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령
두령(頭領)42-1
제42장. 대 격돌...
한차례 대 접전이 있은 후 며칠 간 폭풍전야처럼 고요하던 낙
혼에 평원에 다시 아침이 밝았다.
"헉헉!"
평원으로 들어오는 여러 개의 길목에서 망을 보던 무림맹의
제자들이 새파랗게 질리며 무림맹 진영으로 급히 뛰어들었다.
"너희들은 보초를 서던 아이들이 아니냐?"
헐레벌떡 달려오는 자파의 제자들을 모고 장로들 중 한 사람
이 물었다.
"큰일났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인원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
습니다."
숨이 넘어갈 듯 고함을 치는 청년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
었다.
"무슨 말이냐? 자세히 말해보거라."
"구당협(瞿塘峽) 방향에서 수 천명의 인원들이 몰려오고 있습
니다. 한 시진이면 이곳에 도착 할 듯 합니다."
"혈영의 무리들이 말이냐?"
"그런 듯 합니다."
"올 것이 왔구나. 어서 전 맹에 알리고 전투준비를 하거라."
아침부터 무림맹이 불이 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놈들이 오늘은 끝장을 볼 모양입니다."
무림맹 수뇌부가 초조한 얼굴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후진에 연락은 하였소?"
주해대사가 모용상아를 바라보았다.
"이미 연락은 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려면 세 시진
은 걸릴텐데……."
"그들이 한 시진 안에 도착한다면 최소한 두 시진은 버텨야 된
다는 계산이군요."
누군가 걱정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혈영의 사이한 칼을 직접
겪었던 그들에게 두 시진이면 절멸 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할 수 밖에요. 여러 장로님들은 일러
준 대로 진영을 짜고 제자들을 독려하시오. 그리고 절대 경거망
동해서는 안되오."
주해대사가 신신당부를 하자 명숙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
막 밖으로 나갔다.
"좀 이상하지 않소?"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대군을 맞아 싸우려면 당연히 사방팔
방 물샐틈없이 진영을 갖추어야 하는데 최대한 산 아래로 집결
하여 진영을 구축하면 뒤쪽 산 쪽이나 옆쪽 숲 쪽에서 놈들이
쳐들어오면 위험할 텐데……. 그리고 어제는 산 쪽에 있는 보초
들을 모두 물리고 그곳으로는 일체 접근을 금하게 한 것도 이해
가 가지 않는 일이오."
천막 밖으로 나온 장로들이 못내 미덥지 않은 듯 맹주 처소
쪽을 돌아보았다.
"뭔가 복안이 있으신게지요. 이제껏 맹주님의 말씀이 어디 한
치라도 온당하지 않은 적이 있었소?"
"그건 그렇지요. 높은 불력과 포용력은 탄복을 금치 못하게 했
지요."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장로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갑시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한치 오차도 없이 행하면 될 일
이지요."
무림맹 수뇌부가 서둘러 각 진영으로 걸음을 옮겼다.
"희생은 얼마나 줄일 수 있겠소?"
두 사람만이 남게된 맹주 처소에서 주해대사가 모용상아에게
물었다.
"게획대로 된다면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겠습니다만, 장공자님
이 변수입니다. 그 분만 도와 주신다면……."
"그건 바라지 마시구려. 그 공자 눈에는 우리나 혈영이 똑 같
은 무리일 테니까."
주해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어찌됐든 그에게 칼을 배운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보살피니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천군만마의 힘을 보탠거
나 마찬가지입니다."
모용상아가 저으기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요. 그러지 않았으면 무림은 이미 혈영천지가 되었을지
도 모르지요."
주해대사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둥둥둥…….
최초의 보고를 받은 한 시진 후 긴장한 채 전열을 갖추고 있
는 무림맹이 진지 앞으로 족히 이 만은 넘어 보이는 수의 혈영
무리들이 나타났다.
많은 수임에도 불고하고 아무 소리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
는 모습에서 많은 훈련을 소화해낸 흔적이 베어 있었다.
펄럭-
무리들 앞쪽에서 깃발 하나가 솟아올랐다. 동시에 전진하던 인
원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섰다.
"무리맹은 들어라."
제일 앞에선 장한이 큰 소리를 질렀다.
