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영화의 추억
김상호
얼마 전 중국 무협영화 “방랑의 결투”를 반세기 만에 다시 보았다. 1967년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해의 봄에 본 영화이니 55년 만이다. 이는 초등학교 일학년 때 돌아가신 증조부님 이래 내가 우리 집안 남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히 두 세대를 관류하고도 남는 세월이다. 세월은 모든 사물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는 것이던가. 내가 세월을 뿌리치고 달려 온 것이던가.
그날도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는 중에 “정패패의 대취협(大醉俠)”이라는 자막에 눈길이 갔다. 제목은 진부하지만 직감적으로 방랑의 결투가 떠올랐다. 정패패는 용문의 결투에 나오는 상관영봉과 함께 무협영화 초창기 여배우이다. 그러나 기실 내가 이 영화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은 산위의 광활한 초원이었다. 골프장처럼 압도적인 파란 잔디밭으로 말이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산상의 넓은 초원도 이번에 다시 보니 그 감동은 없어진 듯 하다. 이미 소년의 감수성은 내 곁을 떠나고 없음을 깨닫는다.
이 영화의 원제는 대취협으로 타이틀 롤을 맡은 주인공은 주정뱅이 대협객으로 나오는 악화라는 배우다. 그의 얼굴은 레닌을 연상시키듯 다소 날카롭지만 단단한 체구에 매우 강인한 인상이었다. 다만 스타덤에 오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까닭에 여배우 정페페를 타이틀 자막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당시 대구 동성로에 있던 키네마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전국 동시 개봉한 중국 무협영화다. 당연히 고교생 입장가이고 요금은 4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생 시내버스 요금이 5원이었으니 요즘 화폐가치로 보면 일만원 정도는 될 것이다.
대구시내 개봉관은 이 영화를 상영한 키네마를 비롯하여 아카데미, 제일, 만경관, 아세아 등 5개가 중앙통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었다. 새로 지은 아세아, 만경관은 주로 방화를 개봉하였고 노후화된 키네마, 아카데미, 제일극장은 외화를 상영하였다. 당연히 방화는 가족관객이 외화는 단체관람이 많은 곳으로 양분된 느낌이었다. 특히 경상감영 앞에 위치한 아세아 극장은 최신식 대형극장으로 국내 최초의 70밀리 영화인 춘향전을 상영하기도 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충무로의 대한극장에 필적할 만한 최신식 극장이었 것으로 생각된다. 그곳에서 춘향을 관람할 때 청년들이 춘향역의 홍세미를 연호하는 해프닝도 예사롭게 볼 수 있었다. 물론 키네마극장도 70밀리 화면의 클레오파트라를 상영하기도 하였다.
고교시절 단체관람은 무협영화 외팔이 시리즈, 나바론, 로마제국의 멸망, 스팔타카스 등 대작의 외화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 밖에도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등 많은 명작이 기억나지만 단체관람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 영화에 이어서 그해 여름에는 용문의 결투 (원제 용문객잔)가,, 이듬 해에는 왕우 주연의 외팔이 시리즈 등이 연이어 나와서 무협영화의 초창기를 장식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김용의 소설 영웅문 등이 비디오 시대와 맞물려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지만 수준이하의 영화들이 범람하였다는 생각이다. 당시에는 거의 매주 집에서 중국 무협영화 비디오를 빌려보던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임청하 주연의 백발마녀전인데 서너번은 빌려 봤을 것이다.
금세기에 들어 가장 발전된 분야가 무협을 포함한 전쟁영화다. 예전에는 대규모 전투장면은 몹신(mob scene)이라 하여 수천명의 엑스트라나 학생 심지어 군부대도 동원한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지금은 컴퓨터그래픽으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특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화살과 총탄의 괘적까지도 선명하게 그려낸다. 이처럼 영상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무협영화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동방불패, 천녀유혼, 와호장룡등 많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현대 영상기술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상상력도 형상화할 수 있게 되었다. 몇해 전 중국 시안의 병마용 공연장에서 진용정(秦俑情)이라는 대형무용극을 본 적이 있는데 환상적인 무용극이 관객을 압도한다. 이를 테면 화면 저 멸리서 말 타고 오는 무사가 실제로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 전환은 환상적이었다. 이 무용극은 북경 올림픽 개막식을 지휘한 명장 장예모 감독이 연출하는데 양귀비의 유적지 화청지에서도 당나라의 시성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를 공연한다. 장한가는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역사적 유적지인 여산을 초대형 스크린으로 하는 파사드 영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여산은 양귀비의 유적지일 뿐 아니라 만주 군벌 장작림의 아들 장학량이 모택동 편을 들어 장개석을 연금시킨 시안사변의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뉴스나 스포츠 중계를 주로 보았지만 최근에는 나는 자연인이다 등의 부담 없는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아울러 중국 무협과 서부영화도 즐겨보는 편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협에서는 와호장룡, 동방불패, 소오강호 등이 서부영화에서는 맥켄나의 황금, 황야의 무법자, 황야의 은화일불 등이다. 반면 다른 장르의 영화들은 잘 보지 않는다. 그것은 원작이나 감독의 편향된 세계관을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오도함으로써 악인이 잘 사는 세상을 묵인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무협이나 서부영화를 즐겨하는 이유는 점차 사라져 가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동경하기 때문이다. 권선징악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종두득두와 사필귀정을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콩을 심어 놓아도 몰래 팥으로 바꿔치기 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죄 지은 사람이 벌 받지 아니하고 선량한 사람이 계속 고통받는 세상은 문명의 비극이다. 그것은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행동하는 현대사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