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6월 1일
그레이스
✿2015년 458명 탄 중국 여객선
‘둥팡즈싱’호, 양쯔강에서 침몰
양쯔강에 침몰했던 대형 여객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호 인양 작업이 사고 나흘 만인 5일 오후 6시 50분(현지시각) 마무리되자, 중국 공안 100여명이 선박 내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강변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 중국 당국은 500)급 크레인선 2척과 160)급 크레인선 1척을 동원해 이날 2시간 50분 만에 해당 선박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1일 오후 9시 30분(현지시각)쯤 중국 양쯔강 중류인 후베이성 젠리(監利)현 인근에서 승객과 승무원 458명을 태운
대형 여객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호가 침몰했다.사고 선박은 장쑤성 난징(南京)을 출발해 충칭(重慶)으로 향하고 있었다. 1994년 2월 건조됐으며 정원은 534명이다. 승객들은 난징과 창저우(常州), 상하이(上海) 등 지역 여행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상하이 여행사가
조직한 50~80세 연령대의 노인 단체여행객도 타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새벽 “여객선‘둥팡즈싱’이 1일 밤 9시 28분(현지 시각)쯤 후베이성 젠리현 인근에서 침몰했다”고 긴급 타전했다. 사고 지점의 수심은 15m다. 이 매체는 사고 직후 헤엄쳐 육지로 나온 선장과 기관장의 말을 인용해 “배가 돌풍(회오리바람)에 휘말려 1~2분 만에 전복됐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정원 초과는 아니었지만, 선장과 기관장 등이 먼저 탈출해 육지로 나왔기 때문에 이 선박도 ‘세월호식 대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중국 정부는6일 양쯔(揚子)강에서 침몰한 여객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호 사망·실종자가 442명이라고 최종 발표했다. 승객 456명 중 생존자는 14명에 그쳤다. 당국은 침몰 닷새만인 전날 둥팡즈 싱호를 인양하고 선박을 대대적으로 수색했으나 추가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사고는 중국 건국 이후 최악의 해상 참사로 남게 됐다.
▶2015년위안부 피해 김복동 할머니,
‘자유 영웅 100인’에 선정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김복동(89·사진)씨가 ‘국경 없는 기자회’와 프랑스 AFP 통신이 함께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 100명’(100 heros pour la liberte de la presse)에 뽑혔다. 언론 자유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는 최근 창립 7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자유 영웅’ 100명을 선정해 그들의 사진이 담긴 화보를 펴냈다. 김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과 함께 100인에 포함됐다.
김 할머니는 지금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화보에서 김 할머니가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 수요집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싣고, 그 아래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에 끌려가 성 노예로 살았던 아시아 여성 20만명 중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2년 이래 줄기차게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국경 없는 기자회 사무총장은 화보 속 사설에서 “이 화보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지난 30년간 정보 공개 등 자유를 수호하는 과정에서 함께한 영웅적 인물들에게 바치는 송시(頌詩)”라고 밝혔다.
▶2015년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호암상 시상식 참석… ‘첫 대외 행보
▶’2015년소록도 한센인 지원 15년…
‘참길 복지’ 신임 대표 김가범 취임
40년 전통의 봉사 단체 대표에 여성 화가가 취임했다. 사단법인 ‘참길 복지’의 김가범(68·사진) 대표가 6월 1일 3년 임기를 시작했다. ‘참길 복지’는 1973년 아동 봉사로 시작해 2001년부터 전남 소록도 한센인을 위한 활동에 주력하는 단체다.
김 대표는 취임 행사를 생략했다. “250명 회원이 달마다 1만~2만원씩 내는 후원금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서울 서초구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참길’은 ‘참되고 옳은 길을 가자’는 뜻”이라며 “늘 그런 마음으로 단체를 이끌고 싶다”고 했다. 복지회는 여름과 겨울 고등학생·대학생 100여명과 소록도를 찾아가 나흘간 한센인을 돌보고, 한센인 2·3세의 사회 참여를 별도로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김 대표는 40대에 붓을 잡고 50대에야 첫 전시를 가졌다. 참길복지와는 1998년 인연을 맺었다. “보육원에서 봉사 활동하다가 한센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일제가 소록도에 강제 수용 시설을 만들어 격리한 얘기부터 이후의 상황까지요.” 당시 충격이 꽤 컸다고 한다. “처음엔 누구나 (소록도 봉사를) 꺼려요. 첫 봉사를 마치고 나면 목욕탕에 들러 씻고 나올 정도죠.” 김 대표 역시 그렇게 두려움을 갖고 시작한 봉사가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회원들은 해마다 먹거리와 생필품을 싸들고 소록도 한센인 마을을 찾았다. 페인트칠을 하고 하수구 청소도 하며 이것저것 거들다 보니 차츰 ‘친구’나 ‘동생’처럼 대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오해 속에 천대까지 받으니 얼마나 아픔들이 크겠어요.”
