전 카터 대통령 당시에 이 문제가 정책 토론
의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카터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제가 본 적이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이 얼마나 잘 살았습니까? 그렇게 잘 사는 나라인데도 정신 질환
자로 아예 병원에 들어가 있는 사람만 해도 6백만 명이나 되었고, 그 나머지 인구
중에 15퍼센트는 아무래도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되겠다고 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사람들이고 나머지 25 퍼센트는 병원에까지 갈 필요야 없지만 개인적으로 우울증이
나 정서 불안, 성격 장애 등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줄
잡아보면 미국 인구의 40 퍼센트가 정신적으로 문제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지 먹고사는데 바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딴 생각
을 할 수 없는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 나
라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벌써 문제가 터지고 있다 하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잘
살게 되는 과정에 접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오늘 별로 유쾌하지 못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설교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계신 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들 대부분
은 건전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이 설교를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는, 우리 모두가 정신 건강을 해치기 쉬운 문화와 환경 속
에 몸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설명 안 들
어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번영을 누리며 잘 살게 되면 정
신이 병든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공식과도 같습니다. 역사상 물질적으로 번영한
나라 치고 정신적으로 병들지 아니한 나라는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
게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물질적으로 번영한 사회는
정신적으로 병들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건강해서 몸에 힘이 넘
치니까 날마다 어떻게 하면 즐길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즐길 생각만 하고 인생을 살다 보니 정신적으로 결국은 병들어 버리는 것입
니다.
요즘 우리 가정의 어린 자녀들을 한번 보십시오. 세상에 아쉬운 게 뭐가 있습니
까? 물론 우리 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식들에게 충분히 못해 주어 마음이 괴
로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요즘 아이들처럼 팔자 늘어진
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먹을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모님들이 원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해주는데 도대체 뭐가 아쉬운 것이 있어요? 그런데 가끔
아이들을 보면 공부하는 것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터지지 않습니까?
주부들은 또 어떻습니까? 요즘에는 시대가 좋아져서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부
엌일의 80퍼센트는 해낼 수 있습니다. 탁 하고 취사버튼을 눌러 놓으면 밥이 되지
않습니까? 풀 코스 버튼을 누르면 세탁은 물론이고 건조까지 자동으로 끝나지 않습
니까? 버튼 하나만 선택해 놓으면 전자 레인지에서 맛있는 요리가 되어 나오지 않
습니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 되는 세상이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이 정도 환경이
면 날마다 콧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돌봐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요
즘 주부들의 신경이 날로 날카롭고 예민해지는 것을 봅니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편리하게 살면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더 여유가 없어집니
다. 왜 그렇습니까? 몸은 편리해지는 반면에 정신적으로는 자꾸 약해지는 것입니
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 3D 업종 기피 현상이 왜 일어
납니까? 물론 일 가운데는 다른 일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
구나 보다 편하고 깨끗한 일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놀고먹을지언정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은 절대 싫다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왜 우리
사회에 이런 3D 업종 기피 현상이 만연해 있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정신적
으로 그만큼 약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은 고통 하면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
니다. 사실 똑같은 고통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다를 수 있습
니다. 그리고 동일한 사람의 경우에도 정신 건강 여하에 따라 느껴지는 고통의 강
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한때 가
난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정신적으로 건강했기 때문에 10리를 걸어
가는 것을 놓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0리 정도야.'하고
는 두말 않고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떻습니까? 차가 조금 늦게 오
는 바람에 한 정거장을 걸어가게만 되어도 '귀찮다', '고통스럽다' 하고 짜증을 내
는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정신적으로 그만큼 약해진 것
입니다. 전에는 고통으로 느끼지 않던 것을 이제는 고통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땔감을 들고 부엌에 들어가서 연기를 마셔 가면서 불을 지펴 더
운물을 데우고, 그것을 떠 와 가지고 밖에 내놓고 세수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도 그
것이 고통인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쩌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
서 온수가 들어오지 않아 가스 불에 물을 데우게 되면 그것이 불편하다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으로 그만
큼 약해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고통이 아닌 것을 고통으로 보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이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현
상이 계속 발전하면 나중에는 정신적으로 폭발하거나 이상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
담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설교를 하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신 건강의 특효
약은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주지시켜 드리기 위해서
이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바로 해 보십시오. 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깁니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도 신앙생활을 하면 건강해져야 정상인 것
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를 하면서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절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깁니까? 왜 그렇게 신
경이 예민해져 있습니까? 왜 작은 문제 하나 감당하지 못해 터집니까? 왜 남편이나
