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어 오르는 막말처럼]
-김기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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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담고 있다.’ E. 리스의 이 격언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가 크다. 발화한 말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너에게로 가서 움트는 사랑이 되기도 하고, 둘로 갈라놓는 이별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방황하는 삶에 명약같은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때론 화살이 되어 그의 가슴에 멍이 되기도 한다. 말의 힘이 그렇다.
그러니 대개는 그 말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실수로 발화된 말일수록 그 생명력은 질기다. 어느 여자시인이 갓 등단을 하고 신문사에 들러 인사를 하였단다. 마침 그 신문사엔 그 당시 문단의 산맥으로 여기는 대선배 시인이 계셨는데, 단걸음에 찾아가 인사를 올리는 거였다. 반갑고 한편으론 떨리기도 했으리라. 그녀가 말했다. “어머, 선생님도 서정시 쓰세요?” 무어라 답을 했단 말은 알려진 바 없지만 생각건대 무척 난감했으리라. 그 후 가까운 시인들이 만나면 반갑다는 말, 잘 지냈냐는 말, 보고 싶었단 말을 대신하여 ‘어머, 서정시 쓰세요?’라 한다. 그러면 이런저런 웃음으로 그간의 안부가 별안간 통하기도 한다.
말의 생리에는 격이 있다. ‘말은 마음의 초상이다’라고 하니, 마음이 순결한 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지기 위해서라도 형식으로 철갑을 하고 말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말 중에는 그 격을 거부하는 막말이란 게 있다. 막말은 천하다고들 인식한다. 그러나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반가운 그 마음을 전할 때 격식을 갖춘 말보단 걸쭉한 막말이 더 큰 기쁨을 전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기막힌 막말이 있다.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하늘더러 읽어 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정양 시인의‘토막말’일부다.
격의 없이 나눌 수 있는 막말이 있는가. 속에 것 다 태우고 마지막에야 토해내는 그 막말같은 간절함이 있는가.
영남일보/김기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