그는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시비(詩碑)에 대해 말했다. 땅에 선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 돌판이다. 거기에 한하운의 대표 시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한센병 환자로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절절하게 표현했어요. 소록도 주민들의 여전한 정서이기도 해요.” 김 대표는 “제가 화가니까 다른 예술가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기부한 작품을 판매해 기금을 마련하는 행사를 열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2015년마치무라 전 일본 중의원 의장 별세
▶2010년 미국 필라델피아 영생장로교회
(이용걸 목사)에서 제 5회 GMS 필라
여성선교사 대회 개최.
▶2010년'백만 송이 장미' 원곡 가사 쓴
보즈네센스키 별세
가요 '백만 송이 장미'의 러시아 원곡 노랫말을 쓴 것으로 유명한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Voznesensk)가 2010년 6월 1일 77세로 별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조전에서 "보즈네센스키는 우리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와 산문은 자유와 사랑, 고결함과 진실함에 대한 찬가였다"고 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조전을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보즈네센스키는 '60년대 아이들'로 불리는, 스탈린 사후에 지적 자유를 누렸던 지식인 세대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크렘린의 정치권력에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로 인해 니키타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부터 추방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9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국
제공항을 출발한 에어프랑스의 장거리용
여객기인 에어프랑스 447편 항공기가
대서양에서 항법신호를 보내지 않은 채
실종되었다. 벼락으로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9년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GM 파산보호 신청.
▶2009년 서울-신창간 누리로 운행 개시
▶2008년 자메이카 우사인 볼트,
100m 달리기 9초 72로 세계신기록 수립.
▶2007년 장항선 신례원역과 경의선
도라산역에 새로 새마을호 열차가 정차함
▶2006년 1907년 대부흥운동 100주년
기념대회준비대성회 개최(원주 명성
수양관 ~2)
▶2005년 국보 제224호 경회루
일반인에게 공개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삼아 그 아름다움을 뽐내며 연못 위에 우뚝 서 있는 경회루는 각종 달력과 문화재 책자에 단골로 등장하는 건물이다. 경복궁 내에서도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이곳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경회루 내에서 보는 북악산 일대의 한양 모습은 최고의 차경(借景)으로 평가를 받는다. 자연과 어우러져 은은한 멋을 풍기는 경회루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에 더해서, 실제 이곳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경회루. 특히 경회루 내에서 보는 북악산 일대의 모습은 최고의 차경으로 평가받는다.
경회루의 건설과 ‘경회’의 의미
태조대인 1395년 경복궁 창건 당시 경회루는 없었다. 당시 이곳에는 작은 누각 정도만 세워두었다. 그런데 1412년(태종 12) 태종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재천도 한 이후, 그 서루(西樓)가 기울어지고 위태하자 태종은 누각의 수리를 지시하였다. 공사의 총감독은 공조판서인 박자청(朴子靑)이 맡았다. 박자청은 노비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건축 기술을 인정받아 종 1품의 지위에 까지 오른 인물이다. 박자청은 경복궁 서쪽의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하여 루(樓)를 에워서 못을 파고 경회루를 건설하였다. 누각이 완성되자, 태종은 이 누각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하였고, 하륜이 그 이름을 경회루라 정하였다. ‘경회루’에 담겨 있는 이름의 의미는 하륜의[경회루기(慶會樓記)]에 자세히 실려 있다.