자녀들과 갈등이 생깁니까? 왜 그가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깁니까? 그의 정신이 똑
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에 매우 충격적인 말을 한마디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우리 교회
가까운 데서 신유의 은사를 가지고 놀라울 정도로 헌신적으로 봉사하시는 집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타 교회 집사님입니만 이 일을 위해 매주 이틀정도 지방에서 올
라오십니다. 제가 보니까 그분은 특별히 신경 계통의 질환이나 귀신들린 사람에 대
해 굉장한 은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통해 고침을 받았는데, 지금도 일주
일에 이틀 올라오면 이틀 동안 수백 명이 거쳐 지나간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 집사님이 저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요즘 정신적으로 이상
한 사람이 왜 그렇게 많지요?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옵니다. 어떤 때는 지쳐 가지고
내가 정신이 없어요. 그런데 목사님 한가지 알고 계세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고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사랑의교회 교인이라는 거요?"이 얼마나 충
격적인 이야기입니까?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가 정말 은혜 충만한
교회라면 정신적으로 조금 약한 사람이라도 강건해져야 마땅한데 사랑의교회에 다
닌다는 사람들이 그곳에 그렇게 구름 떼처럼 몰린다니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현대인들은 흔히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전부 탓으로 돌립니다. 내가 자라
난 환경 탓, 내가 사랑 받지 못한 탓, 누구에게 상처를 입은 탓 등등 별의별 탓을
하면서 "나는 잘못한 것 없다. 나는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다." 하는 식으로 설명
을 합니다. 이것은 프로이드 심리학의 영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심리학을
전공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이드라는 사람의 망령 때문
에 정신적으로 병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도록 이끌어주는데 그런 말씀은 전부 옆으로 재껴 둔 채 탓하는 생각만 계속
발전을 시키니까 나중에는 예수를 믿어도 정신적으로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보면 정봉덕 장로님이라는 분이 자기 인생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그것을 읽어보았는데 참 기가 막히더군요. 태어나서 열흘밖
에 안됐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몸에 굶어 가면서 1인 3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
되자 단신으로 남한에 내려왔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한 번이라도 변변하게 사랑
을 받았겠습니까? 이 사람이 그래도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
냈겠습니까? 그는 만신창이요 상처투성이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였지만
얼마나 건강하고 건전하게 사회에 기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며 살
았습니까? 그가 그렇게 수십 년 동안을 봉사하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
까? 신앙 생활을 바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환경을 탓한다든지, 부모를 탓하든지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다 자기 핑계에 불과 한 것들입니다. 성경적으로는 그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하
나님의 은혜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케 하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속
사람의 강건은 우리의 정신 건강과 직결됩니다. 속사람이 건강합니까? 정신도 건강
합니다. 속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정신도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은
아무도 깰 수 없는 영적 원리입니다.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
하십시오. 그러면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점을 분명
히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펴놓고 있는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진리를 명확하게 교훈하고 있습
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정신 건강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신 건강은 성령의 능
력을 받아 속 사람이 강건해 지는데서 온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정신 건강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신 건강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데서 온
다." 16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번역이 다소 어렵게 되어 있어 그
의미가 얼른 들어 오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심오하고 분명한 진
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풍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나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원천으로부터 성령이 우리에게 날마다 능력을 주심으로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
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의 차디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사랑하는 에베소 교
인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풍
요로우신 분이시죠. 모든 것을 가지신 부요하신 분이시죠. 사랑하는 에베소 교인들
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날마다 공급하시옵소서. 넘치도록 공급하시옵
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속 사람이 강건하게 하옵소서. 핍박이 다가 옵니다. 네로
황제의 핍박이 다가 옵니다. 이 백성들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주의 백
성들이 어려운 세상에서 핍박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속 사람이 강건케 되어
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성령을 날마다 물 붓듯 부어주셔서 속 사람을 새
롭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속 사람'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게 모르게 잘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합니다만 사실 이게
뭔가 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어렵습니다. 제가 몇 시간 동안 속 사람에 대해서 써놓
은 논문이나 주석을 살펴보았는데 연구를 하면 할수록 머리가 더 복잡하기만 했습
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성경에 있는 진리를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 학,박사님들 계시면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학,박사님
들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바울이 지금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들은 에베소 교인
들이 아닙니까? 그 당시 교인들이 대학을 다녔습니까? 학적으로 무슨 특별한 교육
을 받았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단순한 사람들에게 신학을 가지고 설명을 해야 통하
는 단어를 썼다거나 아니면 철학적으로 한참 설명을 하고 주석을 달아야 납득이 될
만한 용어를 썼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평범하고 명료한
단어를 성령께서 사용하셨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속 사람을 너무 복잡하게 생
각하지 않도록 합시다.
