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당을 나온 길조
장병학(청주지부)
내가 대여섯 살 때 새벽닭이 울면 어김없이 일어나 콧노래를 크게 부르면서 중말에 있는 큰 집으로 달려가 식구들을 깨웠던 일이 소롯이 생각난다. 옛날부터 닭은 새벽을 알리는 시계 역할을 해주면서 많은 사람을 일찍 깨워 일터로 내몰았다. 닭처럼 부지런한 동물도 흔치 않다. 고요한 새벽에 닭 울음소리는 신을 쫒는 벽사의 기능을 지닌다고 했다. 제시간에 닭이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기기도 했다.
‘닭의 목은 왜 가늘고 기다랄까?’ 닭은 기다란 모가지를 금관악기처럼 힘껏 구부려서 기상나팔을 불어댐이 닭의 특징이 아닐까? 한 번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몇 번이고 반복 연주하여 새벽녘 한밤의 어둠과 적막함을 깨트린다.
‘그토록 고귀한 삶을 가꿔오면서/ 단숨에 숨차도록 달려온 닭의 해/ 길조와 명물은 새벽마다 울어댔다/ 새 희망 새 꿈 일궈내도록/ 밤잠 설쳐가며 사람마다 박동의 길 열어주던/ 길조의 한 해도 서서히 붓질한다/ 교회의 십자가안과 사찰 뜰 안/ 아이들 뛰놀던 교정의 오색찬란했던 수채화도/ 닭의 해도 역사의 빛으로 바랜다/ 석양에 붉은 노을/ 한 많은 사연마다 가슴으로 토해내며/ 닭벼슬은 붉게 담금질한다’ 닭의 해를 보내면서 어느 일간신문에 게재되었던 필자의 송년 시이다.
지금도 닭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고향에 온 것처럼 반갑다. 초등학교 시절, 딸아이가 학교 앞에서 노란 병아리 몇 마리를 사갖고 집으로 돌아와 방안에서 정성껏 키웠다. 얼마간 귀엽게 자라더니 보송보송한 날개에 깃털이 드문드문 난 노란 병아리를 보고 아이는 마냥 좋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초인총 소리가 났다. 누가 왔나 성급히 밖에 나가다 나도 모르게 노란 병아리를 밟고 말았다. 심하게 밟았는지 노란 병아리는 옆으로 누운 채 양발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때 딸아이는 자신이 다친 것처럼 엉엉 울어 대면서 서러워했던 일이 기억난다.
요즈음은 병아리들을 인위적으로 색깔별로 염색하여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 병아리를 만들어 교문 앞에서 어린이들에게 유혹시키면서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생물에게 인간 멋대로 다루는 못된 방식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닭은 배가 몹시 큰 편이다. 배가 크다는 것은 종족 번식과 다산의 뜻도 내포하고 있음이 아닐까? 다른 동물들과 살아남기 위해 세력 다툼도 심한 동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닭은 닭목 꿩과에 속하는 새 중에서 가금화한 것을 총칭한 닭을 한자로 계(鷄)라고 불려 왔으며, 닭을 길조(吉兆)와 명물(名物)로 조상들은 대대로 애지중지하면서 키워 왔다.
우리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통 혼례 시, 초례상에서도 다른 동물들을 제치고 닭 암수 한 쌍을 사용해왔던 것도 신기했다. 닭에서 풍기는 의미 즉 다산, 자식을 많이 낳게 하려는 염원 때문에 사용한 것이 아닐까? 옛날에는 질병이 온 동네를 쓸듯 많은 사람이 무참히 죽어 갔다. 불행을 예단하여 어른들은 ‘낳기만 하면 저 먹을 것을 타고 난다.’라며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는 필연적인 상념에 젖었다. 많은 닭 중 레그혼은 산란을 아주 잘한다. “우리 마누라는 레그혼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식을 나 재킨다.”라면서 8남매를 둔 직장 상사의 말씀을 듣는 순간,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사람이 운명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상여를 탄다. 요즈음은 아주 드물지만, 상여에도 닭이 등장한다. 비록 나무로 만든 꼭두닭이지만, 극락왕생의 인도자이며, 돌아가신 자를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해주는 닭의 의미는 크게 부각된다. 내가 장가를 들고 처갓집에 갈 때마다 장모님께서 씨암탉을 잡아주시곤 하셨다. 아마도 귀한 사위도 자식이며, 자손 번성과 우리 부부의 도리를 함께 하라는 장모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맛있게 먹었던 지난날들이 몹시 그리워진다.
기원 전 399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형 집행장에서 독극물을 마신 세계 4대 성인인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에게 “여보게 친구야. 의신인 아스클레피우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는데 잊지 말고 대신 꼭 갚아주게나.”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독배를 비우면서 의신에게 병을 치료받고 닭을 받치지 못했던지, 아니면 의신의 힘을 빌어 살아남으려고 했던지 여러 갈래로 상상해 본다. 세계 4대 성인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안전에서 느닷없이 빚진 닭을 갚아 달라는 정황에 지금도 여운이 풀리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던 의신인 아스클레피우스에게 닭 한 마리씩 제물로 바쳤다고는 하는데・・・・・・.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 ‘산닭 길들이기는 사람보다 어렵다’, ‘촌닭 관청에 갔다’ 등 닭에 대한 보편적 지금도 닭에 관한 여러 개의 속담이 전해온다. 닭의 명칭도 암탉, 수탉, 촌닭, 산닭 등 닭에 대한 의미가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표현됨을 인지할 수 있다.