내가 일찍이 들으니, 공자께서 노나라 애공(哀公)의 물음에 대답하시기를, “정사를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사람을 잘 얻고 잘못 얻는 데 있다.” 하셨다. 대개 인군(人君)의 정사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사람을 얻은 뒤에라야 ‘경회(慶會)’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 ‘경회’라는 것은 군신 간에 서로 덕으로써 만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니, 마치 [주역] 건괘(乾卦)의 구오(九五)가 그 대덕(大德)으로써 구이(九二)의 대덕을 보고, 지기(志氣)가 서로 맞아서 그 도를 행하는 것과 같이 하면, 모든 어진 이가 부류대로 나와서 국가가 창성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구름이 용을 따르고 범이 바람을 따른다는 것이다 (…) 옛일을 상고하건대, 요ㆍ순ㆍ우ㆍ탕ㆍ고종ㆍ문왕ㆍ무왕 같은 이가 임금이 되고 고요(皐陶)ㆍ기(夔)ㆍ백익(伯益)ㆍ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여상(呂尙)ㆍ주공(周公)ㆍ소공(召公) 같은 이가 보좌가 되면 참으로 경회라 이를 것이다.
- [동문선] 제81권 [경회루기]
이름을 짓자, 태종은 세자인 양녕대군에게 ‘경회루’라는 글씨를 쓰게 하여 그것을 편액으로 삼았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을 접견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써 만난다는 뜻에 맞게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연회를 베푸는 공간으로도 자주 활용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이곳에서 기우제가 행해졌고, 무과 시험이 치러지기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그 둘레에는 못을 만들었는데 못이 깊고도 넓었으며, 연꽃이 심어져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으며, 성종대에 경회루를 수리하면서 돌기둥에 구름과 용과 화초들의 형상을 새겨 넣었다. 깊고 넓은 연못과 그 위에 수놓아진 연꽃, 그리고 그 사이를 헤엄치는 용의 그림자. 경회루는 궁궐 속에서 마치 신선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었다. 1477년(성종 8)에 이곳을 방문한 유구국(琉球國)의 사신은 경회루의 용 그림자를 세 가지 장관(壯觀)의 하나라고 표현하였다.
유구국 왕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성종께서 경회루 밑에서 접견하였는데, 사신이 퇴관(退館)하여 통사(通事)에게 말하기를, “내가 귀국에 와서 세 가지 장관(壯觀)을 보았소.” 하였다. 통사가 그 까닭을 물으니, 사신이 말하기를, “경회루 돌기둥에 종횡으로 그림을 새겨서 나는 용의 그림자가 푸른 물결 붉은 연꽃 사이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이것이 한 가지 장관이요, 영의정 정공(鄭公)이 풍채가 뛰어나고 흰 수염이 늘어져 배에까지 내려와서 조복을 빛나게 하니, 이것이 두 번째 장관이요, 예빈부정(禮賓副正)이 항상 낮에 술 마시는 연석에 참여하여 쾌히 큰 잔으로 무수히 술을 마시되 일찍이 취한 빛을 보이지 않으니, 이것이 세 번째 장관이오.” 하였다.
- [용재총화(慵齋叢話)] 제7권
경회루의 야경.
경회루에 얽힌 역사적 사연들
경회루에는 역사적 인물들과 얽힌 사연도 많다. 조선전기의 학자 구종직(丘從直)은 과거에 합격하여 교서관으로 있을 때, 경회루의 경치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가보고 싶어 하였다. 하루는 숙직을 하게 되어, 편복(便服)을 입은 채 몰래 몇 개의 문을 거쳐 경회루 아래에 당도하여 연못가를 산보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왕이 편여(便輿)를 타고 환관 몇 명을 데리고 경회루에 이르렀다. 왕이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 하니, 구종직은 “신이 일찍이 경회루는 옥계요지(玉桂瑤池)라 바로 천상선계(天上仙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밤 다행히 예각(藝閣)의 숙직을 하게 되었사온데, 예각은 경회루와 그리 멀지 아니한 까닭으로, 초야의 천한 것이 감히 몰래 구경하고 있었습니다.”하였다. 왕은 구종직에게 “경전을 외는가.” 하고 물었고, 구종직이 [춘추(春秋)]를 잘 기억합니다.”고 하자, 왕은 “소리 내어 읽으라.” 했다. 구종직이 [춘추]를 외워 읽는데, 흐르는 물과 같이 막힘없이 한 권을 마치었다. 다음날 세종은 구종직을 종9품의 말단직에서 종5품의 부교리(副校理)로 유래 없는 승진을 시켰다. 경회루에서의 왕과의 만남은 구종직에게 출세의 사다리가 되었던 것이다.