"혈영의 새로운 영주 담우개님의 명을 전하겠다. 이곳 낙혼애
평원은 우리 혈영이 보금자리로 공표한 땅이다. 너희들이 즉시
이곳을 떠나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고이 돌려보내 주겠
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기 모인 무림맹 인원들을 단
한 명도 살려보내지 않겠다……. 그때는 항복조차도 소용없는 일
이다. 그러니 이 두개의 창 그림자가 겹쳐질 때까지 가부를 결정
하라."
장한이 고함을 멈추고 긴 창 두개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당에
박고 물러나자 무림맹 곳곳에서는 술렁임이 일었다.
현재 평원 저쪽에서 나타난 숫자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인데
그 밀려드는 인원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숫자도 숫자이지만 선두에 나타난 사람들의 기색이 결코 범상
치 않았다.
호흡마저 자신의 내부로 갈무리하여 한 자루 칼처럼 냉막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오싹한 소름이 절로 돋았다.
"맹주님!"
무당의 장문인 방제금이 주해대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비장함과 함께 고뇌의 빛이 역력했다.
자신이야 무림의 대의를 위하여 백 번을 거듭 죽는다 하여도
여한이 없겠지만 피어보지도 못한 저 어린것들은 어찌할 것인가.
지금 앞에선 무림명숙들의 심정이 모두 그러했다.
"기다려 봅시다. 천운이 아직 우리를 떠나지 않았음이니……."
주해대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뭔가 있다!'
눈꼽만큼도 흔들리지 않는 맹주의 표정을 보고 방제금이 의혹
의 눈빛을 떠올렸다.
핑핑핑-
두 개의 창 그림자가 일직선으로 합쳐질 때 바람을 가르는 섬
찟한 음향과 함께 무림맹이 진을 친 산꼭대기에서 하늘을 가득
메울 듯 무수한 숫자의 화살이 날아왔다.
그 무수한 화살들은 무림맹의 인원들이 배치한 진영을 뛰어넘
어 혈영의 선두에서 사람들 발치쯤에 정확히 떨어져 마치 울타
리를 치듯이 옆으로 길게 늘어서 박히기 시작했다.
"물러서라!"
혈영의 앞열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저 놈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화살이 날아온 산정을 바라본 혈영의
전열 속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리 높지 않은 산꼭대기에서 하나둘씩 나타난 사람들이 순식
간에 온 산 꼭대기를 병풍처럼 둘러싸며 인간의 숲을 이루고 있
었다.
"우우-"
놀라기는 무림맹도 마찬가지였다.
맹주의 명으로 이제까지 배치하고있던 진영과 목책들을 모두
철수하고 뒤쪽 야산 아래로 바짝 재배치한 자신들의 진영 뒤쪽
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화살을 날렸다.
그 화살들이 자신들의 머리를 넘어 혈영의 전열 앞쪽에 떨어
지지 않고 자신들에게로 떨어졌다면 적어도 화살 숫자의 반 만
큼은 희생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맹주님. 대체, 대체 저들은?"
"미안하오, 여러 명숙님들. 내 차마 녹림과 손을 잡았다고 말
씀드릴 수 없어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었소."
"그럼 저들이 녹림도란 말입니까?"
"그렇다오. 장공자와 함께 있던 아이들이 장악하고 있던 녹림
십팔채의 사람들이오."
"그런데 저들이 여기 어떻게?"
명숙들중 한 명이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 아이들은 오래 전에 이런 일을 예상하고 녹림을 손아귀에
넣고 강궁과 군진합공을 가리켰다 하오. 그리고 우리가 회의만
하고 있던 긴 겨울동안 암암리에 이곳 사천땅에 은밀히 잠입하
여 오늘에 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오."
"어허 이런일이……. 장강의 앞물이 뒷물에 밀린다더니 한치도
틀림없는 말이구려."
"맹주님께서 넓은 평원을 모두 내어주고 이 야산자락 바짝 붙
여 진을 치게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방제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승의 생각이 아니라 장문인 문파의 제자인 정사청이란 공
자의 계책이었지요"
주해대사의 얼굴에 얼핏 미소가 떠올랐다.
몇 년 전에 삼엄한 소림의 장경각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광승
의 소재를 묻던 그 기상천외한 청년이 어젯밤 다시 천막으로 스
며들었던 것이다.
"그놈, 사청 그놈이란 말이지요……? 겨울동안 뭐가 그리 바쁜
지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헐떡거리며 다니더니……. 허허!"