유신체제 때 어느 민주 투사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마침내 새벽이 찾아오면서 닭을 비유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 민주투사가 문민정부의 대통령이 당선된 역사적 사실도 기억 난다.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천장에 매단 둥지에 달걀 20여 개씩 넣은 후, 어미 닭에게 품도록 하셨다. 평상시 세상 밖으로 하루 종일 나돌아 다니던 어미 닭은 24시간 꼬박 달걀들을 고이 품어대는 모습도 어린 내게 무척 신기했다. 어미 닭은 자신의 발과 부리로 20여 개의 계란을 고루고루 옮겨댔다. 21일이 지나더니 달걀 하나하나를 부리로 꼭꼭 찍어가며 병아리를 잉태시키는 아름다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순간, 너무도 신기했다. 어머니께서는 병아리가 다칠까봐 둥우리에서 한 마리씩 정성을 다해 내려놓았다. 둥지에서 내려진 어미 닭과 20여 마리의 노랑, 깜장 병아리들은 너른 세상을 만난 듯 예쁘게 다니는 모습이 신비스러웠다. 병아리를 만지려면 어미 닭은 황급히 내게 쫒아와 엄호사격을 해대며 새끼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어미 닭은 곳곳을 헤치면서 먹을 것을 발견하면 자신은 먹지 않고 어린 병아리들이 고루 먹도록 살펴주는 모습에 천사가 따로 없는 사랑의 감동 순간 같다.
예로부터 닭이 울면서 밝은 새벽이 달려오기 때문에 닭의 울음 그 자체가 인간에게 밝은 희망과 꿈을 심어 주고 있다. ‘달구재’, ‘덜구니’ 등의 마을과 산이 지금도 전북 고창군 심원면,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지금도 불려오고 있다. ‘달구’는 산을 의미하는 옛말이며 ‘닥’, ‘닭’을 바탕으로 나온 어휘로 보여 진다. 대구를 ‘달구벌’이라 불리어 옴에 이는 ‘산의 벌’ 즉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내 들판으로 의미화하고 있다.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란 말도 있다. 금빛의 닭이 알을 품고 앉은 명당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금계포란형의 곳에 집을 짓거나 조상의 묘를 쓰게 되면 자손이 번성하고 부를 누린다는 말씀을 오래전부터 조상들은 믿어왔다. 달기봉(계봉,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과 닭섬(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같은 명당이 그 예가 아닐까?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원작, 감독 오성윤)이 초등학교 저학년용 애니메이션이 화제이다. 주인공인 암탉 ‘잎싹’과 그가 ‘기른 자식’인 청둥오리 초록이가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비록 남의 자식인 청둥오리 새끼를 애지중지 길러낸 한 어미인 암탉의 아름다운 모성애를 부각시킴과 동물 사이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각인시켰다. 주인공인 ‘잎싹’과 그가 ‘기른 자식’인 청둥오리 초록이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는 눈물 쏟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닭은 미래 세계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현대판 애니메이션 작품에도 활약성이 돋보인다.
닭은 영양가 높은 단백질 식품을 인류에게 제공해주는 혁명적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달걀과 고기를 낳아 주는 고귀한 가축이다.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보다 사료값도 덜 들면서도 소보다 다섯 배가량의 고기가 제공됨을 알 수 있다. 여름철 삼계탕은 우리들에게 인기 식품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갖가지 닭의 요리를 해도 이들은 아무 불평 없이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듯싶다.
는 이 땅의 많은 길조이면서 명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소유했으면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메이션처럼 늘 자신을 희생하며 내 새끼도 아닌 초록이를 길러준 어미 길조 이야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현) 한국아동문학회 중앙위원장, 국제펜 한국본부자문위원, 한국문협 전통문학연구위원,
고문(진천문협, 충북아동문학회, 충북펜문학회. 충북글짓기지도회, 직지나라사랑시낭송회)
직지문화연합회장, 대한민국직지콘서트 추진위원장, 세계직지문화협회 이사
등단 :‘시와 의식’ 수필(1986), ‘한국아동문학연구’ 동시(2002) 등단
역임 : 국제PEN충북위원장, 충북수필문학회장, 청주문인협회장, 한국아동문학연구회부회장
수상 : 충북예술상, 충북문학상, 충북아동문학상, 충북수필문학상, 운초문화상, 한국아동문학창작상 외
저서 : 꿈을 주는 동시, 별님도 덩실덩실(동시집), 늘 처음처럼, 신이 내린 선물(수필집),
함께 가는 미래 융합사회(칼럼집)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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