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오후조라서 밤10시까지 근무를 해야 되는 날이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은 가고 어느새 9시가 다 되었다.
일이 끝나갈 무렵은 한가하다.
한가함에 지루해져 가져온 책을 도어 데스크에서 보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후문이라 단골 손님들과 대형 버스들이 들어오는데 그시간은 주로 뜸하다.
이규형의 일본어책을 꺼냈다.
조금 읽고 있으려니까 어떤 할아버지께서 나오셔서 기둥옆 재떨이 근처에서 담배를 꺼내 피셨다. 겉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할아버지 같았다.
'한국인일까..일본인일까..'
처음 보는 담배다.
그 때까진 내가 별로 담배를 피지 않았을 때여서 어느나라 담밴지 알지 못했다.
한국인인가....
그 할아버지는 내게 말을 걸어 왔다.
"가루비 오디소 모고요..?"
"가루비? 가루비가 뭐예요?"
"가루비...가루비 와까나이? (가루비 몰라?)"
갑자기 일본어를 하다니..
어쩐지 "오디소 모고요?"할 때 일본인인걸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일어를 잘 못하는 난 모든 기술을 동원해 물었다.
"가루비가...난데스까..? (가루비가 뭐지요?)"
할아버지는 내게 왜 일본어를 공부하냐 물었다.
(듣고 나서 생각하기에 그렇게 물은것 같다..)
난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인과 펜팔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일본사람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공부를 해 보겠답시고 일단 이야길 했다.
아..얼마나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 입이 근질 근질했다.
사실 우리 과(관광영어통역과)에서도 일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일본 친구를 사귀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에 난 언제나 야후 채팅을 할 때 마다 일본인을 찾아 다녔었다.
"소~데스까~~(그래요?)"
"하이.(네)"
대답을 들은 할아버지는 갑자기 호텔 안으로 들어가셨다.
잠시후 일행과 같이 밖으로 나오는 할아버지
일행은 그의 투어 컨덕터(여자), 동행한 일본인 여자하나 그리고 남자하나.
전부해서 4명이었다.
* 투어 컨덕터 : 관광인솔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국의 여행객들을 외국으로 데려나가 그 나라의 가이드와 협조하며 관광시켜 주는 사람들이다.
할아버지는 투어 컨덕터의 손을 잡더니 내쪽으로 끌고 왔다.
"고노 까따가 니혼노 조세이또 펜파루 시따이..어쩌고 저쩌고.."
짧은 일어로 그의 말을 다 기억할 순 없었지만 그 투어 컨덕터한테 이 놈이 일본여자하고 펜팔하고 싶어한다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컨덕터한테 니가 해보라고 자꾸 권했다(그러는 거 같았다...일어를 모르니..-_-;)
투어 컨덕터는 얼굴 색이 밝아지더니
"오호..." 반기는 눈치였다.
옆에 있던 일본인 여자는
"와따시..와따시..(나..나..)" 하면서 자기랑 하자구 난리였다. 그녀가 와따시를 외치는 동안 그 옆에 서 있던 그녀의 남자친구인 듯한 사내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_- 맞는거 아냐.
일단 일어가 안되는 난 아무래도 투어 컨덕터가 영어를 좀 하니까 컨덕터랑 펜팔을 하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름과 주소를 주고 받았다. 그녀는 작은 사탕을 주고 갔다.
이와이. 나이는 24살.
오사카에 살고 있고 자그마한 여행사 소속이었다.
자기 소개를 하고 퇴근후에 만나기로 했다.
10시가 넘고 난 사복으로 갈아입고 로비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둘만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_-;; 둘다 말이 안통해서 쩔쩔 맸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영어를 못했다.
시종일관 나의 영어에 "sorry?" 하며 다시 말해달라고 그랬다.
나중에는 일어반 영어반으로 말을 하던 그녀.. -_-;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영어로 듣다가 일본발음의 영어를 알아 들어야 하는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호텔 3층 로비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이어리를 꺼내 그녀에게 한마디 써 달라고 부탁했다. 취미가 쇼핑이었다.
그녀는 2박 3일간 르네상스 호텔에서 묵고 일본으로 떠났다.
난 일본으로 편지를 보냈다.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거의 잊어 갈 무렵 눈 속에 파묻힌 편지를 발견했다.
난 기뻐 얼른 들고 방으로 들어와 뜯었다.
-_-; 단 두줄만 영어고 나머지는 다 일어였다.
I'm so sorry. I have to go to America to study marketing and English.
나머지 밑부분의 일어는
무언가가 괴로웠다는 내용과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밤새 일한 사전을 뒤져서 해석했는데 결국 정확한 뜻은 신과 그녀만이 안다 -_-)
그리곤 이제 앞으로 펜팔을 하기 힘들거라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첫댓글 -____-;; 도저히....눈물이 나서 더 못읽겠어여....
저...저두..이렇게 가슴아픈 이별이야기였다니....어흑..ㅠㅠ
아 피곤한 몸과 마음을 싸악 씻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첫 편지가 이별이라니... 바닥을 두드리며 웃다가... 가슴 아파 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이.. ㅋㅋ
허허 -_- 이미 5년 전 이야깁니다.
저도 그런 비스므레한 경험있는데...그래도 님은 '미안하다..펜팔 못한다..'란 답장이라도 왔네용..전 갑자기 연락이 끊겨버렸어용...흑흑...나뿐 사람들....ㅜ.ㅜ...미오미오..
혹시 사진을 보내셨나여? --;; 후다닥....ㄴ(_-;)ㄱ =3=3=3=3=3=3=3333333333333333
사진 디따 마니 보냈는데....윽... 님 더 미워요.....흑흑......
혹시 사진을 보내셨나요? <--크아악!! 진정한 챔피언이십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