경회루는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완전히 권력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1455년(단종 3) 윤 6월, 단종을 압박하여 상왕으로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연려실기술]에는 이 날, 왕위를 상징하는 옥새를 경회루에서 전달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단종이 환관 전균을 시켜 우의정 한확 등에게 전교하기를, “내가 어려서 안팎의 일을 알지 못하여, 간악한 무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 반란의 싹이 끊임없이 일어나니, 이제 장차 대임(大任)을 영의정에게 전하려 하노라.” 하였다 (…) 동부승지 성삼문에게 상서원에 가서 빨리 옥새를 내어오도록 명하고 균을 시켜 경회루 아래로 받들고 나오라 하고, 임금이 경회루 아래에 나와서 세조를 불렀다. 세조가 들어가니, 승지와 사간이 따랐다. 임금이 일어서니, 세조가 꿇어 엎드려서 울며 굳이 사양하였다. 임금이 손에 옥새를 들고 세조에게 주었다. 세조가 사양하다 재가를 받지 못하고 그대로 엎드려 있으니, 임금이 부축하여 나가라 하고, 군사가 호위하였다.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이날 박팽년은 단종의 전위에 분노하며 경회루 연못에 떨어져 죽으려 하였다. 성삼문은 이를 말리며, “지금 왕위는 비록 옮겨 갔지만 아직 상왕(上王)이 계시니, 우리들이 죽지 않아야 장차 뒷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오.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한다면 그때 죽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니, 오늘의 죽음은 국가에 무익한 것이오.”라고 박팽년을 달랬다고 한다.
연산군에게 있어 경회루는 쾌락의 공간이었다. 연산군은 경회루의 연못 위에 채붕(彩棚: 채색 누각) 세 개를 만들어 놓고, 첫째 것은 만세(萬歲)라 하고 둘째 것은 영춘(迎春)이라 하고 셋째 것은 진방(鎭邦)이라 하였다. 세 누각이 산처럼 높이 솟구쳐 있어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또한, 채색 천을 오려 꽃을 만들었는데 백화가 산중에 난만하여, 그 사이가 기괴 만상이었다. 그리고 용주(龍舟)를 만들어 못 위에 띄워 놓고, 채색 비단으로 연꽃을 만들었다. 산호수(珊瑚樹)도 만들어 못 가운데에 푹 솟게 심었다. 경회루를 향락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경회루 아래층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치고서, 전국에서 뽑혀 온 기생인 흥청과 운평 3천여 인을 모아 놀았다. 경회루에서 국가 재정을 물 쓰듯이 쓰면서 기생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는 연산군을 두고 백성들은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는 말로 저주했다.
경회루는 1412년 태종 때 본격적으로 조성되어 조선시대 사신의 접대와 궁중 연회가 베풀어졌던 공간이었다.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면서도, 단종의 전위와 연산군대의 흥청망청 고사가 유래한 곳이기도 하다. 경회루의 아름다운 경치들을 감상하면서 이곳을 거쳐갔던 역사적 인물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2005년페루의 생후 13개월 된
‘아기 인어공주’ 다리 분리 수술 성공
페루에서 다리가 붙은 채 태어난 생후 13개월짜리 ‘아기 인어공주’ 밀라그로스 세론양이 2005년 6월 1일(현지시간) 페루 수도 리마의 병원에서 다리 분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스페인어로 ‘기적(밀라그로스)’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세론 양은 2004년 4월 27일 페루 우앙카요 마을에서 두 다리가 붙은 ‘인어 증후군’으로 불리는 선천적 기형아로 태어났다. 이 증후군은 신생아 7만 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현재 전 세계에 생존해 있는 사례는 3명에 불과하다.