방제금이 혀를찼다.
둥둥둥-
돌연 저 멀리 우측 숲 속에서 북소리가 우리며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뭔가?"
움직이던 숲이 서서히 옆으로 흩어지며 덮어쓰고 있던 풀숲을
벗어 던지며 긴 창을 든 녹색 복장의 인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
다.
"저들도 녹림도 인가요?"
"그렇소 저들은 사대세가중 신도세가의 자제 신도기문공자가
심혈을 기울여 군진합공술을 연마시킨 녹림도들이라 하오."
"허 이젠 놀랍지도 않군요."
신도세가의 가주 신도일명(新刀一明)이 헛바람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 신도기문이 이끄는 녹림도와 정사청이 이끄는 녹
림도가 끝없이 넓은 평원 한 쪽에서 서로 합쳐지면 전열을 짜기
시작했다.
"저것은?"
곤륜의 진명선사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저것은 군인들이 짜는 군진이 아닌가? 저들이 어찌 변방의
군인 들이 쓰는 군진을 짠단 말인가?"
"어허 녹림도가 아니라 군대구려."
이곳 저곳에서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사이 진을 완성한
녹림도가 그대로 이동하며 혈영의 좌측을 압박하였다.
장창과 활로 무장한 군진은 얼핏보기에도 죽음의 진이었다.
기세 등등하게 늘어서 있던 혈영의 좌측 전열이 급히 분산되
며 멀찌감치 물러서자 다른 쪽 전열들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
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혈영의 선봉에선 장한이 대갈을 터뜨렸다.
"감히 산적 따위가 우리를 막아서다니. 네놈들부터 따끔한 맛
을 보여주겠다"
장한이 칼을 빼들며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제 일군은 우측에서 우각진(牛角陣)을 짜고 제 이군은 좌측에
서 우각진을 만들어 저놈들의 전열을 흐트려라."
장한의 명령에 따라 혈영의 인원들 중 일부가 물소뿔 모양의
진세를 휘하며 재배치하고는 녹림의 한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혈영의 괴이한 진세에 녹림이 잠시 주춤했다.
그들의 진세는 녹림의 진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모양세였
다.
둥둥-
북소리가 들리며 진영 뒤쪽 교자 위에서 신도기문이 몇 개의
깃발을 차례로 흔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흔들리던 진영이 신속히 배치를 달리했고 십자
형으로 재배치하여 물소뿔의 양 옆과 가운데를 공격하였다.
물소뿔이 양쪽으로 끊어지며 전열이 흐트러지는 순간 화살과
장창이 쏟아져 나와 녹림을 공격하던 혈영의 무리들이 고목 쓰
러지듯 쓰러졌다.
"저놈!"
장한이 고함을 질렀다.
"저 놈을 쏘아 떨어뜨려라."
장한이 옆에 있는 사내에게 명령했다.
사내가 강궁을 들어 올리며 신도기문을 겨냥했다.
피융-
사내의 화살이 어이없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저 멀리서 정사청이 쏜 강전이 한 발 앞서 사내의 가슴을 꿰
뚫었다.
"이크!"
다시 한 발의 강전이 장한의 이마를 노리고 날아왔고 장한이
얼른 고개를 숙여 강전을 피했다.
"멍청한 놈!"
쩍 갈라진 벼랑 저쪽에서 담우개가 녹림과 혈영의 접전을 보
고 있다가 입맛을 다셨다.
"모두 뒤로 물려라."
북소리와 함께 깃발이 올라가고 접전을 벌이던 혈영이 신속히
뒤로 물러섰다.
"방패를 소지한 수검대(守劍隊)로 녹림을 상대하게 하고 다른
진영은 무림맹을 공격하여 총공세를 펼쳐라."
혈영의 무리들 중에 길고 두꺼운 방패를 든 자들이 앞으로 나
와 길게 늘어서 방패를 일렬로 세우자 순식간에 성벽이 하나 축
조된 것 같았다.
그렇게 방패로 막아선 혈영이 천천히 녹림의 진영을 향해 진
군했고 무림맹에도 역시 고수들로 편성된 혈영의 무리들이 거리
를 좁혀들기 시작했다.
"쳐라!"
담우개의 손짓과 함께 깃발이 올라가고 먼저 무림맹쪽으로 다
가가던 혈영의 무리들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며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첫댓글 즐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