바울은 이 '속 사람'을 다른 많은 용어들과 같이 섞어서 사용을 합니다. 예를 들
면 속 사람을 정신하고도 거의 같이 놓고 이야기를 하고, 마음이라든지 뜻이라든지
혼이라든지 영이라든지 양심이라든지 하는 이런 용어들하고도 거의 같이 놓고 사용
합니다. 그러므로 '속 사람'이라는 말은 인간을 두 자아로 나누어서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보면
좋은 예가 있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니까 겉
사람이 있습니까? 속사람이 있습니다. 속 사람이 있다고 하면 겉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병행해서 우리의 인격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속 사람은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성령 안에서 거듭나는 새로
운 자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자아는 하나님께
서 내주하고 계시는 자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 하시는 자아입니
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이 자아는 죽어있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과거에는 우리가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은 자"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
은 우리의 몸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죽어 있었다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겉 사람은 살아있지만 속 사람은 다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서 이 속 사람이 드디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말할 줄 알고, 느낄
줄 알고, 어떤 때는 울기도 하고, 좋아서 뛰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합니다.
속 사람의 이런 모든 기능이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 믿고 속 사람이 살아난 사람은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 말도 할 줄 알고, 들을 줄도 알고, 눈으로 보기
도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감정에 이기지 못해서 그분 앞에서 울
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이게 전부 속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속 사람이 있
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모든 기능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이 속 사
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
는 이것을 확실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가끔 보면 교회를 다니면서 좀 문제가 있어요. 제가 볼 때 답답해요. 겉으로 보
기에는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문제가 터져요. 왜 그럴까? 저는 분명히 이
야기합니다. 그분의 신앙 생활 어딘 가에 허점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 문제를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분명히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속 사
람이 건강하지 못한다든지 그것으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각자에게 그 이유를 밝히 깨닫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속 사람이 강건하지 못하면 정신 건강에 빨간 불이 옵니다. 우
울증에 걸립니다. 신경 질환이 생깁니다. 성격 장애를 일으킵니다. 과민 반응을 합
니다. 정신 분열을 일으킵니다. 나중에는 용서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나중에는 이웃하고의 관계도 단절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충돌 일으킵니다. 여러
분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 나중에 돌아버려요. 그렇게 되면 악령이 와서 그 사
람을 끌고 다닙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속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멀쩡하지 않은가?' 옳은 말
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이런 면에서는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잡초입니다. 잡초는 아무 데나 갖다 뿌려 놔도 잘 삽니
다. 이 세상은 잡초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이미 마귀의 수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일부러 건드리지를 않습니다. 제
것인데 무엇 때문에 건드리겠습니까? 잡초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잡초로서 살고
있고 마귀가 항상 보호해주고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그렇게 대단한 문제가 일어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방금 말씀한 대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속 사람
이 살아난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잡초가 아니고
곡식입니다. 곡식은 아무데나 뿌린다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곡식은 정성껏 손을
봐 줘야 합니다. 가꾸어야 됩니다. 그래야 자라는 것입니다. 만약 가꾸어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잡초 속에서 살아 남지 못하고 맙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
은 마귀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하나님의 백성입니
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지배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가 약점만 보이면 마귀가 그것을 치고 들어옵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잡초 속에서 당당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위해서는 날마다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생활을 어설프게 해서