페루 리마의 솔리다리티 병원 정형외과와 심장과, 소아과 전문의 등 11명의 의료진은 이날 4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세론양의 발목부터 넓적다리 부분까지 완전 분리에 성공했다. 이번 수술로 세론양이 정상적인 다리를 가질 수 있게 됐지만 생식기와 소화기 등이 기형이어서 장기를 재건하고 회복하려면 최고 15년 간 교정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2005년영국 퍼시 부부 기네스북
‘세계 최장 결혼 기록’ 경신
▶2005년 한일 해경경비정
`502신풍호` 놓고 해상대치
▶2005년 청계천 통수식
▶2005년 페루의 생후 13개월된
`아기 인어공주(다리가 붙은 채 태어남)`
다리분리수술 성공
▶2005년 영국 퍼시부부 기네스북의
`세계 최장 결혼 기록` 경신
▶2005년 제60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개막
▶2005년 에듀엑스포
▶2005 교육 인적자원 혁신박람회 개막
▶2004년로버트 김 8년 만의 귀환.
정식 출감 전 가택연금
▶2004년이라크 임시정부 출범,
신임 대통령에 알 야와르 피선
▶2004년한국, 군(軍) 첫 ‘부부원사’ 탄생
군 부사관(옛 하사관)의 최고 계급인 원사 부부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7공수특전여단 소속 김영우(46) 원사의 부인인 국방부 여군발전단 고충처리과 이현숙(43) 상사가 6월 1일 진급해 원사가 됨으로써, 창군 이래 첫 부부 원사가 됐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검은 베레’ 시절인 1989년 7월. 이들은 모두 공수부대원으로 창공에서 낙하산에 의지해 ‘안 되면 되게 하라. 귀신처럼 접근해서 번개같이 쳐라’ 를 목청껏 외쳤다.
13공수여단에 근무하던 김씨와 특전사 여군중대의 이씨는 부대 상관의 소개로 알게 된 뒤 10개월간 사귄 끝에 1990년 4월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의 결혼식장에선 “보아라! 장한 모습 검은 베레모…” 로 시작하는 ‘검은 베레’ 가 축가로 불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04년 로버트 김 8년 만의 귀환.
정식 출감 전 가택연금
▶2004년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시
범칙금 부과
▶2004년 이라크 임시정부 출범,
신임 이라크 대통령에 알 야와르 피선
▶2004년 한국, 군(軍) 첫 ‘부부원사’ 탄생
▶2003년 세계최대 수력댐
중국 ‘싼샤(三峽)댐’ 저수시작
▶2003년 일본 스모계 스타
다카노하나 은퇴
▶2002년 김남수 주교 사망
▶02001년 네팔 디펜드라 왕세자,
국왕 일가족 등 9명 살해
▶2001년 일본 법원, 원폭 피해
한국인에 첫 배상 판결
▶2001년 만화 ‘개구쟁이 데니스
’ 작가 행크 케트첨 사망
▶2001년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170여명 실종.
▶2001년 일본 법원, 원폭 피해
한국인에 첫 배상 판결
▶2001년 네팔 왕실 대학살 네팔 국왕
비렌드라를 비롯한 수많은 왕족들이
살해당하는 참사가 발생
▶2000년 라틴재즈 `살사의 황제`
티토 푸엔테 사망
▶1998년 유물복원 1인자 ‘마이더스의 손’
이상수씨 별세
▶1998년 러시아,북한 어선 13척 나포
▶1997년 서울, 인천, 경기도 제외한
전국 아파트분양가 전면 자율화 실시
▶1997년 일본, 스톡옵션제 전면허용 실시
▶1997년 북한, 나진, 선봉 주민
자영업 허용.화폐체계 단일화 실시
▶1996년 보건복지부,
금연구역서 흡연시 2~3만원 범칙금 부과
▶1996년 건교부,
도쿄-베이징간 운항기 서울 통과 허용
▶1996년 러시아,
루블화 규제 완전 철폐
▶1991년 김용강
WBA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0년 한국 네트워크, 인터넷에
처음 연결됨으로 한국 인터넷시대 개막
▶1988년 미-소양국, 중단거리 핵미사일
(INF) 폐기조약 비준서 교환
▶1987년 라시드 카라미 레바논총리,
군헬리콥터 탑승중 폭탄폭발로 사망
▶1987년 중앙기상대,
비 눈 여부에대한 확률예보제 실시
▶1985년 화장품, 밀가루 등
65개 품목 수입 자유화
▶1983년 김정일 중국 방문(~12일)
▶1982년 경기도 성남시 부근서
군수송기 추락. 장병 53명 사망
▶1981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국내 최대 점자도서관 개관
▶1981년 교보문고 개점
▶1980년 CNN 방송 개국
▶1979년 짐바브웨-로디지아 공화국 발족
▶1978년 제11회 월드컵
아르헨티나서 개막
▶1977년 한국은행 새 5,000원권 발행
▶1973년 호남매일 폐간
▶1973년 가정의례준칙 발효
▶1973년 그리스, 공화제 선언
▶1973년 가격표시제 실시
▶1972년 군납(軍納) 부정사건
▶1972년 이라크, 석유국유화 발표
▶1969년 미국 노동운동가 루이스 사망
▶1968년 미국 교육자 헬렌 켈러 사망
▶1968년 여의도 윤중제 준공식
▶1967년 신민당 국회위원후보 김재화,
반공법위반혐의로 구속
▶1966년 월남파병 전투사단
백마부대 창설
▶1965년 동파키스탄
태풍으로 3만명 사망
▶1965년청소년 선도위원
사랑의 종치기 시작
▶1965년 일본 복강현
광산폭발사고 236명 사망
▶1964년 제1전투비행단 창설
▶1962년 김상동, 조중서등 민주당계
41명 반정부음모혐의로 피검
▶1961년 ROTC 창설,
1기생 전국 16개 대학에서 모집
전국 16개 대학 ROTC 1기생 모집이 1961년 6월 1일부터 시작됐다. 3대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학생은 모두 2천6백42명이었다. ROTC에 대한 이같은 호응은 문맹률이 40%에 이르러 한글로 쓰여진 야전교범조차도 읽지 못하는 장교가 있을 정도였던 당시 우리나라 군의 발전을 위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이들은 실제로 사병들의 문맹퇴치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ROTC(학생군사훈련단)제도는 문교부와 국방부가 미군사고문단의 제안을 받아들여 1960년 9월13일 학군단 실시를 확정함으로써 시작됐다. 1기생중 1천7백68명만이 1963년 2월 임관했다. 이들 중 군 장성은 10명이 배출됐다. ROTC의 명칭은 창설 초기 미국 제도를 본따 `예비역 장교 훈련단`으로 출발했으나 5기생 때부터 자주국방사상 고취를 위해 `학생군사훈련단`으로 바뀌었고, 1971년 현재 이름인 `학생군사교육단`으로 변경됐다.
▶1961년 대학생 교복착용,
중고생 삭발령
▶1960년 동아대생,
부산일보 집단습격 인쇄시설 파괴
▶1960년 과정(過政),
부정축재 자수기간 설정(~20일)
▶1959년 한국-중국 과학협조 협정
▶1959년 제5차 아시아 민족 반공 대회,
서울서 개최
▶1958년 공산당 기관지 `홍기`창간
▶1958년 프랑스, 드골내각 성립
▶1957년 KBS 제1방송 종일방송 실시
▶1957년 국립극장,
구 명동예술회관으로 이전
▶1957년 한국-미국,
유엔군 주둔지 자문위 설치에 합의
▶1952년 미국 교육학자 존 듀이 사망
▶1950년 6년제 의무교육 실시
▶1948년 군정재제 폐지
▶1944년 개마고원 유격대장
김봉 대장 별세
▶1943년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사망
▶1939년 조선, 주민등록실시
▶1934년 독일.유고슬라비아
통상협정 조인
▶1928년 최초로 과학적인 용도의
유인정류장을 만든 소련의 우주비행사
도브로볼스키 출생
▶1927년 이기연, 단오절비행대회서
기체고장으로 추락사
▶1926년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 출생
▶1925년 미국의 28대 부통령 마셜 사망
▶1923년 일본해군, 중국 장사에 상륙,
배일운동 탄압(장사사건)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개최
▶1922년 월간 `부인` 창간
▶1918년 재야운동가 문익환 목사 출생
▶1910년 영국 탐험가 스코트,
남극탐험을 위해 영국 출발
▶1909년 미국 뉴욕서 전미흑인위원회
(NNC)가 결성
▶1908년 김기중 등에 의해 기호학교 설립
▶1906년 미국-일본 해저전선 준공
▶1863년 근대올림픽 경기의 창시자
쿠베르탱 출생
첫댓글 오늘의 역사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역사 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의 역사 감사합니다~영아님~^^
감사합니다