속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마귀가 와서 건드리고 시험을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여러분
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날마다 속 사
람이 강건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 사람이 날마다 강건하려면 성령의 힘
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연의 힘이 아닙니다. 하늘의 힘입니다.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힘입니다. 나의 의지의 힘이 아닙니다. 성령의 의지로 우리에
게 주어지는 힘입니다. 이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 힘에 붙들려서 살아야 합니
다. 그래야만 우리의 정신이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실까요? 여러분
은 아마 새로운 해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실 지 모르지만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연필 들고 적을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너무나 잘 알
고 너무나 상식적으로 깨닫고 있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신바람 나는 건강법'을 강의하는 분을 아시지요? 황 모 교수라고 참 멋
진 사람입니다. 또 믿음이 워낙 좋은 분이라 우리는 그분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있
습니다. 그분의 책을 읽어보시고 그분의 테이프를 들어보시면서 여러분 느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
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까? 간단해요. 골고루 잘 먹고 좋은
공기 마시고 적당하게 운동하고 그 다음에 항상 기쁘게 사십시오. 이것입니다. 그
런데 이 황 박사가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은 기쁘게 살라는 것입니다. 신나게 살라
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쁘게 즐겁게 살 수 있습니까? 그 대답도 간단합니
다. 예수 믿으시면 됩니다. 이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강의를 통해서 전도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습니다. 얼마나 재밌고 멋있습니까? 그러니 우리 육신의 건강
도 상식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골고루 잘 먹어야지, 두 말 할 것
있나요? 좋은 공기 마셔야지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공기를 마시니까 사람이 정말 오래 사는 것 같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지금
96세인지, 97세인지 되잖아요? 그분이 왜 그렇게 오래 살까 하고 생각해봤더니, 남
한산성의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지금 40년인지 50년간 살고 계시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 안에 앉아서 좋은 공기를 마시니까 오래 사시나 봐요. 어떤 목사님은
절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왜 옥 목사는 서초동 매연 단지 속에서 삽니까? 좀 공기
좋은 데로 옮겨야 건강도 좋아지고 목회도 더 잘할텐데."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옮
겨 줘 가지고 벌써 30년 전부터 삼각산 숲 속에다가 사택을 준비하고 살고 계신데
은퇴한 지금에도 얼마나 건강하신 지 모릅니다. 좋은 공기가 좋긴 좋은가 봅니다.
그리고 적당히 운동하고 날마다 기쁘게 살면 건강해진다는 것 역시 상식적인 이야
기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의 건강도 이와 같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령이 우리에
게 능력을 주실 때 네 가지 루트를 통해서 주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골고
루 잘 먹을 때 성령이 능력을 주십니다. 둘째는, 좋은 공기를 마시는 기도를 할
때, 기도의 호흡을 할 때, 우리에게 건강을 주십니다. 능력 주십니다. 셋째는, 주
님의 일을 위하여 적당히 봉사하는 생활을 할 때, 그게 영적인 운동이니까 성령께
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넷째는, 주님의 말씀대로 기뻐하려고 노력하고 감사
하려고 노력할 때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 네 가지 루
트를 통해 우리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현미를 먹고 살 수 없습니다. 속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
야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바로 속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골고루 잘 먹어
야 됩니다. 여러분 주변을 보십시오. 신구약 66권을 골고루 잘 먹는 사람들에게 정
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봤습니까 ? 창세기 쌀밥에다가, 레위기 국에다가, 마
태복음 된장 찌개에다가, 고린도전서 야채 샐러드에다가 골고루 먹으니까 정신적으
로 문제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그것도 모자
라서 주일날이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마음을 집중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수요일 날 뛰어와서 말씀
을 듣고, 금요일에는 다락방으로 뛰어가는 그런 사람을 보십시오. 이렇게 열심히
영양을 보충하는 사람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봤습니까? 시편 19편 7절
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날마다 소생
케 합니다. 성령께서 힘을 주십니다.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여러분이 정신적으로
약해졌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바로 먹고 있는지 살피시기를 바랍
니다.
성령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도 두 가지
가 있습니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하는 기도가 있고 혼탁한 공기 마시고 하는 기도
가 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혼탁한 공기를 마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하기 싫은 기도를 억지로 하는 기도나 입술로는 기도하면
서도 마음으로는 믿지 않는 기도,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형식적으로 때우는
기도, 하다 말다 하는 기도,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 이 모든 기도들이 혼탁한 공기
를 마시는 호흡과 같습니다. 이런 기도는 속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을 끌어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것과 같은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무시로, 성령 안
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시(無時)로 기도하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길을 가나
앉으나 항상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속닥거리는 것을 말합
니다. 그리고 특별히 시간을 정해놓고 주님 앞에 엎드려서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 놓고 아뢰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런 기도의 흐름이 계속 되는 사람은 좋은 공
기를 마시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성령은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할렐
루야! 만약 여러분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있어 잘못하면 파산할 것같이 느껴집니까? 여러분의 기도 생활
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적당한 운동이 필수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속 사람이
강건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교회 안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가지고 남을 봉사하는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순장은 물론이거니와 호스피스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모양도 너무 비참하고 쳐다만 봐도 잘못하면 밥맛이 날아갈 정도의 말기
환자들을 마지막까지 돌보아 주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그들과 말벗
이 되어 주는 일이 보통 일입니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에 24시간 뛰어든 우리 교회 성도들이 백 명이 훨씬 넘습니
다. 이런 분들을 가만히 보면 그 얼굴이 얼마나 밝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그들의
모습이 건강한지 몰라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봉사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날마
다 능력을 공급해 주심으로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봉사하기 싫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헌금을 내는 것도 싫어 가지고 자꾸 통장을 뒤
지면서 쌓아 놓기만 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나중에 여러분의 속 사람이 병들기 시
작하면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
하여 감사할 것이 별로 없어도 감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기뻐할 일이 없어도 하
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까 항상 기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우리 주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기쁘게 생각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런 보너스 은혜
가 우리에게 따라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네 가지 루트를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로, 주야로 말씀을 묵상
하는 자에게 성령은 능력을 공급하신다. 그 다음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의 능력을 공급하신다. 그리고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기를 원하여 봉사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능력을 공급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에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기를 힘쓰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의 능력을 공
급하신다. 그래서 그 속 사람은 날로 더욱 건강해집니다. 강건해집니다. 그와 동시
에 우리의 정신 건강은 항상 청신호가 켜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사
람은 이 네 가지 중 어딘 가에서 구멍이 났다고 보셔야 됩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서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 부부가 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
니다. 스승의 날이니까 감사하다는 편지도 되겠지요. 그러나 그 내용을 제가 읽으
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내신 분의 성함은 제
가 본인들을 위해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에 인용해도 좋다는 허락
을 받았으니까 그 내용을 잠깐 말씀을 드립니다.
이미 한때 제가 그분들 가정의 형편을 조금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12년 전에
제가 오사카에 집회 갔을 때 이 가정은 어느 회사의 파견을 받아 가지고 오사카에
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세 살인지 네 살 먹은 2대 독자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이
가 부모하고 같이 나갔다가 정원에 있는 연못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가라앉
아 버리니까 부모가 찾지를 못했었는데 가까스로 그를 찾았을 때는 시간이 너무 지
체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뇌가 파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뇌 기능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 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있은 지 1년
후인지, 반년 후인지 그 가정을 만났기 때문에 그 아이를 앞에 놓고 기도하고 돌아
온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편지에 보니까 사고가 난 후에 그 부인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은혜
를 받았는가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부인은 주님에게 매달렸다고 합니
다. 그 당시 남편은 별로 믿음이 없었습니다. 부인이 주님에게 매달렸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를 주셨는지,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속 사람을
얼마나 강건하게 해주셨는지, 아무리 기도를 길게 해도 시간이 짧고 하나님의 말씀
이 그렇게 꿀맛처럼 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할 때 그런 정황에서 성경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이 그렇게 꿀맛처럼 달았다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찬송하게 만들었고 방
언의 은사를 주셨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아들을 간호하는 것이 전혀 힘이 들지
않도록 해주셨다고 합니다. 자기 손에 있는 무기라고 해봐야 성경하고 찬송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과 찬송을 붙들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놀
라운 은혜에 사로잡히니까 병실에 문안 오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옆집에 사는 타카하시라고 하는 일본 여자가 있는데 그분
은 학원 원장입니다. 전도를 해도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듣지를 않던 사람입니
다. 그런데 아이가 사고가 난 다음에 가끔 밤에 쓰레기를 버리느라 오가다가 타카
하시 상이 이 집사님을 마주치게 되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집사님
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이 엄마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카하시 상은 '야, 아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고비에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얼굴에 광채가 날까?'하고 생각하다가 '아, 그 집이 예수 믿는 집안
이라지.' 하고 생각하고는 자기도 예수를 믿겠노라고 자기 발로 교회에 걸어 나왔
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제가 그 편지를 보면서 '목사보다 낫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
집 애들 때문에 그렇게 고생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모르는 이야기를 내
가 지금 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너무나 강하고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편지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제가 읽어드릴 테니 한번 들어보십
시오. "아들의 상태는 지금도 변화되지 않았지만 이 상태로도 감사하게 되었고 누
워 있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아들이 12
년을 누워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견딜 수 있었으며 아들을 통해 불신자를 전도하
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났던 가정이라도 제가 당하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할 말을 잊고 그런 힘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자기도 믿어보겠
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제가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두 손 들고 주님한테 고백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제 마음에 평안을 주셨고 자유함을
주셨고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더욱이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 되는 딸애가 쓴 한 편의 시였
습니다. 자기 학교 개교기념일을 맞아서 백일장을 했는데 입선을 한 시였습니다.
그 시가 그 안에 들어있어요. 이 딸이 이렇게 썼어요. 오빠가 병이 난 지 12년이
지났잖아요? "12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기도를 해 왔는데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기도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
간을 주시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오빠를 보면 왠지 마음이 행복하다/
오빠 얼굴을 보면 오빠가 누워있는 모습이 꼭 천사가 누워있는 모습 같다/ 우리 오
빠는 그 어려운 위기에서도 해내리라 믿는다/ 우리 오빠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이 한편의 시가 선생님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가정의 조건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정신적으로 부도가 나도 열 번
이라도 날 수 있는 가정 아닙니까?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환자가 십 몇 년 동안 집
안에 누워있으면서 말도 못하고 잘 듣지도 못하고,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움직이
지도 못하는 그런 아이가 누워있는 그런 집안에서 자라다 보면 아이들도 좀 이상해
질 가능성이 있지 않아요? 그럼에도 보세요. 남편은 벌써 제자 훈련, 사역 훈련을
다 받고 순장으로 뛰고 있어요. 부인은 지금 사역 훈련 중입니다만 한때는 성가대
에 앉아있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얼굴에 그림자가 없어요. 어린 딸애들이 오빠
를 보면서 천사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온 가정이 은혜 충만합니다. 정신
적으로 얼마나 건강한 가정입니까? 이런 건강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 붙
들고 날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은혜
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남의 이야기겠습니까? 1부 예배 때 간증을 하신 조영희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정말 감동 받았습니다. 주일 설교 테이프가 나오면 꼭 사셔서
그 간증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가면서 하나님이 주님 앞에
매달리는 그들에게 성령으로 얼마나 속 사람을 강하게 하시는가? 남편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여러 가지 경쟁 사회에서 살기가 어려워 우리가 지칠 대로 지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정신적으로 흐느적거리면 안됩니다. 약한 부분을 보이면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약해진다고 생각하면 여러분의 속 사람을 점검하십시오.
부인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이상하게 요즈음 여성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
습니다. 증오심과 열등감과 교만과 자기애와 질투심과 탐심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심리가 작용해서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증세를 보이는 부인들이 너무 많습
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이와 같이 심리적으로 무서운 적들에게 포위 당해 있는 것
은 정상이 아닙니다.
어느 기록을 보니까 감정과 관계가 있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이 뇌에서 분비가
되는데 남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분비되는 양은 거의 같지만 뇌의 기능이 왕성
한 남자는 여자보다도 52 퍼센트 더 빠르게 세로토닌이 분비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호르몬이 분비되
는 속도가 좀 느린 여성들은 남자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4배나
더 높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오늘 저는 우리 여성들에게 말씀 드
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능력을 4배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4배
로 받아야 여러분의 속 사람이 강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4배로 받기 위
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4배로 먹어야 합니다. 기도를 4배로 해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여러분은 4배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
고 4배로, 남자보다 4배로 기뻐해야 합니다. 4배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
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의 남편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4배로 기도하고 말씀 은혜 받고 하나
님의 일에 충성하고 4배로 여러분이 감사하고 기뻐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속 사
람이 강건해지기 때문에 여러분을 통해서 연약한 자녀들이 강한 자녀들로 바뀔 수
가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 주변에 정신적으로 약해서 살 욕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
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하나님의 치유하심
을 받도록 여러분이 이끄는 강한 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 부인들, 이와 같
은 은혜를 꼭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속 사람을 강건하
게 합니다. 속 사람이 강건하면 정신적으로 약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영적 원
리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우리 모두가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 주시고 특별히 정신적으로 약하다
고 느끼는 분들이 있으면 이 시간 성령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
력이 오늘부터 힘있게 여러분의 속 사람을 소생케 하는 놀라운 역사가 함께 하시기
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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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